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천공대결전 (2)
나는 최종병기 라퓨타 속을 질주한다.
온몸을 차디찬 얼음의 결정으로 감싼 채.
드래곤 윙즈와 바람의 길로 초고속 비행했다.
‘다행히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군.’
나는 힐끗 창밖을 살펴 모조리 얼려버린 블리자드의 효과를 체감한다.
일전에 얻은 빙결계 마법서를 떠올린다.
-<블리자드> : 얼음 계열 마법을 활용한 대재앙 마법. 주위 일대를 눈보라로 뒤덮고 폭풍을 일으켜 쓸어버린다. (최소 써클 6써클. 필요 마나 100,000)
블리자드.
물과 땅 속성이 합쳐진 듀얼 속성 대재앙 마법.
5써클의 아쿠아 스톰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써클을 요구하는 대마법이다.
그만큼 파괴력도 높고, 효과도 뛰어난 마법.
본래 나는 5써클 5티어였기에 6써클이 아니라서 익힐 수 없었던 마법이다.
-스킬 ‘프로즌 모드 lv1’의 특전이 발동합니다.
-얼음 속성에 한하여 써클 효과가 1티어 높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프로즌 모드 덕분에 빙결 속성에 한하여, 현재 내 써클은 6써클로 분류됐다.
그 덕분에 스킬 ‘블리자드 lv1’을 습득한 건 물론, 최종요새 라퓨타를 통째로 얼려버리는 쾌거에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지.’
-스킬 '프로즌 모드 lv1'의 지속시간이 25분 49초 남았습니다.
나는 눈매를 차갑게 뜬다. 온몸에 닿는 추위를 참으며 시퍼런 마나를 뿜어낸다.
우선 프로즌 모드라고 무적인 건 아니다.
우선 지속시간이 존재했다.
최대 30분.
블루 번의 지속시간과 같은 유지시간이다.
“드디어 왔느냐. 마신 문두스.”
-lv65 탐욕왕 엘드리치 (골리앗.).
더구나 최종병기 속 거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그곳의 제5군단장이자 부유왕이라고도 불리는 거악 엘드리치.
대륙 서부의 어두운 면을 지배하던 마계의 군주가 거대한 결전 병기에 탑승한 채 흑기사 군단을 지휘하고 있으니.
“날 상대로 화이트 드래곤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탁, 화르륵.
엘드리치가 지옥의 용광로 앞에서 손가락을 탁 튕긴다.
이미 부서졌던 지옥 용광로가 다시 불타오른다. 대악마 아바돈이 봉인된 임시 봉인구가 발동한다.
어느새, 어느 정도 복구한 모습. 공중요새 라퓨타에 추가 마력을 공급한다.
쩌저저적-!!!
쿠과과과광-!!!
그와 동시에 최종병기 라퓨타가 움직인다.
공중요새를 모조리 얼려버렸던 블리자드를 깨뜨린다.
산산이 조각나는 얼음 파편들.
창밖에서 최종병기 라퓨타의 표면만큼 지상으로 얼음 조각이 쏟아진다. 마치 천국과 지상을 잇는 계단처럼 한참이나 쏟아진다.
나는 그럼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달려든다.
‘그럼에도 라퓨타를 완전히 다시 복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다.’
【바람의 길 lv4.】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지상에 있는 서부 연합군.
라퓨타가 진정 깨어나는 순간, 그들과 함께 아르카나 대륙의 파멸이 확정되므로.
나는 공중에서 오른손에 쥔 붉은 눈의 스태프를 발동한다.
촤아아악!
창밖에서 떨어지고 있는 얼음 파편을 모조리 내 왼손 앞으로 끌어당긴다.
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마저 모아서 한 점으로 응축한다.
아쿠아 붐.
좁은 범위 파괴력만큼은 아쿠아 스톰을 넘어서는 5써클 재앙류 마법으로, 불사왕 데힐라칸을 처치했었던 파괴적인 마법 중 하나.
그 마법을 프로즌 모드 lv1을 발동한 상태로 시전하는 것이다.
꽈아아앙-!!!!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발포한다.
마치 포탄처럼 날아가는 물의 응축. 지상을 쓸어버렸던 초대형 청동 대포보다 묵직한 반동이다.
