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7화
077. 마법사도 모르는 게 있다(2)
엘릭서.
열화판이라고 해도 엘릭서는 연금술의 정점에 도달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가나안에서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화 속의 명약이었다.
하지만 대개 전설이나 신화 속의 것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로 치부되지만 엘릭서는 아니었다.
엘릭서는 분명 실존하는 영약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300년 전에 미라클 알케미스트가 실제로 만들었으니까.”
상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까마득한 옛날인 300년 전 기적의 연금술사라 불렸던 전설적인 연금술사가 만든 엘릭서가 한 왕국의 보물로 실존했다.
그리고 그 보물로 가나안의 한 왕국은 엘프들의 수장인 하이엘프를 치료했다. 그것도 한 번 걸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마나중독병을 엘릭서로 고친 것이다. 그때부터 그 왕국은 엘프의 가호를 받는 왕국이 됐다.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아니냐고?
아니었다.
엘프들은 천 년이나 되는 시간을 사는 종족이었기 때문에 그때 치료를 받은 하이엘프가 아직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증인이 있었기 때문에 엘릭서는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증언이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는 엘프들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할 수 없었다.
물론 엘릭서가 실존한다고 해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엘릭서를 만들기 위해 내로라하는 연금술사들조차도 평생을 매진해도 그 맛도 못 보고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두 눈에 불을 켜고 엘릭서를 찾았다.
“엘릭서의 효능은 세 가지.”
목이 잘려도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전 엘릭서가 있으면 살릴 수 있는 만병통치의 효능.
한 모금만 마셔도 이제 막 오러를 다루기 시작한 기사를 완숙한 익스퍼트급의 기사로 만들 수 있는 영약.
“그리고 세 번째. 서클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효능.”
엘릭서의 주재료 중 하나가 무한의 마나 창고라 불리는 신화 속 생명체인 드래곤의 심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드래곤 하트의 마나라면 마법사가 서클 하나를 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소박할 정도다.
“든든하네.”
상혁은 그 효능이 진짜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열화판 엘릭서.
그리고 그 양도 지극히 적은 데다가 진정한 엘릭서라고 부르기에는 복용자를 죽일 수도 있는 극독의 성질도 지니고 있어 애매했으나 어쨌거나 엘릭서는 엘릭서다.
[이름 : 상혁
직업 : 4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2, 민첩/2, 체력/2, 마나/451]
4서클의 마나 고리가 절반 이상이 찬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마법을 연달아 사용해 고리가 거의 비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닥터 지펠이 쥐고 있던 엘릭서 하나. 6mg밖에 안 되는 극소량이었으나 상혁은 아주 귀한 보물을 손에 얻은 셈이 됐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핵융합과 반중력 실험을 하면서 그 부산물로 우연히 탄생했다고 했지.”
닥터 지펠을 통해 엘릭서의 열화판이 탄생한 계기를 알아낸 것이다. 미국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그 사실을 알아낸 상혁은 눈을 반짝였다.
연금술이 아니라 과학으로도 엘릭서를 만들 수 있다니.
물론 과학의 최고봉이라는 핵과, 제대로 존재하는지조차도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반중력이라는 것이 결합하여 우연의 산물로 나온 것이라지만 그래도 엘릭서는 엘릭서다.
“한 번이 우연이지. 두 번은 필연이고.”
그리고 한 번은 우연으로 나온 산물을 두 번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나를 더욱 쉽게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셈이다.
“이걸 복용하면 5서클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상혁은 주머니 속의 주사기를 데구루루 굴렸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근데 언제 오는 거야?”
인체실험 대상자로 자의와 상관없이 끌려온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
그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고, 효율을 우선시하는 마법사인 상혁이 갑자기 인류애가 생겨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구출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연히 아니다.
인체실험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났다고는 해도 그건 너무 무모했기 때문이다.
[퀘스트 : 숭고한 희생
내용 : 인체실험에 끌려온 죄 없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구하라.
보상 : 차등 지급]
그러나 퀘스트가 튀어나왔다.
“쓸데없이 자비롭네.”
사실 퀘스트는 무시해도 그만이다. 애당초 자신을 휘두르려고 했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걸 거부한 것은 자신이다.
만약 자신이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꼼짝없이 세계에 간택되어 팔자에도 없는 용사 노릇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괘씸죄를 적용해서라도 무시해도 세계의 의지는 자신에게 강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견물생심의 동물인 법이다.
“차등 지급?”
보상이 적힌 걸 보니 고민이 된 것이다. 게다가 보상이 명확하게 표기되었던 그 이전과는 달리 차등 지급이라고만 표기되어 있었다.
게다가 반드시 전부 구할 필요도 없었다.
많이 구하면 구할수록 보상이 달라지는 셈.
결국 상혁은 사람들을 최대한 구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전아영도 구해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다.
‘나 혼자 전부 데리고 나가는 건 당연히 무리고.’
사람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여긴 무려 미군기지다. 상혁은 가나안을 독보했던 마법사이지만 그건 그럴 만한 실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실력이 갖춰지기 전까지 상혁은 자신이 겪었던 고초와 고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미군기지다.
세계의 최강대국인 미국이 군사기지 하나를 건드려 놓았으니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겨야 한다. 그 때문에 상혁은 이미 군사기지 전체에 깔린 배선을 이미 손본 상태였다.
그 어떠한 기록도 남지 않도록.
그러나 제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닿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하늘.’
미국이 자랑하는 정찰위성은 지금 상혁의 얼굴을 줌을 당기면 사진까지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했다. 물론 미군기지 전체가 엉망진창인지라 추적하는데 어려움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혁은 완벽하기를 바랐다.
투명 마법.
