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26화
126. 형 대접을 받고 싶으시거든(1)
“미안하다, 사만다.”
“주드, 주드가 왜 저한테 사과를 해요.”
“널 지켜 주지 못했으니까.”
사만다는 포근하게 웃었다. 그녀는 주드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했다. 여배우가 되기 전 사만다 허드를 그의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드는 최선을 다했어요.”
“아니, 난…….”
“그만. 전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주드를 무사히 만났구요. 이제 우리 과거는 이야기하지 말기로 해요. 미래만 해도 머리가 아프잖아요.”
미래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
주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자회견을 열어 대대적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린 사만다는 글레이저 가문의 선전 포고를 했다.
주드는 그런 사만다에게 물었다.
“정녕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누구요, 상혁 씨요?”
“그래, 미스터 백.”
그가 비범한 사람이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주드도 상혁을 본 순간 그의 비범함을 느꼈다. 최근에 백성철의 인정을 받았다고 하던데, 그 전에 평범하게 살았다는 것치고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거기에 사만다를 몰래 확보한 수완도 있고.’
그는 능력이 있고 비범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글레이저 가문의 공세로부터 사만다가 무사하기 위해서는 그것 이상이 필요했다.
‘SG도 부족하다.’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손꼽히는 SG그룹이지만 수백 년 동안 미국의 암중에서 영향력을 끼쳐 온 글레이저 가문에는 부족했다.
백상혁이 SG그룹의 회장이라면 모를까 회장의 조카라는 직함 하나로는 사만다를 그렇게 드러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스캔들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는 했는데.’
대중의 관심이라는 이 방패막이가 언제 그 효용을 다할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쏟아지고 있는 대중의 관심은 시간이 흐른 후 더 큰 관심을 내세우면 더 이상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레이저 가문은 없는 일도 사실처럼 만들어 대중들의 관심을 다시 가져갈 수도 있는 곳이었다.
“전 믿어요.”
“어째서?”
“날 살려 준 사람이니까요.”
사만다는 실제로 거의 죽을 뻔했다. 그런 사만다를 구해 준 것이 백상혁이다. 그러나 어떻게 상혁이 자신을 구해 줬는지 사만다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사만다. 네가 더 잘 알잖니.”
할리우드의 최고 여배우라 불리며 화제성과 연기력 전부 다 인정받는 사만다지만 글레이저 가문은 그런 사만다를 철저하게 봉쇄한 뒤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만약 사만다가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중은 사만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족했다. 그리고 그건 사만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일단 한국에서는 글레이저 가문이라고 해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어요. 반면에 SG그룹에게는 한국이 앞마당이구요.”
똥개도 제 앞마당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글레이저 가문과 SG그룹도 마찬가지다. 한국으로 한정한다면 글레이저 가문도 SG그룹의 눈을 전부 다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주드, 의심하지 마세요.”
“미스터 백을?”
“예. 주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이에요. 방법을 생각해 낼 거예요.”
“…….”
주드는 사만다를 가만히 쳐다봤다. 사만다가 그의 예상보다 더 상혁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한국에서 그녀를 구해 주고 지금까지 보호해 준 남자였으니까.
그게 특별한 감정으로 이어져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를 좋아하니?”
“네?”
“남자로서 말이야. 꼭 사랑에 빠진 것 같구나.”
“아니에요! 사랑은 무슨!”
사만다는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예로부터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다. 주드는 사만다를 보며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은 다음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 정도면 나쁜 조건은 아니지. 코리안 재벌이니까. 거기에 사만다보다 어리고, 그 정도면 봐 줄 만하게 생겼고.”
“주드!!”
사만다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드가 킬킬거렸다. 그때 주드가 사만다에게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미스터 백의 경호원과 비서 말이야…….”
일영과 일호를 말하는 것이다. 사만다는 그들이 서번트와 골렘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날 나타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데려온 사람들일 것이라 당연히 생각했다.
“왜요. 관심 있어요?”
“그 정도 마스큰데 썩히는 건 아깝잖아. 그러니까…….”
주드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기획사를 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사만다 앞이라 일부러 더 그런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부러 일상적인 대화를 꺼내 사만다를 위로하려 한 것이다. 그걸 느꼈지만 사만다도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만다와 주드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예전에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 *
저벅, 저벅.
상혁은 단출했다. 백이현이나 백도현은 한 번 어디 움직일 때마다 기본적으로 열 명 이상의 수행원들이 함께했지만 상혁은 그 반밖에 되지 않았다.
일영과 일호, 이창엽과 이선호.
오승택은 차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상혁이 대동하는 건 이 넷이 전부였다. 상혁은 그 채로 SG건설 로비에 들어섰다.
상혁이 그곳에 들어선 순간 지나가던 이들이 놀란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SG그룹에 소속된 이들 중 상혁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사내 인트라넷으로 상혁에 대한 소식이 쫙 퍼졌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의연하게 받아 내면서 걸었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삐뚜름하게 비틀어 올렸다.
“이 비서.”
“예, 이사장님.”
“연락을 넣었다고 하지 않았나?”
“예, 분명. 그런데…….”
미리 연락을 넣었음에도 아무도 상혁을 마중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백이현이 유치한 짓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상혁이 로비에 가서 직접 자신이 누군지를 밝히고 위에서 사람이 내려올 때까지를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겠다는 백이현의 유치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성격이었나?’
그때 이창엽이 낮은 목소리로 상혁에게 말했다.
“백이현 사장을 비롯한 건설 중진들이 전체 회의 중이라고 합니다.”
“그럴듯한 핑계가 되겠군.”
