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70화 (6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0화

070. 진정한 마법사의 시작(5)

부스럭 부스럭.

이선호는 새벽부터 바깥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두 눈을 비볐다.

“뭐지?”

해가 막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고 있는 시각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그런데 앞마당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상혁 씨인가?”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올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상혁이라는 마법사를 만난 덕분이다. 그는 정말 마법 같은 일을 했는데 이 집은 그 역작 중 하나였다.

‘밖에서는 원래 그 허름한 집인데 문만 넘으면 다른 차원에 온 것 같으니 원.’

자신을 비롯해 상혁이 직접 제작한 ‘열쇠’ 기능을 하는 아티팩트를 소지한 사람만이 저 대문을 넘을 수 있다고 했다.

허락받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 곧바로 상혁에게 신호가 간다고 하니 적어도 언제 자신을 죽일 히트맨이 찾아올까 걱정은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거기에 집은 또 어떻고.

“다듬어지진 않았어도 천안 시내에 있는 오피스텔보다 낫네.”

돌로 만들어졌음에도 이것도 집이라고 그새 익숙해지고 정이 든 것이다. 이선호는 어쨌거나 바닥에 깔아 둔 매트리스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눈을 비비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부스럭.

그런데 창밖에 이상한 허연 비닐봉지 같은 것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선호는 자신의 눈을 다시 한번 더 비볐다.

“잘못 봤나?”

비닐봉지가 일어나서 사람처럼 걸어 다닐 리가 없다. 하지만 이선호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두웅, 퉁!

하얀 비닐봉지가 아니라 자세히 보니 투명한 작은 봉지가 여러 개 뭉친 것이었다. 그리고 중간마다 하얀 작은 통 같은 것이 관절에 박혀 있었다.

“으헉!”

쿵.

놀란 이선호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법사인 상혁을 만나 별의별 기사(奇事)를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유령은 이번이 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불쑥.

그런데 그때 상혁의 머리가 창으로 쑥 나타났다. 그러고는 깬 이선호를 보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깨셨어요?”

이선호는 상혁을 보자 저 밖에 저절로 살아 움직이는 봉지 덩어리가 상혁의 작품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놀랐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다.

“예. 소리가 나서.”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 저게 좀 움직이는 게 미숙한 모양이더라구요.”

상혁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선호가 고개를 내젓고는 상혁에게 물었다.

“저게 대체 뭡니까?”

“아, 저거요?”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상혁에게는 별 게 아니었다.

마법사라면 다들 한두 기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골렘이요.”

“……골렘?”

* * *

골렘은 마법 생명체다.

엄밀히 말하면 생명체는 아니고 마법 동체(動體)라 불러야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대개는 흙이나 나무, 돌처럼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자연물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골렘의 사용처는 간단했다.

“그냥 사람이 힘써야 하는 일을 전부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힘이요?”

“공사장에서 흙을 파고 돌을 나른다든가. 아니면 무거운 물체를 나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선호는 머릿속에서 중장비들을 떠올렸다. 대개 공사장에서 쓰이는 것들이었다. 상혁은 이선호의 표정만 보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하시는 게 맞을 거예요.”

“그런데 저건 흙도, 나무도, 돌도 아닌데요.”

“복잡한 사정이 있죠.”

상혁은 자신의 앞에서 행사장 풍선처럼 이리저리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비닐 골렘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골렘을 움직이려면 동력원이 필요하거든요. 세련되지 않은 로봇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죠. 로봇도 동력원이 필요하니까.”

골렘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골렘의 핵이다. 골렘의 핵은 골렘의 주 엔진이자 에너지를 공급하는 동력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대개 마나석을 이용해 만든다. 가나안에 사는 몬스터들에게서는 마정석이라는 게 나오고 그걸 정제하면 마나석이 되는데, 그걸 이용해 만든다.

하지만 지구에는 몬스터가 없었다.