주위를 초토화시킨다. 마치 물탱크가 터진 것처럼 막대한 질량의 물이 폭발한다.
물론 탐욕왕 엘드리치는 절대 마법 방어 결계를 발동해 막아낸다.
쩌저적!
“······!”
그러나 '깨끗이' 막아내진 못했다.
스킬 ‘프로즌 모드 lv1’의 효과로 물 속성 마법에는 빙결 속성이 추가되므로.
응축된 물이 반투명한 벽에 막혀 흘러내렸으나, 응축이 풀려 골리앗 발밑으로 전해져서 순식간에 딱딱히 얼어버린다.
아다만티움 본체에 피해를 준다.
엘드리치조차 이는 예상 못 했는지 순간 붉은 눈을 꿈틀거렸다.
-블루 번으로 정신이 지고한 경지까지 깨어난 상태입니다! 아쿠아 붐의 원리를 완전히 터득합니다!
-스킬 ‘아쿠아 붐 lv1’을 정식 습득합니다!
더구나 반가운 소식까지 들린다.
아쿠아 붐의 정식 습득. 이는 더욱 효율적으로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니.
【아쿠아 붐 lv1.】
촤아악, 꽈앙-!!! 꽈아앙-!!!!
저공 비행하며 아쿠아 붐을 난사한다.
물과 빙결 속성에 한해서는 6써클의 파괴력을 낼 수 있으므로.
탐욕왕 엘드리치가 탑승한 골리앗이 완전히 얼음 석상이 될 때까지 포격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히이익!! 대피해라! 엘드리치 폐하께 떨어져! 크악!”
“다, 다크 실드! 헉? 다크 실드가 종잇장처럼······. 컥.”
엘드리치 주위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떼죽음 당한다.
얼음 바다가 된다. 1층 전체를 단숨에 홍수처럼 휩쓸고, 만년설처럼 딱딱하게 얼어버린다.
새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강력해졌는지 체감한다.
번쩍.
“······!”
그러나 얼음 바다에서 강렬한 빛이 모인다.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당장 드래곤 윙즈를 펼쳐서 간신히 피한다.
지이이잉, 쏴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작렬하는 광선포.
엘드리치가 탑승한 골리앗이 정면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골리앗을 봉인했던 얼음도, 통로에 있던 라퓨타 철근도, 내 등 뒤에 있던 외벽도.
일직선의 광선이 검은 하늘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공중요새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
“······고작 이 정도인가? 악룡에 가까워졌다더니. 스타일이 많이 변했구나. 마신 문두스.”
-lv65 탐욕왕 엘드리치. (골리앗.)
자욱한 연기 속에서 엘드리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드래곤 아이로 확인 결과, 아다만티움에 생채기만 겨우 났을 뿐, 큰 피해는 없는 모습.
‘위험하다······.’
치이익······.
반면 나는 광선포의 흔적을 살피자 모골이 송연해진다. 저것에 스치는 순간, 나는 즉사이므로.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인지, 프로즌 모드에 닿은 피부가 더욱 추워진다.
‘엘드리치를 물리치기 위해선, 저 절대 마법 방어 결계가 ‘과열’돼야 하는데······.’
나는 골리앗에 장착된 절대 마법 방어 결계를 살핀다.
저건 마나 먹는 괴물일뿐더러, 결국 '마도공학 장치'로 움직이는 것이니까.
남용하면 과열되어 스스로 장치가 꺼지는 페널티가 있다.
따라서 쉴 틈 없이 몰아붙이다가 장치가 꺼졌을 때, 일거에 처치할 생각이었다.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대악마 아바돈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신 문두스! 엘드리치 폐하의 최우선 적이다!”
“블랙 매스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자! 저자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무려 1억 페니다! 죽여라!”
-lv43 흑기사 사빈.
-lv42 흑마법사 클락.
그런데 문제는 탐욕왕 엘드리치 하나만 상대해도 벅차거늘.
그 휘하 부하들까지 날 괴롭힌다는 점이다.
심지어 언데드 나이트는 제 몸을 던지며 자폭한다.
【아쿠아 스톰 lv2.】
콰아아아아-!!!
물론 그 즉시 물의 바다를 일으켜서 휩쓸려 보냈다.
흑기사 전체와 맞먹는 거대한 물의 파도.
