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7화
107. 신입사원(2)
전아영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지금 한국어를 들은 것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다.
그런데 가게 주인도 아닌 점원이, 자신을 보며 자신의 지갑 사정은 대체 왜 궁금해한다는 말인가?
‘그런 거였어?’
심심치 않게 인터넷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자주 나오고는 한다. 어디 점원이 고객을 무시해서 불쾌하다고.
그런데 그걸 보는 것과 실제로 당한 것은 상상한 것보다 열 배는 더 불쾌했다.
명품 브랜드의 직원이 자기 스스로를 명품과 동일시 한다는 것이 전아영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야 거의 그런 경우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무례한 직원이 있던 것이다.
직원은 전아영에게 시간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는 티가 역력했다. 전아영이 물건을 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는 이유 때문이다.
굳이 그런 전아영 외에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차라리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티가 역력하게 났다.
“못 살 것 같으면요?”
전아영이 당돌하게 이렇게 되묻자 직원이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를 머금고는 전아영에게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조롱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 들어오시면 안 되는 것 아니었을까요? 손님분 외에도 사려고 하시는 분이 저렇게 많으신데요.”
매장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것을 보고 저렇게 건방을 떠는 것이다. 자신이 명품을 만들거나 이 명품 샵의 주인이 아니면서도 갑질을 하는 직원의 태도에 전아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직원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전아영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인사를 하는 것 자체가 이제 볼일이 없으라면 나가라는 뜻이었다.
직원과 전아영 사이의 실랑이를 눈치챈 듯 주변의 고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전아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아예 다른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보세…….”
“이봐요! 여기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전아영이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려는 순간 뒤에서 줄을 서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외치는 소리에 전아영의 목소리가 묻혔다.
저벅, 저벅.
“이봐요!!”
그러거나 말거나 누군가 걸어와 전아영의 옆을 지나쳤다. 그렇게 전아영을 스쳐 지나간 것은 남자였다. 전아영은 낯익은 뒷모습에 눈이 커졌다.
그렇게 전아영을 스쳐 지나간 남자가 조금 전까지 전아영을 상대하던 직원을 불렀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 * *
“여보. 요새 안색이 너무 안 좋다. 괜찮아?”
“괘,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회사도 너무하다 진짜. 당신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좀 쉬게 해 주고 휴가도 주고 그러지!”
조진만은 아내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그런 조진만의 안색은 영 좋지 못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심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조진만이 한 한 달쯤은 야근을 한 걸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진만이 그런 이유는 회사에서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체 왜 그날 이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까.’
그러면서 조진만은 자신의 배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조진만은 분명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상한 벌레 같은 것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이다.
그건 어디에 털어놓을 곳도 없는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내용이었다.
누군가 갑자기 찾아와 자신을 제압하고 자신에게 벌레를 먹였다는 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조진만이 직접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안 돼.’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이 조진만에게 협박을 하고 돌아간 그 순간부터 조진만은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어릴 적 어느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뱃속에서 이상한 괴물이 튀어나오는 그런 악몽을 꾼 것이다.
차라리 자신에게 무언가라도 요구를 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그날 이후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얼른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당신 보양 좀 할 수 있게 내가 좋은 집 예약해 놨어.”
조진만의 아내는 젊고 예뻤다. 가진 바 능력과 함께 눈치가 빨라 윗사람들의 어여쁨을 받은 조진만의 능력에 무려 열 살이나 어린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조진만은 아내의 손에 끌려 나온 것이었지만 나와서 바깥 공기도 쐬고 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잘하면 오늘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런 조진만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조진만.”
조진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동시에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간 꿈에서나 들어왔던 그 목소리가 분명 자신의 귓가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꿈틀.
“윽.”
벌레가 잠들어 있는 배가 아픈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안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했다.
“오랜만이군.”
“허, 허억!”
쿠당!
조진만이 자신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자신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상혁 때문이다. 정확히는 상혁의 목소리 때문이다.
조진만을 찾아왔던 상혁은 얼굴이 밝은 빛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여, 여보!”
갑자기 주저앉은 조진만을 보고 조진만의 아내가 달려왔다. 그러자 상혁이 넉살 좋게 꾸벅 인사를 하며 조진만을 그녀와 함께 부축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누, 누구…….”
“조진만 부장님이랑 같이 일하고 있는 백상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뵙고 인사드렸는데 깜짝 놀라신 모양이네요.”
조진만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내 앞에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뀌는 상혁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갑자기 얼굴을 드러낸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 목소리는 자신이 꿈에서도 잊지 못한 바로 그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내를 혼자 쇼핑하게 하고 상혁과 단둘이 있게 된 조진만은 발을 동동 굴렀다. 초조한 것이 목에 모래를 쏟아부은 것처럼 까끌거리는 것 같았다.
“조만간 찾아갈 예정이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아무래도 인연인 모양이야. 그렇지?”
