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6화
036. 파이어 볼(1)
미래현석파는 천안에서 활동하는 지역구 조폭이었다. 조폭의 형태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기이하게 변하였는데 과거에는 활동 구역을 놓고 다른 파벌끼리 싸웠다면 치안이 강화되고 조폭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면서 파벌끼리 싸울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조폭들은 전국구 조폭들이 자신들만의 연락 체계로 묶이는 느슨한 연합 형태의 조직이 됐다.
예전처럼 보호세 등을 받기가 힘들어진 사회적 구조 때문에 조직원의 수조차도 급감한 조폭들은 이제 품앗이 식으로 어떤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다면 원정을 나가는 형태가 되었다.
그 때문에 미래현석파도 돈이 되면 모든 일을 다 하는 열 명의 조폭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주로 하는 일은 높으신 분들의 더러운 일 처리를 대신해 주는 것.
그 외에도 전국적으로 조폭들이 요즘 한창 푹 빠져 있는 불법 약물의 충남지역 운반책을 맡고 있었다.
“이선호? 변호사를 담그라고?”
그런 미래현석파의 두목인 김현석은 올해 마흔 살로 마지막 조폭의 전성기이던 시절 막내로 시작하여 천안에 내려와 작은 조직 하나를 운영 중인 남자였다.
“바로 얼마 전에 애들 병원에 줄줄이 입원해서 바빠 죽겠는데. 하 씨.”
부업으로 중국 연변 쪽 애들과 장기 밀매를 하기도 하는 김현석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 중국 쪽 애들이 누군가에 의해 싹 다 쓸려 나간 것 때문에 그쪽의 클레임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한덕광에게서 명령이 떨어졌다.
일개 조폭으로 하늘 같으신 검사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미래현석파가 천안에서 조직을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한덕광의 비호가 있던 덕분이었다.
만약 한덕광이 발을 뺀다면 미래현석파는 금세 다른 놈들에 의해서 다른 조직으로 물갈이가 될 것이다.
“에휴, 가야지. 마석아, 둘이면 되냐?”
“저 혼자도 됩니다, 형님.”
안 그래도 조선족 조폭 애들 건 때문에 한덕광에게 불려 가 흠씬 두들겨 맞은 자리가 다 낫지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샌님 따위 모가지 하나만 동강 내면 속 시원할 것 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화에서야 조폭이 검사도 푹푹 찌르고 돌아다니던데,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검사가 그런 식으로 조폭에게 당한 적은 없었다.
아마 그 순간 전국의 모든 조직이 쥐 잡듯이 털릴 것이기 때문이다.
“둘은 가. 2인 1조, 몰라?”
“예, 형님.”
김현석은 조직에서 가장 무식한 마석에게 일을 맡겼다. 가장 무식한 만큼 시킨 일은 우직하게 해내는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하나 죽이는 일이지만 김현석에게는 당장 내일 먹을 점심이 더 고민이었다. 그렇게 이선호의 죽음을 간단하게 말 몇 마디로 결정한 김현석은 이마를 싸맸다.
“아이 씨. 병원비도 우리가 내줘야 돼?”
* * *
“이 친구입니다.”
오승택은 며칠 뒤 상혁에게 자신의 친구라면서 기자 명함을 내미는 남자를 한 명 데려왔다.
“박선웅?”
“예.”
오승택이 그렇게 말하며 박선웅의 허리를 쿡 하고 찌르자 박선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자 같지 않게 어수룩해 보였기 때문에 상혁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믿을 만해?”
“야.”
상혁의 말에 오승택이 인상을 쓰고 박선웅의 허리를 찔렀다. 그러자 박선웅이 주섬주섬 품에서 명함을 열 개가 넘게 꺼냈다.
“이 친구가 변장이나 위장 쪽에 능합니다. 컴퓨터도 곧잘 다루고요. 그래서 주로 이런 쪽으로 먹고사는 친굽니다.”
박선웅은 오승택의 군 시절 동료였다. 정확히는 오승택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현장을 돌았다면 박선웅은 특수병과 소속이었다고 한다.
