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9화
039. 파이어 볼(4)
“이런 빌어먹을!!”
퍽! 퍽퍽!!
노트북으로 기사를 보던 한덕광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는 노트북을 들어 바닥에 몇 번이고 내리쳤다. 노트북이 부서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거야!!”
진범이 자수한다고 찾아올 때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그러더니 죽이라고 보냈던 진범이 사라지고 동기였던 이선호가 사건을 원래대로 돌리라면서 찾아왔다.
그러고는 기사가 터졌다.
진범이 직접 찍은 영상이 기사와 함께 나돌기 시작하면서 검찰에 대한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한덕광은 위에까지 불려 가 미친 듯이 깨지고 돌아왔다.
“이러다가 큰일 난다. 정말로 큰일 나.”
하지만 윗선에 불려 가 깨진 것보다 한덕광이 더 걱정하는 것은 백도현에게서 버림받는 것이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는 백도현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서울로 올라가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던 일이 이렇게 꼬였다. 그 때문에 한덕광은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김현석!!”
한덕광은 이선호의 처리를 맡긴 미래현석파의 김현석에게 전화했지만 연락 두절이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불안 요소가 한 가지 더 얹힌 것이다.
조사관들은 발악하는 한덕광을 보며 숨죽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차 있던 그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배가 기울어져 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후욱!!”
벌컥
잠시 후 한덕광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검사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는 손에 파일철을 든 채로 이에서 까득 소리를 냈다.
“용의자 취조하는 거,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한덕광은 조사관에게 그렇게 말했다. 조사관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덕광이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지자 조사관 중 하나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포기 안 하신 것 같은데요.”
“어쩌려고 저러시냐. 적당히 이제라도 끊어야 하는데. 그 할배가 순순히 자신이 했다고도 안 할 것 같은데.”
시골 촌부이기에 조금만 겁박하면 곧바로 시인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했던 김 씨는 생각보다 기가 셌다.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속적인 회유와 협박 같은 설득으로 거의 넘어오기 직전이었다.
“저러고 가시면 그래도 오늘 도장 찍어 오시긴 하겠는데.”
언론에 그런 기사들이 나가고 있으나 김 씨의 자백만 있다면 국면이야 언제든 뒤바꿀 수 있었다. 그러니 한덕광이 무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문제 되는 거 아니려나 몰라?”
“일단 서울 가는 거부터 걱정하자고. 괜히 잡소리 나오는데 올라오라는 거 취소되면 어떻게 해?”
조사관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 * *
콰앙.
한덕광은 취조실의 문을 부술 것처럼 박차고 들어갔다. 그러자 앉아 있던 김 씨가 파르르 하고 어깨를 떨었다.
무려 검사다.
시골 촌부로 평생을 농사만 지어 왔던 김 씨에게 검사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였다. 동네 순경만 해도 경찰관님 경찰관님 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검사였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 사인합시다.”
한덕광이 직접 들어가 취조를 시작한 후부터 김 씨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거의 완성된 조서를 한덕광은 김 씨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거의 인정하는 단계라 이제 끝나기 직전이었는데 어제 이선호가 찾아오는 바람에 진술 확인에 사인을 받지 못한 것이다.
‘도움 안 되는 놈.’
이선호를 한 번 욕한 한덕광은 진술서를 김 씨의 앞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김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덕광에게 말했다.
“검사님. 검사님. 정말로 억울합니다. 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내를 제가 죽이다니, 그리고 딸이라니 제가 왜.”
“아. 이미 다 끝난 말을 또 하시네. 따님이 다 실토하셨다니까? 이러다가 당신만 죄 다 뒤집어써요. 형량이 몇 년인데. 어?”
한 검사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안 그래도 감정이 올라와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김 씨가 심기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전 안 했어요. 참말로요.”
“사인하세요. 다 끝났어요. 이래야 1년이라도 덜 사신다니까?”
“여기 사인하면 전 아내도 죽이고 딸과 그 짓을 한 파렴치한이 되잖아요. 못 해요.”
“하라니까!!”
쾅!!
한덕광이 취조실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찍으며 폭발했다. 그러자 김 씨가 놀라서는 어깨를 팍 움츠렸다.
“내가 당신 같은 시골 노인네 하나 감방 못 보낼 줄 알아? 어? 쉽게쉽게 가자는데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들어어어!!”
“지, 지는 참말로 억울해요.”
“그건 당신 사정이고! 아내 농약 탄 막걸리 마시게 해서 죽게 했잖아!”
“아니어유. 참말로 아니어유.”
김 씨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나왔다. 한덕광은 이를 뿌득 하고 갈았다. 한덕광은 고개를 돌려 녹화를 끄라는 신호를 턱짓으로 보내고는 두 팔을 걷었다.
그가 늘 차고 다니는 비싼 시계를 풀어 한쪽에 둔 한덕광은 손을 들어 올렸다.
“몇 대 맞자.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 거야.”
“히이익!!”
힘없는 노인인 김 씨가 눈을 질끈 감았다.
똑똑똑.
그런데 그때 취조실의 문에 누군가 노크했다. 한덕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기다려!!”
똑똑똑.
그런데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덕광이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밖에서 조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님. 그, 김 씨 할아버지 변호사시라는데요.]
“뭐?”
한덕광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한덕광에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선호?”
“네, 이선호입니다. 한 검사님?”
이선호가 취조실을 훑었다. 두 팔을 걷고 있는 한덕광과 잔뜩 위축된 김 씨,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챈 이선호의 두 눈에 불이 붙었다.
“지금이 공안검사 시절입니까?”
“뭐.”
“남영동 가시죠. 여기서 이러고 계시지 마시고.”
