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8화
078. 마법사도 모르는 게 있다(3)
[야! 좀 도와줘.]
그 말 한마디에 김지예는 강제로 새벽에 자신의 병원의 셔터를 올리고 불을 켜야만 했다. 원체 동갑으로 어려서부터 여자는 사람으로 쳐 주지도 않는 재벌가에서 자라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백정연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욕은 할 수 있었다.
“이런, XX.”
김지예는 욕을 수준급으로 했다. 자기 자식이라고 절대로 차별을 두지 말라는 엄명에 따라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한성대학병원에서 의사의 기초를 다졌던 김지예다.
원래라면 김지예도 백정연처럼 집안 회사 하나 물려받아서 폼 나게 대표로 살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어쨌거나 전국 응급실 환자가 가장 많다는 한성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를 딴 김지예는 그곳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어느덧 여장부로 거듭났다.
그곳에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배운 김지예는 마음만 먹는다면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욕으로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욕쟁이가 됐다.
그건 그녀가 병원장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별거 아니기만 해 봐. 아주.”
백정연이 쓸데없는 걸로 자신을 이 새벽에 불렀다면 오늘 그년의 머리채를 잡겠다면서 이를 간 김지예는 차 한 대가 오밤중에 다가오자 곧바로 욕부터 퍼부었다.
“XXX!! 뭐 어떻게 된 거야 XX! 사정은 설명해 줘야지. 사람이 없는 병원이 어디 있어?”
그러자 백정연이 차에서 내리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보자마자 쌍욕부터 하니?”
“욕 나오게 만들잖아. 네가 의사의 삶을 알아?”
“병원장 된 애가 의사의 삶은 무슨. 너 아래에 있는 애들이 힘들지.”
한성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까지 딴 김지예는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의학 쪽에서 확실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마흔이 되기 전에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전문의, 즉 더블 보드를 따낸 것이다.
웬만한 사람은 전문의 하나도 따기 벅차다는 걸 생각해 보면 김지예가 얼마나 이쪽에 매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로 그녀는 재계 서열 순위 10위의 한성그룹에서 자신의 지분을 팔고 나와 서울 시내에 개인병원을 열었다.
개인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응급실에 구급차도 굴리는 규모의 병원이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수준에는 못 미치나 전문의들도 여럿 갖추고 있었고 자력으로 수술도 가능한 정도의 규모.
백정연이 상혁의 전화를 받고 김지예를 떠올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본 거 무조건 함구해 줘.”
“함구? 야 이 년아. 나보고 여기서 뭘 더 하라는 거야.”
“아니 쫌. 기다려 봐. 욕부터 하지 말고.”
김지예는 고개를 갸웃했다. 적어도 백정연이 거짓말은 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후 백정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제가 말씀드린 곳으로 오면 돼요. 그런데 간호사나 의사들이 하나도 없는데…….”
물론 응급실 쪽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혁이 원한 것은 아는 사람이 최대한 적은 병원이었다.
“알겠습니다. 들어오세요.”
백정연이 전화를 끊자 김지예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참고로 백정연과 김지예 모두 올해 마흔다섯의 골드미스였다.
“연애하니?”
“뭐?”
“남자 목소리던데?”
“아니야, 그런 거!”
백정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혁과 연애라니. 상혁은 마법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혁은 올해 스무 살이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 차라는 건 그냥 도둑놈이 아니라 모자 관계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차이다.
‘어린애처럼 느껴지진 않는데. 오히려 나보다 위로 느껴지지.’
백정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혁에게는 이성적인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상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런 사람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상혁이 가진 특출난 능력은 그의 아군이 된다면 언젠가 자신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육감이 든 것이다.
사업가로서의 육감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남자가 아니야. 그런데 묘하게 낯이 익어.’
상혁은 절대로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예전에 어디서 봤던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남자는 아닌 모양이네.”
김지예는 사십 년 지기답게 그런 백정연의 표정만 보고도 곧바로 맞췄다. 백정연이 씩 웃었다.
“내 은인 같은 사람이야.”
“은인?”
“어. 최근에 몇 번 큰 위기에서 날 구해 줬거든.”
김지예는 백정연이 말하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사업가가 된 이후로 까다로워진 백정연이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하는 사람인데?”
“이제 올 거야. 봐 봐.”
상혁은 굳이 자신이 마법사이고, 마법이라는 이능을 쓴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피차 불편한 상황일 때는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혁이 마법사란 걸 백정연이 떠들고 다녀도 된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단 그 말을 했다가는 김지예에게 머리채가 잡힐 것 같았다.
[마법사? 이 썅. 내가 곱게 미치라고 했지?]
부르르.
백정연은 김지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때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병원의 후문 쪽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병원 후문 주차장은 주로 의사들이나 병원에 들어오는 트럭들이 주차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김지예는 눈을 크게 뜨고 앞을 살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소리로 들어서는 묵직한 타이어가 아스팔트 바닥을 짓누르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지예가 백정연을 쳐다봤지만 백정연은 고개만 가만히 가로저었다.
“그냥 보면 알아.”
백정연도 무슨 상황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상혁이 마법을 썼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김지예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넘어져서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치 위장막 같은 것이 덮여 있다가 스르륵 하고 벗겨지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던 주차장에 하얀 탑차가 한두 대도 아니고 거의 열대 가까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운전석에 사람이 없었다.
