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7화
027. 개막장(2)
겉보기에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런 시내였다.
하지만 상혁은 민감하게 흐르는 기류를 느꼈다. 정확히는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흉흉한 살인 사건이 이곳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서울처럼 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면 모르지만 이곳은 아니다.
천안이 작은 곳이란 뜻은 아니지만 같은 천안 권역인 온양의 시골 마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찌익. 찌익.
하지만 상혁은 귓등으로도 신경 쓰지 않았다. 상혁은 주머니에 손을 무성의하게 꽂은 채 한껏 일없는 백수처럼 슬리퍼를 끌며 가로수에 손을 하나씩 얹고 다녔다.
뽀르르!!
“이제 일흔다섯.”
초아가 기분이 좋다는 듯 뽀르르 거리면서 날아다녔다. 하지만 상혁은 이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이름 : 상혁
직업 : 2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206]
‘겨우 1 올랐네.’
서울의 가로수와 이곳 온양 시내의 가로수의 오염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벌써 온양 시내를 싸돌아다니면서 마흔 그루가 넘는 가로수의 독성과 마나를 함께 빨아들였지만 늘어난 마나의 총량은 1에 불과했다.
“으하아암!!”
내림천이 막히는 바람에 순도 높은 마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길이 사라졌다. 가나안에는 공기 중에 온통 마나였는데, 마나가 적은 곳이 이렇게 불편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치 스마트폰을 쓰다가 공중전화밖에 없는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또 다른 공장을 털어야 하나?”
SG 반도체 공장에서 온몸으로 만끽했던 그 환상적인 마나가 잊히질 않았다. 기왕엔 가장 가까운 거기를 다시 가 봤으면 싶지만 거기 한 번 들어갔다가 서울까지 올라가야 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런 일을 다시 자초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3서클은 만들어야지.”
3서클만 만들었다면 CCTV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3서클만 돼도 인식장애 마법을 스스로에게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그 마법을 거는 건 5서클에 달하는 마나가 필요했지만 자기 자신에게 거는 것이라면 3서클 정도의 마나만 돼도 충분했다.
문제는 3서클에 도달하는 길이 요원하다는 점이었다.
“흑태양파에서 얻어 온 독들을 모조리 섭취해도 1할을 늘리면 잘 늘리는 거겠네.”
가장 좋은 건 순도 높은 오염원을 찾아 그곳의 오염물질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게 없으니 가로수가 빨아먹고 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가로수로는 소모한 마나를 채우는 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다. 이러다간 다른 지역으로 가로수 원정을 가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상혁 덕에 가로수들이 한층 더 푸릇푸릇 해졌으니 올가을이 되면 더 샛노란 은행잎과 두 배는 더 많은 은행들을 떨굴 것이다.
길거리의 똥을 두 배로 더 만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긴 안 와야겠다.”
지독한 은행 냄새가 진동을 할 것을 떠올린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상혁은 80그루를 채운 후 초아에게 선언했다.
“밥 먹고 하자.”
밥은 먹고 해야지. 상혁은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는 배를 쥐고서는 주변의 밥집을 찾았다. 가나안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다 맛있었기에 따로 맛집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꿔바로우 좋지.”
온양 시내에 있는 중국집에 상혁이 들어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곳에 있는 음식점이 대개 그렇듯 벽에는 별의별 프로그램에 다 나왔다는 것이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었다.
꽤 오래되었다는 티가 나는 실내를 둘러본 상혁이 자리에 앉았다.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 그리고 꿔바로우도 대 자로 하나 주세요.”
주문을 받은 중국집 주인이 진짜로 혼자 다 먹을 거냐고 물어봤지만 상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인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주문을 넣었다.
먹을 수 있는지 친절하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못 먹으면 상혁의 잘못이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중국집 삼종 세트가 차례대로 나오자 상혁은 망설이지 않고 위의 음식들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게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먹던지 주인은 물론이거니와 배달을 마치고 들어온 배달원이 한참을 넋 놓고 보다가 주문 독촉 전화에 달려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상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쳐다보는 게 대수냐.’