중요한 회의 중이었으니 전달할 사람이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럴듯한 변명까지 준비한 백이현을 보면서 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나 형님께서 날 건드리고 싶으셨던 모양이군.”
백이현은 상혁에게 직접 오라면서 기자까지 보냈다. 상혁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대와 백이현, 백도현 간의 관계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까?”
“최만금 전 이사장이 협력을 거부해서 따로 찾아보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이창엽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 숙였다. 상혁은 턱을 쓰다듬었다. 아마 그 문제 때문에 백이현과 백도현이 자꾸만 상혁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리라.
한국대에 백이현과 백도현과 관계된 약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문제에 있어서도 도움이 될 사람은 바로 최만금이다. 이사장이자 교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가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최만금이라. 그 양반과도 관계 정리를 서둘러 해야겠군.”
“예.”
이창엽은 당연히 상혁이 그를 내칠 것이라 생각했다. 상혁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상 강한 영향력을 가진 최만금의 존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늘에 태양 두 개가 떠 있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
당연히 숙청이 일어나야 한다.
“쳐낼 사람들과 끌어 올릴 사람들을 명부에 작성하겠습니다. 그리고…….”
“최만금은 내가 직접 만나 보지.”
자신의 말을 끊는 상혁을 보면서 이창엽은 얼핏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최만금은 내쳐야 한다. 김대엽 비서실장은 그 점을 이창엽에게 강조했다.
“됐고. 음.”
상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로비를 휘휘 둘러보고는 로비 한편에 마련된 카페에 가서는 앉았다.
“커피 향이 좋네.”
“준비하겠습니다.”
일호가 커피를 사겠다며 카운터로 갔다. 개방된 형태의 카페였기 때문에 밖에서도 안이 훤히 보였다.
상혁이 들어오자 그곳에 있던 건설 직원들이 슬슬 눈치를 보면서 일어났다. 아마 상혁의 존재가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외로운 자리구만.”
피식 웃은 상혁은 일호가 내온 커피를 마셨다. 탄 향이 강하게 나는 커피였다. 그 씁쓸한 향과 맛을 즐기는 상혁에게 일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가서 알아볼까요?”
“뭘. 왔다고 연락하는 거?”
“예.”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우려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혁은 피식 웃으며 일호를 쳐다봤다.
“그런 걸 내가 신경 쓸까?”
“죄송합니다.”
일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났다. 상혁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리 없었다. 그건 가나안부터 함께 한 일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상혁은 슈퍼스타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
그렇기에 상혁이 나타나면 이곳보다 더 많은 시선이 상혁을 주시했다. 그곳에서도 상혁은 당당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마법이란 이레귤러의 힘을 가진 상혁은 가나안의 상혁과 같은 존재다.
‘뭐야, 대체?’
이창엽만 그 둘의 관계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자신이 이상한가 싶어 이선호를 봤지만 이선호도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보고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상해, 얘네들.’
상혁은 아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종의 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백이현이 유치한 짓을 하니까 나도 같이해 줘야지.”
상혁이 피식 웃었다. 가나안에서 질리도록 했던 것이 바로 정쟁이다. 마탑의 주인이었지만 그럼에도 최강의 마법사이기 때문에 상혁도 그런 일에 여러 번 휘말려 봤다.
처음에야 생소한 정치질에 귀족들의 수법에 많이 넘어갔지만 마법사는 배우는 것이 빠른 존재다.
그렇게 몇 번 당하고 난 뒤부터는 상혁은 거꾸로 노회한 귀족들을 수도 없이 물 먹였다. 그러면서 이런 유치한 기 싸움을 겪은 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가나안이었으면 응접실에서 마법 연구한다고 폭발이나 몇 번 내면 알아서들 뛰어나왔는데 말이야.’
마법을 쓸 수 없으니 또 불편한 점이 있었다. 백이현 좀 보겠다고 23층짜리 빌딩의 로비에서 폭발 마법을 펑펑 터뜨릴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방법을 쓰면 된다.
“일호야.”
“예, 이사장님.”
“갑자기 삼겹살이 먹고 싶네. 좀 사 와라.”
“예, 이사장님.”
이창엽의 눈이 커졌다. 상혁은 그런 이창엽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비서도 먹을 겁니까?”
“예? 예?”
“변호사님은 드실 거죠?”
“안 먹을 이유가 없죠.”
이선호는 태평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 미친놈들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가 싶었던 이창엽은 잠시 뒤 자신의 우려가 현실이 되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버너, 불판, 고기, 쌈 채소와 쌈장까지.
“저, 이사장님. 지금 이게…….”
“백이현 사장이 자기네 회의하고 있다면서요. 그 중요한 회의를 가서 방해할 수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자리를 비울 순 없으니 여기서 끼니나 해결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치이익!!
상혁이 불판 위에 고기를 구웠다. 그러자 기름이 자글자글 튀면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옆으로 훅 퍼졌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상혁이 버너 위에 불판을 올린 곳이 SG건설의 본사 로비라는 것이었다.
“와, 잘 익는다. 노릇노릇한 거 보소.”
상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있습니다, 이사장님.”
일호는 기다렸다는 듯 소주까지 내놨다. 삼겹살에 소주는 뗄 수 없는 존재다. 상혁은 마음에 든다는 듯 크게 웃고는 나무젓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뜯어서는 입에 물었다.
“언제 되려나.”
꿀꺽
상혁이 진짜로 삼겹살을 보고 군침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안 이창엽은 어질어질해졌다.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것인지 앞으로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또라이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이 사장은 진짜 또라이다.’
이창엽의 소리 없는 절규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