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고대용의 사원 (4)
나는 붉은 눈의 스태프를 들고 고대 석상 드래곤을 올려다본다.
목 아프게 고개를 들어 거대한 그림자를 확인한다.
-크롸아아아-!!!
-lv??? 고대 석상 드래곤. (악룡화.)
석상 드래곤 또한 날 향해 포효한다.
샌드 드레이크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성장한 용용이보다 큰 덩치.
아룡족이 아닌, 겉모습만큼은 진정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드래곤은 고작 겉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단순히 포악하고 파괴적으로 보일 뿐, 그동안 내가 보았던 성체 드래곤들에 비하면 위압감이 부족했다.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상상적인 공포가 아니라, 단지 힘이 부족해서 질 수 있다는 원초적인 공포만 느껴진다.
【프로즌 모드 lv1.】
쩌저저적.
따라서 물러서지 않는다. 궁왕 엘레노아와 엘프 피난민들이 모두 대피하자마자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원래 저 용의 뿔만 뽑아 가도 되는 일이지만.’
나는 새하얀 돌로 조각된 석상 드래곤에서 유일하게 붉은빛을 내는 뿔을 바라본다.
용의 뿔.
저것이 내가 찾던 용의 유산 중 하나다. 드래곤 브레스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
이 고대 사원이 수백 년이나 잠들어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작동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저 뿔 때문이었으니까.
절대 반지의 ‘기간테스의 힘’으로 저 석상 일부를 부수고, 용의 뿔을 떼어내면 가장 손쉽게 던전 속 장치들을 무력화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석상 드래곤조차 상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올 악의 교단 군단장은 결코 이길 수 없다.’
【아쿠아 lv5.】
촤아아악-!!!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지금 이 고대 석상 드래곤은 연습 상대다.
아무리 나라도 용족의 권능만큼은 익숙지 않았으므로. 파괴 본능이 오를까 봐 평소 마음껏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곳은 실전 연습하기 대단히 좋은 곳이므로.
【역린 lv2.】
-최대 화력이 1,000% 증폭합니다! 앞으로 한 달간 최대 마나가 50% 감소합니다!
-단, 이 페널티는 가상 공간 안에서만 적용됩니다!
쿠고고고!
따라서 이곳에서 전력으로 사용해본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온몸에 기운이 차오른다.
피를 토할 듯 고통스러웠지만, 견뎌낸다. 앞으로 남은 군단장들을 상대하려면 익숙해져야 할 괴로움이니까.
고대 사원 복도에 있던 함정 속 물을 모조리 긁어모은다.
내 스태프에 거대한 물이 압축된다. 마치 지구라는 강력한 중력에 붙잡힌 바다처럼. 구체를 유지하며 회오리친다.
【블리자드 스톰 lv1.】
콰아아아아아-!!!
그리고 이를 6써클 마법 ‘블리자드’로 얼리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 중 하나가 완성된다.
블리자드 스톰.
물 속성과 얼음 속성, 그리고 용의 권능까지 융합한 마법.
최종병기 라퓨타의 메가 데스를 정면에서 막아낸 최후의 일격이었다.
지금의 나조차 ‘드래곤 블러드’를 발동하여 시전해야 하는 대마법이다.
-크롸아아아-!!!
지이이잉.
이에 고대 석상 드래곤 또한 호응한다. 고대용의 사원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린 드래곤. 하나하나가 섬뜩한 송곳니 앞에 새빨간 2중 마법진이 펼쳐진다.
‘······용의 숨결.’
나는 지금 고대 석상 드래곤이 시전하는 권능이 무엇인지 알았다.
용의 숨결.
이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도 최강의 일격 중 하나로 손꼽힌 권능이므로.
“재밌겠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다. 붉은 눈의 스태프를 내리친다. 그와 동시에 용의 숨결에 비할 만한 대한파가 내리친다. 먼지투성이던 고대 사원이 눈보라로 뒤덮이며 화이트 아웃 현상이 발생한다.
