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고대용의 사원 (1)
‘힘든 싸움이었군······.’
전투 소강 후, 나는 숨을 몰아쉰다.
붉은 눈의 스태프를 쉬게 한다. 전투가 끝났는지 한참 지났음에도 진정될 기미가 없다.
허세 부린 것과 달리, 순혈의 뱀파이어는 상당히 벅찬 상대였으므로.
둘을 죽이는 데 기진맥진한 것이다.
'······마지막에 주민들을 인질로 잡지만 않았어도 훨씬 쉬웠을 텐데.'
하늘이 갠다. 그리웠던 태양이 돌아오고 난장판이 된 지상이 비친다.
죽은 수십 명의 주민을 보며 다소 착잡한 마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건 내 한계를 벗어난 일이겠지.’
-블루번과 드래곤 블러드를 동시에 사용한 페널티로 24일간 최대 마나가 50% 감소합니다!
-마나 고갈! 무리하게 마나를 끌어냈습니다!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이 발동합니다!
사실 이것조차 기적적인 일이었다.
마계에서 대악마 바로 다음 서열이라는 순혈의 뱀파이어를, 그것도 동시에 두 마리나 처단하는데 고작 수십 명이 죽은 게 전부니까.
만약 고대 성물 순례자의 십자가를 얻지 못했다면,
지금껏 성장해서 6써클에 도달하고 스킬 레벨을 높이지 못했다면 정말 대참사가 벌어졌을 지 모른다.
“으으······?”
“서, 성녀님? 제 몸이?”
“여보! 괜찮아요? 정말 깨어난 거예요?”
“······!”
잠시 기다리니, 뱀파이어들에게 조종 당하던 사람들이 깨어난다.
순혈의 뱀파이어를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계속 멍하던 사람들이 정신 차린다.
그제야 살아남은 사람들이 환호한다.
“사, 살아남았다! 그 악독하던 흡혈귀로부터 살아남은 거라고!”
“마신 문두스! 대륙 절반을 구해낸 대마법사가 우리 에니스 백작령도 살려냈다! 대륙의 희망이 돌아왔다!”
“우와아아! 프레야 교단이여! 영원하리라!”
폭우 이후 비치는 아름다운 무지개에 나와 프레야 여신을 찬미한다.
선과 질서를 추구하는 프레야 교단. 질서 그 자체인 자연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운 현상이었으므로.
죽을 뻔한 가족과 이웃을 껴안고 기뻐하는 것이다.
“정말로 감사드려요! 네카르 경. 정말로 붙잡힌 주민들을 모두 구할 줄 몰랐는데. 이건 루크레치아 예하께서 나서셨을 때도 불가능했던 일이에요!”
성녀 에클레시아도 휠체어를 끌고 내게 다가온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환하게 웃는다. 처음 보는 듯한 아무 걱정 없는 미소.
그녀 또한 오랜 기간 에니스 백작령에 머물면서 주민들과 이웃으로 지냈으므로.
점점 절망해 가던 상황에서 기적적인 전과를 올렸으므로.
신성력이 고갈돼 파리한 안색에 혈기가 돌아오는 것이다.
-경이로운 경험! 대륙 남서부를 지배하던 순혈의 뱀파이어를 처치하셨습니다!
-스킬 ‘헤비 레인’이 lv3이 됩니다!
.
.
-6써클에 도달한 마나 고리를 한계까지 몰아붙였습니다!
-6써클 2티어에 도달합니다!
-마나 소모가 기존보다 5% 감소합니다!
사실 이는 나에게도 기쁜 일이기도 했다.
순혈의 뱀파이어.
막강한 마족을 처치하여 막대한 써클 경험치 보상을 얻었으니까.
-악과 파괴의 교단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주요 간부 중 둘을 제거하셨습니다!
-블라디미르의 최대 마력이 아주 조금 감소합니다! 강림할 때 최대 마력이 0.7% 감소합니다!
더구나 이는 악과 파괴의 교단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에게도 지장이 갔다.
순혈의 뱀파이어에게는 혈마왕의 생명력인 피가 일부 들어있으므로.
그의 혈액을 이 세상에서 소멸시킨 만큼 그만큼 최대 마력이 감소하는 것이었다.
‘미친······. 설마 했지만, 무려 순혈의 뱀파이어를 죽였는데 고작 0.7%만 감소한 거냐?’
다만 나는 무작정 웃을 수 없었다.
그 감소 추이를 느끼고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힘을 지레짐작한다.
하기야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순혈의 뱀파이어가 두 명만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악의 교단 군단장 중에서도 특히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크게 틀린 수치는 아니었다.
‘더구나 순혈의 뱀파이어가 죽었다면 분명 나란 걸 의식했을 거다······. 그의 혈족들이 집결하겠지.’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당신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현재 위치를 주시합니다!
