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대한파 (3)
폭설이 내리다 못해 산사태째 밀려오는 낮.
‘······하늘은 왜 이리 재주가 많아 인간을 낳고도, 설인을 또 낳은 걸까?’
베아트리체는 천년산성 성벽에서 어깨 위에 쌓인 눈을 보고 생각했다.
혹한의 땅은 비좁아 번식력 좋은 두 종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면,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투두두두.
새하얗게 몰려드는 설인들을 내려다보며, 북부의 지배자로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 무슨 설인 숫자가······.”
“설산이 내려온다······.”
“······.”
베아트리체 곁에 선 북부 영주 대리인들은 눈보라만큼이나 많은 설인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타락 영주들을 숙청하고 나니, 그 자제나 대리인이 대신 참전하느라, 노련하고 전쟁을 겪어본 지휘관이 많지 않은 것이다.
안 그래도 전력상 큰 열세인데, 통제력과 아군 사기까지 떨어지는 상황.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베아트리체는 눈보라 속 하늘을 올려다본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데리고 최북단 요툰헤임 산맥으로 진격 중인 네카르.
네카르가 떠나기 전에 남겨둔 ‘비책’이 있으니까.
제6군단장 설인왕 이미르가 강림할 때까지 버티는 걸 목표로 한다.
휘이이잉. 고오오.
그 사이, 설인들도 집결을 마쳤다. 천년산성 앞에서 대열을 맞춘 괴물들.
그들은 고함을 지르지도, 홀로 멋대로 튀어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명령을 기다리며 새까만 눈동자에 살기를 담는다.
엄정한 군기.
본능과 맹목으로 움직이던 설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질서정연하다.
성벽 위 병사들이 히익 소리를 낸다.
스르륵.
저벅저벅.
그때 설인들이 스스로 반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구의 리치가 다가온다.
세미 리치 데라한.
홀로 대영지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려 5써클 1티어에 해당하는 초고위 흑마법사.
베아트리체는 네카르가 적들의 군단을 상세히 알려주었기에 상대가 누군지 알아봤다.
[인간들에게 묻겠다.]
데라한은 바람이 눈발을 때리는 정막을 깨고 턱 뼈를 연다.
[그대들은 우리 설인 군단에게서 진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5초 간 침묵한다.
인간 군단 스스로조차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데라한은 말을 이었다.
[황제는 이미 너흴 버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니케아 제국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치려 하느냐?]
“······.”
세미 리치는 두개골에서 검보라빛 연기를 뿜어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병사들 또한 절망감과 공포에 빠진다.
[살고 싶은 자에게 기회를 주겠다.]
두려움에 질린 인간들을 현혹한다.
[지금 당장 아군에게 무기를 겨눠라.]
“······!”
[우리 설인왕 이미르께선 자비로우신 분. 항복하는 자들을 결코 버리시는 일이 없으시니. 칼을 거꾸로 든 자부터 구해주마. 그들은 마땅히 본래 갖고 있던 것은 물론, 더 많은 노예와 보화를 갖게 될 것이다.]
데라한이 그 말과 함께 발 구르는 설인들.
쿵, 쿵, 쿵!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것이 살벌한 군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무력시위였다.
“······.”
“······.”
성벽의 병사들은 물론, 북부 영주들의 고개가 자연스레 베아트리체에게 돌아간다.
이미 체격에서 다소 압도당한 상황. 적들이 이성을 가지고 자비를 베푼다면, 맞서 싸우기 싫었으니. 좋은 조건일 때, 항복하고 싶은 눈치다.
이에 사령관 베아트리체는 확성 마법이 걸린 구슬을 든다.
“새빨간 거짓말이로구나.”
차갑게 식은 눈매.
네카르에게 세미 리치 데라한이 지능이 뛰어나고 악랄한 존재라는 걸 전해 들은 순간, 악마의 제안 또한 예상 범위 안이었다.
“정녕 너희가 평화로이 북부로 남하한다면 구태여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으로 내려가기 위한 교두보? 그렇다면 중앙 대륙의 요새를 무너뜨릴 공성 병기는 있는가?"
[······.]
“북부를 약탈한 노략품으로 만들겠지. 이를 종용하다니. 지금 우리더러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도 마주하란 말이더냐?”
베아트리체는 묻는다.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약탈밖에 없지 않느냐고.
“또한, 병사들이여 들어라. 황제가 우리를 버렸다 한들 니케아 제국은 건재하다."
[······.]
"이는 설인을 도와 중앙 침공에 가담한다면, 전 대륙의 공적이 된다는 뜻일 지어니.”
망군인 황제가 설인을 나서서 막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 곁에서 제국을 수호하는 12명의 기사 ‘로얄 가드’가 있으니.
