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핏빛 군주 (1)
-마나 고갈! 드래곤 하트 내부의 마나가 5% 이하입니다! 현기증을 느낍니다!
-이후로도 마나를 계속 소모할 경우, 영구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기간테스의 힘을 해제하며 숨을 고른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혈왕자 발데마르를 내려다본다.
‘진짜 죽을 뻔했군······.’
-lv64 진혈왕자 발데마르. (가사상태.)
마력을 다 소모했는지 붉은빛이 꺼진 눈동자. 심각한 내상을 입었는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인다.
그제야 나는 기간테스의 힘과 프로즌 모드를 완전히 해제한다.
아무리 드래곤 하트를 가진 나라도, 반쯤 무너지는 몸으로 최대 전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무리였으니까.
“밤낮으로 달려온 보람이 있구나.”
전투성녀 루크레치아가 사자 갈기 같은 붉은 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긴다.
나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만약 그녀가 발데마르와의 마지막 순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대단히 위험했을 테니까.
물론 없었더라도 중력 마법으로 혈마거인의 주먹을 어느 정도 비껴냈겠지만.
방금 발데마르의 최후의 일격은 스쳐도 치명상이었을지 모른다.
“쿨컥······. 기어이, 이렇게 되는군······.”
반면 발데마르는 목울대까지 올라온 핏물을 억지로 삼키지만 결국 한 움큼 장기 부스러기를 토해낸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모습.
“곧, 일족의 왕께서 돌아오실 거다······.”
일족의 왕.
아마 제 아버지인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뜻하는 말이겠지.
“나의 죽음으로 피의 영웅이 각성한다면 그 또한 동족을 위한 길이겠지.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네게 복수해주실 것이다.”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마치 그간 자신의 죽음이 가치 있었다는 듯.
나는 발데마르가 왜 웃는지 알고 있다.
‘하기야 발데마르에게 아버지는 일생 존경해온 군주였나?’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
그는 과거 뱀파이어를 괄시했던 마계의 대악마들을 학살하며 지켜줬으니까. 그때 마계 대학살을 벌였기에 뱀파이어가 지금의 지위를 얻은 것이었다.
비록 그 이후 혈마왕이 크게 쇠약해졌지만······.
진혈 왕자 발데마르로선 그런 아버지가 퍽 존경스러웠던 모양이다.
“근데 그건 네 생각이고.”
【워터 소드 lv4.】
푸확!
나는 한 마디로 일축하며 숨통을 끊는다.
결국, 이쪽에게 뱀파이어는 학살자.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끈 진혈왕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으니까.
'더구나 지금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진혈왕자가 추억하는 영웅이 아니니까.
차라리 모르고 죽는 게 호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과 파괴의 교단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혈족을 하나 제거하셨습니다!
-블라디미르의 마력이 다소 감소합니다! 강림할 때 최대 마력이 5.1% 감소합니다.
그러자 나타나는 막대한 양의 시스템 창.
과연 진혈왕자 발데마르는 기존 적들과 차원이 다른지 무려 5%나 되는 최대 마력을 감소시킨다.
또한,
-워터 소드lv4가 lv5가 됩니다!
-기간테스의 힘 lv3가 lv4가 됩니다! 이제 다리를 꺼낼 수 있습니다!
.
.
-2단 승급! 6써클 5티어에 도달합니다! 7써클의 벽에 다다릅니다!
충격적인 문구가 날 기다린다.
2단 승급.
나조차 6써클에 도달한 후, 2단 승급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숨을 헉 들이마신다.
‘내가 7써클을 목전에 둘 날이 오다니.’
나는 다른 써클들과는 달리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오르비스 대학살 때, 시전한 물의 궁극의 대마법 ‘헤일 스톰’. 그것이 8써클이었지.’
나는 대지의 기억으로 보았던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의 헤일 스톰을 떠올린다.
밤하늘의 보름달을 추락시키며 일으킨 궁극의 대마법.
만약 7써클에 도달한다면,
프로즌 모드를 활용해서 물 속성 써클을 1단계 올린다면 어떻게든 ‘시전은’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시전한 헤일 스톰이 제 위력이 나올지는 의문이지만······.’
물론 이는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조차 보름달 때, 드래곤 블러드까지 시전하고 나서야 간신히 시전한 힘.
아무리 같은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지만.
가능은 하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이므로.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거다.