음식만 들어가면 됐지. 쳐다보는 게 뭔 대수라고. 상혁은 마지막 국물 한 모금, 오이 한 조각까지 말끔하게 음미하면서 먹어치웠다.
“잘 드시네.”
“예, 제가 좀 잘 먹어요.”
“군만두 서비스예요.”
주인이 마치 이것도 먹을 수 있느냐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피식 웃은 상혁은 군만두까지 우적거리면서 먹기 시작하자 주인이 혀를 내둘렀다.
상혁은 마음만 먹으면 이것보다도 더 많이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마나를 익힌 모든 마법사나 기사들이 대식가인 이유가 있었다. 인간의 연약한 몸으로 마나를 담을 그릇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칼로리 소모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이 빠지지 않기 위해 마법사들은 대식가가 됐다.
마법사도 그런데 몸을 쓰는 기사들은 어떨까. 그들은 근 손실이 오지 않기 위해 마법사들의 두 배, 세 배를 먹어치웠다. 가난한 영주들이 기사들을 유지하지 못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식비를 대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어쨌거나 상혁은 물 한 잔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그때 TV에서 어제 있었던 뉴스가 나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어젯밤 00시 36분경 온양 양수리에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나눠 마신…….]
“빠르기도 해라.”
아침부터 마을에 방송국 카메라가 헤집고 다닌다더니 벌써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뉴스를 본 주인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딱해라.”
할머니 넷이 막걸리를 먹고 그중 셋이 사망했고 한 명이 의식 불명이라는 뉴스였다.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치고는 끔찍한 강력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때 상혁의 귀가 움찔했다.
[……했잖아. 김 씨라고 했지? 시나리오를 잘 써 봐. 예를 들면.]
상혁이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그러자 미약한 마나가 상혁에게서 퍼져나갔다.
청력 증폭 마법.
그러자 구석에서 양복 마이를 벗어 둔 채 점심부터 고량주와 탕수육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의 말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비랑 딸이랑 붙어먹었다고요?”
“그렇다는 소리를 들었다라는 거지.”
“그거 괜찮네요? 강 형사님. 그거 증언 한번 해 주시죠?”
“그럴까?”
그러면서 강 형사라 불린 남자가 옆에 놓인 봉투를 집어 들고는 헛기침을 했다. 상혁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구린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아비랑 딸이 붙어먹었는데, 어미가 안 거지. 그래서 어미를 독살한 거야 딸년이. 그거 약간 머리도 이상하거든.”
“쉬잇.”
다른 남자가 쉬잇 소리를 내자 강 형사가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하며 씩 웃었다.
“우리 한 검사님이 서울 가시기 전에 한 건 거하게 하려는 거니까 잘 좀 도와주세요.”
“오케이.”
“만약 진범이 나와도…….”
말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상혁의 귀에는 그 남자가 한 말이 똑똑히 들렸다.
[진범은 묻읍시다.]
짜악.
그때 상혁이 짜악 하고 허공에 손뼉을 쳤다. 그러자 수군대던 구석의 남자 둘이 화들짝 놀라서는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그 둘의 시선을 느끼며 투덜거렸다.
“웬 파리가.”
상혁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는 두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주인이 파리채를 들고 왔다.
“아이고, 파리가 또 나왔네. 허허헛.”
민망하게 웃는 주인을 보면서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상혁이 주인에게 말했다.
“얼마예요?”
웨에에엥!!
일어난 상혁의 뒤로 파리 한 마리가 웽 하고 날았다. 그리고 그 파리는 중국집을 쭉 가로질러 남자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 천장에 찰싹 달라붙었다.
희미한 마나를 품은 채.
