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2화
112. 왕따(2)
“한국대요?”
갑자기 웬 대학교 이사장?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순간 백이현과 백도현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늙은이가 백이현, 도현 형제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였다는 소리다.
“회장님. 상혁이는 이제 막 그룹에 들어온 아이입니다. 한국대 이사장 같은 건 조금 더 경륜 있는 사람에게 맡기시는 것이…….”
“경륜이 있는 것보다 핏줄인 게 더 중요하다.”
백성철의 두 눈이 반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번뜩였다. 상혁은 백이현이 드물게 당황한 눈빛을 띠는 것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무언가 있다는 말이겠다.’
그것도 백이현과 백도현이 나란히 백성철 회장을 말리려고 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었다. 백성철 회장은 다른 계열사도 아니고 대학교를 상혁에게 맡김으로써 백이현과 백도현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는 듯했다.
‘대학교라. 대학교.’
불행히도 대학교는 상혁이 아예 모르는 분야다. 그렇다면 여기서 머리를 괜히 굴릴 것이 아니라 일단 대학교에 가 봐야 한다.
“그리고 경륜? 너도 눈이 있으면 봤겠지. 상혁이, 보통 놈 아니다. 잘하리라 믿는다.”
백성철은 상혁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팔에 소름 돋았다. 자신을 절대로 믿지 않을 사람이 태연하게 믿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혁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예, 회장님.”
“가서 일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할 거다. 비서실에서 사람 하나를 붙여 주마.”
상혁이 회장의 조카라는 것을 증명하고 동시에 상혁을 감시하기 위해 붙이는 감시역이다. 상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원하는 것이 있느냐?”
백이현과 백도현의 얼굴에는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백성철이 단호하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순간 또 득달같이 달려들어 설득하겠군.’
그나마 백도현은 나을지도 모른다. 백도현은 상혁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백이현도 똑같이 생각하게 해 주면 된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게 되어 있지.’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은 백성철에게 말했다.
“돈이 필요합니다.”
“돈? 갑자기 무슨 돈?”
백성철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가 SG의 회장이 되고 난 뒤 백성철 앞에서 돈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꺼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성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의 돈이 무서워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리디어린 조카가 돈 이야기를 하다니.
“사람을 부리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누구든 부릴 수 있는 돈이 필요합니다.”
“주면 부릴 수는 있고?”
사람을 부릴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백성철은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백성철은 상혁에게 한 번 더 물었다.
보육원 출신, 고시 준비.
이것이 백상혁이란 인간이 살아오면서 남긴 이력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혁이 사람을 부릴 돈을 논하니 백성철로서는 흥미가 돋은 것이다.
“돈으로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돈으로 귀신을 부려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나는 다르다.”
백성철이 대한민국의 전 분야에 뿌린 돈은 범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백성철은 그 돈으로 자신만의 제국을 세웠다.
“돈 앞에서 장사는 없다고 하죠.”
상혁은 그런 백성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일흔이 넘은 대마법사의 현기가 상혁의 두 눈에서 일렁였다. 백성철은 그런 상혁의 눈빛을 받고는 자신도 모르게 씰룩이던 입술이 굳은 것을 느꼈다.
이 백성철이가?’
고작 스무 살 먹은 조카 앞에서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가 뭐라고 생각하건 말건 상혁은 말을 이어 나갔다.
“어리고 경력도 없는 놈이 이사장으로 낙하산 인사가 되어 내려오면 앞에서야 설설 길지 몰라도 뒤에서는 욕을 하느라 바쁘겠죠. 그리고 소위 어른이란 사람들은 저를 휘두르려고 할 테고.”
상혁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이현, 백도현처럼 어려서부터 제왕학이나 군주가 되기 위한 경영학을 배워 온 것도 아닌 고시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상혁에게는 기회다.
“제게 무기 하나쯤은 쥐여 주셔야지요. 그 사람이 원하는 돈의 두 배를 주면, 그 사람의 충성심까지 살 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그렇게 재단을 장악하겠다?”
돈을 사람의 환심을 산다. 백성철의 눈에 약간의 실망이 떠올랐다. 평생을 돈을 휘두르면서 살아온 백성철에게 상혁의 말은 절반만 정답이었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재벌은 괴물이 된다.
백성철은 그것을 경계했다.
안 그래도 두려운 금력을 가진 재벌이 괴물이 되면 돈의 위력에 고개를 숙였던 놈들이 똘똘 뭉쳐 반격을 해 온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기름칠과 적절한 이간질.
그게 재벌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게 다냐?”
“아니요.”
하지만 상혁은 실망한 듯 보이는 백성철 앞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20년 만에 뵙는 큰아버지의 지갑에 얼마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뭐?”
백성철의 눈이 커졌다. 큰아버지. 그러니까 자신이다. 저 맹랑한 조카가 지금 자신의 배포를 보겠다면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돈.
상혁의 두 눈에서 그 돈에 대한 욕망이 보였다. 그리고 백성철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핫!!”
돈은 돈이다.
돈은 수단도, 도구도 될 수 있지만 돈은 돈이다. 그리고 기업은, 재벌은 그 돈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돈에 대한 욕망.
백성철은 재벌이 아닌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조카가 재벌답지 않은 것을 가장 경계했지만, 이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너희보다 낫다.”