나는 블라디미르의 성격을 알고 있다.
그는 수명이 다해가는 만큼 조급함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불로장생의 비약을 제작하기 위해 남은 마지막 난관. ‘하이엘프’와 ‘드래곤’의 피를 찾을 것이다.
‘혈마왕으로선 재빨리 하이엘프와 드래곤의 피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나니까.’
혈마왕은 다른 군단장들과 달리 시간을 끈다고 좋을 게 없다.
따라서 흩어져 있던 뱀파이어들을 모아서 선제공격하겠지.
그리고 이를 막지 못한다면······.
‘대륙 남서부는 물론, 니케아 제국 전체가 피바다로 물들 것이다······.’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끔찍했던 초보 때 기억을 떠올린다.
기껏 모인 대륙 연합군들을 뱀파이어 군단이 미친 듯이 흡혈하고, 그만큼 혈마법을 마음껏 난사하던 기억.
유혈참극의 잔혹함은 아직도 내 영혼에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기뻐하는 성녀에게만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지금 안심할 때가 아니다.”
“네?”
“프레야 교단 본부에 알려라. 불사왕 데힐라칸급 거악이 또다시 강림할 것이라고.”
“!!”
나는 순혈의 뱀파이어 이상의 존재가 강림할 것이라고 덧붙여 경고한다.
혈마왕 블라디미르 또한 뱀파이어.
신성력에 그나마 취약한 마족이니까. 소수의 정예 병력이라도 강제 호출한다.
‘하지만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라고 해도 홀로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
대륙 7대 성인이 아무리 강대하고, 악의 세력에 천적이라고 한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 상성 따위 무용한 법이다.
따라서 승산을 높이기 위해선 비장의 카드가 더 필요하다.
“‘로얄 가드’를 불러라. 황실의 도움을 받는다.”
“!!”
로얄가드.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자, 황제의 힘을 상징하는 친위대다.
황제가 수년간 칩거했음에도 대륙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 하지만 로얄 가드는 일전 서부 연합군 때도 합류하지 않았지 않나요? 저희가 부른다고 출정할까요?”
“······.”
에클레시아의 염려는 당연했다. 황제의 오랜 칩거 후, 소환된 로얄 가드.
그들은 세실리아의 명령대로 집결하는 듯했으나, 이내 출정을 미뤄왔으니. 충성심에 금이 갔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것이다.
‘아니, 나는 알고 있다. 로얄가드의 수장 검왕(劍王) ‘알렉스 드 라니스터’가 얼마나 황제의 광신도인지.'
제국이 멸망하든 말든 황제 세실리아만을 지키는 기사가 그녀를 배신했을 리 없다.
오히려 나로 인해 원작보다 빨리 낌새를 눈치채고 은밀히 수사하며 황제 곁을 지키는 중이겠지.
따라서
“로얄가드 수장 알렉스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라. 누가 ‘배신자’인지 가르쳐주겠노라고. 왜 마신 문두스가 황제를 떠나갔는지 알려주겠노라고 말이다.”
“!!”
로얄가드가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진다.
배신자.
황제 세실리아를 배신하고,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떠나보낸 자.
그자가 황궁 속에 아직도 활보하고 있었으니까.
마음 꺾인 황제를 깨우기 위한 밑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엇? 문두스 공께서 직접 연락 안 하시는 거예요. 도대체 어딜 가시게요?”
“······.”
나는 그렇게 에클레시아에게 주문하고, 숨 고른 용용이를 등에 탑승한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뱀파이어들은 불로장생의 비약을 제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겠지.’
품에 쥔 ‘용의 뿔’을 남몰래 꽉 쥔다.
드래곤 소울.
다음 용의 유산으로서, 궁극의 파괴 권능 중 하나인 ‘드래곤 브레스’가 담겨있는 마스터급 보물.
나는 이것의 나머지 두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진혈의 뱀파이어’. 그들을 처치할 힘을 얻고 돌아오겠다.”
펄럭, 쐐애애액!
결전의 날을 대비한다.
아군이 에니스 백작령으로 집결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는다.
용용이를 탑승한 채, 초고속으로 급상승하여 날아가는 것이다.
***
한편, 대륙 남서부, 엘프의 이름 없는 숲.
아직 이종족에게 발견되지 않아서 평화롭던 이 숲은 유례없을 만큼 소란스러웠다.
엘프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부족민 전체가 집합한다. 모두 정령을 소환하고 화살촉을 겨누며 극도로 경계한다.
휘오오오!
“멈춰라. 더 이상 만행을 부린다면 내가 죽더라도 너흴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
엘프 족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자신 키만 한 장궁을 잡아당긴다.
숙련된 궁수답게 한없이 당겨지는 실.
바람의 상급 정령 진이 전력을 다해 보좌해주었기에 돌풍이 회오리친다. 그의 등 뒤에는 수많은 엘프가 함께 화살을 겨눈다.
