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침몰의 악마 (3)
베아트리체는 아르타 섬을 수성하면서 전황을 파악한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해적선.
제철 어업 때 만선으로 끌려오는 그물망 속 물고기처럼 강철실에 묶여있다.
신념과 각오가 아닌, 탐욕과 폭행으로 움직이는 해적들.
자기 안위와 쾌락만 좇는 만큼 예상보다도 더 진격이 느리다.
니케아 연합 함대의 집단 포격을 뚫으면서까지 진격해오는 해적선은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이제 곧 네카르 경께서 돌아오실 거야.’
치링.
베아트리체는 숨을 헉, 헉 몰아쉬며 언데드 크라켄을 상대한다.
언데드 크라켄.
이 괴수만은 강철실을 무시하고 넘어왔으니까. 설화검으로 다리를 베어버리며 방어한다.
그리고 전투 개시 2시간쯤, 신호가 왔다.
쿠구구궁······.
갑자기 진흙처럼 무너지는 언데드 해적선들. 해적왕 데비존이 일으켰던 스켈레톤들도 재가 되어 쓰러진다.
해적들도 절반 가까이 물에 빠져, 비명을 지른다.
-그오오오오-!!
악마보다 더 악마 같던 초대형 해양 몬스터, 언데드 크라켄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성 공격과 방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주하던 괴수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그제야 베아트리체는 작전이 최종 성공했음을 깨닫는다.
침몰의 악마 버뮤다.
물용이와 네카르가 그 존재를 물리친 것이다.
‘됐어!’
베아트리체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지금이다. 북부의 기사들이여. 반격의 시작이다.”
그리고 반격 명령을 내린다. 그동안 함포 사격만 하며, 출격하지 않았던 연합 기사단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린다.
쏴아아아.
그와 동시에 전진하는 수백 개의 조각배.
이는 전투 배가 아니다. 어민들이 어업용으로 쓸 법한 작은 배들. 그러한 배로 바다를 뒤엎는다.
해적들이 유리한 바다에서, 북부 기사들이 압도하는 육지로 지형을 바꾼다.
“돌격.”
투두두두!
베아트리체와 기사단은 그러한 배를 타고 달린다. 마치 육로를 달리는 것처럼. 바다를 달린다.
“기, 기사들이 몰려온다! 함포 발사!”
“틀렸어! 이미 바위섬을 쏘느라 청동 대포가 과열됐어!”
“도, 도망쳐! 후방은 비어있다!”
베아트리체는 일부러 후방을 비워두었다.
의리 없는 해적들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제 동료를 버리고 달아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멈추지 마라. 저들은 우리 가족을 약탈한 원수일 지어니.”
다만 베아트리체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차가운 명령을 내린다.
배를 버리고 달아나는 해적까지 끝까지 추격한다.
대규모 전쟁에서 가장 많은 학살이 벌어지는 건 추격전.
적들이 등을 보인 순간이야말로, 일방적으로 살육할 기회이니.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 거라.”
한기가 가득한 서북부 흑해를 뜨거운 피로 물들인다.
작은 어촌 마을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고통에 찬 비명이 메아리친다.
바다를 새빨갛게 바꾼다.
***
나는 물용이를 타고 해상으로 올라와서 초고속 전진한다.
현재 나는 대륙 최악의 공적인 마신 문두스를 사칭한 수배자.
그 상태에서, 니케아 제국 귀족 앞에 나타나야 하는 만큼 얼굴이 알려진 용용이는 타지 않는 거군.
‘베아트리체가 알아서 잘 하고 있군.’
물용이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아르타 섬을 바라본다.
아직 수평선으로 보일 만큼 거리가 멀지만, 드래곤 아이로는 훤히 보인다.
현재 전장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다.
[쫓아라. 해적놈들이 화약에 불 지르기 전에 섬멸해야 한다.]
먼저 최전방에 보이는 베아트리체와 북부 기사들.
해적들은 이미 패퇴하는지, 초대형 해적선을 버리고 달아난다.
항전하면 충분히 기사를 막아낼 수 있는 전력이지만, 이미 남들이 도망가고 있는데 홀로 싸울 해적은 없으니까.
일방적인 학살을 하고 있다.
‘문제는 저쪽이군.’