백성철은 백이현과 백도현의 스무 살을 상혁과 비교했다. 그 결과 상혁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스무 살의 백이현과 백도현은 백성철의 강압적인 제왕학에 일탈을 꿈꾸던 혈기 왕성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혁은 그러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서민처럼 자랐으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재벌이었다.
‘흥. 늙은이가 어디서 사람을 시험하려고.’
상혁은 그런 백성철의 눈빛을 훤히 읽고 있었다. 애초에 백성철은 상혁의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흔 살까지 왕국 권력의 최정점 중 하나인 대마법사로 수많은 귀족들과 정치 대신들을 만나온 상혁이다.
그중에는 대륙 제일의 갑부도 있고 대륙 제일의 기사도 있었으며 대륙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백성철이 재벌의 정점이라고는 하나 겪어 온 경험이 다르고 인생이 다르다.
어쨌건 흡족한 미소를 지은 백성철은 상혁에게 말했다.
“재벌이 돈에 열망이 있어야지. 돈이 많기에 관심이 없다? 그건 더 이상 재벌이 아니고 기업인이 아니다. 돈이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거늘. 그래서 넌 얼마를 원하느냐?”
세 번째 시험이다.
상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상혁이 선제시 해 달라고 한 것을 백성철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틀어 상혁에게 되물었기 때문이다.
지르라고 자신에게 기회를 줬으니 지르면 된다.
백성철이 생각하는 범주?
‘넌 날 감당하지 못하는 그릇이다.’
상혁이 그를 보며 차갑게 비웃은 뒤 말했다.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겠습니다. 그 정도의 돈을 주세요.”
백성철이 기분 좋게 웃었다.
* * *
“도련님. 이 친구의 이름은 이창엽이라고 합니다.”
백성철 회장과 면담이 끝났다. 상혁이 먼저 일어나 나온 순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대엽이 멀대처럼 생긴 남자를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이창엽입니다.”
“제겐 이미 비서가 있습니다.”
“회장님 명령이십니다. 그리고.”
김대엽은 상혁이 데려온 사람들의 면면을 이미 파악한 뒤였다. 일호와 일영, 그리고 이선호가 저쪽에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런 사람들보다는 이 친구 하나가 더 일을 잘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일호를 불렀다.
“일호.”
“예, 도련님.”
“와 봐.”
김대엽은 일호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사실 김대엽 입장에서 갑자기 오늘 지훈과 함께 나타난 일호와 일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호와 일영의 기록은 완벽했다.
서일호와 김일영.
상혁이 일호에게 말했다.
“비서실장님이 저 친구가 너보다 더 나을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일호가 잘생긴 얼굴을 움직여 이창엽을 쳐다봤다. 멀대처럼 큰 그도 일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일호는 그렇게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고용주이신 도련님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그렇지. 내가 가장 잘 알지.”
일호의 대답은 우문현답이었다. 하지만 김대엽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 김대엽의 앞을 막았다.
일영이다.
언제?’
김대엽은 일영이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분명 어디서 보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화려한 외모를 가진 일영이다.
여자 경호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의구심을 품었던 김대엽이지만 자신이 밀어도 꿈적도 하지 않는 일영을 보면서 김대엽은 그녀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 이 친구들과 함께할 겁니다. 그러니 실장님도 괜히 힘 빼지 마세요. 저 친구를 왜 붙여 주셨는지 제가 모르리라 생각하신 겁니까?”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엽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창엽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던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쨌든 함께 데리고 다니긴 하겠습니다만, 제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진 마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도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제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두 분께도 죄송합니다.”
김대엽은 상혁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상혁은 너무나도 당연한 듯 그의 사과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상혁은 이창엽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 봅시다. 감시는 알아서 잘하시고.”
“예?”
스윽.
상혁은 당황하는 이창엽의 옆을 그냥 지나쳤다. 김대엽은 그런 상혁을 보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매일 아침 9시. 보고서 올리도록.”
“예, 실장님.”
이창엽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는 상혁의 뒤를 따랐다. 상혁은 뒤에 혹이 붙은 것을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당황했겠지.’
아마 대놓고 상혁이 감시니 뭐니 언급을 했으니 김대엽도 당황했을 것이다. 그때 뒤에서 백이현이 상혁을 불렀다.
“상혁아.”
“형님.”
상혁은 고개를 깍듯하게 숙였다. 그러자 백이현이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사장,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내가 왜 네가 이사장이 되는 걸 말렸는지 아느냐?”
백이현은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만 그 내심에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감정을 숨기는데 서툰 백이현을 보며 상혁이 빙긋 웃었다.
“모르겠습니다.”
“서운해하지 말거라. 난 그냥 너를 위해서 그리한 것이다.”
백이현은 절대로 상혁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 대학교에는 백이현이 꺼려 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예, 형님. 알고 있습니다. 재단 이사장 일은 제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다가 힘든 일이 있으면 형님께 여쭤봐도 되겠지요?”
백이현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그가 상혁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크하하하, 거리며 웃었다. 아마 백도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놈들의 눈은 비슷하니.’
야망으로 점칠되어 있으면서 그것을 애써 사회에서 쓰는 가면으로 억누르는 그런 눈. 상혁은 백이현의 눈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얼마든지. 대신…… 아니. 영민한 너라면 그곳에 가서 어떤 것이 더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있겠지. 도현이보다는 내게 오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말이다. 으핫핫.”
팡팡!
상혁은 다가오려는 일영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의념을 보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님. 그렇고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