그러나 그 화살촉에 겨눠진 ‘붉은 머리의 뱀파이어’는 평정을 잃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뱀파이어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촤아아악.
장례식이 떠오르는 검은 정장을 입은 붉은 머리 뱀파이어가 한 손을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빨려 들어오는 피. 이미 죽어있던 수많은 엘프의 피를 끌어모은다.
마치 거인의 주먹처럼 붉은 피가 덩어리진다.
쿠과과과광-!!!!
정령의 화살들과 피의 주먹이 격돌한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동시에 사방으로 튀는 돌풍과 핏방울. 그러나 대등한 기세도 1초뿐.
피보라가 순식간에 힘의 균형을 깨뜨린다. 엘프들이 일제히 사격했던 화살을 한 뱀파이어가 압도한다.
“커헉······!”
“끄아아악!”
결국, 피의 주먹은 붉은 기둥이 돼어 숲 전체를 관통한다. 그리고 폭발하는 피. 2차 폭발에 주위 나무도, 엘프도, 정령도 모두 붉은 물감으로 덧칠돼버린다.
숲이 소멸하며 메아리도 사라진다. 황폐해진 숲에는 피 한 방울 없는 엘프 가죽과 뼈만이 덩그러니 놓인다. 울창했던 숲이 다른 황야처럼 황량해진다.
“······이곳에도 없는 건가.”
붉은 머리 뱀파이어는 남은 모든 피를 흡수한다. 엘프의 평범한 피만이 있는 것을 느끼고 낙담한다.
“과연 ‘진혈 왕자’십니다. 혈마왕 블라디미르 폐하와 동일한 피의 권능이시라니. 역시 정통 후계자다우십니다.”
“젊을 적, 혈마왕 폐하를 뵙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황후마마의 장남 아니십니까?”
“······.”
전투가 소강 되자, 주위 그림자에서 붉은 배지를 찬 뱀파이어들이 스르륵 튀어나온다.
진혈의 뱀파이어들.
순혈 뱀파이어 중에서도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친인척들만을 가리키는 자.
차기 후계자인 진혈왕자의 가족들이었다.
“제가 부탁드린 일은 조사하셨습니까?”
진혈왕자는 가족들의 덕담에도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아, 예. 현재 에니스 백작령에 있던 순혈 뱀파이어 둘이 당했다고 합니다.”
“하여간 순혈이란. 역시 진혈이 아닌 자들은 큰일을 맡길 수 없다니까요.”
진혈의 뱀파이어들은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태어날 때 누구의 혈통이냐에 따라 격이 크게 달라지는 뱀파이어는 혈통이 계급에 큰 역할을 차지하므로.
“······.”
다만 진혈왕자는 잠시 침묵한다. 모두 분위기를 읽고 움찔해서야 입을 연다.
“순혈 또한 같은 뱀파이어 혈족입니다. 폐하의 명에 따르다 돌아가신 분들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붉은 눈을 번뜩이며 진혈들과 두 눈을 마주한다.
한 일족을 책임지는 지도자로서, 어깨에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는 태도. 가벼운 한 마디에 아부에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그의 엄중한 경고에 모두 눈을 내리깐다. 무거운 침묵이 지배한다.
“······그보다 순혈의 뱀파이어께서 둘씩이나 당하셨다니. 정녕 마정석은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요.”
진혈왕자는 늠름하게 중얼거린다.
마정석.
마계의 대군주이자 심연왕 프로세피나가 드래곤 하트와 교환해준다고 하였던 보물.
그러나 그것이 드래곤에게 있다면 일이 어려워진다. 진혈왕자는 고민이 깊어진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상대가 마신 문두스라면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뱀파이어 동족을 비상소집하고,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요.”
진혈왕자는 신중하게 움직인다. 화이트 드래곤과 정면 충돌하면 일족에 크나큰 피해가 생기므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제4군단장인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호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보다 ‘하이 엘프’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맞아.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찾아뵈었던 것이었습니다!”
진혈 왕자는 ‘마정석’ 다음으로 ‘하이엘프’를 찾는다.
현재 불로장생의 비약을 제작하는데까지 남은 재료는 오직 ‘드래곤’과 ‘하이엘프’의 피이므로.
“수백 년간 보관됐던 하이엘프의 혈청을 찾았습니다! 혈마법으로 하이엘프가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
하이엘프의 위치를 찾았다.
그 말에 진혈왕자가 붉은 눈이 번뜩인다. 불로장생의 비약. 이를 개발할 마지막 두 난관 중 하나를 찾았으니까.
사실 아직 젊은 그가 수명에 간절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혈마왕이 물러나야 그가 즉위할 수 있으니, 그에겐 달가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혈마왕의 간절한 소망. 또한, 진혈왕자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장남이므로.
