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95화 (95/140)

95. 내전 (1)

대륙 최서단에 있는 검은 고성(古城).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깎아지는 절벽 끝에 건설된 이 성은 현재 부산스러웠다.

블랙마켓 핵심 근거지 중 하나인 타이탄 영지.

그곳에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까.

“······그러니까 아룡기사 네카르. 아니, 마신 문두스가 사왕과 손을 잡았다고.”

탐욕왕 엘드리치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인과율 계산기에 아무 기호가 눌린다.

급히 불려온 임프 부총관과 블랙마켓 핵심 간부들은 몸을 떨었다.

“예, 옛! 현재 흑마도사 클라우스 경께서 전사하셨다는 비보도 들려왔······!”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엘드리치는 살기를 드러내며 말을 자른다. 붉은 눈을 번뜩인다.

“지금 중요한 건 아룡기사 네카르가 인과율을 깨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다는 용사처럼.”

엘드리치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인과율 계산기를 집어 던진다.

인과율.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완벽히 정해진다는 이론.

그런데 네카르는 이를 깨고 있었다.

결코, 알 수 없던 정보를 알고 움직이며, 절대 부서지지 않는 아다만티움 물질을 부숴서 일을 해결한다.

처음엔 단순히 계산기의 오작동인 줄 알았으나, 몇 번을 검사해도 다른 곳에서는 100%의 확률로 미래를 예측하였으니.

“······결국 한 가지 방법밖에 남지 않았군.”

엘드리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읊조린다.

모두가 설마설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어떤 계략도, 방해도, 척살도 통하지 않고 역으로 제 목에 비수를 들이밀고 있으니.

남은 건 오직 정면충돌뿐이다.

엘드리치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명한다.

“공중요새 라퓨타를 준비하라. 전쟁을 시작하겠다.”

“!!”

공중요새 라퓨타.

마도공학으로 만들 수 있는 궁극의 살상 병기.

대륙 서부를 필두로, 아르카나 대륙 모든 프레야 교도를 말살하겠다는 ‘블랙 매스’ 계획의 핵심 병기다.

“하, 하지만 폐하······. 현재 공중요새 라퓨타는 외관 성벽이 덜 축조됐습니다. 아무래도 타이탄 영지가 습격당하는 통에······.”

“외관 성벽 따위 중요치 않다. 차후 보충하면 되니.”

엘드리치는 항변하는 제 부하를 노려본다.

“임펫 부총관.”

“예.”

“지금 당장 마계의 최하급 악마를 죄다 끌고 와라. 그들을 첫 제물로 삼겠다.”

“!!”

마계의 악마.

공중요새 라퓨타를 운영할 마정석을 잃어버린 상황이니.

그 대신, 부하인 악마를 라퓨타 내부 ‘지옥 용광로’에 처넣는 것이다.

“흑기사단장 ‘리차드’.”

“옛.”

또한, 흑기사단장 리차드를 부른다.

대륙 서부 최강의 흑기사이자, 엘드리치 군단의 육군 사령관에게 명령한다.

“‘피조물 말살 계획’을 실행한다. 대규모 전쟁을 일으키고, 지옥 용광로에 처넣을 시체를 닥치는 대로 모아와라.”

“······!”

피조물 말살 계획.

아르카나 대륙 서부에 있는 모든 이종족을 소멸시킨다는 계획.

프레야 교단에 속하거나, 여신이 창조한 모든 흔적을 지우는 계획이다.

힘과 무질서의 신 디메토르가 엘드리치의 어머니를 재창조해주는 조건이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강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흑기사단장 리차드조차 진중하게 묻는다.

엘드리치는 간악한 미소를 짓는다.

“‘전쟁 금지 병기’를 사용하라. 더 이상 숨길 필요 없다.”

“!!”

전쟁 금지 병기.

너무나 반인륜적인 병기기에, 전쟁을 벌일 때도 사용하지 않기로 한 병기들이다.

만약 이를 사용하면 대륙법에 따라 니케아 황실과 프레야 교단, 그리고 다른 모든 영지를 적으로 돌리게 되거늘.

이조차 거리끼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명을 받잡겠습니다.”

리차드는 주군의 뜻을 알아듣고 힘찬 경례를 한다.

대륙 서부에 집결한 마계의 존재. 그리고 그들과 흑마법사들이 모두 명을 하달받는다.

서부 멸망 작전을 시작한다.

***

‘······이거 위험할 뻔했군.’

나는 드래곤 윙즈를 쓰고 타이탄 영지를 벗어나며 생각했다.

확실히.