사이버전.
정보전이 중요해진 만큼 그쪽에 대한 군의 관심도 높아져 박선웅은 그쪽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 경찰청 한 번 털었다가 얄짤 없이 끌려갔습니다. 그래도 감방보다는 낫다고. 월급도 주니까요.”
그래서 5년 정도를 복무하다가 때려치웠단다.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기자는 왜?”
“경찰청 털면서 느낀 건데 이 세상에 냄새 안 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그때 무언가 계시가 빡 왔습니다. 다들 눈을 뜬 줄 알지만 제가 보기엔 장님인데, 그 장님들을 진짜로 눈뜨게 해 줘야겠다고요.”
“그래서?”
“그런데 군에서 감시하느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기자 노릇을…….”
“주로 돈 받고 기사 올려 줘서 여론 조작하는 쪽으로 일하고 있답니다.”
박선웅은 오승택을 쓱 노려봤다. 자신을 끌고 오더니 왜 한참 어려 보이는 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고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상혁도 그게 훤히 읽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필요한 것은 능력뿐이었기 때문이다.
“일 하나만 합시다.”
“제가 좀 비싸서. 요새 바쁘기도 하고.”
박선웅은 딴청을 부렸다. 상혁이 오승택을 쳐다봤다. 사전 작업 없이 그냥 데려왔냐는 힐난이 섞인 눈빛이었다.
오승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한테 빚진 거 갚는다고 했지? 이걸로 퉁 치자.”
“무슨 일이길래? 쟤는 또 뭐고.”
박선웅은 오승택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상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상혁은 그냥 평범한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한테도 손해는 아니야. 검찰 쪽이니까.”
“검찰?”
박선웅의 눈빛이 변했다. 상혁은 그걸 보고 박선웅이 중학생 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경찰청을 턴 것이 아니란 것을 눈치챘다.
‘개인적인 원한. 그런 건가?’
오승택은 그걸 알고 데려온 것일 것이다. 평화롭던 상혁의 마을에서 일어난 농약 막걸리 사건에는 한덕광이란 놈이 이상하리만치 깊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데. 듣고 결정하자.”
“자, 들어 봐.”
오승택은 박선웅에게 지금까지 파악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박선웅의 표정이 연달아 변하더니 오승택의 말이 끝나자 박선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X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조직은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그래서 할래 말래.”
“빚진 거 갚으라면서. 그럼 해야지.”
“오케이. 그럼 여기.”
오승택은 곧바로 진범의 녹취록과 영상이 담긴 USB를 넘겼다. 그것을 받아 든 박선웅이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승택이 따라 일어났다.
“나가진 못한다. SG에서 날 쫓고 있거든.”
“SG? 전역한 놈이 왜 그렇게 스펙타클하게 사냐. 적당히 살아, 적당히.”
자신이 SG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까지 숨기지 않는 것을 보니 상혁이 예상한 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오승택에게 상혁이 물었다.
“확실하지?”
“예. 실력도 확실하니 들킬 일도 없습니다.”
사실을 알리는 것. 그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만 힘을 가진 자들이 언론을 꽉 쥐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친구에게 이것도 말해 줘.”
상혁은 주머니에 있던 불법 약물 봉지 중 하나를 꺼내 놓았다. 고개를 갸웃하고 그것을 들어 본 오승택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이, 이건…….”
“검찰 증거실에 있더라.”
“검찰이요?”
오승택의 눈이 커졌다. 그도 경찰이나 검찰에 해박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몇 가질 알고 있었다.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이 가는 곳이 경찰이기에 한때 준비해 본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왜?”
“증거 품목이 불법 약물이면 경찰 불법 약물계에서 보관하는 것인데…… 검찰에 있는 증거실은 주로 재판기록부나 문서로 된 것들뿐입니다.”
상혁은 그 증거보관실에 확실히 서류 같은 것이 많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왜 그곳에 실물인 불법 약물이 있다는 말인가?
“그건 저도 잘…….”
“음, 어쨌건.”
