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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08화 (107/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8화

108. 신입사원(3)

“당신, 이름이 뭡니까?”

직원은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예상치 못한 상혁의 등장에 약간 긴장을 했지만 상혁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직원의 눈빛에 상혁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저, 상…….”

“쉿.”

상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아영은 그런 상혁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전아영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직원에게 당한 것도 그렇고, 그러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상혁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제 이름은 제이미입니다, 고객님.”

“제이미. 제이미. 그럼 됐고. 들어가서 여기 지점장 불러 주세요.”

“예?”

직원의 표정이 깨졌다. 거짓 친절을 담고 있던 얼굴이 깨지며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직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았다.

“지점장님은 바쁘셔서 나오실 수가 없습니다. 다음번에 내방해 주셔서 찾아 주세요.”

직원은 입구 앞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대기 번호를 받는 역할을 하는 남자 직원을 불렀다. 하지만 그 남자 직원이 직원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뭐야, 대체?’

다짜고짜 지점장을 찾는 상혁의 모습에 순간 당황한 직원이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입구에서 왜 안 된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직원의 눈에 상혁과 전아영은 진상이었다.

자신이 취한 태도와는 관계없이 숍 안의 분위기를 흩트리는 진상.

“지점장이 바쁘시다?”

상혁이 히죽 웃었다. 그 순간 상혁의 오른쪽 눈이 보석이 반짝이는 듯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직원의 눈이 탁하게 변했다.

그 직원이 갑자기 몸을 돌려 진열대로 가더니 그 위에 있던 명품 가방들을 손으로 싹 쓸어 바닥으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그러고는 그 위로 펄쩍 뛰어올라 몇 번이나 제품들을 자신이 신고 있는 구둣발로 짓밟았다. 그러자 줄을 선 사람들과 매장 안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저, 저!”

“제이미!!”

“뭐 하는 거야, 대체!?”

그 소리에 상혁의 손가락이 까닥였다. 그러자 자신이 땅바닥에 내팽개친 가방 위에서 구둣발로 뛰고 있던 제이미의 눈에 다시 불이 켜졌다.

이내 그녀는 자신을 부르며 경악하는 동료들의 시선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지를 깨닫고는 부들거리며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조 부장님.”

전아영도 옆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상혁의 목소리에 전아영이 정신을 차렸다. 그때 부름을 받고 온 조진만이 상혁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백 대표님이십니다.”

“눈치가 빠르시네.”

“하, 하하.”

조진만은 겉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갑자기 난동을 부리는 직원을 보자 또 상혁이 손을 썼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지가 마법사야 뭐야. 대체 뭔데.’

얼떨결에 정확한 추측을 한 조진만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댄 상혁이 말했다.

“누님.”

[갑자기 무슨 일인데. 백화점이라면서.]

“혹시 백화점에 아시는 분 계십니까? 내일부터 출근이라 간단하게 둘러보려고 왔는데…….”

상혁이 백정연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백정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실렸다.

[호텔이면 큰 오빠 라인인데?]

“그렇습니까?”

[오자마자 평지풍파란 풍파는 다 일으키고 다니는구나? 기다려. 오빠한테 연락할 테니까.]

백정연은 무언가 고소하다는 듯한 기색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아직 회사에 정식으로 나오지도 않은 상혁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활극을 펼치고 다니는 것이 꽤 재밌는 일인 모양이었다.

하긴, 백이현과 백도현에게 밀려 호텔과 리조트만 주어진 백정연이니 경쟁자인 두 형제가 상혁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호되게 당하는 것이 즐거울 만했다.

그 사이 제이미란 이름의 직원은 매장 안쪽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매장 분위기는 이미 개판이 나버린 뒤였다.

매장 바닥에 고가의 가방들이 발자국이 찍힌 채 굴러다니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난동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것이다. 그러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명품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그 제품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명품의 분위기도 같이 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장의 분위기가 완전 개판 났으니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안에서 지점장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나왔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대강 내용은 저희 직원에게 들었는데, 저를 찾으셔다고요.”

상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직원이 하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지점장의 입에서 나온 건 사과가 아니라 분노한 듯한 저 눈빛이었다.

전아영도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에게 돈이 있냐고 물어보는 건 어느 나라 예의인가요?”

돈이 있으니까 사러 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살 사람이 아니라고 섣불리 판단한 건 매장의 교육 자체가 글러 먹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혁은 지점장을 보며 왜 매장 직원의 태도가 그따윈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불하실 만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지를 파악하는 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직원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걸 보면 어떤 식으로 매장을 운영해 온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명품이 마치 자신이 된 것만 같은 착각.

잘못된 그 착각에 사로잡혀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명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능력이 없어 보였다?”

“많으신 분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한 겁니다.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돈이 없어 보이는 손님은 걸러내도 된다는 뜻이다. 상혁이 피식 웃었다. 조진만이 뒤에서 안절부절못해 하며 죽일 듯한 눈으로 지점장을 쳐다봤다.

하지만 지점장은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니 영업 방해로 경찰을 부르기 전에 나가 주시겠습니까? 두 분 때문에 저희 매장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요.”