상혁이 피식 웃으며 그런 조진만에게 말했다. 상혁은 조진만의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묵혀 두었던 인연을 쓰게 된 셈이다.
조진만은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겠지만.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써먹을 사람이 하나 필요하기는 했지.’
SG에서 상혁의 기반은 제로에 가까웠다. 백성철은 자신의 아들들을 견제하기 위해 상혁을 회사로 끌어들였다. 제 왕좌를 위해 아들을 견제한 셈이다.
마치 그 모습이 왕국을 보는 것만 같았다. 권력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권력자들의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혁은 필연적으로 백이현, 백도현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사람이 하나쯤은 필요했다.
‘조진만.’
마침 조진만이 있었기 때문에 조만간 그를 찾아갈 생각이었던 상혁이다. 하지만 정말 우연찮게도 쇼핑을 나온 백화점에서 그와 조우했다.
“다시 소개하지. 백상혁이다.”
아까 들은 이름이다. 조진만은 아직도 왜 상혁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까지 밝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생각보다 둔하군. 정보고 느리고.”
“저, 정보 말입니까?”
“그래. 내 소식을 듣지 못했나?”
자신을 협박한 협박범의 소식이라니. 그걸 자신이 대체 어디서 듣는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조진만의 머릿속에 순간 무언가가 덜컥하고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백상혁…… 백상혁. 설마.’
백성철, 백이현, 백도현, 백정연…….
백씨 일가.
SG그룹의 오너 일가이자 재벌 중의 재벌이라 불리는 백씨 일가. 그런데 우연인지 아닌지 상혁의 성씨가 백 씨이다.
“본사에 찾아와 난동을 부린 막내…….”
“난동? 그게 난동이라고 소문이 난 모양이지?”
상혁은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이 회사에 찾아가서 한 짓이 난동이라니. 뭐라 부르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다.”
“허, 허어억!!”
현 회장인 백성철 회장의 막냇동생, 백성운의 아들이 회사에 찾아왔다는 소문이 전사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새로운 오너 일가의 등장에 그 구성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도련님께 인사를…….”
“인사는 무슨.”
아마 조진만에게 상혁은 지난 몇 달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인사니 뭐니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간지러웠다.
“그럼 저를 찾으신 이유가…….”
“앞으로 회사 일을 하려는데 내가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단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조진만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자신에게 악몽을 선사해 준 인간이 자신의 상사로, 그것도 넘보지 못할 오너 일가가 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 권력자 앞에서는 숨소리 하나도 조심해서 내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부르면 와서 내 일 좀 도와줘.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도 주고.”
조진만의 머릿속에 하얘졌다. 조진만은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이다. 그렇다는 건 조진만이 잡은 라인이 바로 백도현 라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상혁이 자신을 부른다?
“아. 참고로 나랑 백도현. 원수 사이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그런 관계?”
아니나 다를까 상혁과 백도현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렇다는 건 상혁의 손을 잡으면 백도현의 눈 밖에 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백도현의 손을 계속해서 잡고 있는다면?
‘내가 죽겠지.’
배 속에 있는 것이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 배 속에 있는 건 해결해 주십니까?”
조진만이 상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상혁이 히죽 웃었다.
“생각이 있는 모양이지?”
상혁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상혁에 대한 사감을 접어 두고 생각을 해 보면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대체 누가 있어 사람의 배 속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걸 가지고 있겠는가.
거기에 오너 일가이기까지 하다.
조진만은 살기 위해서 계속해서 합리화할 이유를 만들어 냈다. 상혁은 그런 조진만의 머릿속에 훤히 읽혔다. 조진만 같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의 영달이다.
“책임지고 네게 피해는 안 끼치겠다 약속하지.”
“따르겠습니다.”
딱 거기까지면 됐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말했다.
“내일이 출근날인데, 옷이 변변치 않더군. 거기에 여자 옷도 좀 사야 하고. 아는 곳이 있나?”
SG 계열사의 백화점이다. 조진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자신이 모르더라도 알아내야 한다. 다른 라인을 타기로 마음먹은 이상 서투르게 행동하는 건 조진만이 추구해 온 바에 맞지 않았다.
“예.”
“그럼 안내…… 응?”
그때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진만도 상혁이 바라보는 방향을 함께 바라봤다. 상혁의 눈에 한 명품 브랜드에서 전아영이 점원에게 대놓고 무시당하는 것이 들어왔다.
“저기 좀 가지.”
“예? 도련님, 잠시마…….”
이미 상혁은 그 브랜드로 걸어가고 있었다. 상혁이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자 줄을 서 있던 사람이 항의했기에 조진만이 대신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조진만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다짜고짜 협박하러 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지만.”
자신이 새로이 타게 될 라인의 정점인 상혁은 자신의 행동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런 그를 따르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만 할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조진만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백상혁 도련님을 모시게 된 조진만 부장이라고 합니다. 백 대표님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