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4화
034. 남의 눈에 눈물 낸 놈(4)
혈향이 사방에 진동했다. 여기서 몇 명이나 무단으로 장기 적출을 당한 것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그 검사, 대체 뭡니까?”
“뭐긴. 몰라서 물어? 대단하신 SG그룹의 사냥개시지.”
김태양의 말에 국정원 요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들의 사냥개인 것은 국정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흑태양파는 애초에 국정원에서 SG그룹을 위해 따로 만든 일종의 자회사였다.
경찰에 잡혀가도 국정원에서 도와주는 일 따위는 없다. 임무 중에 발각이 되면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국정원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SG그룹에서 이런 불법적인 일도 자행하고 있었다는 것에 국정원 요원들은 충격을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에이, 걱정 마. SG그룹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은 아니니까. 그 고고하신 분들은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를걸? 한덕광이 별개로 아는 놈들 같아.”
“이놈들 조선족 놈인데요?”
“그래. 원래 막 나가는 놈들이니까. 잃을 게 없는 놈들이거든.”
일개 검사가 이런 놈들을 비호하고 있었다니.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대체 그 검사는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성과를 위해 몇 명을 통나무로 만들어 내다 팔았을까.
“잘못하면 연변 애들까지 이어지는 거 아닙니까, 여기?”
국정원 요원이 걱정하자 김태양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왜. 겁나?”
“깡패들이 겁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건 겁나는데요.”
자신들의 사업장이 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중국 본토에서 놈들의 지원군이 올 것이다. 중국에는 한국인의 장기라고 하면 웃돈까지 주고 사가는 놈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놈들 중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놈들은 없었다.
밀항 등으로 들어와 경찰의 눈을 피해 민생치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놈들이 바로 연변 놈들이다.
지독하고 잔인한 놈들.
김태양은 히죽 웃었다.
“그래서 후회해?”
“후회라니요.”
“시원하지?”
“솔직히, 그렇슴다.”
김태양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자신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국정원에 들어가 현장 요원이 된 후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
검찰이나 경찰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음지의 이러한 범죄들.
국정원은 이런 범죄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어떤 놈들이 하는지 알 수 있는 정보력이 있으면서도 그걸 써먹지 않았다.
국정원이 국내의 사건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버젓이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그건 외국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늘 정치질에만 이용됐다.
그러다가 일다운 일을 하니 시원한 것이다.
“근데 진짜 저 돼지가 농약 막걸리 사건의 진범입니까?”
“그래. 경찰에 자수하러 갔는데 그곳에 형사가 팔아넘긴 모양이야.”
“하아, 진짜.”
부패한 경찰과 검찰.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나오지만 현실에서 마주할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모든 조폭을 때려잡을 수 없어 서로 알음알음 공존을 한다고는 하지만 설마 자수하러 온 진범을 장기 밀매 조직에 넘겨서 흔적을 없애려고 할 줄이야.
“여기 분쇄기도 있습니다.”
“완전 조직적인데요?”
그리고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가관이었다. 장기 적출을 한 피해자를 분쇄기로 흔적을 없애는 것도 치밀했고 시일에 맞춰 장기를 외부로 내보내는 법도 치밀했다.
“냉동탑차 업체네.”
“할 게 없어서 이딴 놈들이랑 손을 잡고…….”
“돈이면 무슨 짓이든 못 해. 어쨌든 진범 아저씨.”
김태양이 진범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고는 히죽 웃었다.
“억울하죠? 그 억울한 거, 아저씨 죽이려고 한 사람 엿 먹이려면 당신이 범인이란 것을 밝혀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범인이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
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방금 그렇게 죽을 뻔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이 한층 더 강해졌다.
“자. 여기에 당신이 아는 거, 한 거 다 말해 보세요.”
김태양이 진범 앞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 * *
“변호사님.”
“상혁 씨.”
이선호는 자신을 찾아온 상혁을 보고서는 멈칫했다. 그는 묘하게 상혁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고 상혁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마음이 어지러운 것이겠지.’
상혁이 마법사이고 그의 중독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은인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는 상혁이 선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상혁의 사고방식은 절대로 선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이기적이었다.
“사무장님. 커피 좀.”
“타 드릴까요?”
“아니요. 좋은 걸로 좀 사다 주세요.”
“예, 변호사님.”
전아영의 어머니인 최영숙이 상혁을 빤히 쳐다보면서 나갔다. 이선호가 커피를 사다 달라는 것은 자리를 잠시 비워달라는 뜻이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한 뒤 자리에 앉았다.
“해독하는 건 매일 꾸준히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예. 제가 좀 피곤했어서.”
“그게 아니라, 제가 의심스러우신 거겠지요.”
상혁은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이선호는 쓰게 웃었다. 그런 상혁의 성격이 시원시원하면서도 대화를 피할 수 없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 평생을 정의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선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혁 님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시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네. 맞습니다.”
역시, 라고 이선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상혁이 그 어떠한 측은지심 없이 김 씨와 그 지체 장애를 겪고 있는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남 일 말하듯 말한 것을 보고 이선호는 상혁이란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 눈치챘다.
그는 정의롭지 않았다.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 힘을 가졌을 때,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를 봐 왔다.’
상혁은 마법사다. 이 세상에 유례없던 기적 같은 힘. 그런 상혁이 정의롭지 않다는 건, 그가 악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금 거리를 벌리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선호의 말에 변명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을 이해시키고 싶지 않았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 이선호의 말에는 맹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기셨습니까?”
“……예?”
“정의. 좋습니다. 변호사님이 대단하시다는 것도 알겠고. 거대한 힘에 맞서 홀로 싸워 오셨으니까. 법이란 정의 아래.”
“…….”