“······흠흠, 그보다 탐험가 네일. 네가 정말로 마신 문두스라고······?”
“?”
한참 시스템창을 보고 있으니, 궁왕 엘레노아가 내 눈치를 보며 다가온다.
언제나 콧대 높고 고고하던 그녀가 뭔가 켕기는 게 있는지 쭈뼛쭈뼛 어렵사리 입을 연다.
“그······. 내가 고대용의 사원에서 했던 말은, 흠흠, 홧김에 그냥 해본 말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
“?”
자꾸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해온다.
나는 뭔 소리를 하나 잠깐 생각했다가 깨달았다.
‘아 맞아. 궁왕 엘레노아는 용족이 엘프족을 버렸다며 맨날 원망 가득하게 탄식했었지?’
그런데 지금 내가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로 알려진 마신 문두스라고 하니, 깜짝 놀란 모양이다.
실제로 나는 대대로 고대용 족을 모셨다는 남서부 엘프족을 구해주었으니까.
정말로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혹여 내가 그날의 기억을 기억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
물론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글쎄, 이제 내 정체를 알았다면 호칭부터 바꿔야 하지 않겠나?”
살짝 장난기가 올라서 말한다.
이에 화들짝 놀라는 궁왕 엘레노아.
한동안 인간이라며 은근히 깔봤던 내게 갑자기 존댓말하려니 말이 안 나오는지 한참 입술을 뻐끔거린다.
“흠흠, 우리 엘프 일족을 도와줘서 고맙다. ······고요. 이제 됐지. ······요?”
“······.”
엘레노아는 한평생 존댓말을 해본 적이 없는지 말투가 대단히 뻣뻣하다.
뒤에 있던 깐깐한 엘프 장로들이 한소리 한다.
“에, 엘레노아 전하! 상대는 드래곤입니다! 우리 엘프들을 보살피는 수호신께 그 무슨 무례입니까?”
“호칭부터, 존댓말까지 똑바로 안 합니까?.”
“시끄럽다! 이미 충분히 했다! ······고요.”
“······.”
울컥, 화를 내다가 아차 싶었는지 다시 내 눈치를 보는 엘레노아. 스스로 답답한지 제대로 말도 못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진짜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도 아닌데 이쯤해야 겠군.’
나는 그런 궁왕 엘레노아가 더 불편해서 장난을 그만뒀다.
“됐다. 어차피 나는 사회적 통념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편하게 불러라.”
“거봐라! 괜찮으시다지 않느냐? 하여간 수구적인 장로들이란.”
“······.”
그러자 금새 기운을 되찾는 엘레노아.
정말로 남한테 존댓말 쓰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래놓고 혼자 안절부절 못했지만.
'하기야 원래 저런 녀석이었지.'
그녀는 사왕이라는 이명과 그에 걸맞는 실력이 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야겠다, 싶었다.
***
대륙 남서부 마경(魔境).
풀 한 포기조차 살아남지 못한 황야에 검은 벽돌로 쌓아 올린 첨탑 같은 성이 존재한다.
밤의 고성.
뱀파이어 일족의 지배자인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가 거주하는 성.
진혈의 뱀파이어들이 살아가는 흡혈귀의 수도다.
붉은 머리의 중년 사내는 그곳에서 목욕하고 있다.
“······인간 처녀의 피도 효과 없군.”
중년 사내는 피의 호수에 몸을 담근 채 말했다.
천장에는 수백 명의 인간 여성의 시체가 매달려있다. 그곳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모여서 호수를 만든 것이다.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그때 피의 호수로 날아들어온 뱀파이어가 한 명 있다.
그 또한 머리에 큰 수소의 뿔을 가진 진혈의 뱀파이어.
그는 피의 호수 앞에서 곧장 엎드려 울었다.
“꺼흐흑, 폐하! 진혈왕자 발데마르 폰 체페슈 전하께서 운명하셨나이다.”
“······.”
그의 말에 멈칫, 침묵하는 붉은 머리의 중년 사내.
혈마왕 블라디미르라고 불린 중년 사내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발데마르가 무엇을 하다 죽었느냐.”
“······예? 아, 예! ‘하이 엘프’를 발견하여 폐하께 친히 진상하시려다가 그만 변을 당하셨다고 하옵니다!”
의외의 질문에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다시 울음을 토하는 진혈의 뱀파이어.
“그렇군.”