중앙이 위험해지는 순간, 그들이 나서서 설인들을 쓸어버릴 것은 분명하다.
“수십 년간 함께한 동료를 버리면서까지 기어이 제국의 분노를 사고 싶은 자는 마땅히 무기를 버려도 좋다.”
더구나 북부는 버려진 지 수십 년.
대륙 어느 곳보다 동료애가 짙은 곳 중 하나니. 고향 사람들을 버리고 홀로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것이다.
그 점을 공략한다.
휘이잉. 펄럭.
실제로 눈발에 깃발이 나부끼는 소리만 들린다.
병사들은 고요 속에 아무도 무기를 버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제야 결연한 눈빛으로 무기를 다잡는 병사들.
[······인간 계집. 기어이 제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구나.]
그 모습에 세미 리치는 분한 듯 붉은 눈을 활활 불태운다.
다 된 축제에 비를 뿌렸다는 듯 베아트리체를 노려본다.
[차가운 눈바닥에서 쓰러져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척.
따라서 손가락 뼈로 베아트리체를 가리킨다.
그녀가 이 천년 산성의 사령관이자 기둥이란 걸 눈치챘기에.
투두두두두-!!
-그워어어-!!
그와 동시에 달려드는 설인들.
일사불란하게 진격한다. 토씨 하나 없이 달려오는 적들. 마치 흑마법에 세뇌돼 조종당하는 좀비마냥 달려든다. 격하게 움직인다.
“전군 들어라.”
반면 베아트리체는 통신 구슬에 대고 차분히 읊조린다.
“화살을 쏘지 말고 대기하라.”
전혀 의외의 명령을 내린다. 모두를 당혹시킬 명령.
“베, 베아트리체 공! 안 그래도 불리한 전력 차인데 어찌 초동 대응을 포기한단 말입니까!”
한 영주가 놀라 따지듯 물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무시한다. 망부석처럼 요지부동이었다.
-크워어어!
-고오오오!
이에 충분히 다가온 최전선 설인들이 들고 온 나무를 집어 던진다. 뿌리째 뽑은 침엽수.
이를 성벽 위 병사들에게 집어 던진다. 순수 근력만으로. 폭발적인 힘을 낸다.
“피하지 말도록.”
베아트리체는 갈수록 더 잔혹한 명령을 내린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사기가 떨어졌던 대부분의 병사는 개소리 말라는 듯 허리 숙여 성벽에 몸을 숨기지만,
기사들은 그 명령대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서있는다.
쐐애액! 쿠과과광-!!
설인들의 나무들이 성벽을 강타한다. 그러나 제대로 적중하는 나무는 거의 없다.
공포탄.
설인은 근육은 충분하지만, 물건을 정확하게 던질만한 투척술을 가지진 못했으므로.
너무 낮게 던져 성벽을 일부 무너뜨리거나, 너무 높게 날려 기사 머리 위로 훌쩍 날아가버린다.
“오오오······?”
그제야 성벽 위에서 허리를 드는 병사들. 생각보다 별 피해 없다는 걸 자각한다.
번쩍.
그와 동시에 일정 간격마다 서있는 기사들이 올려다본다.
광이 나는 전신 갑옷이 햇빛에 찬란히 빛난다.
저 공포스러운 설인들의 진격에도, 뿌리째 던지는 나무가 날아와도 두려움 없이 꼿꼿이 서있는 기사들.
그들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걸 자각한다.
서걱, 쿠우웅!
-크워어어?
-크아아악-!!
그와 동시에 설인들 측에 이상 징조를 발견한다.
성벽 앞까지 초고속으로 달려오다가 코앞에서 무릎 꿇고 쓰러지는 설인들.
한두 명이 쓰러지는 게 아닌, 선두로 달려오던 설인들이 일제히 발목이 잘려나간다.
“저, 저건······?”
“강철실이다!”
병사들은 놀란 표정으로 성벽 앞에 설치된 반짝이는 실을 발견한다.
강철실.
진동 마법이 서려 있어 발목이 베이는 장치.
만약 잘 보였다면 능히 피해갔겠지만, 짙은 눈이 뒤덮어 숨겨졌기에, 피하지 못하고 발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크워어억?
-크우우욱.
쿠당탕탕탕!
더구나 최전선 설인들이 넘어지게 되면서 돌진이 망가진다. 뒤따라오던 설인들이 앞으로 달리다가 길이 막혀 줄줄이 넘어진다.
공포의 사신 같던 적들이 한순간에 엉망이 된다.
겁먹었던 인간 병사들은 바로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베아트리체는 그제야 다시 통신 구슬을 연다.