“그래서 세상이 나아졌나 묻는 겁니다.”
힘이 없는 정의. 이선호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선호에게 가장 부족한, 동시에 딜레마처럼 느껴지는 것을 상혁이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아팠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숭고한 의지와 함께 힘이 필요한 법입니다. 뭐,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요. 전 결과론자고, 변호사님은 아니신 것뿐이니까.”
상혁이 히죽 웃었다. 결과론자. 가나안에서 배신을 당한 상혁은 결과론자가 됐다. 과정이 어땠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염세적인 사람. 그곳에서도 결과만 좋았다면 자신은 배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왕을 만들고, 마탑을 세우고, 제자를 키우고, 왕자에게 애정을 줬다가 그 꼴을 당한 것이다.
이선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도 바보는 아니기에 상혁의 말을 알아들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상혁을 밀어내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도 말이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상혁은 대신 이선호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핸드폰 안에는 김태양으로부터 도착한 영상이 있었다.
“이게 누굽니까?”
“농약 막걸리 사건의 진범입니다.”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 * *
“대단하십니다. 역시 검사님이십니다.”
“이 정도야 껌이죠. 그보다 조사관님들의 실력을 키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까칠한 한덕광의 목소리에 조사관은 고개를 떨궜다. 취조실 안 김 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자신이 하지 않은 것을 인정하게 된 남자의 억울함이 담긴 눈물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딸이 인정을 했습니까?”
“조사관님.”
한덕광은 김 씨에게 딸이 모든 것을 인정했다고 거짓으로 유도 신문을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취조를 이끌어 나갔다.
더군다나 조사관들과는 다르게 검사인 그가 직접 들어왔다는 것도 김 씨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때문에 결국 김 씨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이제 가서 받아 오면 되는 일인데.”
“아.”
“지능이 모자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서 받아오세요. 아버지도 인정했다고. 같은 방식으로 하란 말입니다.”
범인이 둘 이상일 때 흔히 쓰는 방법이지만 이런 경우에도 범인을 둘로 만드는 데 아주 용이하게 쓰이는 방법이었다.
한덕광은 고된 농사일로 까맣게 타고 주름진 김 씨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눈물이 자신을 저 위로 올려보내 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조사관 중 하나가 한덕광에게 물었다.
“검사님. 검사님 친구분이시라는 분이 만나고 싶으시다고 찾아오셨습니다. 이선호 변호사님이라고.”
“이선호?”
한덕광의 눈썹이 살짝 모였다가 원래대로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실로 안내하세요.”
* * *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굳이요?”
“예.”
이선호와 한덕광이 아는 사이란 것에 상혁은 인연이야말로 참 기묘한 것이라고 감탄했다. 다른 나라의 대통령도 여섯 사람만 거치면 아는 사이가 된다는 밀그램의 분리의 여섯 단계 이론이 진짜 맞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영상을 본 이선호는 분연히 자신이 직접 한덕광을 만나 보겠다며 천안지청으로 향했다. 그와 상혁이 동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덕광에게 직접 자백을 받으면 간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혁 님에게 더 수월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저만의 방식이 있는 법입니다.”
이선호는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아마 상혁에게 자신의 방법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상혁은 손을 들었다.
“그러시죠.”
어차피 한 번 만나기만 하면 된다. 한덕광이 누군지만 알면 감시할 방법은 저서클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니 말이다.
상혁은 이선호가 실패할 것이라 확신했다.
잠시 후 천안지청에 차를 댄 이선호가 내렸고 상혁은 그 뒤를 따랐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출입증을 받은 이선호가 상혁을 쳐다봤다.
“이걸 어쩌죠.”
상혁은 들어가지 못한단다. 검찰청이 놀이터도 아니고 말이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습니다.”
계획이 조금 틀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상혁은 천안지청에 도착한 순간 한덕광보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나?’
천안지청 어딘가에서 아주 농도 짙은 마나가 느껴졌다. 상혁은 호랑이 같은 눈으로 자신을 쫓아오는 청원경찰의 눈길을 느끼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벽을 타고 죽 걸어 흡연장에 도착한 후 주변을 휘휘 살폈다.
“CCTV도 없고. 완벽하네.”
상혁은 발을 휘휘 돌렸다. 그러고는 2서클 마법을 발에 걸었다. 그다음 순간 상혁이 공중으로 붕 하고 떠올랐다.
“읏차.”
2서클 점프 마법.
거의 사장된 마법이지만 가나안에서는 사장된 마법이 지구에서는 유용한 경우가 많았다.
저서클의 정신 마법을 아주 쏠쏠하게 써먹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타닥.
2서클 점프 마법은 점프력을 높여 주는 단발성의 마법이다. 그런데 마법사가 그렇게 뛸 일도 없고 단발성이기 때문에 사장된 마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마법이었다.
“이 정도 높이. 그러면…….”
점프력의 강도를 가늠한 상혁이 다시 한번 더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떨어지기 전에 재차 공중에 뜬 상태로 마법을 시전했다.
“언락.”
철커덕!!
잠겨 있던 창문의 잠금쇠가 철커덕 하고 풀렸다. 상혁은 창틀에 매달려 창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그 안으로 몸을 쑤셔 넣은 뒤 창문을 닫았다.
창고였다.
“나이스.”
완벽한 잠입이다. 그렇게 씩 웃은 상혁이 문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럽게 창고의 문을 열었다. 건물 안에 들어오자 마나의 짙은 향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기롭게 맡아졌다.
“증거실?”
상혁은 주저하지 않고 잠긴 문에 손을 얹었다. 출입 카드가 있고 권한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지만 상혁의 마법 앞에서 문은 너무나도 쉽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선 상혁의 두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