이에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첨벙거리며 피의 호수를 나온다. 흑마법으로 검은 정장을 입는다.
“쓸모있는 죽음이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다.
하이엘프를 구하다가 죽었다.
진혈왕자 발데마르를 죽일 만한 강자는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불로장생의 비약에 필요한 마지막 재료. ‘하이 엘프’와 ‘드래곤’이 한자리에 모였겠구나.”
붉은 눈을 번뜩인다.
마치 마계의 붉은 달처럼 극도로 타오르는 붉은 눈. 진혈왕자 발데마르와도 격이 다른 마력이다.
자신의 원대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 상상되기에, 제 마력을 주체할 수 없는 거다.
“폐, 폐하. 평생을 폐하만을 따라온 장남이 돌아가셨나이다. 이것이 슬프지 않으십니까?”
그 모습에 진혈의 뱀파이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한다.
비록 혈마왕이 칩거 이후, 옹졸해진 모습을 보였어도, 쇠약함에 따른 신경질일 뿐, 본래 피의 영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그런 뱀파이어들을 조소한다.
“물론 내 친족이 죽은 것은 마음 아프다. 그러나 그보다는 ‘대악마의 학살일’에 사용한 피가 더욱 아쉽구나.”
“······!”
즉, 블라디미르가 뱀파이어에게 진정한 왕이라고 불린 사건.
뱀파이어를 괄시하던 마계의 대악마들을 숙청한 날.
그때의 날을 후회하는 것이다.
“······쯧,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필요 없거늘. 그깟 혈기를 못 참아서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니.”
블라디미르는 안면근육을 심히 일그러뜨리며 관자놀이를 짓누른다.
진혈의 뱀파이어는 알고 있었다. 혈마왕이 어떨 때 저런 짓을 벌이는지.
이미 죽은 대악마의 비웃음이 골 속에서 울릴 때 괴로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죽이면, 굳이 심연왕 프로세피나에게 목맬 필요 없지.”
“······!”
고오오, 촤아아악.
혈마왕은 피의 호수에 있던 피를 모조리 흡수한다.
와장창! 쨍그랑!
또한, 찬장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병을 깨뜨린다. 그간 각지의 뱀파이어들이 존경을 표하며 바쳤던 희귀한 피들. 그것들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이다.
“컥······? 저, 저는 왜······? 끄아악!”
물론 진혈의 뱀파이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싸늘하게 읊조린다.
“내겐 더 이상 가식을 떨 여유가 없다. 당장 숨 쉴 수 있는 날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온 혈마왕 블라디미르에겐 부성애와 동족애가 남아있지 않으므로.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와의 결전을 상정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일어나라. 남의 피에서 태어난 존재여. 모든 생명체는 남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쿠고고고고!
그의 명령에 뿜어지는 핏빛 안개.
밤의 고성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황량한 모래밭과 푸른 하늘까지 붉게 드리운다.
-취이잇!
-쿠에에엑!
.
.
그리고 그 속에서 잉태하는 피조물들.
그 모습은 인간, 오크, 엘프, 드워프, 고블린, 미노타우로스 등 다양했으나, 모두 붉은색 핏덩이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불사왕 데힐라칸의 군대가 뼈로만 이루어진 존재라면, 이들은 피로 이루어진 군대.
3만 명의 붉은 군대가 강림하는 것이다.
“의혈(醫血)의 뱀파이어 ‘나이틴’.”
“부르셨습니까. 폐하.”
그의 부름에 새하얀 간호복을 입은 진혈의 뱀파이어 한 명이 나타난다.
의혈의 뱀파이어 나이틴.
그녀는 의학에 특출나서 제 아버지인 블라디미르의 간병을 맡은 전문의였으므로.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진혈왕자보다 더욱 신뢰하는 혈족 중 하나였다.
“네가 붉은 군대를 지휘하라. 피의 군단으로 에니스 백작령을 짓뭉개라.”
“알겠습니다.”
나이틴은 머리 숙인다.
그녀는 피를 강화하여 피조물을 각성시킬 수 있는 권능이 있으므로. 붉은 군대를 지휘할 적임자인 것이다.
“그림자의 뱀파이어 ‘하사신’.”
“······.”
스르륵.
그 말에 검은 머리의 사내 하나가 혈마왕의 그림자에 스스륵 나타난다.
대답도 없이 부복만 하는 하사신.