더구나 나는 워터 실드를 두르고, 프로즌 모드로 생긴 얼음 갑옷으로 막아서 생채기도 생기지 않았지만.
치이익.
그 틈에 엘드리치는 다시 절대 마법 방어 결계를 끄고 마도공학 장비를 식힌다.
다시 엘드리치를 포격하면 흑기사들이 다시 몰려온다.
도저히 기회를 잡을 틈이 없다.
‘서부 연합군의 지원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순 없겠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흑기사들은 서부 연합군이 상대해줘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타이밍을 놓쳤다.
중력 마법으로 병력들을 올려보낼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너무 다급하고 사기가 꺾여 있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내가 무리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각오를 달리한다.
이럴 때를 위해 미리 얻어둔 용의 유산 중 하나가 있었으므로.
드래곤 블러드.
발동 시 최대 화력이 무려 1,000%까지 증폭하는 궁극의 권능 중 하나.
지금 블루 번의 힘만으로도 가짜 마신으로서 활약하고 있거늘.
만약 그 힘이 블루 번과 중첩이 된다면?
나조차 그 위력이 상상이 안 간다.
현재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페널티 허약한 몸이 얼마나 견뎌줄지는 모르겠지만······.’
블루 번 또한 엄청난 페널티를 가지고 있거늘, 거기에 드래곤 블러드까지 겹친다면 몸이 부서질 듯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지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거늘. 나라고 몸 사릴 순 없다.'
따라서 나는 마나를 아끼며 기회를 엿본다.
역린을 발동할 준비를 한다.
***
검은 고성 엘도라도.
서부 연합군은 무너진 성벽을 숨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하늘을 가리는 공중요새. 그곳 내부에서 흉흉한 빛이 몇 번이고 번뜩인다.
쿠과광! 꽈과과광!
검은 하늘에서 땅이 요동치는 굉음이 발생한다.
라퓨타를 얼렸던 얼음이 산산이 조각난다. 하늘이 울리는 대결전.
얼음 포와 광선포가 연거푸 세상 끝까지 분출된다.
실로 압도적인 풍경.
“꺄아악! 이쪽으로 파편이 떨어진다!”
“모두 피해! 머리 위를 보호해라!”
연합군은 비명을 지르며 벽 뒤에 몸을 숨긴다. 하나 같이 공포에 질린 모습.
‘마신 문두스······. 아니, 네카르 경께서 떠나시니 다시 무너지는군요.’
베아트리체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서부 연합군의 현실을 파악했다.
마땅히 대항할 방법이 없는 서부 연합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몸 사리며 기도하는 것뿐이니. 악의 교단과 맞서는 신적인 존재가 이겨주기를 바랄 뿐이다.
지잉, 철컥!
“······저건.”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공중요새 라퓨타에서 청동 대포 일부가 재가동하는 것을 본다.
아까 네카르가 얼음으로 얼려버렸던 초대형 대포들.
당장은 물에 젖어 발포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다시 발포될 터이니.
만약 저것이 발포된다면 어떤 끔찍한 참상을 맞이할지 몰랐다.
“설산검 레오파드 경! 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루크레치아 예하와 엡실론 공을 만나뵈야겠습니다. 따라와주십시오!”
베아트리체는 북부의 귀족이자 사령관으로서, 그런 비극을 막을 의무가 있었다.
“······신성력은 사거리가 그리 길지 않다. 현재로선 보호막을 펼치는 게 한계로군. 마법은 어떠한가?”
“우린 이미 마나가 부족하군. 저것들을 전부 파괴할 마나가 없다.”
하지만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와 동부 최강 마법사 엡실론를 찾았지만 씁쓸하고도 초췌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아무리 니케아 제국 최고 전력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라도, 저 많은 대포를 혼자서 전부 제거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이런······. 아버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디 가르침을 전해주세요.’
치링.
베아트리체는 허리춤의 설화검에 힘이 들어간다.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이럴 땐, 언제나 그 사람이 구해주러 왔거늘.
그 사람은 이미 격전을 치르러 갔으니. 조언을 구할 자가 없는 것이다.
“······베아트리체 공.”
그때, 누군가 떨리는 어깨를 붙잡아준다.
함께 따라온 레오파드다.
‘아?’
번뜩 정신 차린 베아트리체.