고대 석상 드래곤 또한, 악룡으로서 모은 불길한 붉은 마법진을 발포한다. 힘과 무질서, 파괴의 본능이 담긴 숨결을 토해낸다.
쿠과과과과과광-!!!!
고대용의 사원이 일격에 날아간다.
버섯구름이 뿜어진다.
차디찬 한파와 뜨거운 용암 열기가 번갈아 가며 소용돌이친다.
고막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굉음이 연거푸 터져 나온다.
그러나 나와 고대 석상 드래곤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서로에게 재격돌한다.
***
궁왕 엘레노아는 엘프 피난민을 이끌고 물러난다. 엘프 최정예 레인저들을 데리고 마지막 방을 밖에서 포위한다.
“비전투인원은 모두 대피해라. 최대한 용의 사원에서 떨어져야 한다!”
그녀는 일사불란하게 대피를 명한다.
현재 엘레노아는 대륙 남서부 엘프 부족 연합 전체를 책임지는 수장. 피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므로.
‘네일이라는 인간이 살아있을 때 합류해야 한다. 그 녀석 마법 실력이 수준급이었어.’
궁왕 엘레노아는 마음이 다급했다.
방금 보았던 고대 석상 드래곤.
이는 남서부 엘프들에게 유명한 전설이다. 뱀파이어들에게 뒤쫓겨서 고대 사원으로 달아났던 자들이 발견했다는 고대 병기.
그 힘은 무려 진혈의 뱀파이어와 버금갈 정도이며, 어린 드래곤조차 대련에서 패배하는 일이 잦았다는 기록이 있는 병기다.
그 존재에게서 말 그대로 재앙 같은 힘을 느꼈으므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외부 실력자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 것이다.
“피난민 모두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들어가지.”
주민들을 안전하게 되돌려 보내고, 전투병단만 이끌고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다.
콰앙!
“네일! 아직 살아 있느냐!”
거대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궁왕 엘레노아를 필두로 최정예 레인저들이 순식간에 안으로 구르며 화살을 겨눈다. 정령을 소환해서 보강한다.
“?”
그런데 내부는 이미 소강상태였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건 뼈가 오싹해질 정도의 한기였다.
대륙 남서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한파. 내부 전체가 싸늘하게 얼어있다. 숨을 마실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냉각된다.
“이제 왔냐.”
“!!”
그 얼음 사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바로 전에 네일이라는 인간 사내였다.
지금까지 던전 가이드를 하며 길안내와 함정을 파훼하던 자.
······그리고 현재 산산 조각난 고대 석상 드래곤 위에서 앉아있는 자였다.
‘말도 안 되는. 설마. 인간 홀로 석상 드래곤을 사냥했다고······?’
궁왕 엘레노아는 상식에 어긋난 상황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석상 드래곤.
이는 어린 드래곤조차 종종 패배하는 수련 병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말은, 저 인간이, 어린 드래곤보다 강한 존재라고······?’
그녀가 드래곤이 싫다 싫다 해도 결국 어릴 적부터 용족의 위대함을 익히 듣고 자란 엘프였으므로.
······마신 문두스가 뱀파이어들로부터 엘프를 구원해주지 않아 배신감을 느꼈을 뿐, 드래곤의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던 궁왕 엘레노아였으므로.
네일이란 인간이 살아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여겼거늘, 그런 드래곤의 모조품을 사냥하다니.
정체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
‘후, 말 그대로 원 없이 싸워봤군.’
나는 발밑에 놓인 석상 드래곤 파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고대 석상 드래곤을 상대하면서 말 그대로 내가 가진 힘과 권능을 마음껏 퍼부었으니까.
지긋지긋한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또한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체력에 구애받지 않고 싸워봤다.
비록 위험천만했어도, 속이 후련할 수 밖에 없다.
“······인간. 정말로 석상 드래곤을 ‘이 정도 피해’로 파괴한 것이냐?”
“?”
그러자 궁왕 엘레노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잔뜩 긴장한 채 다가온다.
빙하기처럼 얼어붙은 고대 사원을 둘러보면서. 마치 가상공간 속이었다는 걸 모르는 듯한 눈치.
