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화
014. 2서클(4)
“언니!”
전아영은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언니인 김수진을 불렀다. 김수진이 씩 웃으면서 전아영의 엉덩이를 툭 하고 쳤다.
“고마워, 동생.”
“어제 뭐 잘못 먹었어요? 화장실 자주 가네.”
“끄응, 조금 매운 걸 먹었어.”
방호복을 입고 있으니 화장실 한 번 가기 위해서 그걸 벗는 것도 일이었다. 벗으면 방호복을 새로 받아서 입어야 하는데 그게 다 월급에서 까였다.
반도체 검수를 하기 위해서는 먼지 한 톨도 들어가서는 안 되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SG는 그것조차도 직원들의 월급에서 차감했다.
그래도 당장 회사에서 쫓겨날 수는 없으니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감당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점심시간 전과 퇴근 전까지 화장실을 참는 것은 일상처럼 됐다.
“어후, 지긋지긋해. 그치 동생?”
김수진은 전아영보다 열 살이 더 많았다. 듣자 하니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는 유부녀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고 나긋나긋한 성격이라 남자 직원들의 은근한 대시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일해야지. 돈 벌어야죠.”
전아영은 독한 악취가 마스크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에 인상을 썼다. 악취를 하루 종일 맡으면 퇴근할 때는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건강에 나쁜 게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 사람들은 그런 불만이나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사이렌 소리가 공장 내부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어?”
전아영은 반도체가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선 것을 보고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이 괜히 불안해졌다.
“무, 무슨 일일까요?”
“그, 그러게?”
김수진도 적잖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당황은 전아영과는 다른 결이었지만 전아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시간부로 공장 가동을 중지합니다. 전 직원은 공장 입구로 나와 대기하여 주십시오. 다시 한번 안내합니다…….]
공장 내부가 왕왕거리며 울렸다. 쉬는 시간 종이나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시간 종을 울릴 때만 작동되던 스피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에 다들 웅성거렸다. 그런데 그때 전아영이 바깥을 보고는 흠칫하고 놀랐다.
보안팀이 그곳에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전아영은 공장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는 김수진에게 바짝 붙었다.
아니, 붙으려고 했다.
“언니?”
그런데 옆에 서 있던 김수진이 사라져 있었다. 전아영이 영문도 모른 채 두리번거리는 찰나 다시 한번 더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시작됐다.
“어서 나갑시다!!”
반장의 말에 전아영은 결국 김수진을 찾지 못한 채 공장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안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오승택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다고 전아영은 생각했다.
무언가 공장 내에서 사달이 난 것이다.
전아영은 보안팀이 도끼눈을 시퍼렇게 치켜뜨고 쳐다보는 앞에서 방호복을 벗었다. 그러자 오승택이 위압적인 목소리로 생산직 직원들에게 말했다.
“전원 입구 앞에서 소속팀 별로 집결합니다. 간단한 몸수색이 있을 테니 가진 소지품을 보안팀에게 전부 건넨 후 나가시면 됩니다.”
웅성웅성
몸수색을 한다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딱히 반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조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SG는 무노조 방침을 고수했기 때문에 이 21세기에도 노조가 존재하지 않아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다.
전아영은 들고 온 가방을 제출한 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짝지어 나오는데 그런 전아영의 눈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언니?’
슬쩍 스쳐 지나면서 본 것이라 정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수진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런 김수진의 어깨 너머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어?’
전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 얼굴조차도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나와?’
툭.
비틀.
“아영 씨.”
“죄송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던 사람이 아영의 몸에 툭 부딪히는 바람에 아영이 앞으로 밀렸다. 아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언니는 먼저 나갔겠지. 저기 왜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이 이 안에 있을 리 없잖아.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
전아영은 머리를 휘휘 흔들고는 오승택이 말한 공장 입구에 팀에 합류했다. 생산직 직원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공장 전체가 멈췄다. 멈춘 공장을 가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러면서까지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직원들을 공장에서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전아영은 그곳에서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진 씨는?”
“어? 안 나왔어요?”
반장이 전아영을 쳐다봤다. 김수진과 가장 친한 것이 전아영이란 것을 아는 것이다. 전아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비단 전아영이 속한 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세 명.
천 명이 넘는 직원 중 세 명이 땅으로 꺼진 것인지 하늘로 솟은 것인지 사라졌다. 오승택이 차가운 눈을 한 채 보안팀을 보내 전아영을 비롯한 없어진 사람이 있는 팀에 말했다.
“조용히 따라오십시오. 몇 가지 조사를 받으셔야겠습니다.”
전아영은 살벌한 오승택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 * *
“오호…….”
상혁은 바깥으로 나와 공장으로 향한 순간에 공장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가 아주 삼엄해.”
자신이 탈출했다는 것을 금세 안에서 알아챈 것이다. 상혁은 경비가 대단히 삼엄하다는 것에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SG그룹. 그만큼 켕기는 것이 많다는 소리인데 나랑은 별 관계없는 이야기고.”
상혁은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대마법을 펑펑 날려 대든 8서클 대마법사는 더 이상 아니지만 1서클이라고 해도 과학으로 절대 해낼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마법도 대단하다.
둘 다 경험해 본 상혁은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은 과학대로, 마법은 마법대로 용도가 다를 뿐이다.
고개를 위로 꺾어도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장 앞에서 들어갈 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쉐도우.”
그림자가 일어나 상혁의 존재를 감췄다. 하지만 쉐도우는 어디까지나 발소리와 기척만 지워 주는 정도다.