“그쪽으로 안내해주십시오.”
펄-럭.
박쥐 날개를 펼친다.
화이트 드래곤과 달리 하이 엘프는 상대적으로 별로 위험하지 않으므로.
진혈의 뱀파이어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직접 날아간다.
***
【바람의 길 lv5.】
쐐애애액.
나는 용용이를 타고 대륙 최남단으로 초고속 비행한다.
에니스 백작령 이남, 뱀파이어들의 영역으로.
다음 용의 유산을 얻기 위한 파편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용의 뿔. 이건 대륙 최남단 ‘고대용의 사원’에 숨겨져 있었지.’
고대용의 사원.
말 그대로 고대 시대, 엘프들이 드래곤을 신으로 모시던 자들이 남긴 신전이다.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고, 악한 이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은 가히 신과 다른 바가 없으니까.
원래 <별들의 전쟁2>에서 용의 뿔은 전사들이 최종 무기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던 재료이므로, 그 위치를 외우고 있다.
‘뱀파이어들이 집합하기 전에 용의 뿔을 수집한다. 최대한 빨리.’
나는 타임어택이란 걸 알고 있다.
용의 숨결.
만물의 영장이자 질서의 수호자인 드래곤 족의 궁극의 권능.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종결급 컨텐츠인 드래곤 레이드에 참가하며 이미 분석한 바 있다.
레드 드래곤의 경우, 흑마법을 익힌 이들을 타오르는 불길로 소멸시켰으나, 신성 마법 방어까지 뚫지는 못했으므로.
고대용들이 굳이 이를 대륙 남서부에 안배해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드래곤 브레스는 자연 4대 속성의 힘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정화하는 권능이다. 혈마법으로 흡수한 피 또한 소멸시킬 거다.’
자연의 질서에 위배되는 자들에게 더욱 극심한 타격을 입히는 권능.
말 그대로 혈마왕 블라디미르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힘이다. 광범위하게 흡혈하는 그를 처단하는 힘.
결전을 치르기 전에, 그 권능을 얻어야 한다.
‘저기군.’
쐐애액.
나는 용용이를 몰아 고대용의 사원을 발견한다.
남들이 찾지 못하게 대륙 최남단 바위산 속에 몰래 숨겨진 유적.
그곳으로 내려간다.
“······‘엘런’! 고대 골렘에게서 떨어져. 가까이에서 상대하지 마!”
“모두 멀리서 요격해! 정령 화살로 처치해라!”
“?”
그런데 한참 내려가는데 그 유적 내부에서 소란스러운 걸 느꼈다.
‘혹시 먼저 온 도굴꾼인가?’
나 또한 어떤 의미에선 도굴꾼이니 도덕적으로 책임을 물릴 생각은 없지만, 내 보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계한다.
그런데 무언가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lv25 엘프 정예 사수 엘런.
-lv24 엘프 정예 사수 엘림.
.
.
먼저 상대는 엘프들이었다. 숲과 자연을 수호하는 종족. 고대시대에 이 사원을 관리했던 자들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다수 물욕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다.
쐐액! 쿠과광!
더구나 도굴꾼이라기엔 너무 정직하게 사원 가디언들과 맞붙는다. 보통 도굴꾼들은 땅을 파거나 몰래 잠입해서 싸움을 최대한 피하는 데 말이다.
‘뱀파이어들을 피해서 온 건가?’
-lv3 어린 엘프 알로나.
-lv10 청소년 엘프 알프.
나는 남몰래 숨어서 그들을 관찰한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전투 엘프 말고도 민간인들도 많았다.
마치 대피를 하는 듯 짐을 하나 가득 가져왔다.
하기야 대륙 남서부 중에서도 최남단은 이미 뱀파이어의 영역이니까.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딱 두 명만 없다면.
“모두 물러나라. 내가 처리하겠다.”
쐐애애액, 쿠과과광-!!!!
-lv57 궁왕(弓王) 엘레노아.
먼저 화살 한 발로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일으키며 고대 골렘 파수꾼을 격파하는 엘프 여성.
궁왕 엘레노아.
그녀는 무려 사왕(四王) 중 한 명으로서 폭왕 라이칸 슬로프를 넘어서는 레벨을 가지고 있었다.
-lv4 어린 하이 엘프 엘로힘.
“!!”
그리고 그런 궁왕 곁에 꼭 붙어있는 녹색 눈동자의 꼬마.
이는 분명 엘프 중에서도 특히 희귀하다는 하이 엘프의 상징이었으니까.
‘······하이 엘프가 여기 있다고?’
아무리 나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들이 불로장생의 비약을 완성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두 개의 피.
하이 엘프와 드래곤.
그중 하나가 이곳에 대피해 있었으니까.
나까지 포함한다면 불로장생의 비약을 제작할 마지막 재료들이 한자리에 모인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