“동력원을 대체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까 비닐 골렘이 됐지 뭡니까.”

그래서 상혁은 고민했다. 던전을 만들었으니 그 던전을 지키는 가디언은 당연히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값싼 가디언은 바로 골렘이었다.

골렘은 마법사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성능과 사이즈를 자랑했는데 가나안에서 상혁은 가장 사람에 가까운 골렘을 만드는 골렘술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력원.

동력원이 될 수 있는 것 중에는 마나석이 아니라도 마나를 품은 것이면 동력원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효율이 지극히 떨어지지만 말이다.

원시적인 고대의 골렘이 그러한 형태였는데 상혁은 주변에서 마나를 품은 물질을 찾다가 오승택이 타고 온 SG충청병원의 불법 폐기물 수거 차량에서 그 답을 찾았다.

상혁이 싹싹 긁어먹고 남은 약봉지와 약통.

그것들이 미약한 마나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비닐 골렘은 일종의 실험용이었다.

골렘들을 양산하기 전에 일종의 테스트를 위한 골렘이었다.

“이리 와.”

부스럭.

“저리 가.”

“우와…….”

이선호는 마치 장난감 자동차를 본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거렸다. 상혁의 말에 비닐봉지 덩어리가 움직이는 게 꽤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약봉지로 살을 만들고 관절 부위에 약통을 썼다. 하지만 애초에 비닐 자체가 단단하거나 형태가 잡힌 물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닐 골렘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형체가 없기 때문에 저렇게나마 움직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무게가 월등하게 적으니까.’

무거울수록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혁이 고민하고 있을 때 이선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저건 어디서 나셨어요? 약봉지나 약통인 것 같은데.”

“탑차에서요.”

이선호는 저 탑차의 화물칸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간단하게 이선호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이선호의 표정이 변했다.

“불법인데요?”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의료용 폐기물들을 모아 놓은 것 같던데. 하적장에 그냥 주차만 되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인적이 드문 새벽에 몰래 의료용 폐기물을 화물칸에 실은 것이다.

“구매한 약품과 대조해서 폐기물 처리를 하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구매한 약품 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구매한 약품이 100인데 나가는 폐기물이 10이라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구매한 약품을 10으로 조작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상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선호는 옆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반도체 공장에 이어서 병원까지. 대체 SG그룹의 악행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네요. 저게 그대로 어디 묻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십니까?”

“음…… 오염되겠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공장 폐수가 더 낫습니다. 약에 담긴 물질이 어떤 식으로 자연에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SG그룹은 돈 좀 아끼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으로 처넣고 있는 겁니다.”

그때 상혁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원인불명의 기형

내용1 : SG충청병원에서 비밀리에 불법 수거업체를 통해 매장하는 약품 1,000t 소각

내용2 : 약품이 매장된 토양 18헥타르 정화

보상 : 마나석 1, 마정석 10]

‘기형?’

상혁은 불법 매장한 약 성분이 생태계에 기형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눈썹을 치켜떴다.

어쨌거나 처음으로 퀘스트의 내용이 두 가지가 나왔고 보상이 두 가지로 늘었다.

그런데 무려 그 보상이 마나석과 마정석이었다.

‘내가 뭐가 필요한지 알고 있다는 뜻이군.’

상혁은 입꼬리를 슥 끌어 올렸다. 하지만 세계의 의지는 마법사란 존재에 대해서 오판하고 있었다. 마법사란 존재는 보상을 준다고 해서 그냥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것이 아닌 족속들이다.

‘하다가 안 되면 하지 뭐.’

마법사란 본래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들.

그리고 다른 말로는 불가능에 매달리는 존재들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그러니 지구에서 마나석이 없어 골렘을 못 만든다?

‘오히려 그게 더 좋아.’

매달릴 불가능이 있기 때문이다. 마나석과 마나석으로 정제되기 전의 마정석이 있다면 상혁에게 있어 물론 편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도전 의식이 들끓은 마법사에게 편히 가는 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로지 스스로가 구르고 부딪치면서 깨우친 것만이 마법사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뽀르르!!

