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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90화 (8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0화

090.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5)

상혁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아주 얇은 것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상혁은 그것을 한 단어로 아주 간단하게 압축할 수 있었다.

혈육의 정.

그래도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선사해 주었던 아버지의 형제라는 것, 그리고 SG그룹이 그런 아버지가 나고 자란 집이었다는 것 등등.

그것을 종합하여 말하자면 혈육의 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보다 진한 피.

그것으로 이어진 하나의 가느다란 끈은 얇지만 결코 끊어 내기에 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결국 상혁도 인간인지라 아버지의 형제인 백성철, 그리고 그 SG그룹에 대해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그러한 보호 장치 하나가 작동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저들은 내 적이 아니다, 저들은 내 가족일지도 모른다 이런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

하지만 백성철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 마지막으로 남은 얇은 막이 깨져나갔다.

“단.”

그런데 그때 백성철이 폭발하려는 상혁에 앞서 말을 마저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백성철은 상혁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살기가 넘치는구나. 날 죽이고도 남을 눈이야. 사람을 죽여 봤느냐?”

사람만 죽여 보았을까. 상혁은 지금껏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을 수도 없이 쳐 죽여 왔다. 산 채로 불태우고, 지지고, 갈기갈기 찢어서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고.

상혁의 마법은 지울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피가 묻은 칼이었다.

“…….”

“그래도 말은 들어 봐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왜 너희 부모를 직접 죽였는지. 내 동생을 내가 왜 죽여야만 했는지.”

상혁은 백성철의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신이 된 것처럼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20년 만에 그 존재를 알아낸 조카 앞에서, 자신이 그 부모를 죽였다 말하고 있는 백성철.

그가 정상일 리 없다.

“듣고 싶지 않으냐?”

백성철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속삭였다. 그의 뒤로 마치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 치 혀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가나안의 귀족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혀만 나불대는 이들의 머리 꼭대기에 군림했던 대마법사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아.”

상혁의 손이 허공에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이미 회장실에 새겨진 룬어들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이미 배열한 룬어를 변형한다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이미 새겨진 순간 그 자체로서의 힘을 가지게 되는 룬어를 잘못 변형하다가는 폭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룬어의 폭주로 인한 부작용과 반동은 룬 마법을 실행한 마법사가 온전히 받아 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 작업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불과 5서클에 불과한 상혁이지만 대마법사란 호칭은 그냥 노름으로 따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혁은 땀 한 방울로 회장실 안의 룬 마법을 변형시켰다.

“듣고 싶지 않다? 궁금할 텐데. 네 부모가 어떻게 비명횡사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리 죽어야만 했는지 말이다.”

“그걸 왜 내게 말해 주려는 거지?”

상혁은 백성철에게 말을 아예 놓아 버렸다. 지금껏 20대를 연기했던 상혁이지만 그것을 놓아 버린 순간 상혁은 70대의 대마법사가 됐다.

왕국을 평정하고 반군을 무릎 꿇게 했으며 자신을 배신한 이들의 목숨을 기어코 자신과 함께 날려 버린 무소불위의 대마법사.

백성철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람의 기질이 바뀌었으니 당연했다.

“나를 이리로 부른 것은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일 것이고. 그런데 내 반감을 살 수 있는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해 준다? 대체 왜?”

백성철이 상혁에게 자신이 백성운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상혁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체 왜.

번쩍.

상혁의 마나안이 푸른빛을 토해 냈다. 그 마나안은 이 세상의 모든 마나를 분석하는 눈이다. 그 어떠한 마법도, 오러도 마나안 앞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백성철은 아니다.

마나안에는 사람을 분석하고 통찰하는 힘은 없었다. 백성철이 의연하게 목을 쭉 빼고 등받이에 기댔다.

“내가 죽였으나,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니까.”

“……뭐?”

개소리다. 백성철은 지금 궤변을 늘어놓을 참이었다. 하지만 백성철은 재빨리 말했다.

“결과적으로 네 아비가 죽었으니 내가 죽인 것이 맞다. 하지만 난 죽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 손으로, 내 입으로 죽이라고 한 적 없어.”

백성운과 김성미는 죽었다.

그리고 상혁은 천애 고아가 되었다.

상혁을 천애 고아로 만든 장본인이 말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실한 변명이었다. 상혁은 그런 백성철은 보면서 돌연듯 웃었다.

“왜 웃지? 심한 충격에 미치기라도 한 건가?”

백성철은 갑자기 웃는 상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상혁이 웃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상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럼 당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죽인 것이로군.”

“그래. 내가 내 동생을 죽이라고 할 리가 없으니까.”

“그럼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겠고?”

“당연하다.”

백성철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철은 SG그룹의 회장직에 오르면서 자신의 형제들을 전부 다 추방해 버렸다.

그리고 그 형제들은 오래가지 않아 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 놓고서는 백성철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누가 우리 부모님을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파앗!!

상혁의 양손에서 마름모꼴로 마나가 입체적으로 솟아오르며 노란빛을 발했다. 그것을 본 백성철의 눈이 커졌다.

“그게 뭐…….”

“누가 죽였는지는 내가 알아낼 생각이니까. 과연 누가 나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까 궁금하지 않나?”

상혁은 결심했다.

백성철을 고문하거나 환상 마법으로 그의 뇌를 속여서 정보를 빼내는 건 백성철에게 있어 너무 행복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지이잉-!

상혁의 손에 들린 마름모꼴의 마나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상혁의 손짓에 따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했다.

“결국 너는, 큰아버지 당신은 울면서 내게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될 거야. 야만적인 방법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대신 당신은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당신이 일궈 놓은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백성철에게 있어 가장 잔혹한 것은 그가 일군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SG그룹부터 시작해 그가 가진 모든 것.