상혁은 고개를 좌우로 툭툭 꺾었다. 다행히 엘릭서를 이곳에서 발견한 것이 천운이었다.
“빡세겠네.”
4서클 인비지블 마법을 오늘 수십 번은 사용해야 할 듯싶었다. 그 와중에 엘릭서가 필요하면 아끼지 않고 곧바로 쓸 생각이었다.
그런 상혁의 뒤로 비밀연구소에 쥐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허공이 부유한 채로 따라왔다. 멀리서 보면 마치 피리 부는 소년처럼 보이겠지만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을 통째로 염력 마법으로 띄워 그 위에 슬립 마법을 덮어 놓는다는 건 웬만한 마법사로서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거기에 인비지블까지.
“마나가 아주 그냥 쑥쑥 나가는구만.”
그러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하는 상혁이 더 신기한 법이다. 상혁의 의식은 그 와중에도 사분할로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타오르는 게 마법사란 족속이었다.
“눈 가려.”
육안, 그러니까 사람의 눈은 블라인드 마법으로 가렸다.
“으, 으아악!!”
갑자기 눈앞이 안 보이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혁은 태연하게 걸었다. 어차피 저런 건 시전자의 마나가 흩어지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법이다.
그리고 CCTV는 애초에 터뜨렸고, 남은 건 주차된 차량이 블랙박스.
그런 블랙박스에 불똥이 튀면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상혁이 백정연에게 부탁한 곳까지 오는 데만 부순 블랙박스가 40대가 넘었다.
그냥 블랙박스만 부순 것도 아니고 차량 내 들어가 있는 전자회로를 통째로 날려 버렸기 때문에 재산 피해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를 걸어 다니는 재해라고 불렀지.”
씩 웃은 상혁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룩 솟아올랐다. 인비지블이 풀리려고 했기 때문에 다시 인비지블을 영창하고 거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천재 마법사는 스스로 새로운 마법을 깨우쳤다.
“집단투명화.”
인비지블을 공간에 걸어 마법사가 원하는 공간 자체를 안 보이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건 마나의 소모가 너무 심했다.
그런데 상혁은 연속으로 인비지블 마법을 걸다가 아예 이걸 집단으로 개개인에게 한 번에 걸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매스 텔레포트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텔레포트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 버전인 매스 텔레포트는 공간에 거는 마법이 아니다. 그랬다가는 그 공간의 자연물까지 함께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나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드래곤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매스 텔레포트는 사람 개개인에게 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고연산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매스 텔레포트는 대개 마법진으로만 구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걸 상혁은 다운그레이드시켜 4서클 마법에 맞는 술식으로 즉석에서 변환했고, 성공했다.
쫘아악!
심장이 뻐근해지면서 마나가 쑤욱 빠져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수십 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인비지블이 걸렸다.
“휘유.”
비슷한 식으로 수면 마법 역시 집단 마법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상혁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맨 처음 도착했던 하적장에 도착했다.
“여기도 온통 사람들인데.”
하적장에 세워진 탑차만 해도 수두룩했다. 그래도 상혁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사람의 수에 비해 탑차의 수가 월등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부피는 커도 수가 적은 게 마법을 대량으로 걸기에 훨씬 더 용이했다. 무엇보다도 탑차에 실으면 염력 마법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대충 눕히고.”
상혁은 탑차의 화물칸을 연 뒤 그 안에 사람들을 고르게 분배해서 대충 넣었다. 어차피 뒤처리는 백정연과 그녀가 보낸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비록 백정연이 갑작스러운 제안에 소리를 지르긴 했어도 상혁은 그녀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상혁은 백도현을 상대할 대항마로 백정연을 적극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읏차.”
상혁은 탑차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손을 몇 번 휘젓자 허공에서 나무줄기 같은 것이 빼꼼히 튀어나왔다.
“바인드. 변형.”
상혁은 탑차를 하나씩 바인드 마법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바인드는 본래 상대방을 묶어 움직임을 제한하는 용도로 쓰거나 범죄자를 체포할 때 쓰는 마법이었다.
일종의 마나로 된 밧줄이 날아가 상대를 포박하는 형태인데, 상혁은 그걸로 탑차들을 하나로 다 묶었다.
콰직!
물론 그 과정에서 탑차들이 부서지고 깨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밧줄이 묶일 곳이 없으니 마법으로 구멍을 뚫어 버린 것이다.
“됐고.”
우우웅!!
동시에 탑차 아홉 대에 동시에 투명화 마법이 걸렸다. 상혁은 창백한 안색으로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간신히 맨 앞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트럭?
상혁이 트럭을 몰 수 있을 리 없었다.
“텔레키네시스.”
끼이익!
마나만 받쳐 준다면 집채만 한 암석도 들어 올릴 수 있는 염력 마법으로 탑차를 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가 무려 아홉 대.
바퀴가 달려 있다고는 하나 질량이 무식하게 큰 탑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상혁으로서도 마나를 쥐어짜야만 했다.
“끄으응.”
심장이 점점 더 뻐근해져 왔다. 마나가 바닥나고 있다는 뜻이다. 엘릭서가 있었지만 상혁은 참았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버텨 낼 수 있었다.
“가…… 즈아!!”
상혁이 탄 탑차 앞으로 뇌전과 불로 된 화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화살이 날아가서는 하적장의 벽에 턱하고 꽂히더니 쾅 하는 소리를 내면서 벽에 구멍을 뚫었다.
“앞으로 세 번만 더.”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과 담벼락은 세 겹이다. 그러니 앞으로 세 번만 더 뚫고 나가면 된다. 어차피 아무리 위성으로 본다고 해도 보이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시동도 걸리지 않은 탑차들이 줄지어 하적장을 빠져나갔다. 물론 투명화 마법으로 인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