따라서 나는 베아트리체 쪽은 내버려 두고, 후방을 살핀다.
니케아 제국 연합 함대 측.
수백 대의 군함과 프레야 사제, 그리고 북부 최강검이라는 레오파드는 단 한 명의 사내를 포위하고 있다.
[겁쟁이 같은 놈들! 그러고도 너희가 내 금빛 해골 해적단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더냐!]
고고고고!
lv51. 해적왕 데비존.
해적왕 데비존.
애꾸눈에 좀비처럼 썩은 몸을 가진 중년 사내.
과거 동부 최강 마법사 엡실론과 유사한 레벨.
그런 데비존이 사방으로 흑마법을 뿜어내며 날뛰고 있다.
물론 침몰의 악마 버뮤다가 소멸한 이후, 힘이 극도로 쇠약해졌는지, 홀로 니케아 연합 함대를 상대하기 매우 벅찬 모습.
[시체 폭발!]
콰과과광!
가까이 있는 시체를 폭발시킨다.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력.
해적왕 데비존 또한 수십 년간 흑마법을 익힌, 고위 네크로맨서로서 평범한 시체 한 구로 작은 군함을 반파시킨다.
그러나 이곳은 프레야 교단이 있는 곳.
시체 폭발하기 전에 재빨리 시체를 신성력으로 정화하여 대처한다. 흑마법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방지한다.
샤아아아.
더구나 이단 심문관들은 빛을 쏘아내서 그를 포박한다.
누가 봐도 최후가 가까워진 모습.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별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해적왕 데비존.
마계의 악마와 계약한 존재. 그자는 비록 제 자신이 죗값에 따라 소멸할 순간까지 곱게 죽지 않는다는 걸.
[제기랄. 이렇게 된 거 혼자 가진 않겠다. 나 해적왕 데비존! 혼자 갈 순 없음이야!]
번쩍!
그때, 해적왕 데비존이 붉은 눈을 번뜩인다. 누가 봐도 불안정하게 사악한 마력을 뿜어낸다.
-그워어어어-!!!
첨벙,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진 거대 문어를 흑마법으로 다시 끄집어 올린다.
언데드 크라켄.
해적왕 데비존을 상징하는 초대형 괴수. 그 괴수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 마력은 무려 니케아 연합 함대 전체를 휩쓸어버릴 정도!
나는 그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다.
‘시체 폭발. 역시 자폭기를 쓰는군!’
【바람의 길 lv4.】
시체 폭발.
언데드 크라켄 또한 시체이기에 가능한 기술이다.
그 크기와 마력이 엄청난 만큼 평범한 인간 하나를 폭발시켰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 나올 것이다.
시체 폭발은 시체의 질과 마력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물용아. 넌 베아트리체를 도와서 달아나는 해적들을 붙잡아라!”
-크오오오!
【아쿠아 부스터 lv2.】
나는 물용이에게 명령을 따로 내리고 물 속성 이동 마법 아쿠아 부스터를 사용한다.
내 발밑의 물을 약하게 폭발시킨다. 그 추진력으로 로켓처럼 날아간다.
“······이런!”
현재 니케아 귀족 연합 사람들은 바닷속에서 끌어올린 언데드 크라켄을 보고 당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설마 바다 깊이 떨어진 언데드 크라켄을 다시 끄집어 올릴 것이라고 상상도 못 한 표정.
다들 해적왕 데비존을 포박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서부 바다의 지배자를 상대하는데 방심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만큼 해적왕 데비존은 마지막까지 악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뼈와 살이 분리돼 산산이 조각나는 귀족놈들을 상상하는지 죽어가면서도 흠뻑 웃고 있었다.
물론 헛된 꿈이다.
촤아아악.
【워터 소드 lv3.】
나는 공중에서 물의 검을 형성한다. 바닷물을 한없이 응축해서 만든 검.
워터 소드는 가장 흔한 물의 마법 중 하나이지만, 내가 시전한 워터 소드는 ‘아쿠아 스핀’으로 끝없이 회전하는 검.
무려 불사왕 데힐라칸을 꿰뚫어버린 일검이다.
푸확!
그대로 언데드 크라켄을 꿰뚫는다.