타이탄 영지 일대를 수장시켜버리는 건 아무리 드래곤 블러드라도 무리한 일이었으니.

-마나 고갈! 당신은 가히 바다처럼 깊은 물을 지배했습니다! 이는 대륙 서부 전체를 1cm로 뒤덮을 양입니다.

-스킬 ‘역린 lv1'이 강제 취소됩니다. 폭주 상태가 취소됩니다.

원체 많은 물을 끌어 올려서 아쿠아 스톰을 쓰지 못하고 그저 쏟아내기 바빴다.

그것만으로도 탈진하여 숨을 헐떡인다.

‘······그럼 이보다 더 많은 물을 모아서 헤일 스톰까지 내리쳤던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는 도대체 어느 정도라는 거지?’

새삼 세상이 넓고 나는 작다는 걸 느낀다.

내가 일으킨 건 바다처럼 드넓은 가이탄 호수.

진짜 바다는 아니었으니.

달을 끌어당겨 진짜 바다를 일으킨 화이트 드래곤을 떠올린다.

겸손해진 마음으로 소형화했던 말을 꺼내서 탄다.

“······이제부터 육로로 가는 건가?”

폭왕 라이칸 슬로프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인지 모르게 이쪽도 대단히 겸손해진 분위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으로만 가면 추격당할 수 있으니, 이동 방식을 계속 바꿀 거다.”

물론 개소리다.

그냥 용용이를 타고 바람맞을 체력조차 없어서 말을 타고 가는 거다.

그러나 신빙성 있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이칸과 페어리.

지금 내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을 것 같다.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린다.

‘······어둠이 몰려오는군.’

고고고.

나는 최서단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한동안 장맛비가 내릴 듯 몰려오는 먹구름.

번쩍, 꽈르릉! 꽈광!

대륙 서부를 집어삼킨다.

마치 세계 종말의 날처럼 태양이 보이지 않으며, 시뻘건 낙뢰가 사방으로 내리친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제5군단장 엘드리치.

마계 군주 중에서도 특히 간악하다는 그가 직접 현현하니, 인간계로선 감당이 되지 않아 요동치는 것이다.

‘이는 블랙 매스 계획. 프레야 교단의 종말도 머지않았다는 뜻이겠지.’

히히힝, 다그닥다그닥.

나는 말을 더 빠르게 몬다.

탐욕왕 엘드리치.

그자는 제 어머니를 부활시키기 위하여 공중요새 라퓨타를 띄워 올릴 것이므로.

그 계획을 방해한 날 결코 살려둘 수 없을 터.

‘그러기에 가장 타당한 타이밍이 황제가 칩거하고, 서부 영주들이 분열한 지금이겠고.’

다행히 대비는 거의 다 끝났다.

나는 폭왕 라이칸 슬로프와 페어리, 그리고 구출한 이종족들을 바라본다.

현재 나는 동부와 북부의 구원하며 연줄을 만들어둔 상태.

더구나 대륙 서부에 있던 페어리와 웨어울프 등 함께할 이종족도 구한 거다.

‘하지만 마지막 단추는 인간 영주들인데······.’

문제는 인간 영주들은 아직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

대륙 서부는 영지 간의 원한이 서로 얽히고설켜 설득이 힘들다는 점이다.

탐욕왕 엘드리치.

마계 제1의 거부인 그는 공중요새 라퓨타를 제작할 비용을 모으기 위해 이간질과 분열, 전쟁 범죄까지 서슴지 않았으니까.

흑마법과 전쟁 금지 병기까지 팔아먹기 위해서 서부 각 영주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킨 것이다.

덕분에 수십 년간 서부는 내전이 발발했고, 이젠 엘드리치 없이도 앙숙 관계로서 끝없이 싸웠다.

그게 대륙 서부였다.

“네카르.”

내가 한참 고민하고 있자 라이칸 슬로프가 내게 말을 건다.

진중하면서도 당당한 눈빛.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겠다는 눈빛이다.

-우움~. 우우움~. 우우우움!

흙의 정령 노움이 내 목에 폴짝 앉아서 율동마냥 양팔을 흔든다.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듯.

마치 '계약자. 힘내! 우리가 있잖아!'라고 외치는 듯 하다.

······문제는 머리를 다 헝클어놓고 있다는 점이지만.

함께한 페어리도, 어느새 소형화 권능이 풀린 이종족들도 일제히 날 바라본다.

라이칸 슬로프에게 사정을 전해 들은 이종족들.

모두들 날 믿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래.”

나는 이에 작은 미소를 짓는다.