따악!
어디선가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자 탑차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김지예가 자세하게 살펴보니 앞이나 뒤가 망가진 탑차들이 흔들리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흔적은 마치 트럭을 줄 같은 것으로 강하게 묶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렸다.
김지예의 눈이 커졌다. 트럭의 운전석에서 내린 것은 창백한 안색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어리디어려 보이는 소년, 아니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몇 살이야? 스물? 스물하나?’
“상혁 씨!”
그렇게 상혁을 보며 놀라고 있던 김지예는 한 번 더 놀랐다. 백정연이 상혁을 향해 달려갔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보다 거의 스무 살 넘게 어린 상혁에게 높임말까지 쓰면서 말이다.
“허어.”
김지예가 비틀거리는 사이 상혁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백정연을 팔을 뻗어 막으며 김지예를 쳐다봤다.
“후우.”
상혁은 등줄기가 다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나가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 말을 좋아했다.
아끼다가 똥 된다.
‘똥 되기 전에 마셔야지.’
이럴 때 필요한 게 열화판 엘릭서다. 되도록 서클을 쌓는 데 쓰고 싶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여기서 자신이 쓰러져 버리면 지금까지 기껏 개고생한 게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뽕!
상혁은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주사기 안에 담겨 있던 엘릭서를 홀짝 마셨다. 그러자 상혁의 얼굴에 혈색이 돌면서 상혁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 빨아먹어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상혁은 엘릭서가 자신의 텅 빈 마나 고리를 휘젓는 것을 느꼈다. 열화판 엘릭서라고는 하지만 사만다 허드에게서 봤듯이 인체에 지극히 해로운 것이 바로 엘릭서다.
핵 실험을 하다가 나온 부산물인 만큼 그 안에는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에게 엘릭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약이었다.
“뒤에, 화물칸에 사람들이 있어요.”
“사, 사람이요?”
백정연이 놀라서는 멈칫했다. 사람이라니. 설마 시체란 말인가? 하지만 상혁은 염력으로 화물칸을 동시에 활짝 열면서 말했다.
“SG병원에서 인체실험을 위해 빼돌린 환자들이에요. 확인 부탁드려요.”
“예에?”
상혁은 백정연이 놀라건 말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화물칸 안에서 사람들이 공중에 뜬 채 둥둥 뜬 채로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상혁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김지예를 힐끗 쳐다보고는 백정연에게 말했다.
“저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거죠?”
백정연에게 병원을 물색해 달라고 했고 백정연이 상혁에게 알려 준 병원이다. 백정연은 입을 헤 벌리고 마법을 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김지예를 쳐다봤다.
“아…….”
김지예는 멍한 눈으로 허공에 둥둥 뜬 환자복 차림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백정연은 김지예에게 달려가 김지예의 등짝을 쳤다.
“악!”
“정신 차려 기집애야!”
“저, 저게 뭐야? 어?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김지예는 말을 더듬었다. 백정연은 그런 김지예에게 입에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김지예에게 말했다.
“오늘 일, 절대 함구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말을 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김지예는 백정연을 쳐다봤다.
“……뭔데 저 사람?”
“음.”
상혁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또 막상 말을 하려고 보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상혁에 대해 설명하는 건 이 한 단어 외에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법사.”
* * *
“…….”
백성철 회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비서실장인 김대엽이 정리해서 올려놓은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한참을 같은 페이지를 읽던 백성철 회장은 자신이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대엽아.”
“예, 회장님.”
“이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
그러자 김대엽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죽여 주십시오.”
“성운이가 특히 그쪽에 능력이 있었다는 건 모두가 알았을 텐데. 그런 성운이가 우리 SG와 정부 DB에까지 접근해 조작할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는 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
“죄송합니다, 회장님!”
김대엽은 이마를 바닥에 몇 번이고 찧었다. 그도 조사하면서 뒤늦게 알아낸 것에 대해 백성철 회장의 진노가 떨어질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백성철 회장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다. 내 잘못이기도 하니까. 나도 사람이었던 모양이야. 동생을 그렇게 만드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게지. 그래서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이고.”
백성철 회장은 나지막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자신의 동생을 제가 청부해서 죽이고 하는 반성이 그것이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백성철 회장의 얼굴에서는 죄책감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백상혁이란 아이가 성운이의 아들이라는 뜻이지.”
“지금까지 나온 결론으로 추론을 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게 현실이었다. 백성철 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내 백성철 회장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사람의 눈 같지 않게 번들거렸다.
그건 권력에 미친 한 마리의 악마였다.
“그 사실을 상혁이란 아이가 알아낼 확률은?”
“없습니다.”
김대엽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상혁이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철은 원교근공이란 말을 좋아했다.
먼 나라와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라. 왜? 먼 나라는 멀리 있어 위협이 되지 않지만 가까이 있는 나라는 위협이 되니까.
백성철은 위협을 가깝게 두고 관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혹여나, 만약, 설마 같은 말은 백성철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불러들여. 그리고 실시간으로 감시해. 0.01퍼센트의 확률도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예, 회장님.”
김대엽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