상혁이 불법 약물 봉지를 흔들었다.
“검찰에 꽤 관심이 많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적절한 보상이 되겠지?”
오승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상혁에게 목줄이 제대로 채워져 있었지만 박선웅에게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 충분할 겁니다.”
“좋아. 그럼 네게도 할 일을 주지.”
오승택이 귀를 기울였다.
“아마 조만간 밤손님이 올 거야.”
* * *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맨날 고생하시는군요.”
이선호의 선택은 상혁이었다. 정의를 외치는 이선호지만 경찰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덕광이 움직일 킬러라면 더더욱 경찰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의 상급 기관처럼 구는 검찰 검사의 말을 그들이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타협.
이선호가 한 타협에 상혁은 기꺼이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비단 가나안의 삼왕자가 떠오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값을 주는 안정적인 자금줄이 잘려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상혁은 매일 이선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시내에 나가 그의 차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선호가 상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제가요?”
“예, 분위기가…….”
이선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루 만에 뭐가 달라졌겠습니까마는, 제 착각인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차에 타는 이선호를 상혁은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걸 느꼈다고?’
[이름 : 상혁
직업 : 3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300]
마나 300.
상혁은 어제 3서클에 올랐다. 2서클에 오르면서 두 번을 해 보니 이제 그것도 좀 손에 익었다고 비슷한 시간에 3서클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말이 3서클이지. 고리를 이루고 있는 마나의 양은 5서클에 육박하지.’
마나를 아주 가느다란 실로 만들어 그것을 꼬아 고리를 만든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새로운 마나 고리는 원래 상혁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두꺼워졌다.
마나의 고리가 커질수록 굵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나 고리가 두꺼워진다는 것은 품고 있는 마나량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사실상 상혁이 느끼는 마나량은 5서클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였다. 그렇다는 말은 사실상 3서클 마법을 연달아 서른 번 이상을 난사해도 될 정도의 마나량이라는 소리였다.
‘반대로 4서클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마나가 필요할지 상상도 안 되는데.’
그 단적인 예로 검찰 증거보관실에서 구한 500그램짜리 불법 약물 한 봉지를 썼는데 마나가 299에서 300으로 올라가는 것에 그쳤다.
그 전에 마나가 10씩 오르던 것에 비하면 3서클의 마나 고리는 10배 수준의 마나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 모르지. 아직 공장도 남아 있고. 공장 퀘도 남아 있으니까.’
그러나 상혁은 4서클을 채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현대의 환경오염은 극심한 수준이라 그 오염이 전부 다 마나 물질이라고 생각한다면 4서클을 채우는 것도 금방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이틀간은 조용했습니다. 아마 오늘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상혁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선호에게 말했다. 한덕광이 이선호의 암살 청부를 했다는 것을 들은 지 이틀이 지났다.
오승택에게 집 주변을 감시하라 시켰지만 지난 이틀은 조용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청부를 받은 사람이 움직일 딱 절호의 기회였다.
“드디어군요.”
이선호의 팔이 긴장으로 바짝 굳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험한 꼴을 다 본 이선호라고는 하지만 암살이란 말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도 슬슬 오늘부터 올리라고 했으니 아마 계속해서 올라올 겁니다. 사이트 측에서 막으려고 해도 올리는 방법이 있다더군요.”
“할 수 있을까요.”
“언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셨습니까?”
상혁의 반문에 이선호가 쓰게 웃었다. 이선호는 사실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렇군요.”
“뭐 이번에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상혁이 히죽 웃었다.
“마법사가 있으니까. 준비한 마법사를 이길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조폭들을 움직인 것이다. 오승택 같은 전문가에, 국정원도 제압한 상혁인데 조폭 따위가 위협이 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놈들을 이용해 한덕광을 쓰러뜨릴 방법이나 생각하시죠.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뢰가 가는 상혁의 말에 이선호는 쓰게 웃었다. 마법사라는 상혁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기만 하는 싸움을 해 오던 이선호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건 생소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핸들을 잡은 이선호의 손가락에 굳건한 힘이 들어가고 이선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