‘굳이 경계심을 살 필요가 없겠군.’
나는 적당히 착각에 편승한다.
“수백 년이나 방치돼서 그런지 부식된 상태였다. 운이 좋았군.”
“······.”
거짓말이다.
고대 석상 드래곤은 용의 뿔의 힘으로 전혀 녹슬지 않았으므로.
궁왕 엘레노아는 처음엔 믿지 않는 듯 했으나, 먼지가 자욱한 공간을 보고 한숨을 쉰다.
“하기야. 궁왕 엘레노아 전하와 우리 엘프 일족도 전멸할 각오를 하고 찾아왔거늘.”
“인간 주제에 홀로 편히 상대할 수 있을 리는 없겠군.”
“······.”
엘프 최정예 레인저 부대는 그 말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는다. 김샜다는 표정.
아무래도 이들이 만나본 인간은 노예상인과 인신매매범들 뿐이었으므로.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강한 모습이었다.
“······.”
다만 궁왕 엘레노아는 부정하진 않으면서도 경계어린 눈빛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완전히 믿지는 않는 모양.
“그래도 별일 없어서 다행이었군.”
한참 후, 엘레노아는 내게 그렇게 말한다.
“고맙다. 네 덕분에 편하게 이곳까지 오게 됐다. 오늘 일 잊지 않지.”
그러면서 내게 나무 패 하나를 내민다. 궁왕 엘레노아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패.
나중에 남서부 엘프를 만난다면 자신의 이름을 대라고 한 것이다.
“너 또한, 이것이 매우 특별한 보상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려 나 궁왕 엘레노아가 증명하는 보증서이니. 이것을 받은 인간은 죽은 내 옛 연인뿐이었다.”
“······.”
궁왕 엘레노아는 좀 더 감격하라는 눈치로 내게 압박한다. 아무래도 내 반응이 심심한 모양. 다만 나에겐 이종족 친구가 없다고 들릴 뿐이다.
‘과연 쓸모가 있을까 싶긴 한데.’
나름 호의인 모양이니 일단 받는다.
“창고는 저쪽이다.”
나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엘프들을 창고로 보낸다.
던전 가이드를 한 것은 나는 용의 뿔을 얻기 위함이고,
이들은 고대 용의 사원에 있는 병기들을 찾기 위함이므로.
초기 목표대로 각자 원하는 바를 찾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창고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였을까?’
나는 궁왕 엘레노아가 창고에 수북이 쌓인 고대 병기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해맑은 미소를 짓는 걸 보고 생각한다.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저 창고를 털어봤기에 얼마나 많은 병기가 있는지 안다.
무려 1천정에 달하는 고대 석궁. 거기에 투구와 갑옷, 고대 장검까지 있었다. 그것도 전부 마법진으로 세공된 명품들.
엘프들이 들어오기도 힘들어하는 공간에 왜 사람이 쓸법한 무기가 가득 쌓여 있었을까?
【용의 시대의 끝.】
“?”
그렇게 엘프들이 뱀파이어를 상대할 병기를 옮기는 동안, 한참 수색한 결과,
무언가 불길한 글자를 발견한다.
-경고! 봉인된 기록을 발견하셨습니다.
-당신은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읽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이건?’
심지어 일반적인 글자가 아니라, 룬 글자를 발견한다. 만약 용의 유산을 얻지 못했다면 결코 해석하지 못했을 내용.
나는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입꼬리에 미소를 띤다.
원작 <별들의 전쟁2>의 최고 고인물로서, 내가 모르던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희열이다.
“당연히 열람한다.”
-봉인된 기록을 열람합니다!
고오오오!
그러자 내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푸른 하늘과 처음 보는 나무들이 가득한 아르카나 대륙 풍경이 보인다.
가상 세계.
고대용의 기록답게 신묘한 마법으로, 마치 내가 그 순간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나의 혈족이자, 위대한 종족이여. 들으라.】
【용의 시대의 끝.】
【이는 악의 교단 제1군단장 심연왕(深淵王) ‘프로세피나 폰 이슈타르’라는 자가 강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
쩌어어억!
