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화
013. 2서클(3)
“기자에, 수상한 놈?”
“예, 일단 가둬 놓기는 했는데…….”
오승택에게 보고하는 경비의 표정에서 불안감이 엿보였다. 경찰도 아닌 이상 누군가를 구금한다는 것은 범법행위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이나 지갑도 없었습니다.”
“그게 더 수상하군.”
경비는 오승택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게 더 수상해서 잡아 온 것도 있었다.
“무슨 말을 따로 하진 않았고?”
“예, 그냥 순순히 끌려왔습니다.”
“한번 직접 봐야겠어.”
오승택은 매일 아침 폐수가 흘러나가는 내림천 부근에서 포착된 거수자를 직접 만나 봐야 결정을 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직접 만나 보면 나올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퍽!!
그런데 그 순간 천장의 형광등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갔다. 동시에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따라와.”
경비는 뒤에서 ‘정전인가?’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순간 오승택의 날카로운 감각이 발동했다.
사선을 여러 번 넘은 오승택은 형광등이 갑자기 나간 순간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그 불길함의 원천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에 가뒀다고?”
“2층 창고입니다.”
“그쪽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한테 연락 돌려. 경계 강화하라고. 심상치 않다.”
“예, 대장님.”
오승택은 마른침을 삼키며 비호처럼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중간에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사무실에 있다가 나온 사무직 직원들이 보였지만 오승택은 그들을 전부 다 안으로 들여보냈다.
SG 반도체 공장이 지어진 1990년대 이후 다섯 번 넘게 어떠한 시도가 있었다.
산업스파이.
SG의 반도체 기술을 노리고 그것을 탈취하기 위해 산업스파이들이 여러 형태로 SG 반도체 공장에 침투했었다.
일하는 직원으로 위장을 한 적도 있었고 은밀히 공장 내부로 스파이들이 잠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들은 수포로 돌아갔다.
반도체 기술에 올인하기로 한 SG그룹에서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여 기술의 유출만은 결사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도 SG그룹의 반도체 기술을 국가 주요 기술로 지정하여 공권력을 동원하여 보호했기 때문에 지금의 SG그룹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도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아예 사전에 그런 시도들을 차단하였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지키는 곳에?’
그리고 SG 반도체 공장 내부에도 각종 첨단 기술들이 적용되어 있었다. 기술들이 발전하는 만큼 SG 반도체 공장의 보안도 철저해진 것이다.
거기에 오승택 자신이 있었다.
오승택은 자신이 있는 간 크게도 들어온 산업스파이를 후회해 주겠다고 다짐하면서 2층 창고에 도착했다.
끼익
“헉!”
오승택이 닫혀 있던 문을 열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 모습에 직접 상혁을 창고에 두고 문을 잠갔던 경비가 경악했다.
“문을 땄군. 바깥을 지키는 경비는?”
“어, 없었습니다.”
경비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승택이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봤지만 이내 눈에 힘을 풀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괜히 범인을 잡지도 않았는데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기본조차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푸쉬시식.
그때 오승택의 코가 벌름거렸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미약하게 났기 때문이다. 냄새가 나는 곳을 쳐다본 오승택의 눈이 가늘어졌다.
CCTV가 어두컴컴한 시야 속에서도 시커멓게 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승택은 형광등이 터진 것과 연관이 있음을 직감했다.
“아무것도 없었다고?”
“예, 분명히 아무것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프로군.”
오승택은 중얼거렸다. 분명 지갑도, 핸드폰도 소지하지 않은 빈손이라고 했다. 그런데 건물의 전기를 나가게 만들고 CCTV를 터뜨렸다.
그렇다는 건 다른 곳에 숨겨 들어왔다는 뜻이다.
몸속.
그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은 상대가 전문가라는 뜻이었다. 오승택은 테이저건을 꺼내 손에 들고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경비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저쪽으로.]
CCTV는 터졌지만 역설적으로 CCTV가 터진 방향이 거수자, 상혁이 향한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오승택은 맹수를 사냥하는 베테랑 사냥꾼이 된 것처럼 기척을 죽인 채 상혁의 흔적을 따라 추격하기 시작했다.
* * *
상혁은 그 시각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어두컴컴했지만 낮이었기 때문에 햇빛이 들어와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 기척이 많이 느껴지는 사무실 안도 침착했다. 단순 정전으로 안 것이다.
“CCTV만 터뜨리려고 했는데.”
상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계산대로라면 깔끔하게 CCTV만 터졌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회로 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건물의 형광등까지 나가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목적은 달성한 상혁은 손가락을 튕겼다.
“워터.”
뽀르륵!!
상혁의 머리 위로 물의 구체가 헬멧처럼 뒤덮였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대처를 한 것이다.
물을 얇은 판으로 만들어 머리에 뒤집어쓴 것이기 때문에 숨 쉬는 데는 지장 없었다. 밖에서 보기에도 그냥 헬멧처럼 보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람의 인지를 흩트려 놓기에는 충분했다. 물은 빛을 굴절시키기 때문에 밖에서 상혁의 얼굴을 봐도 이상하게 일그러진 모양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라이트.”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상혁은 약한 빛을 만들어 내서는 물로 만든 헬멧 속에 쏙하고 넣었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상혁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CCTV 서버부터 터뜨려야지.’
하지만 들어올 때 CCTV에 찍힌 것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문 근처에 설치한 CCTV로 자신의 모습이 보일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상혁이다.
그러니 저장된 영상을 터뜨려야 한다.
타다닥!