거기에 남몰래 성물 아가타의 성배까지 발동한다.
【아쿠아 스톰 lv1.】
콰아아아아-!!
언데드 크라켄 몸 속에서 작렬하는 물의 폭풍.
내부부터 밖까지 완전히 소멸시킨다. 아가타의 성배 덕분에 바닷물이 성수로 바뀌어서 흑마법 또한 소멸한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설산검 레오파드를 비롯하여 사제와 귀족, 일반 병사들도 모두 경악한다.
이는 해적왕 데비존도 마찬가지다.
"네놈은?"
“죽어.”
【에어 블레스트 lv2.】
콰아아아아!
신성력에 묶인 해적왕 데비존을 깨끗이 소멸시킨다. 침몰의 악마 버뮤다가 이미 소멸한 만큼 더는 부활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타나는 시스템 창.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제5군단장 탐욕왕 엘드리치. 그 거악과 계약한 해적왕 데비존을 완전히 소멸시켰습니다!
-엘드리치가 최종 부활할 때, 최대 마력이 아주 조금 감소합니다. 각성할 때 최대 마력이 0.4% 감소합니다!
-마계의 군주이자 거악 엘드리치가 당신에게 강한 적의를 드러냅니다!
서부 바다를 지배한 해적왕을 죽여도 고작 0.4% 감소한다.
과연 마계의 군주. 지고한 위치인 만큼 마력을 복구할 만한 물건으로 상당히 회복했겠지.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다.
한편, 주위에 있던 니케아 연합군은 너무 놀란다. 한참 침묵한다.
“······너는 누구냐? 가면을 쓴 ‘마검사’.”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경계하는 북부 영주 하나.
나를 마법과 검술을 함께 쓰는 마검사로 오인한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프레야 사제도, 해군도 모두 침을 삼키며 날 노려본다.
하기야 일격에 해적왕 데비존을 처치했으며, 수백 마리의 해양 몬스터.
그것도 씨 드레이크까지 부리는 마법사라면 해적왕 데비존에 버금가는 두려운 대상이니까.
‘이럴 줄 알고 가면도 쓰고, 엘프의 인피면구로 얼굴과 목소리도 30대 청년으로 바꿔놨지.’
다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레지스탕스의 인피면구.
과거 베아트리체가 자신의 대역을 맡기고 움직이던 엘프들의 보물. 이를 빌려온 상태였으니까.
“알 것 없다. 내 고용주는 오르비스 공작 베아트리체 공 뿐이니.”
【아쿠아 부스터 lv2.】
착 가라앉은 목소리.
기존보다 훨씬 차가운 모습을 연기한다.
이후, 베아트리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간다. 혹여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자리를 피한다.
“서, 설산검 레오파드 공! 저 자. 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등 뒤에서 한 영주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만 설산검 레오파드는 침묵하더니 말했다.
“아니, 됐네. 저 자는 나도 아는 자이니.”
“아, 그렇습니까? 꽤 유명한 해결사인 모양입니다.”
“······.”
설산검 레오파드의 보증에 그제야 안심하는 영주들.
다만 레오파드는 침묵했다. 내가 보인 마법과 겉모습은 전혀 달랐지만, 본능적으로 내 움직임을 알아본 모양.
‘아무래도 비밀로 해주려는 것 같군.’
하기야 설산검 레오파드는 천년산성에서 나와 함께 싸운 자.
심지어 수년간 버려진 천년산성을 구해준 적 있으니.
안심하고 떠나도록 한다.
***
물용이 쪽도 정리가 된 모양이다.
수천 마리의 해양 몬스터.
일전 아르타 섬에서 검은 구슬로 조종당하던 몬스터들. 소드 피쉬, 전기 해파리, 거대 가오리 등 수많은 몬스터를 포효로 이끌고 왔다.
달아나던 해적들을 쓸어버렸다.
그렇게 아르타 섬 대해전이 모두 끝나고.
니케아 연합 해군은 그 여세를 몰아 해적의 근거지인 브리스톨 섬까지 진격한다.
해적왕 데비존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뿔뿔이 흩어질 수 있기에, 그 전에 일망타진하는 거다.
“사, 살려주십시오! 아니, 우리라고 해적질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황제가 손 놓으니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까! 크악!”