“어헉!”
지금처럼 정면으로 마주한 상황에서는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란을 위한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을 본 여자가 놀라서는 뒤로 나자빠졌다.
“에이 씨!”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몸놀림이 날랜 것을 보고 상혁은 여자가 훈련을 받은 사람임을 눈치챘다.
김수진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여자, 쭈잉옌이었다.
“너구나?”
쭈잉옌은 중국의 반도체 기업인 띠엔쯔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로 SG의 반도체 생산공정을 베끼고 기술을 훔치기 위해 김수진으로 위장했다.
무리 없이 작전이 착착 진행되던 도중 갑작스레 사단이 일어나 쭈잉옌은 도망가기 위해 무리를 했다.
자신을 SG에서 알아챈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혁을 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들킨 것이 아니라 이상한 헬멧을 뒤집어쓰고 있는 놈 때문에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이란 것을 말이다.
“너 때문에 다 망했어!”
쭈잉옌은 이를 뿌득 갈았다. 무려 6개월을 이 공장에 잠입해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저놈 때문에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이대로라면 한 달 사이에 띠엔쯔에서 의뢰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이다.
“…….”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쭈잉옌이 뭐라고 하든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
그 방법에만 관심이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
쭈잉옌에게 물었다. 그러자 쭈잉옌은 차갑게 조소했다.
“어디서 나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너, 초짜구나? 초짜인데 SG를 털고 내 일을 망쳐? 안 되겠어. 내가 나가려면 너가 여기 잠깐 누워 있어야겠어.”
쭈잉옌이 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비녀를 뽑았다. 그러자 비녀가 날카로운 칼로 변했다. 상혁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걸로 뭐 하게?”
“죽이지는 않을게. 병원에 금방 가면 살 수 있을 거야. 피는 좀 흘리겠지만.”
쭈잉옌이 상혁의 말을 무시하고는 달려들었다. 하지만 쭈잉옌은 당황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달려드는 쭈잉옌의 어깨를 때렸기 때문이다.
“악!”
우당탕!
쭈잉옌은 어깨가 탈골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충격적인 것은 무엇이 그녀를 때렸는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상혁은 그녀가 달려들 때와 똑같은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매직 애로우?”
하지만 목소리는 들었다. 쭈잉옌이 흔들리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고, 상혁은 쭈잉옌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상식과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한, 그러니까 마법이란 것을 처음 마주한 쭈잉옌의 표정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빨랐어도 넌 죽었어.”
상혁이 그렇게 말하며 쭈잉옌에게로 다가갔다. 매직 미사일은 사람의 뼈를 부수고 관통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상대가 마법사나 기사라면 그러지 못하고 그냥 몽둥이로 때리는 수준이지만 일반인이면 능히 죽일 수 있었다.
그러니 만약 쭈잉옌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상혁은 힘 조절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 소리였다.
“내가 네 목숨을 살려 줬으니까.”
서거걱!!
상혁이 손짓을 하자 쭈잉옌의 어깨와 팔, 다리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날카롭게 얇게 베였다. 그러자 쭈잉옌의 얼굴에 공포에 질렸다.
상혁은 능숙하게 쭈잉옌의 공포를 이끌어 낸 뒤 나지막하게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공장 안.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기억이 나?”
쭈잉옌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 * *
상혁은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원래라면 문을 통해 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하겠지만 쭈잉옌은 공장 내부에 그 과정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두었다.
공장 내부를 몰래 드나들면서 스파이 짓을 하는 것이 들키지 않기 위해 만들어 둔 개구멍인 것이다.
“클린.”
그런데 그게 환풍구였기 때문에 상혁은 더러워진 자신의 몸을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쭈잉옌이 흔들리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마법 처음 봐?”
쭈잉옌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당연히 처음 볼 수밖에 없다. 그녀가 중국인이란 것을 알아낸 상혁은 피식 웃었다.
“앞으로 보게 될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네 말을 믿어 주지 않겠지. 그러니까 어디 가서 열심히 떠들어 봐.”
실패하고 돌아온 스파이의 말을 믿어 줄 의뢰인은 없다. 상혁은 붉은 사이렌이 번쩍거리면서 돌아가고 공장이 멈춘 공장 내부를 들여다봤다.
“호오.”
상혁의 두 눈이 커졌다. 그렇게 놀랄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공정이 이뤄지는 곳에서 순도 높은 마나가 느껴졌다.
“여, 여긴 방호복을 입고 들어와야 하는 곳이에요. 그게 아니면 건강에 치명적인데…….”
“그렇단 말이지?”
상혁이 히죽 웃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사람의 몸에 치명적인 독성의 찌꺼기가 내림천으로 나가고 있으니 내림천 물에 그렇게 마나가 풍부했던 것이다.
“여기서 반도체 만들고 남은 찌꺼기들이 모이는 곳이 있지?”
“찌, 찌꺼기요?”
“어.”
상혁은 알아서 뭐 하겠냐는 표정으로 쭈잉옌을 쳐다봤다. 쭈잉옌은 호기심을 삼켰다.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보여서 자신의 목숨줄을 쥔 이 남자에게 괜히 죽고 싶지 않았다.
“아, 알아요.”
“가자고.”
상혁이 씩 웃으며 쭈잉옌의 등을 매직 애로우로 쿡 하고 찔렀다. 그러자 쭈잉옌이 자지러질 것처럼 놀라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