그때 누군가 저쪽 코너에서 휙하고 튀어나왔다. 상혁은 발소리를 듣는 순간 슬쩍 빠졌기 때문에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상혁은 자신을 잡아 온 경비와 똑같은 복장을 한 남자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이 빠르네.’
이 현상이 인위적임을 누군가 눈치채고 경비를 움직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그게 되레 기회가 됐다.
‘따라가면 되겠다.’
상혁은 뛰어가는 남자를 은밀하게 따라가기 시작했다. 기사가 아닌 마법사인 상혁에게도 남들의 눈을 띠지 않는 마법이 있어 수월하게 따라갔다.
‘쉐도우.’
꾸물꾸물.
그림자가 꾸물거리면서 상혁의 기척을 지웠다. 기초적인 1서클 마법에 불과한 쉐도우는 이런 식으로 발소리를 없애거나 기척을 어느 정도 지워 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암살용이나 미행용 마법으로 쓰였는데 그게 지금 순간에 아주 유용했다.
‘이럴 때는 기사가 더 편하겠어.’
상혁은 마법사였다. 몸을 쓰는 기사보다 머리만 쓰는 마법사였기에 여러모로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기사였다면 훨씬 더 편하게 추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이 그리 넓지 않아 다행이었다. 상혁은 경비가 지하로 내려가자 그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귀에 손을 올렸다.
‘사운드.’
청력을 증폭시켜 주는 마법을 사용하자 아래층에서 여러 명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강의 수는 파악할 수 있었다.
‘넷.’
아래층에 경비들이 많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곳이 경비들의 아지트라는 소리다. 상혁은 마나를 양손에 끌어 올리며 내려갔다.
‘쇼크.’
더블 캐스팅으로 양손에 쇼크를 시전한 상혁은 문 옆에 숨죽이고 섰다. 그곳에 ‘상황실’이라 쓰인 것을 본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부른 것은 덤이었다. 대부분 CCTV 서버가 저런 곳에 함께 보관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절시킬 정도만.’
1서클 마법은 마나를 가진 사람을 30분 정도 기절시킬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거의 다룰 줄 모르는 일반인은 쇼크사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뿜어냈다.
1서클이라고 무시하지만 마나를 익히지 못한 민간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재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출력을 조절했다.
벌컥.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상혁이 손을 뻗었다.
지지직!!
풀썩!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나오던 경비 하나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을 넘어 상혁이 남은 한 손을 내밀면서 빈손에 쇼크를 시전했다.
마법 한 번에 한 명.
지지직!!
갑자기 튀어나온 상혁에게 경비 네 명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상혁은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삼단봉을 보면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으이구, 무서라.”
세 명까지는 무난하게 쓰러뜨렸으나 마지막 한 명이 삼단봉을 빼 들 시간을 준 것이 문제였다. 상혁은 쓰러진 경비에게 뒤끝을 보여 쇼크를 한 번 더 먹여 주었다.
“아무리 급작스러워도 그렇지 사람 머리에 휘두르면 쓰나.”
상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풀썩 웃었다.
“이게 마법사냐?”
용병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뛰어든 것이었다. 사실 쇼크가 아닌 다른 공격 마법은 사람을 죽일 위험이 있어 자제한 것이다.
살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가나안 대륙에서 살아왔으니 이제 질릴 때도 되었고.
파지지직!!
상혁은 쓰러진 경비들의 몸을 넘어 기계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쇼크를 내뿜자 CCTV를 관리하는 기계 전체가 까맣게 타들어 가더니 시커먼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공장 견학이나 해 볼까?’
상혁은 CCTV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고 난 뒤 발걸음도 가볍게 1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바로 옆 출구로 빠져나간 뒤 저 멀리 보이는 공장을 향해 총총걸음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건물 뒤쪽으로 난 길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타다닥!!
상혁이 1층 출구로 나가고 1분 뒤.
오승택이 경비와 함께 1층 지하로 향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까뒤집고 쓰러진 네 명의 경비들과 부서진 상황실의 장비를 발견한 것이다.
“전기 충격인가?”
오승택은 눈을 까뒤집은 경비들을 깨우면서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경비들이 핸드폰과 워키토키 같은 전자기기들이 전부 다 부서졌다는 것에 오승택은 인상을 썼다.
“단순한 전기 충격이 아니군.”
심지어 쓰러진 경비 네 명은 누가 그런 것인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거수자의 얼굴을 본 것은 오승택에게 보고한 경비뿐인 셈이다.
“공장으로 향했나.”
오승택은 결국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가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의 권한을 벗어났다. 경비팀이 무력화된 이상 지원이 필요했다.
“오승택입니다. SG 반도체 공장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지원해 주십시오.”
오승택이 결심을 한 듯 전화에 대고 말했다.
“공장을 멈추고 직원들을 내보내겠습니다. 예. 그래야 놈이 직원들 틈으로 섞여드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올스탑.
손해가 어마어마하겠지만 최소한 스파이에게 털리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직원들을 내보내 스파이의 동선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했다.
“날개가 달리지 않은 다음에야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보안팀장에게 허가를 받은 오승택이 두 번이 실패는 없다는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쳐다보며 긴장하고 있는 경비를 향해 말했다.
“모든 장비와 설비를 가동 중지하고 전원 공장에서 이탈한다. 경비팀은 이 사실을 공장 내부에 알리고 직원들이 공장에서 전원 이탈할 수 있도록 움직인다. 빨리.”
SG 반도체 공장이 긴장감으로 뒤덮였다. 잠시 뒤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공장 전체가 떠들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