그렇게 브리스톨 섬에 남아있던 모든 해적은 죽었다.
아무리 대륙이 혼란하여 해적이 번성할 요인이 있었다고 한들, 사람을 죽이고 노략질하는 범죄행위가 용인되는 건 아니니까.
또 다른 가해자인 만큼 처분해야 마땅하다.
‘이로써 베아트리체가 대륙 제일의 대영주 중 하나로 급부상하겠군.’
나는 잠시 가면을 벗어둔 채, 생각한다.
이번 해적 소탕은 단순히 노략질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실상 가장 중요한 건 재해권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해상 무역이 자유로워진다는 의미. 북부를 중심으로 물자가 운영된다는 뜻이니까.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이다.
“강제로 노예가 되신 분들은 모두 풀어드리겠습니다! 족쇄를 보여주십시오!”
“어흐흑······.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더구나 해적 노예로 강제로 노역하던 수많은 자유민을 구출한 것도 컸다.
만약 이들을 아르타 섬 중심으로 정착시킨다면, 해상 무역을 다잡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거다.
‘콜록, 콜록······. 몸이 또 말썽이군······.’
사소한 문제라면 내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다는 점이다.
얼음 같은 심해를 탐색하다가, 물용이를 타고 찬 바람을 계속 맞으니 독한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더구나 나는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까지 있으니까.
내가 식은 땀을 흘리며 비틀거리자, 함께 있던 베아트리체가 놀라서 다가온다.
“네카······. 아니, ‘네일’ 경.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몸이 편찮으신 거예요? 역시 제 곁에서 쉬시는 게.”
현재 쓰고 있는 가명이 ‘네일’이었다.
젊은 영웅으로 알려진 네카르와 달리 경험 많은 30대 냉철한 해결사.
“괜찮습니다. 제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다만 나는 챙겨야 하는 보물이 있으므로 앉아서 쉴 수 없었다. 변조된 냉랭한 목소리로 답한다.
베아트리체도 혹여 내가 네카르라는 걸 들킬까 봐 더 붙잡지 못했다.
‘목소리를 너무 차갑게 바꾼 것 같군.’
나는 목소리를 조정하고, 베아트리체의 결재 서류를 받고 정식으로 해적왕 소굴로 들어간다.
해적왕 데비존의 보물 창고.
그 안에는 반드시 챙겨야 할 보물이 있으니.
“······역시 여기 있었군.”
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달리 슬며시 웃었다.
해적왕 데비존의 궁전을 뒤지자 내가 찾던 보물이 있었으니.
[이름 : 코나흐타의 빙결 마도서 (ANCIENT.).]
[설명 : 고대 포워르 일족 위대한 왕 ‘코나흐타’가 직접 저술한 얼음 마법서. 제 일족을 탄압하는 기간테스 일족을 봉인한 숭고한 힘이 깃들어있다.]
* 위대한 왕 코나흐타의 유물은 총 4가지입니다. 이 모든 유물을 모아야 진정한 힘이 개방됩니다! (2/4)
얼음 마법 주문서.
바람의 마도서와 마찬가지로 비전 마법이 담겨 있는 마법서다.
‘더구나 얼음 마법은 듀얼 속성 마법이었지.’
듀얼 속성 마법.
이는 뇌격처럼 두 가지의 마법 속성을 요구하는 마법으로, 그만큼 특별하고도 강력한 힘을 간직한 마법이다.
-<블리자드> : 얼음 계열 마법을 활용한 대재앙 마법. 주위 일대를 눈보라로 뒤덮고 폭풍을 일으켜 쓸어버린다. (최소 써클 6써클. 필요 마나 100,000. 물+흙 속성 마법사.)
-<절대 영도> : 우주가 대종말한 기온으로 바꿔버리는 빙결 계열 궁극의 마법. 그 진정한 위력은 역사상 단 한 번만 재현됐다고 한다. (해금 조건 : 미공개.)
비록 단 하나의 마법도 익히지 못했지만!
최소 써클이 무려 6써클부터 시작하다니.
5써클만 해도 대륙에서 대마법사 대접을 받거늘.
입문 장벽이 너무 높았다.
‘어지간한 자는 손도 대지 못하는 마법이군.’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자. 벌써 5써클 2티어에 도달하며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으니.
