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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31화 (13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1화

131. 처음 타 보는 비행기(1)

“예?”

이창엽이 상혁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옆에서 물었다.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우 호텔의 총지배인에 대해서 아는 게 있습니까.”

“총지배인이요?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상혁은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재밌었다. 글로벌 호텔 체인의 총지배인에게서 정보 쪽 냄새가 꽤 강하게 났기 때문이다.

정보원들은 양지의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중생활로 낮에는 정상적인 일반인처럼, 밤에는 정보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이들이다. 옆집의 평범한 아저씨가 정보요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보란 곧 힘이요, 생명이었으니 정보원들은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산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늘 초연한 듯한 느낌이 느껴진다.

그 초연함이 방금 총지배인에게서 느껴졌다. 대개 초연함을 가졌다고 하는 건 신관들이나 죽기 직전의 노인, 혹은 죽음을 각오한 자들에게서만 느껴진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호텔 총지배인과 초연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혁은 그가 정보원일 것이라 추측했다.

‘호텔이라면 온갖 정보들이 모이는 곳이긴 하겠지. 그것도 고급 정보들.’

상혁은 총지배인이 정보원일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떠올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이창엽에게 말했다.

“됐습니다. 그냥 젊은 나이에 총지배인이라니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만. 따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이창엽이 그렇게 말했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봤자 얻을 건 없다.’

기껏해야 총지배인인 마이클 무어의 가짜 신분에 대해서만 몇 줄 알아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21세기 지구는 과학의 대약진으로 인해 마법과 오러가 중심인 가나안보다 모든 것이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그 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과학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국경과 국가 등 여러 가지 방해 요인들이 있어 생각보다 일정 범위 밖을 벗어나면 과학은 큰 효용을 발휘하지 못한다.

‘범용성 측면에서는 차라리 마법과 오러가 낫군.’

마이클 무어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보원일 리가 없는 그의 진짜 신분에 대해서 알아내는 건 이창엽에게 무리일 것이다.

오히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 있으니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이 비서님은 에스랜드 통제나 확인해 주시죠. 바로 출발할 테니.”

“예, 알겠습니다.”

이창엽이 괜히 상혁에게 믿음을 받겠다고 제멋대로 움직이게 하느니 뭐라도 시켜서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잠시 후.

사만다 허드가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상혁이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녀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사만다를 보고 놀람을 속으로 감추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뒤에 덧붙였다.

“아름다우시네요.”

전문가들이 붙어 완벽하게 세팅을 한 사만다는 완벽했다. 그녀가 괜히 어린 나이에 그 수많은 상을 휩쓴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을 절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담긴 얼굴과 연기력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의해 전문가의 손길이 거쳐 간 사만다 허드의 미모는 완벽했다.

그 상혁이 완벽하다고 말할 정도이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하이엘프만 하군.’

미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

물론 엘프들은 그리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그들을 약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때문이다.

실제로 엘프들의 외형만 보고 그들을 평화의 종족이라 부르지만 사실 엘프들은 절대로 평화를 추구하는 종족이 아니었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자신들의 영역을 들어오는 이들은 가차 없이 죽인 뒤 본보기로 삼을 정도로 단호한 종족이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인간의 눈에 그들은 아름다웠다.

인간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요소요소를 모아다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엘프란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것이 엘프들을 이끈다는 왕족인 하이엘프.

화장을 한 사만다 허드의 외모는 그 하이엘프와 견줘도 떨어질 것이 없었다.

“그, 그래요?”

사만다가 부끄럽다는 듯 볼을 살짝 붉혔다. 그녀는 평생을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소리에는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상혁이 그러니 괜히 부끄러워졌다.

상혁의 말에 담긴 진심 때문이다.

언령의 힘을 아는 마법사인 상혁의 진심은 그저 상대방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안겨 준다.

“큼, 큼!”

그때 주드가 자신도 여기 있다는 것을 알라는 듯 끼어들어서는 헛기침을 했다. 상혁은 사만다의 존재감에 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력인가?’

사만다에게서는 상혁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은은한 마력이 느껴졌다. 원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짜 엘릭서를 주입한 사만다는 정말로 은은하게 마력을 흘렸다.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라는 것이 단순한 관용어구가 아니라 진짜가 된 것이다.

‘저 상태로 나가는 건 무리겠군.’

구기동 자택에 있을 때는 저런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드를 만나 심리적 안정을 얻으면서 마력이 풍겨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대로 사만다를 놔두는 건 곤란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사만다인데 저 마력까지 있으면 피리 부는 소년처럼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끌고 다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잠시.”

그때 상혁이 손을 뻗어 사만다가 차고 있는 목걸이를 슥 문질렀다.

“저, 이사장님.”

“먼지가 묻어서.”

우웅!

상혁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내렸다. 작은 원형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다. 상혁은 그 목걸이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빙긋 웃었다.

일시적이나마 오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니, 저 보석에 걸린 마력이 사만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과 충돌하여 사그라들 것이다.

상혁은 우아하게 몸을 돌리며 사만다에게 팔을 내밀었다.

한때 상혁은 마탑주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권력자. 그런 상혁이 고상한 체하기 좋아하는 귀족들이 떼거리로 참가하는 왕실 연회에 가 보지 않았을 리 없다.

예법 하나에 그토록 민감한 자들이 모인 곳이기에 상혁은 어거지로 예법을 배워야 했지만, 그곳에서 오십 년 정도 생활하자 저절로 그 예법이 몸에 익었다.