천천히 등 뒤를 돌아본다. 사령관들을 바라보고 있는 기사들.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질려 제대로 항전할 생각도 하지 못하지만.
아직도 그녀를 믿고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이 많은 것이다.
‘······이런. 약한 모습을 보였군요.’
또한, 베아트리체는 깨닫는다.
자기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는 걸.
현재 북부 기사들의 희망은 오직 베아트리체뿐.
설화검에 담긴 죽은 공작이 아니라, 살아있는 베아트리체다.
그녀가 이토록 가냘프게 떨고 있다면, 두려움이 전염된다는 걸.
그제야 베아트리체는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다.
설화검에 너무 의지하려는 자신.
수많은 목숨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남에게 계속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달라져야 한다.’
눈매를 바로잡는다. 떨리던 몸을 단단히 굳힌다.
북부의 전사 모두가 자신을 믿고 있으니.
그들의 신뢰를 깨뜨릴 수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오르비스 공작. 북부의 패자이자 사령관일 터이니.
서걱.
설화검으로 묶어둔 제 머리카락을 자른다.
전사에게 거추장스러운 장발에서 단발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빗겨주셨던 손길을 잊기 위하여.
유년의 꿈에서 벗어난다.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순 없습니다. 제게 계책이 한 가지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을 제안한다.
비록 너무나 위험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방법.
“무엇이지?”
“강철실을 공중요새 라퓨타에 매답시다. 그리고 그 위에 공중 발판을 만들어 올라갑시다.”
“!!”
베아트리체의 주장은 간단했다.
강철실은 설인왕 이미르가 잡아당겼을 때도 끊어지지 않은 북부의 명물.
거기에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마법사들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발판을 만든다면 능히 천공섬으로 올라갈 수 있으니.
그렇게 올라가서 내부를 파괴하자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적들의 포격을 막을 수 있을뿐더러, 역으로 초대형 청동 대포를 빼앗아 라퓨타 내부를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아트리체는 확실하다는 듯 말했다.
다만 서부 영주들은 이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 작전은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올라가는 동안 적들의 포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차라리 그냥 마신 문두스를 믿고 이곳에서 대기하는 게······.”
“······.”
서부 영주들은 다들 불안하다는 듯 말한다.
이 작전은 어지간한 결의 없이는 불가능한 방법이니.
더욱이 이 와중에서도 전쟁에서 피해를 많이 입고 싶지 않은 눈치다.
잠깐 뿐인 평화였으나, 이에 안주하여 주저앉는 모습.
“니케 대영주님.”
이에 베아트리체는 노인인 니케 대영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의 알량한 ‘안전’을 위해 ‘미래’를 포기한다면 둘 다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결국, 전부 잃게 될 것입니다.”
“······!”
그 말에 모두 놀라 숨을 들이마신다.
고작 19살 소녀가 이제 환갑이 넘은 어른에게 훈계하는 상황이므로.
그러나 부정하진 못한다.
'물론, 이 작전에 피해가 클 것이란 건 나도 알고 있지만······.'
지금 자신들의 머리 위에는 역사상 최악이자 최흉의 병기 라퓨타가 떠 있고, 퇴로에는 흑기사단이 틀어막고 있는 상황.
이대로 적들의 포격을 막지 않고 기다리다간, 3만 명의 서부 연합군 전체가 몰살당할 상황이다.
아무리 마신 문두스라고 해도 거악 엘드리치를 상대하는 상황에서, 청동 대포까지 막아줄 수는 없으니.
막역한 믿음 하나로 안주할 수 없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 테니, 다소 피해가 있더라도 힘껏 맞붙이치는 수 밖에 없다.
“······물의 계단을 만들어보지. 오랫동안 유지는 안 될지라도, 첫 돌파엔 훨씬 수월할 것이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 가주 엡실론 또한 동의한다.
선봉에는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가 나서기로 한다.
“강철실을 포탄에 매달아라! 발포하라!”
이후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먼저 외성에 부착되어 있던 초대형 청동 대포 하나를 강제로 들어서, 수직에 가깝게 발포한다.
검은 하늘 속 공중요새 라퓨타를 향해 포탄이 날아간다.
“아쿠아 부스터.”
촤아악! 콰아앙!
거기에 엡실론이 추진력을 더한다. 공중요새에 제대로 적중한다. 단단히 박힌 강철실.