빙결 마법의 진정한 위력을 아는 만큼 6써클까지 고이 간직할 것이다.
‘당장 쓸건 이 펜던트 뿐인가?’
[이름 : 페어리 펜던트. (SUPER RARE.)]
[설명 : 먼 옛날, 숲의 요정 페어리가 엘프에게 선물했던 펜던트. ‘소형화’ 마법이 부여되어 있다.]
아주 작은 네잎 클로버 모양의 펜던트.
나는 이 펜던트를 가슴에 부착하고 물용이를 찾는다.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물용이.
“소형화.”
번쩍.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작아지는 물용이.
바다의 지배자 씨 드레이크가 아니라, 애완용 물뱀만큼 귀엽게 작아진다.
-크오오옹?
작아진 제 크기에 무척 당황하는 물용이.
놀라서 고개를 홱홱 돌린다. 갑자기 커진 세상이 믿기지 않는 모양.
나는 미리 준비한 어항에 물용이를 담아서 가져온다.
앞으로 황제의 추격을 피해 움직여야 하는 만큼, 대형 몬스터를 숨기기 위해선 이 펜던트가 꼭 필요했다.
“문제는, 이것이군······.”
다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해적왕의 방에 있던 마지막 보물을 발견한다.
나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보물.
그건 하나의 돌이었다. 마치 타락한 정령석처럼 사악한 힘을 한없이 뿜어내는 검은 돌.
“감정.”
[이름 : 마정석 #1. (MASTER.)]
[설명 : 마계의 힘이 넘실거리는 돌. 어쩌면 무언가의 강력한 ‘핵’이 될지도 모른다.]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보석.
그러나 나는 낯익은 생김새를 보고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공중요새 라퓨타. 그 거대한 천공의 섬을 가동하는 핵심 동력원이다.’
공중요새 라퓨타.
악의 교단 제5군단장 탐욕왕 엘드리치가 제작 중인 궁극의 마도병기.
완전히 강림하는 순간, 대륙 서부는 물론, 아르카나 대륙 전체를 멸망시킨다는 절대병기다.
수많은 마력석이 함께 가동되기 때문에 수백 개의 마법 폭격과 ‘절대 방어’ 결계까지 펼쳐지는 원작 <별들의 전쟁2> 최악의 구조물 중 하나.
이를 가동하려면 수많은 마력이 필요한데, 이를 가동할 심장이 이곳에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이 원작보다 10년 전이니까······. 이런 점에서 어드벤티지를 받는 모양이군.’
나는 사악한 힘이 넘실거리는 마정석을 들어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1/4조각으로 쪼개져 있는 마정석.
아무래도 이는 총 4조각을 모아야 하는 것 같으니.
만약 이 조각들을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애초에 내가 이 조각들을 먼저 모은다면?’
어쩌면, 아주 어쩌면.
공중요새 라퓨타.
악의 교단 최종 병기를 상대하기도 전에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다음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인데.”
하지만 이는 원작에서도 없었던 내용.
다른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나로선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마정석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서려 있습니다.
* 다음 마정석 조각은 ‘페어리’ 일족 마을에 숨겨져 있습니다.
“!!”
그때 지이잉, 움직이는 마정석.
마치 자석처럼 완전히 합쳐지려는 본능이 있는 모양이다.
“오호라, 그래서 이 녀석이 페어리 펜던트를 제 방에 가지고 있던 거였군?”
나는 그제야 납득하며 해적왕 데비존이 앉았던 빈 옥좌를 내려다본다.
페어리.
엄지공주처럼 작은 요정으로, 나비처럼 숲을 가꾸는 역할을 가진 종족이다.
아무래도 해적왕 데비존은 페어리의 마을 위치까지는 아직 찾지 못한 모양이지만.
‘나는 페어리의 마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니까.’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내 기억상 페어리들도 이 마정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제 부족 전체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마정석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비단 페어리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니까.
만약 그들을 처치해주고 마정석을 선물 받는다면 합당한 거래가 되겠지.
나로서도 공중요새 라퓨타의 핵심 동력을 하나 더 막을 수 있기에 서로 윈윈하는 거래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그놈들을 제대로 물 먹일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