지금처럼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 자세가 절로 나올 정도로.

사만다는 그런 상혁의 앞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상혁은 L층에 불이 들어온 것을 보며 사만다에게 말했다.

“무를 수 있습니다.”

“네.”

“좋건 싫건 사만다의 인생은 바뀌었고, 지금 나와 함께 기자들 앞에 서는 건 또다시 인생의 격변이 일어난다는 뜻이니까요.”

사만다의 인생은 지금껏 세 번 큰 격변을 맞이했다.

배우가 됐을 때.

윌리엄 글레이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에게 처참히 배신당한 뒤 실험체로 팔려 나갔을 때.

이번이 무려 네 번째 격변이다. 웬만한 사람은 그런 걸 한 번 겪으면 많이 겪는 것일 것이다.

사만다는 웃었다.

“세 번이나 네 번이나 다를 건 없어요.”

“뭐. 몸 성히, 괜한 소문 안 따르게 깨끗하게 세탁해서 보내 주겠습니다. 일이 끝난 뒤예요.”

“네, 당신만 믿을게요.”

사만다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상혁은 그런 사만다의 얼굴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게 사만다로 하여금 상혁을 더욱 믿게 만들었다.

지금껏 그녀가 살아온 화려한 할리우드에서도 사만다를 정면에서 보고 딴생각하지 않은 남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혁은 다르다.

그녀가 지금껏 봐 온, 만나온 그 어떤 남자들과도 상혁은 달랐다.

띵!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했다. 그리고 상혁과 사만다는 어깨를 곧게 편 채 놀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내며 로비를 가로질렀다.

상혁과 사만다.

세기의 열애설이라 불리는 그 둘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다.

* * *

에스랜드.

상혁과 사만다는 비서도 없이 직접 상혁이 운전해 에스랜드에 도착했고, 여느 사람들처럼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내렸다.

SG그룹의 새로운 로열패밀리라는 그런 껍데기는 하나도 없다는 것처럼, 상혁은 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린 사만다에게 팔을 내밀었고 사만다는 그 팔에 자신의 팔을 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줄을 섰고, 기다렸다가 표를 샀으며 다른 사람들과 줄을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에스랜드에 입성했다.

따라라란~!

놀이공원답게 경쾌한 BGM이 반겨 주고, 수많은 아이와 학생들이 눈앞을 오갔다. 상혁은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인 것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서울인가.’

서울이란 것이 확 느껴졌다. 가나안에서 지구로 돌아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문득 그게 피부로 느껴진 것이다.

찰칵.

그때 상혁의 귀에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상혁이 주변을 둘러보자 상혁과 사만다를 알아보고 한두 명씩 모여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슬슬 시작인가.”

“각오했으니까요. 대신.”

사만다가 상혁을 보면서 웃었다.

“저런 건, 잊고 놀아요. 그러려고 온 거잖아요?”

기자들 앞에 사만다와의 열애설이 진짜임을 보여 주기 위해 만든 자리다. 그럼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얻을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만다의 말이 영 틀리기만 한 건 아니다.

최대한 많이, 자연스럽게 찍혀야 한다. 그게 단순히 만들어 낸 열애설이 아님을 보여 줄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 이 시간은 휴식이나 다름없다.

그냥 놀면 되니까.

사진이야 알아서들 찍어 주겠지.

“뭘 타고 싶습니까.”

“저거요.”

사만다는 손으로 저 멀리 있는 롤러코스터를 가리켰다. 외부로 나가야 탈 수 있는 놀이기구였다. 상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과 사만다 주변으로 인의 장벽이 생겨났지만 그게 나아가는 발길을 붙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새 이미 경호원들이 상혁과 사만다 주변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알아서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 상혁과 사만다는 여느 연인이나 보일 법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선보였다.

머리띠를 사서 씌워 주고, 간식거리를 사서 같이 나눠 먹고.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그리고 기다렸다가 타는 순간에는 기뻐하는 모습까지.

둘은 실제 연인이 된 것처럼 카메라가 그 모든 모습을 담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연기가 대단한데?’

상혁은 그런 사만다를 보면서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꼽힌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다.

이게 계획된 열애설이 아니었다면 상혁도 사만다가 정말 자신에게 빠진 것이 아닌가 착각을 할 뻔한 순간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만다는 그 와중에도 단 한 번도 카메라를 놓치지 않았다.

거의 본능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사만다는 카메라가 있는 위치를 알고는 그쪽에서 찍을 수 있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것 같아도 사만다의 모든 행동과 표정은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빠직!

물론 상혁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사만다가 거의 완벽한 퍼포먼스로 상혁의 부족한 연기력을 커버하고 있었다면, 상혁은 쓸데없이 다른 곳에 집중하는 카메라가 느껴질 때마다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마법으로 태워 버렸다.

아주 작은 스파크면 충분했기에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그 카메라들은 사만다의 특정 부위만을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있었기에 상혁의 철퇴를 피할 수 없었다.

아마 신나서 카메라를 돌려보려고 하면 당황할 것이다. 카메라 내부가 아마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타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혁은 사만다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각자 서로의 일에 치열하게 집중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바로 그 저녁부터 대형 포털 사이트가 온통 상혁과 사만다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이 전 세계로 퍼졌다.

상혁과 사만다의 열애설.

그게 단순 스캔들이 아니라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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