“용맹한 혹한의 전사들이여. 경거망동하지 말라. 그대들은 북부를 지키는 검일 지어니.”
채앵!
그녀가 손을 들자 기사들이 일제히 허리춤의 검을 뽑는다.
“이 산성이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이유를 몸소 보여주도록 하라.”
지이잉!
성벽에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검기를 내뿜는다.
-쿠오오!
몇몇 설인들이 분개한다. 땅을 힘껏 박차고 단숨에 성벽 위까지 뛰어오른다.
“일검.”
촤아악-!!
오르비스 기사들은 성벽 위로 콰앙, 착지한 설인들을 동시에 베어낸다.
아무리 근육이 뛰어난 설인이라도 성벽 위에 쾅 떨어지면 다리뼈에 큰 무리가 가서 잠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쿠웅, 쿵. 쿵!
우와아아아-!!!
성벽 아래로 묵직한 설인 시체가 떨어진다. 성벽이 적의 피로 흠뻑 젖는다.
그 모습에 인간 연합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드디어 사기를 되찾은 모습.
베아트리체는 겉으로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과연. 네카르 경께서는 이런 방법을 어떻게 떠올리신 걸까? 그분도 설인과 대규모 전쟁은 처음이실 텐데.’
물론 베아트리체 또한 속마음은 환희와 희열로 날뛰었다.
이는 설인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상이므로.
네카르가 북부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
치직.
[······베아트리체 공. 후방 기사단, 출격 준비 완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설산검 레오파드의 무전통신.
천년산성 별동대를 데리고, 아군 후방에 숨어서 대기한다.
“좋습니다. 레오파드 경. 거대 늑대 펜리르가 후방에 기습하는 지 다시 한번 척후병을 보내십시오.”
네카르의 예언대로 거대 늑대 군단이 기습할 것을 역으로 매복한다.
무려 북부 최강의 검을 숨겨둔다. 비록 과거이긴 하나 로얄가드의 수장을 맡았던 이를 대기시킨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저 멀리 있던 희망이 눈앞으로 다가온 기분.
베아트리체는 남몰래 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한다.
‘그런데 네카르 경께서는 최북단에서 도대체 무얼 하시려는 걸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내 곁에 남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
“네카르 경. 요툰헤임 산맥입니다. 이제 막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레지스탕스 드워프 대원 하나가 보고한다.
나는 어스 마법으로 땅속을 부숴버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위가 ‘우트가르다’ 산인가.”
땅굴 천장을 올려다본다.
우트가르다 산.
적들의 근거지 요툰헤임 산맥에서도 가장 해발 고도가 높은 산.
만년설의 악마 아우둠라와 성물 기간테스의 힘이 잠들어 있는 산이다.
말 그대로 적들의 최종 본거지.
그곳 바로 아래까지 도착했다.
“레지스탕스 대원들.”
“옛, 네카르 경.”
나는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모조리 집결시킨다.
엘프와 드워프 연합군.
이 작전을 위해 레지스탕스 전원을 끌고 온 것이니.
“산 전체 기반을 무너뜨려라. 마치 부실 공사를 하듯, 지하 기둥을 허물고 금을 내라.”
“예? 그 말씀은?”
“죄송하지만 그렇게 되면 산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 정도면 산사태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며 말하는 레지스탕스 대원들. 그들은 당장 떠오르는 최악의 사태를 거론한다.
“그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드워프와 엘프들의 낯빛에 서서히 흙빛으로 변한다.
“저, 네카르 경. 저희가 아무리 착공 기술이 뛰어나고, 흙의 정령과 계약했다곤 하지만, 이렇게 높은 산을 무너뜨릴 정도는 못 됩니다. 일부가 먼저 허물어지고, 적들이 눈치챌 겁니다.”
“맞습니다. 그 정도로 무리하게 공사하다간 저희가 먼저 깔려 죽게 될 것입니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당장 손사래를 친다.
그건 불가능한 임무라는 듯.
자신들이 죽게 될 일이라는 듯 말이다.
“무너뜨리는 건 내가 할 일이다. 너희는 그저 사전작업만 하면 될 뿐.”
“!!”
그러나 이미 어스 마법을 집단 마법으로 시전하여 ‘어스 퀘이크’ 마법을 전개해본 나로선 충분히 가능한 임무였다.
차원이 다른 작전 스케일.
그제야 의도를 눈치채고 경악하는 엘프와 드워프.
“······어디 가십니까?”
“적의 심장부를 미리 파괴하고 오겠다.”
“······!”
나는 부실 시공이 끝나면 통신 구슬로 연락하라고 말 한 뒤, 용용이와 단둘이 지상으로 올라간다.
죽을 수도 있는 임무.