생각을 정리한다. 어차피 지금 내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으니.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빠르게 압축해서 처리해야겠어.”

나는 평범하게만 원작 <별들의 전쟁2>를 즐겼던 게 아니다.

혹여 히든 퀘스트가 있을까 봐 온갖 방식으로 <별들의 전쟁2>를 즐겼다.

그리고 이에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폭군으로서 군림하는 방식도 있었다.

지금 마신 문두스처럼 해결할 방법.

때때론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는 일일이 풀기보다는 칼로 내리치는 게 나을 때가 있으니.

“가지.”

투두두두.

다시 말을 몰아 달린다.

구출한 이종족들은 제 영역으로 돌려보내 주면서,

대륙 서부의 핵심 분쟁지역으로 향한다.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달리니 들려오는 거대한 인간 함성.

-lv11 니케 공국 병사.

-lv12 니케 공국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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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스템에 보인 것은 ‘니케’ 대영지 병사였다.

니케 평야에서 방어진을 치며 버티고 있는 모습.

니케 대영지라면 익히 알고 있다.

대륙 서부에서 가장 번화한 두 도시 중 하나.

니케아 황실 혈통이 ‘대공’ 작위를 받고 다스리는 영지.

프레야 교단 서부 본부가 있어서 탐욕왕 엘드리치의 손아귀에서 그나마 벗어나 있는 곳이다.

-lv35 라흐 후작령 영주 라이너. (암흑 강화.)

-lv27 라흐 후작령 흑마법사. (암흑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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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상대방 측이 다소 문제였다.

라흐 후작령.

이곳은 니케 공국과 쌍벽을 이루는 대도시다.

······문제는 탐욕왕 엘드리치의 계략에 빠져 니케 대도시와 철천지 원수지간이라는 점.

현재 탐욕왕 엘드리치의 군사 지원을 받는 영지다.

그 수가 수만인 걸 보아 양측 동맹 영지군도 모두 개입한 모양.

매우 큰 대회전으로 번질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얼마 전 타이탄 영지를 쓸어버린 만큼, 엘드리치로서도 속도를 높이는 걸 테니.

아마 공중요새 라퓨타에 쓸 대량의 시체를 모으는 거겠지.

“내전이로군.”

라이칸 슬로프가 공격적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내전.

같은 니케아 제국 소속, 대륙 서부 영주들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다.

“대륙 서부에선 흔한 일이다. 황제가 칩거한 이후, 경찰이 없는 무법지대가 되었으니.”

나는 그에게 대륙 서부 상황을 설명한다.

약육강식 강자지존.

살아남기 위해선, 부국양병하며, 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다.

작은 오해의 불씨만 던져줘도 활활 불탈 수밖에 없다.

-lv11 라흐 후작령 병사.

-lv12 라흐 후작령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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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라흐 영지도 타락 영주와 흑기사들이 탐욕왕 엘드리치의 후원을 받을 뿐.

일반 병사들은 지극히 평범했다.

목숨을 건 전쟁에 잔뜩 긴장하고 손끝이 바르르 떨리는 걸 보아 평범한 인간이었다.

단순히 영주들에게 강제 징집된 모양.

저들을 죄 없는 일반 사람들.

적군이라고 함부로 해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을 터.

“네카르. 어떻게 할 거냐?”

“······.”

폭왕 라이칸 슬로프가 내게 묻는다.

“오히려 좋아.”

나는 잔혹한 웃음을 짓는다.

“삽시간에 화해시킬 방법이 있다.”

강제로.

화해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있다.

사실 이는 내키지 않는 방법.

서로의 원한을 완전히 해소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이대로는 탐욕왕 엘드리치의 바람에 따라, 피의 복수를 넘어 다 함께 멸망할 상황이니.

-키야아아악!

소형화했던 용용이를 꺼낸다.

한동안 갑갑했다는 듯 찌부둥한 몸을 켜며 날개를 활짝 펴는 용용이.

철컥.

그의 안장 위에 타서 빛과 어둠의 가면을 다시 쓴다.

마신(魔神) 문두스.

대륙 최흉의 수배자이자, 전 대륙이 모두 아는 존재.

홀로 북부 최대 도시 오르비스를 박살냈던 괴물이다.

······비록 이는 사칭이며, 심지어 지금은 마나도 크게 고갈된 상태지만.

대외적으로는 내가 그 존재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쐐애애액-!!

용용이를 타고 바람처럼 날아간다.

두 대군의 머리 위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강자지존.

이는 대륙 서부를 관통하는 가치관인 만큼 살아날 방법이 있다.

악의 매듭을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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