“남몰래 하이엘프를 데려와라. 불로장생의 비약을 만들 마지막 준비를 해라.”
“······.”
스르륵.
이번에도 대답 대신 고개만 꾸벅 숙인 후 사라진다.
질문 하나 없이 복종한다.
이들에게 올바름이란 오직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므로. 아무런 사색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는 내가 직접 처치해야 겠지.”
뚝,
표정을 굳히는 블라디미르.
그는 자신을 떠나가는 붉은 군대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현재 그는 제 목숨이 가장 중요한 자.
혈족이 몇 희생되든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하므로.
붉은 군대가 인간들을 유린하고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의 힘을 뺏을 때 강림할 계획이다.
쨍.
따라서 태양이 떠있을 땐, 움직이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선다.
나설 채비를 늦춘다.
***
나는 프레야 성기사단에게 엘프 피난민의 대피를 맡겼다.
고대용의 사원은 물론,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엘프들도 소집한다.
자존심 강한 엘프들이 얼마나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곧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붉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올 테니까.’
인간든, 엘프든 살아남고 싶다면, 대륙 남서부 최고의 요새에 모여서 합심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네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요.”
궁왕 엘레노아는 에니스 백작령으로 떠나기 직전에 물었다.
힐끗,
나는 즉답하는 대신, 대륙 남서부 끝에 있는 ‘마경(魔境)’을 바라본다.
마경.
이미 일대 전체가 마계화가 되어버린 지역.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숨어지내는 ‘밤의 고성’이 있는 곳이다.
‘지금쯤 혈마왕 블라디미르도 움직이겠지.’
나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예감한다.
진혈왕자 발데마르가 하이 엘프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왔으며, 그가 당할 만한 초강자는 마신 문두스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이는 불로장생의 비약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두 조각이 한 자리에 있으므로.
진짜 결전이 닥쳐오는 것이다.
‘물론 상대할 방법은 알고 있다.’
나는 먼저 품속에서 순례자의 십자가를 꺼낸다.
진혈의 뱀파이어를 무려 셋이나 동시에 소멸시킨 고대 성물.
그 보물을 곁에 있는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에게 내민다.
“이걸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에게 전해줘라. 사용법을 알고 있을 거다.”
“······!”
우선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버틸 수 있는 방비를 한다.
성역 선포.
이는 뱀파이어와 그 휘하 추종자들을 막아내는 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혈의 뱀파이어를 능히 막을 수있는 힘을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내가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에게 부탁한 건 이걸로 끝이 아니지만······.’
굳이 루크레치아에게 일일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녀에게 할 일만 맡긴다.
“그렇다면 너는 에니스 백작령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냐?”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가 매섭게 묻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다음 용의 유산이 담겨있는 소형화된 용의 뿔을 꺼낸다.
‘용의 뿔. 드래곤 브레스를 얻어야 한다.’
용의 숨결.
이는 질서의 수호자로서, 악과 무질서를 소멸시키는 힘이다.
자연의 4대 속성을 골고루 모은 드래곤은 용의 숨결로 사악한 힘만 깨끗이 소멸시킬 수 있으니까.
부덕하게 피조물의 피를 모은 블라디미르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궁극의 권능.
‘······더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방에는 환골탈태의 비책도 숨겨져 있었지.’
-파괴 본능이 61%에 도달했습니다! 포스 마법의 힘이 증폭됩니다! 가끔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드리웁니다!
-블루번과 드래곤 블러드를 동시에 사용한 페널티가 앞으로 23일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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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남아있는 몸속 페널티들을 살핀다.
혈마왕 블라디미르.
그자는 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탐욕왕 엘드리치와 협력해서 온갖 것을 주문한 자이므로.
그의 방에는 영약은 물론, 다양한 영생 법이 가득하다.
물론 뱀파이어인 그에게 맡는 방법은 거의 없었지만.
‘그게 나에게도 적용되는 일은 아니니까.’
따라서 마나 과부하로 손끝이 떨리는 걸 참는다.
환골탈태.
지금 과부하가 걸린 내 몸을 치유하는 건 물론,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을 극복하고 육체적으로 몇 단계나 강해질 수 있는 기연이므로.
결코, 놓칠 수 없다.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와 궁왕 엘레노아가 깜짝 놀랄 말을 읊조린다.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 그를 나 혼자서 없앨 수 있는 힘을 얻고 돌아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