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을 강요할 순 없으니까.
휘이이이잉.
홀로 지상으로 나와보니 얼음으로 된 성체가 보였다.
구름 위 천사가 진노라도 한 건지 허공을 가득 메우는 폭설.
그 폭설이 쌓인 얼음층들이 계단처럼 솟은 것이다.
‘우트가르다 산은 흙으로 된 산이 아니라, 얼음으로 된 산이었지.’
얼음층 곳곳에 창문 같은 구멍이 뚫린 걸 확인한다.
“가자.”
-키야아악!
나는 용용이 등에 올라타서 명한다.
사막에 살던 샌드 드레이크였으나 마나로 열을 피워올리며 초고속으로 날아오르는 용용이.
한마음 한 몸이 되어 두려움 없이 얼음층 속 창문으로 쾌속 질주한다.
-그워어어어!
-그오오오.
-lv31 정예 설인.
-lv33 정예 설인.
그 안은 거대 얼음 홀이었다.
수백 마리의 정예 설인이 빼곡히 있는 얼음 홀.
[아우우우우.]
-lv55 만년설의 악마 아우둠라. (화신체.)
그리고 북부의 수만 마리의 설인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악마.
거대한 얼음 암소 모양에, 등에 검은 뿔이 잔뜩 달린 아우둠라가 보였으며.
고오오오.
-lv??? 성물 ‘기간테스의 힘’ (타락화.)
-lv21 3써클 흑마법사 다크 엘프 다니엘.
마지막으로 거대 반지, 성물 기간테스의 힘을 흑마법의 힘으로 타락시키는 다크 엘프들이 보인다.
“저, 저건······!”
“아룡기사! 교단의 적. 프레야의 개다!”
내가 얼음홀 천장 위로 강림하자, 하던 일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손가락질하는 다크 엘프들.
-그워어어!
콰앙!
그 말에 설인들이 얼음 바닥을 박차고 5m 가까이 뛰어오르고.
사아아, 콰아아아!
다크 엘프들이 흑마법을 발동해 수백 개의 얼음 흑마법을 요격한다.
【중력 제어 lv1.】
물론 그래봤자 오른손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도 모조리 무효화됐지만.
중력 마법. 용족의 최고 권능 중 하나를 발현한다.
쿠과과과광-!!
“크아아악? 저, 저놈! 공격을 반사한다!”
“중력 마법? 저놈이 진정 교단의 최우선 척살 대상 마신 문두스란 말이더냐!”
엉망진창이 되어 피바람이 부는 얼음층.
하늘로 솟구치던 모든 것이 수직 낙하해 아군을 덮친 것이다.
살아남은 다크 엘프들은 경악하여 뾰족한 비명을 지른다.
“곧 죽을 것들이 알아 뭘 하려고.”
【아쿠아 lv3.】
촤아아아악-!!
이번엔 내 차례다.
나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얼음 속 수분을 뽑아낸다.
지상 위가 모조리 얼음으로 된 우트가르다 산.
이는 주위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물 마법사로서 대단히 유리한 고지일뿐더러, 이 얼음 성채를 무너뜨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지어니.
쏴아아아.
아쿠아 스톰으로 쓸 물을 모은다.
허공에서 넘실거리는 거대한 파도. 아직 붉은 눈의 스태프를 꺼내지도 않았거늘, 그에 준하는 거대한 파도가 요동친다.
“이, 이건······!”
“피해라! 우선 ‘기간테스의 힘’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라. 어서!”
무시무시한 양의 물에 다크 엘프들이 경악한다. 절대 반지를 대피시킨다.
-크롸아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용용이.
그의 포효에 다크 엘프들은 혈색이 파리하게 변한다. 뾰족한 귀가 벌벌 떨린다.
아룡족의 포효.
상급 대형 몬스터의 살기는 마나와 감정에 민감한 엘프들에게 극도로 위협적이었기에.
이 점은 일반 엘프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했기에. 감히 달아날 수도 없게 얼게 만든다.
‘사실 이 녀석들이 없었으면 내가 성물 기간테스의 힘을 차지할 수 없었겠지.’
본래 기간테스의 힘은 프레야 교단의 성물.
그것도 일격에 성을 무너뜨리는 절대병기 중 하나다.
지금처럼 적들이 훔쳐서 타락화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내가 소유하는 걸 결코 허락받지 못했을 터.
따라서 나는 성물 기간테스의 힘을 가지고 달아나려던 다크 엘프들에게 고한다.
“고맙다. 덕분에 반지 잘 쓰마.”
콰아아아아-!!!
물의 폭풍이 작렬한다. 얼음층이 무너지고, 얼음 성채가 흔들린다.
감사 표시로 고통 없이 보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