“아쿠아 월.”
이후 만들어진 물의 계단.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와 성기사단은 방패를 들고 달린다. 강철실을 난간처럼 붙잡으면서.
수상비(水上飛).
물의 계단은 얼음 계단과 달리, 발이 푹푹 빠지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나를 사용하여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반역자 무리가 라퓨타에 오르려고 한다!”
“쏴라!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것들을 모조리 날려버려!”
쿠과광! 화르르륵!
물론 공중요새 라퓨타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이를 그냥 지켜보지 않았다.
흑기사가 소형 대포를 끌고 오고, 흑마법사는 검은 불꽃을 모아서 포격한다.
지금 달려오는 서부 연합군 기사단은 달려오기도 바쁘므로.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에.
마치 줄에 달라붙은 개미 떼를 짓밟듯 일방적으로 포격한다.
“크아아악!”
“커헉······!”
수많은 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저 아래 서쪽 바다를 향해 떨어진다.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하고, 큰 방패를 들어 올렸으며, 전방에선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가 베리어를 펼쳐줬음에도.
빗발치는 포격에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기사들은 오히려 더 빠르게 달린다.
이대로 뒤처지면 뒤따라오는 기사들이 더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 밟고 있는 물의 계단조차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기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도 달린다.
“도착, 했다······!”
최선두에서 달리던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가 가장 먼저 최종요새 라퓨타를 밟는다.
원체 전속력으로 달린 데다가, 정면에서 포격을 막아주었기에 입에서 각혈이 차오른다. 태양처럼 아름답던 주홍빛 머리카락은 산발로 흩날리고, 눈 흰자위에는 붉은 실선들이 수업이 맺힌다.
눈앞의 흑기사와 흑마법사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며 돌파한다.
“······인체 실험실이군.”
루크레치아는 천공의 섬 라퓨타를 둘러본다.
공중요새 라퓨타는 마치 호텔과도 같은 곳이었다. 최고급 재질로 된 방과 장비들.
이곳에 있는 흑마법사와 흑기사들은 말 그대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인체 실험과 흑마법 제물이 최고급으로 점철된 곳으로 말이다.
“이까짓, 공간 때문에 수많은 교도가 죽었다니······!!”
루크레치아의 분노가 줄기줄기 뿜어진다.
아직 수많은 전사가 강철실을 붙잡고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전사가 추락해 바다로 떨어진다.
하지만 기어이 다시 올라오는 신의 전사들.
죽음의 행군.
얼마나 많은 병력이 죽든 하늘 위로 달린다.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처럼.
“모조리 사라져라. 악마의 추종자들아.”
번쩍, 샤아아아아-!!!
루크레치아가 남은 모든 신성력을 쥐어짜서 성검 듀란달에 응축한다.
그리고 일거에 내지른다.
광원이 공중요새 라퓨타를 집어삼킨다.
그 빛에 깨끗하게 지워지는 흑마법사들.
검은 하늘 속 공중요새에 새하얀 빛을 드리우는 전사들이 가득 들어온다.
당신들의 천국을 무너뜨린다.
“헉······. 헉······. 베아트리체 공. 뒷일을 맡기지.”
“······루크레치아 예하.”
기진맥진한 성녀 루크레치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풀썩 제 자리에 쓰러진다.
이미 지상을 포격하던 흑마법사들을 몰살시켰으므로.
지금 이 작전을 계획한 베아트리체를 믿고, 올라온 기사들의 지휘를 맡기는 것이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오르비스 저하!”
“······.”
독촉하는 성기사단.
베아트리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지금 이 전장에서 최종 승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쿠과과광!
그때 최종요새 라퓨타 정중앙에서 들려온 거대한 폭음.
아마 저 안에는 마신 문두스와 탐욕왕 엘드리치가 격돌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 승패는 이 성전(聖戰)에 엄청난 파급력을 끼칠 것이다.
따라서
“······하급 병력은 공중요새 외곽에 있는 청동 대포를 탈취하라. 여차하면 파괴해도 좋다.”
비장한 각오로 명한다.
성기사단이 다소 놀란 눈빛으로 바라본다. ‘설마?’하는 눈치.
이에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끄덕인다.
“최정예 병력은 내부로 진입한다. 거악을 무찌른다.”
“!!”
결단을 내린다.
네카르와 합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