그것들이 하나, 하나씩 무너지고 부서지면서 그가 손에 쥔 모든 것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그에게서는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다.

천천히, 아주 서서히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고통받는 것.

“당신이 모든 것을 잃은 바로 그날, 내가 찾아오도록 하지. 그리고 당신에게 물을 거야.”

상혁의 손아귀에 든 마나가 점점 더 강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백성철은 두 눈을 뜨고 그걸 바라보기 힘들 정도였다.

“‘우리 부모님은 누가 죽였지?’라고.”

파아앗-!!

눈 부신 빛이 회장실 안을 휩쓸었다. 그 빛에 휩쓸린 백성철의 눈이 탁하고 풀리더니 초점이 나갔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고 이내 백성철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망각 마법.

그런 백성철은 조금 전까지 한 이야기를 모두 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의 앞에서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게 SG그룹의 핏줄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설명해 주고 계셨습니다.”

“음, 그런가?”

“피곤해 보이십니다, 큰아버지.”

“회장님이라 부르거라.”

백성철은 방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앞에 순종적인 상혁을 보고는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회장님.”

“공과 사는 나눠야지. 그리고 로비에서 벌인 방만한 짓을 들었다. SG의 핏줄로 그런 모습을 한 번만 더 보인다면 크게 혼날 줄 알거라.”

“죄송합니다.”

백성철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자신의 앞에서 순종적이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은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사실 로비에서 상혁이 벌인 일을 들은 백성철은 그것을 듣고 꽤 웃기까지 했다.

당돌했으니까.

저 당돌함, 젊은 패기가 후계 경쟁을 더욱 어지럽힐 것이다.

‘지금껏 맑은 물이던 곳에 미꾸라지 하나가 들어왔으니 당분간 흙탕물 좀 튀기겠지. 이현이와 도현이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지는군.’

자신의 아들들은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너무나도 성격이 달랐다.

하지만 하나는 같았다.

SG그룹의 총수에 대한 욕망.

하지만 백성철은 자신이 관짝에 들어가기 전까지 두 아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위해 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적당히 꺾어 놔야지. 그 일을 네가 해 줘야겠다.’

백성철이 상혁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상혁은 완벽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엔딩이 정해져 있는 연극이다. 그렇기에 상혁은 모든 감정을 속으로 숨긴 채 백성철 앞에서 연기했다.

아니, 자기 자신마저도 속였다.

“내일부터 나오거라.”

“내일은 조금 그렇고. 다음 달부터 나오겠습니다.”

상혁은 선을 적절히 지키면서 과도하게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백성철에게 말했다. 백성철은 그런 상혁을 보고는 와하하 웃었다.

“MZ, MZ하더니 맹랑해. 좋아. 기분 좋으니 특별히 넘어가 주지. 다음 달부터 나오도록 해라. 적당한 일을 시키고 그 뒤에 할 일을 정해 주마.”

백성철은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유쾌했기 때문이다. 백성철이 그런 상혁에게 말했다.

“이선호는 정리하리라 믿는다. 세상에 대한 불만만 많지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몽상가를 옆에 둘 필요는 없을 테니.”

“예.”

상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앞에서 고개 하나 끄덕이는 게 뭐 어렵다고. 하지만 상혁은 이선호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예리한 칼이다.

SG그룹의 심장에 꽂아 넣을 아주 좋은 칼이 될 것이다.

똑똑똑.

그때 밖에서 김대엽이 문을 두드리고는 말했다.

“백이현, 백도현 사장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백성철은 두 아들들이 올 것임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일부러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혁이 온 순간 비서실을 통해 두 아들에게 이 사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상혁이 백성운의 아들이란 것까지도.

“네 사촌 형들이다. 도현이는 봤을 테고.”

잠시 후 강골의 백이현과 눈이 차가운 백도현이 들어왔다. 백도현은 상혁을 보고는 눈썹 사이를 꿈틀거렸고 백이현은 상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와하하핫! 삼촌과 똑같이 생겼구나! 난 백이현이라고 한다 동생아!”

백이현은 성큼성큼 다가와 굵은 팔뚝으로 상혁을 질식사하게 할 것처럼 꽉 끌어안았다. 상혁은 콜록거리며 그 안에서 풀려나와서는 짐짓 공손한 척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백상혁입니다.”

“목소리도 비슷해. 삼촌이 계셨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단순한 근육 바보. 그게 백이현에 대한 상혁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뒤에서 백도현이 걸어 나와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 설마 사촌 동생이었다니…… 세상이 참 좁은 모양이야.”

백도현은 상혁을 경계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혁은 빙긋 웃으며 여유롭게 그 손을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그러게요.”

“오승택이 왔다지.”

“제 사람입니다.”

“…….”

백도현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혁에 대한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오승택에 대해 백성철 앞에서 왈가왈부하는 건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물러난다는 표정이었다.

백성철은 그런 상혁을 보고는 씩 웃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상혁은 청정한 물을 흙탕물로 만들 인재였다. 백성철이 아들들을 견제하기 위해 정확히 필요했던 그 역할을 할 자질을 보였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거라. 많이 가르쳐 주고. 불러 놓고 일을 시켜서 웬만큼 한다고 하면 회사 하나 맡길 생각이니 그리 알고.”

그러자 백이현과 백도현이 슬쩍 긴장했다. 회사를 하나 맡긴다는 건 결국 두 형제, 그리고 백정연까지 해서 세 형제자매가 맡고 있는 사업체 중 하나를 준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상혁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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