“경찰?”

“네. 그리고 반말하지 마십쇼. 고객이 대접받는 것도 고객다워야 하니까. 끌려 나가게 해 드려요?”

지점장의 본색이 나왔다. 전아영이 옆에서 입을 뻐끔거렸다.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누가 헐레벌떡 뛰어 내려왔다.

“저, 저기 계십니다!!”

지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 명도 아니고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거느린 누군가 헐레벌떡 매장에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저, 저는 이 백화점의 이상민 상무라고 합니다. 그…….”

백화점을 담당하는 최고위직인 상무였다. 지점장의 눈이 커졌다. 백화점을 총괄하는 사장이 있으면 그 아래서 각 백화점을 담당하는 것이 상무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점장은 상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도련님……?”

전아영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점장이 분명 상혁을 보고 도련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 상무님.”

상혁은 이제 막 SG에 들어가게 됐지만 마치 그 안에서 20년은 지내 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사람의 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건 상혁에게 있어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쇼핑을 왔는데 말입니다. 여기 매장에서 브랜드가 조금 유명하다고 직원이 날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지점장을 불렀는데.”

상혁이 지점장을 쳐다봤다. 슬슬 현실 자각이 드는 것인지 지점장의 얼굴이 백점토 비슷한 색으로 탈색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네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걸러도 된답니다.”

“그,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상무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것처럼 그는 허리를 접었다. 백이현에게 전화를 받은 그는 혼이 달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사장이 아니라 그 사장이 모시는 백이현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백화점에 이번에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든 자신의 사촌 동생이 와있으니 잘 챙겨달라며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상혁이 있다는 매장에 한걸음에 뛰어 내려온 그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흐흐흐. 뉴스에 나면 난리가 날 일이 우리 백화점에서 벌어지고 있었네요. 그쵸?”

우리 백화점.

상무는 그 말을 쉬이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상혁은 백성철 회장의 조카다.

그가 회사에 나온다는데, 아직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백화점으로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 모가지가 뎅강…….’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상혁이 백화점에 나온 날에 고객의 갑질이 아니라 명품 매장의 갑질이 일어났다. 상무는 자신의 모가지가 뎅강 잘려 나가는 듯한 환상을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털었다.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제가!”

뒤늦게 지점장이 설명할 수 있다면서 입을 열었지만 상혁의 눈빛을 본 지점장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뇌가 보내는 신호가 차단된 듯한 느낌.

상혁의 눈빛은 지점장의 뇌가 보내는 신호를 몸이 무시할 정도로 살벌했다. 그 눈빛과는 다르게 상혁이 느긋한 말투로 상무에게 말했다.

“이거 이래서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넘버원이라면서요. 우리 백화점. 그런데 고작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을 한다? 내가 만약 손님이었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겉모습만 보고 재벌 자제를 문전 박대했다? 그런 손님들로 먹고사는 백화점 입장에서는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되는 끔찍한 악몽 같은 일이다.

상무는 고개를 들어 지점장을 노려봤다.

‘저 새끼 때문에.’

사실 이 지점에서 그러한 클레임이 올라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비슷한 일로 클레임이 올라온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 브랜드는 백화점에 사람들을 유인하는 가장 큰 브랜드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냥 눈감아 주고 넘어갔다.

사람들만 더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런 클레임 정도는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제대로 사고를 쳤다.

“여기 브랜드 직영 아닙니까? 어디 내가 여기 브랜드 쳐들어가서 뒤집어엎어? 아니면 본사에 클레임을 보내? 이딴 걸 우리 백화점에 넣었다고? 지점장이고 직원이고 개판으로 교육시킨 이딴 브랜드를?”

다른 사람이 말한다면 그냥 큰소리를 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SG그룹의 오너 일가가 되는 순간 그건 그냥 큰 소리가 아니게 된다.

그럴 힘을 SG그룹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모시려고 혈안이 된 브랜드?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장 자신의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긴 판인데. 그리고 SG그룹이라면 그 브랜드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올 것이다.

기껏 지점장과 직원 하나 때문에 SG그룹과 척을 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털썩!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챈 지점장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러나 제발 본사에는…….”

직영점이라는 뜻은 지점장도 결국 직원이라는 뜻이다. 본사에 이번 일이 알려진다? 그럼 바로 모가지다.

“제, 제가 본사에 항의하고 반드시 시정 조치해 놓겠습니다. 직원 교육도 전부 다 확인한 뒤에 배치할 수 있도록…….”

“그전에.”

상혁이 상무와 지점장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전아영을 힐끗 가리켰다.

“가장 기분이 나쁘실 고객님한테 사과부터 하셔야지. 지점장님? 아까 그 직원분도 같이.”

전아영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무슨 아침 드라마 같은 전개란 말인가. 하지만 이 일에 밥줄이 달린 지점장은 눈이 뒤집혔다.

그리고 잠시 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를…….”

“쿨쩍.”

전아영은 주르륵 앞에 선 지점장과 직원, 상무에게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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