상혁과 심령으로 연결된 초아가 뽀르르 날아오르더니 상혁의 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지 말아 달라는 뜻 같았다.

‘마나석과 마정석이 었어서 나쁠 건 없으니 생각해 보마. 일단 궁금한 것을 먼저 푼 다음에.’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오염된 토양이 있으니 그걸 굳이 외면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퀘스트에 시간제한이 걸린 것도 아니니 일단 궁금증부터 풀 생각이었다.

‘과연 마나석이 없다면 정말 골렘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가!?’

그때 이선호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SG충청병원에서 불법적으로 의료용 폐기물을 소각하거나 매장하고 있었다니.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요?”

이선호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선호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선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저, 잠시 충청병원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선호는 상혁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그게 상혁의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마법사인 상혁이 있다고 해서 이선호는 두드리면 나오는 보물 상자처럼 상혁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이거.”

상혁은 주머니에서 엄지손톱만 한 옥을 꺼냈다. 제이드라고도 불리는 옥은 아티팩트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마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였다.

다른 보석들처럼 비싸지 않고 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내구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그건 사용자가 조심해서 쓰면 될 일이다.

“웬 옥반지를 주십니까?”

“그래도 세입자시니까 챙겨 드려야지. 위험에 처했을 때 바닥에 던지세요. 그러면 제가 가겠습니다.”

“상혁 씨.”

이선호는 알람 마법이 걸린 반지에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반지를 손에 쏙 끼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알아내겠습니다.”

사실 그것에 대해 상혁은 별 관심 없었다. 그러나 이선호가 저렇게 불타오르는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 역시 없었다.

뽀로로!!

초아가 상혁의 머리 위에서 날아올라 부스럭거리는 비닐 골렘에 관심을 보였다. 초아가 비닐을 몸에 감으며 즐거워하는 것이 상혁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상혁의 눈이 커졌다.

“어?”

비닐 골렘의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것이다.

“잘하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 * *

“아…….”

전아영은 검수를 하다 말고 치밀어 오르는 어지럼증에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다. 하지만 쉴 시간조차도 없었다.

지이잉!!

전아영이 검수를 해야 할 것들은 눈이 빠질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검수품들을 보면서 전아영은 한숨을 쭉 내쉬었다.

‘피곤해.’

전아영은 방호복 안에서 눈을 힘겹게 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방호복 안이 뜨끈하고 축축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도통 피로가 풀리지 않기 때문인지 입맛도 없었다. 그 사이 살이 더 빠져 방호복은 제대로 벨트를 매지 않으면 흘러내릴 정도로 커졌다.

그 상태로 오늘도 간신히 오전 시간을 버틴 전아영은 방호복을 벗자마자 고개를 뒤로 꺾었다. 코피가 주륵 흘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전아영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 검수하는 검수팀 중 절반 이상이 그녀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걸 팀장에게 말해도 팀장은 무신경하게 그런 증상이 있다는 걸 묵살했다.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없다면서 꼰대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 다였던 것이다.

점심시간이지만 전아영은 밥도 그런 채 하적장으로 향했다.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적장에 간 전아영은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이고 누웠다.

그런데 그때 하적장에 있던 작은 문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이 걸어 나왔다. 전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아는 한 현재 이 공장에 근무하는 외국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외국인이 벽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 무언가 잔뜩 든 박스 같은 것을 외국인이 들고나왔다. 외국인이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박스에는 위험물을 뜻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저게 뭐지?’

그 외국인이 금방 공장의 다른 문으로 사라졌다. 전아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서려는 순간 전아영은 몸이 휘청거리고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

털썩!

전아영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닫혔던 문이 열리면서 외국인이 하적장을 확인했다.

그러다 쓰러진 전아영을 본 외국인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