자질구레한 연혁이 정체불명의 남자 목소리로 들려온 후,
평화롭던 하늘에 거대한 균열이 생긴다.
차원을 찢고 등장하는 한 흑발의 여인.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온몸을 검은 로브로 감춘 자였는데,
머리에는 마왕임을 상징하는 커다란 양의 뿔이 솟아 있었다.
쿠고고고!
그녀의 강림만으로 푸른 하늘이 요동친다. 마치 세계 대종말이 찾아오듯이.
프레야의 태양이 달아나고, 시커먼 어둠이 전 대륙을 지배한다. 마계의 붉은 달이 떠오른다.
저 자는 나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마계의 대군주 심연왕(深淵王) 프로세피나 폰 이슈타르! 저 녀석이 왜 강림한 거지?’
나조차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경악한다.
악의 교단 제1군단장 심연왕(深淵王) 프로세피나 폰 이슈타르.
그녀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기존 엔딩의 최종보스였으니.
마계의 7군주이자 군단장을 지배하는 마계 서열 1위의 존재다.
그녀가 동영상 시작부터 등장하는 것이다.
-‘용의 시대’는 끝이다. 날 버린 프레야를 죽이고 천지 만물을 멸하겠노라.
“!!”
충격적인 내용이 들려온다.
마계의 대군주 선언.
선과 질서의 여신 프레야가 다스리는 아르카나 대륙과 전면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에 당시 드래곤 로드였던 나 파프니르는 다른 용들을 소집했다.】
-크롸아아아-!!
그리고 그 즉시, 평화롭던 숲에서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날아올랐다.
등 뒤로 십여 마리의 드래곤을 함께 데려오면서.
‘······미친.’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에 욕짓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용의 시대에 있던 저 많은 용에게 소집령을 내렸다니.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정보에 나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심연왕 프로세피나 또한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계의 대군주로서, 7개의 거악과 대악마를 이끌고 왔다.】
고오오오!
나레이션과 동시에 프로세피나 등 뒤에서도 수많은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악마가 강림했다.
그들 또한 익히 아는 얼굴이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군단장.
제7군단장 불사왕 데힐라칸과 제6군단장 설인왕 이미르.
그들이 각각 언데드와 설인 군단을 이끌고 돌격한다. 그들 외에도 수많은 대악마가 보인다.
【7개의 거악은 무시무시했다. 불사왕 데힐라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물었고, 설인왕 이미르는 대륙을 태초의 빙하기로 되돌렸으며, 탐욕왕 엘드리치는 산모의 모성애마저 돈으로 환원해버렸다.】
“······.”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아르카나 대륙의 바다를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타락왕 루시펠은 순리를 거스르고 이종족을 사랑하게 했으며, 예언왕 아델리온은 아르카나 대륙의 피조물들에게 파멸을 예언했다. 마지막으로 심연왕 프로세피나는 프레야 여신에게 도전했다.】
그들은 각각 드래곤들과 격돌한다.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전투.
용족이 힘에서 밀리는 건 아니었으나, 머릿수가 너무 불리했다.
7개의 거악과 대악마들은 휘하 병력을 가진 데에 비해, 드래곤들에겐 지원군이 거의 없었으니까.
대륙 연합군이 결성됐지만, 마계의 대악마와 그 휘하 군단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거다.
그 때문에 막 강림하여 힘이 온전치 않은 거악들과 가까스로 비등했다.
그리고 대등한 힘의 충돌은 서로에게 종말을 안겨주었다.
【결국, 우리 용족은 거악들을 봉인시키는 전투에서 거의 전멸했다.】
“······!”
충격적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드래곤의 죽음.
마계의 기록도 아니라, 용족 스스로 남기는 기록인 만큼 거짓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던 고룡 중 하나가 예언했다. 훗날 악의 씨앗이 부활할 거라고. 7개의 거악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
나는 그 예언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걸 직감했다.