* * *
SG전자는 시총 300조가 넘는 단일 규모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치가 가장 높은 회사다. 그렇기 때문에 SG그룹 내에서도 노른자 위라 불리며 모든 SG그룹의 직원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빵빵하게 나오는 성과금에 막대한 복지까지.
최대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SG전자는 그 성과에 걸맞게 보상해 주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그건 비단 직원들에게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SG전자의 사장이 된다는 것은 곧 SG그룹의 차기 회장이라는 소리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SG그룹의 후계자들은 전부 다 SG전자의 사장이 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누구도 SG전자 사장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차기 회장에 가깝게 다가간 사람은 있었다.
백도현.
SG그룹 회장인 백성철의 차남인 백도현은 현재 SG전자 DS 부문의 파운드리 사업부의 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3남 2녀 중 차남이자 셋째인 백도현은 SG그룹 백성철의 자식 중 유일하게 SG전자의 사장은 아니나 그 산하 사업부인 파운드리 사업부의 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DS 부문은 반도체 계열을 뜻한다. SG전자가 일반인에게는 IM부문의 핸드폰으로 더 유명하지만 사실 SG전자의 대부분의 매출은 DS 부문에서 나온다.
그러니 그곳 중 하나인 파운드리 사업부의 사장이란 것은 백도현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후계 구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 최고의 대학을 나와 미국의 최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딴 뒤 SG전자에 입사하여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명실공히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었다.
냉혈, 냉철, 철두철미, 완벽주의.
이 모든 것은 그를 묘사할 때 쓰이는 수식어들이었다. 올해 마흔다섯이 된 백도현은 단 한 번도 실패하거나 손해를 보는 것 없이 승승장구하여 파운드리 사업부의 사장이 됐다.
그런 그에게 이번 온양 SG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일은 그의 이력에 처음으로 오점을 남기게 된 일이었다.
“TSMC의 맥켄지 연구소장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백도현은 그가 무려 1년이 넘게 공을 들인 경쟁사의 주축 연구원이 넘어온다는 말에도 기쁨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돼야 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자신의 비서실장인 박정철에게 말했다.
“외부에서 경사는 있었으나 내부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었죠. 어떻게 됐습니까?”
“국정원을 동원해 뒷조사를 벌였지만, 현장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용의자였던 백상혁이란 자에 대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파견을 나갔던 보안팀 직원이 다른 말을 한다던데요.”
박정철은 티 나지 않게 침을 삼켰다. 비서실장인 그도 백도현은 믿지 않았다. 백도현은 늘 이렇게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세 가지의 루트를 거쳐 정보를 모았다.
“예. 오승택이라고 경비팀장으로 파견을 나간 직원이었는데, 그자가 가장 수상하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둘 중 하나는 착각을 하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군요.”
오승택이거나 국정원이거나.
전자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백도현은 그 사소한 가능성도 반드시 돌아서서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무엇을 도둑맞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건 오승택이란 자의 증언뿐이니, 그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예.”
이미 백도현의 의중을 짐작해 비서에게 상혁의 사진을 딸려 보내 오승택에게 보여 주었다. 백도현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한 검사는요?”
“올라올 준비를 마쳤습니다. 명분도 만들 준비를 끝냈습니다.”
“아직은 쓸 만하게 날카로운 칼입니다. 우리 조카께서 어긋난 길로 가는 걸 삼촌이 되어 계도를 해야지요.”
백도현은 자신이 가장 경쟁 구도에서 선두에 있으면서도 형제들에 대한 견제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박정철은 그런 백도현의 손발로 가장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예. 그리 판을 짜 두겠습니다.”
“형님이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으시게 선물도 준비해 놓으시구요.”
“예, 사장님.”
백도현은 이 세상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눈으로 불빛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서울 야경을 내려다봤다. 그런 그에게 박정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한 대령이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어렵다고 하세요.”
그렇게 대답한 백도현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미확인 신약 개발에 대한 임상 실험이라니. 미국이 우릴 우습게 봐도 단단히 우습게 봤어요.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