한덕광은 혀를 찼다. 변호사라니. 한덕광이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변호사? 수임 계약서 좀 봅시다.”
김 씨는 시골 촌부다.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다. 그런데 변호사라니. 변호사를 만날 시간도 없이 데려온 것이다.
게다가 따로 면회를 허락해 준 적도 없는데 이선호가 변호사?
만약 이선호가 변호사였다면 어제 그렇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여기.”
“……!”
종이를 읽어 내려가던 한덕광의 눈이 커졌다. 계약 시점이 바로 어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씨는 외부인과 면회를 한 적이 없었다.
한덕광이 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계약서가 떡하니 있었다. 끝에는 김 씨의 손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촤악!
이선호는 한덕광의 손에서 계약서를 빼앗듯이 다시 가져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다시 챙겨 넣으며 한덕광에게 말했다.
“지금 제가 본 거,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문제가 되면 감사 쪽에 이의 제기하겠습니다.”
“…….”
“그리고 그간 진술서, 조사 기록서 전부 다 보겠습니다. 변호사의 역할이니까요.”
한덕광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슨 사건이건 간에 변호사가 끼면 한덕광 마음대로 일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
이쪽이 법의 전문가라면 저쪽도 만만치 않은 법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야 윽박질러서 넘어갈 수 있지만 변호사에게 그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SG그룹에게 혼자서 대항했던 독종 중의 독종이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어제랑 같은 이야기면 됐다. 그리고 선물 잘 받았어.”
“선물?”
“미래현석파.”
한덕광의 표정이 변했다. 이선호가 두 발로 걸어 제 앞에 나타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심지어 미래현석파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뭐냐?”
“왜. 나도 너처럼 백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냐?”
이선호의 말에 한덕광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선호가 유들거리며 한덕광을 긁었다.
“참고로 살인교사 혐의도 나오면 너 앞으로 고소장 아주 예쁘게 적어서 보내 줄게. 기대해.”
“너 이…….”
“미래현석파 애들. 착하더라? 물으니까 막 대답 다 해 주던데? 이상한 장부 같은 것도 주고.”
한덕광이 움찔했다. 이선호는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한덕광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선호의 말이 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걔네 찾지 마. 아마 자기 이름들도 모를걸? 아, 그리고 하나 더.”
이선호는 아까 한덕광이 카메라를 끄라며 신호를 보냈던 거울을 가리켰다. 안에서는 안 보이지만 저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 거울이다.
씨익.
상혁은 이선호가 자신을 볼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흔들었다. 그런 상혁 앞에는 멍한 눈으로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빼고 있는 조사관이 있었다.
“카메라 안 꺼졌어.”
“뭐??”
“아주 잘하더라. 이게 검찰 윗선에 가면 어떻게 될까? 아니, 당장 뉴스에만 나가도 재밌겠다. 그치? 21세기에 아직도 공안검사가 하는 방식대로 날뛰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검찰과 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바닥을 기었다. 그 때문에 쇄신을 부르짖는 검찰이었지만 그 영상이 퍼진다면 다시 홍역을 앓게 될 것이다.
한덕광은 수세에 몰렸다.
“너, 너.”
그러다 한덕광의 머릿속에 퍼뜩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설마! 그 기사들도!!”
“내가 말했지.”
이선호는 차분하게, 그러나 힘이 바짝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온 세상에 알리겠다고. 이번이라고 못 할 것 같아?”
“…….”
“그 전에 일단 김 씨 할아버지부터 풀어 드려. 용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다시 오실 것 같지만.”
“너…….”
한덕광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선호는 무시했다. 대신 그는 고개를 돌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가 이해가 안 가 눈만 끔벅이는 김 씨를 보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김 씨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 * *
“다시 빠져나올지도 모릅니다. 원래 강한 악일수록 끈질긴 법이니까요.”
한덕광은 결국 검찰의 감사과에 넘겨졌다. 이선호가 직접 이번 사건의 변호사로 한덕광을 고발한 것이다.
이미 모든 자료와 정보들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빠르게 움직였다. 이것들이 언론에 공개된다면 그것이 불러 올 여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법을 악용해 남에게 피눈물을 흐르게 한 놈입니다. 그 잘난 법으로 징치하고 싶었습니다.”
“무르시네요.”
“그런가요.”
그렇게 한덕광은 언론에 크게 회자되지도 않고 기껏해야 검찰 내에서 징벌위원회를 열어 그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것이다.
그건 한덕광이 저지른 일들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징벌이었다.
적어도 남을 죽일 생각을 했으면 자신도 죽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가나안과는 많이 다른 사고방식이었다.
“그 칼이 다시 변호사님에게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싸우면 됩니다.”
위협의 근원을 뿌리 뽑지 않는 이상 새로운 위협이 자라날 것이다. 이선호는 미련할 정도로 고집스러웠다.
“…….”
“마음에 안 드십니까?”
“백치로 만들어 버리면 간단한 일입니다.”
풀을 베면서 뿌리까지 뽑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선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상혁 씨의 방법이지 않습니까. 제 손으로는 절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방법.”
“절 도구로 생각하시든지요.”
“사람을 어떻게 도구로 생각합니까.”
이선호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한덕광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속이 후련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란 것을 이때의 이선호는 미처 알지 못했다.
* * *
다음 날.
쾅쾅쾅!!
“변호사님! 이선호 변호사님!!”
“김득구 씨를 도와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변호사님 덕분에 누명을 뒤집어쓸 뻔한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과거를 보니…….”
아침부터 이선호를 찾는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국의 기자들이 다 몰려든 것 같았다. 때문에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깬 상혁이 구멍이 뚫린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인생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