다름 아닌, 원작 <별들의 전쟁2>의 결말이 바로 그러했으므로.
‘······만약 마정석을 빼앗기고 본래의 힘을 되찾는다면 저 꼴이 나겠지.’
침을 꿀꺽 삼킨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니까.
【이를 대비해서 당시 살아있는 어린 드래곤들을 오랜 시간, 봉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용의 유산'을 만들어 우리들의 힘을 모두 전승하여 그들을 막아내자는 계획이었다.】
“!!”
그리고 그 문구 다음으로, 막 알에서 깨어난 화이트 드래곤들이 보인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직감했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그녀와 동생들인가.’
마신 문두스라고도 불리는 존재.
아르카나 대륙의 마법 발전을 50년 이상 앞당겼다는 전설적인 대마법사.
그녀가 현세에 강림한 이유가 밝혀진다. 다른 드래곤들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했던 이유.
이는 원작을 꿰차고 있던 나조차 모르던 내용이었다.
【또한, 나는 마지막 생명력으로, 이 사원을 건설했다. 혹여 어린 용족들이 막중한 의무감에 짓눌려 타락하지 않도록. 악룡이 되지 않게 한다.】
【훗날 거악을 막을 용아병 군대를 일으킬 때를 위해 보물도 마련하면서. 이것은 가련한 운명의 길을 걷는 너희를 위한 마지막 안배가 될 지어니.】
그랬군.
어쩐지 고대용의 사원이 너무 철저하다 싶었다.
질서의 수호자를 위해 4대 속성 함정을 마련해주고, 악룡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고대 석상 드래곤이 있었으며, 수많은 무기까지 있는 것은 분명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대사는 다양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인간의 시대에 버려진 후손들이여.】
【우리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구나.】
【끝까지 무너지지 말거라. 우리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마나로 환원되더라도 너희를 감싸안아줄 것이다.】
“······.”
그것으로 용의 눈으로 읽히는 기록은 끝이었다.
미래에서 깨어날 화이트 드래곤들을 위한 목소리.
가장 힘겨운 순간을 이들만이 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안쓰럽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다음으로 나오는 내용은 이 사원을 건설하는데 도와준 이의 이름과 죽어나간 용족의 비사였다.
‘이곳은 오직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위한 공간이었나.’
이제야 납득이 간다.
후대 관리자인 엘프들조차 들어오지도, 읽지 못하게 처리한 것이 다소 이해가 안 됐으니까.
‘하지만 원작에선 그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조차 패배한다······. 그자만을 믿을 순 없어.’
하지만 나는 안도하지 못했다.
원작 <별들의 전쟁2>. 이는 플레이어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면 파국적인 결말을 맞게 되므로.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혼자서 마계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사왕(四王)과 ‘검신(劍神) 카를 폰 프란츠’도 분전했지만 결국 소수 정예는 한계가 있었지.’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니케아 제국.
아르카나 대륙의 기틀이 되는 제국이 내부부터 썩어서,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으니까.
전 대륙에 흩어진 별 같은 영웅들이 각개 격파당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수많은 영웅과 이종족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의 최고 고인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안다.
우선 대륙 남서부 또한 구해야 한다.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 궁왕 엘레노아. 그리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
이들이 혈마왕 블라디미르와 뱀파이어들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선.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대륙을 피바다로 만들고, 심연왕 프로세피나에게 내가 가진 마정석을 바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다행히 이를 위한 핵심 키는 내가 쥐고 있다.’
마지막 용의 뿔.
혈마왕 블라디미르와 맞설 힘이 담긴 이 보물은 마지막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대륙 남서부 마경(魔境).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거주하는 고성 꼭대기에 숨겨져 있었지.’
마경(魔境).
너무 오랜 기간 사악한 힘에 잠식되어 마치 마계처럼 생태계가 바뀐 곳.
과거 동부의 변 때, 다크 로드가 군대를 숨겨뒀던 곳과 유사한 지형이다.
‘결국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군.’
나는 얄궂은 운명을 직감한다.
결전의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