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가짜 마신 (魔神) (2)
내 손짓 한 번에 바위무더기로 처박힌 수십 명의 흑기사.
원체 압도적인 중량이다보니 그 누구도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압도적인 광경임에도 흙먼지는 나지 않았다.
쏴아아.
셔우드 산 일대를 드리운 먹구름.
내가 일으킨 헤비레인이 거센 빗줄기를 내리치고 있으니.
추적추적 빗방울이 흙바닥을 때리는 소리만 들린다.
가끔 들리는 천둥소리에 맞춰 흑기사들이 주춤거린다.
반격은커녕 기세가 벌써 꺾인 상황.
이에 흑기사단장 다네스가 매섭게 고함친다.
“마신 문두스! 교단의 최우선 적이다! 암흑 검기를 쏘아내라!”
“검기를 날릴 수 없는 자는 장궁을 꺼내 들어라!”
내가 드래곤 윙즈로 하늘에 떠있는 만큼 흑기사들은 원거리 공격을 준비했다.
각자 사악한 검기를 뿜어내고, 화살촉을 겨눈다. 화살촉에 가지각색의 마력을 담는다.
“이건, 사악한 마나······?”
“자, 잠깐! 일단 대륙 공적인 마신 문두스부터!”
-lv33 마탑 흙 마법 교수 크라드.
-lv23 마탑 흙 마법사 페냐.
.
.
마탑의 마법사들도 식은땀을 흘리며 흙 마법을 일으킨다.
옆의 흑기사에게 마기가 느껴짐에 의아함을 느끼지만, 일단 살기 위해서 나한테 먼저 흙 마법을 시전한다.
고오오오! 쐐애애액!
과연 북부 최정예답게 누가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닌데도 동시에 사격한다.
수백 발의 화살과 암흑 검기, 그리고 흙 마법이 화려하게 솟구쳐 오른다.
하나하나가 죽음의 일격.
지상의 모든 것들이 날을 세우고 내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헉······?”
“이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주위 민간인들과 천장이 열린 지하 속 레지스탕스 대원들.
베아트리체 또한 무표정이 깨져 풀린 동공으로 날 올려다본다.
마치 친아버지가 죽는 장면을 떠올린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모습.
이에 나는 고요하면서도 잔잔하게 대응한다. 오른손에 쥔 붉은 눈의 스태프를 들어 올린다.
【중력 제어 lv1.】
마신 문두스의 권능 ‘중력 마법’을 실현한다.
고오오오! 쿠과과광-!!!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고요하지 않았다.
내 오른손이 움직이자, 그 아래에 날아오던 날카로운 것들이 모조리 방향을 180° 꺾인다. 땅으로 내리꽂힌다.
심지어 날 향해 날아올 때보다 2배는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내리꽂히는 가지각색의 선들.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만했다.
“크아아악!”
“커헉······! 어떻게?”
“크윽. 중력 마법······! 정말 마신 문두스다. 북부의 대재앙이 돌아왔다!”
남을 해치려고 했던 만큼 자기 자신이 당한다.
중력 마법의 진정한 위력을 지켜본 흑기사와 마탑 마법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기야 하늘 아래 그 어떤 것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권능이니까.
다만 나는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아쿠아 lv3.】
촤아아아악!!
이번엔 왼손을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내리던 수만 방울의 빗방울이 내 왼쪽 손바닥 위로 모조리 빨려 들어온다.
고오오오오-!!
하늘에서는 천둥이 치고 폭우가 내리는데, 땅은 빗방울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아 소리가 멎고 고요해지는 기적.
모두의 시선이 빗방울과 함께 내 손아귀로 쏠려 들어간다.
나는 그 상태에서 왼손을 지상의 흑기사들에게 겨눈다.
두려움에 질린 눈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쿠아 붐.”
한 마디 읊조린다.
아쿠아 붐.
물의 5써클 마법으로, 단일 대상 파괴력만큼은 아쿠아 스톰을 뛰어넘은 파괴 마법.
과거 제7군단장 불사왕 데힐라칸을 처치할 때 사용했던 비기.
그 마법을 흑기사단들에게 시전한다.
콰아아아아아-!!!
푸른 물기둥이 작렬한다. 일대 공간이 흔적도 없이 박살 나는 위용. 흑기사들이 있던 곳을 깨끗이 소멸시킨다.
“으으, 으아아-!!”
“도망쳐라! 저 괴물과 눈 마주치지 마!”
“산개해라! 뿔뿔이 흩어져! 모두 흩어져야 최대한 산다!”
그 모습에 흑기사와 마탑 마법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사방으로 달아난다.
지이잉, 콰아아아아-!!
그러나 나는 달아나는 흑기사들에게 또 다시 아쿠아 붐을 모아서 연거푸 발포한다.
물론 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내게 덤빈다면, 가짜 마신인 나로선 살아남을 수 없겠지만.
진정 마신다운 위용에 감히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한다.
원체 압도적인 위력과 캐스팅 속도 때문에 내가 가짜 마신이라고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르르륵!
“우, 움직이지 마라! 마신 문두스!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네가 구하려던 사람들을 죽이겠다!”
-lv49 배교자 베르너 폰 오르비스. (암흑 계약.)
결국 베르너 공작이 도주를 포기하고 흑마법을 시전한다.
흑마법을 겨눈 방향은 지하 속 베아트리체.
만약 자신에게 아쿠아 붐을 겨누면 베아트리체를 태워죽이겠다는 선언이다.
“······.”
실제로 나는 그런 위협에 잠시 왼손을 멈춘다.
확실히 베르너 공작의 레벨은 49. 무려 과거 엡실론보다 레벨이 3밖에 안 떨어지는 고위 흑마법사.
아무리 베아트리체가 훗날 북부 최강검이 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베르너 공작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을 터이니.
베르너 공작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협박이 통했다는 듯 안도의 미소를 지을 때,
-우우움!
쿠구구구궁-!!
흙의 하급 정령 노움을 소환한다.
베르너 공작이 있는 땅을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한다.
베르너 공작이 균형이 흔들려 우왁, 비틀거릴 때,
【워터 소드 lv3.】
오른손으로 물의 검을 만들어 내지른다.
베르너 공작이 나름 전력으로 흑마법으로 다급히 방어막을 만들지만······.
이는 과거 데힐라칸을 처치할 때 심장을 꿰뚫었던 일격.
푸확!!
그대로 베르너 공작의 왼쪽 가슴을 꿰뚫는다.
베르너 공작이 힘없이 땅 아래로 끝없이 떨어진다. 털썩 쓰러진다.
“맙소사! 영주님과 기사단이 패배했다고?”
“마신 문두스가 우리까지 죽일지 몰라!”
“어서, 어서 집으로 달아나. 어서!”
그 모습에 구경하고 있던 인근 영지 주민들까지 완전히 질겁하고 달아난다.
혹여 저 마신이 자신들까지 덮치지 않을까 염려하여.
“헉······. 헉······.”
모든 일이 끝났다.
살아남은 흑기사와 민간인들이 모두 달아났다.
하지만 기뻐할 틈은 없다.
마나가 아무리 많아도 그걸 활용하는 육체가 견디질 못하니.
머릿속이 어지럽다. 들숨 날숨을 크게 마시고 내뱉는다. 토할 듯이 속이 울렁거린다. 심장이 쾅 터질 것 같다.
스르륵.
드래곤 윙즈가 천천히 사라진다. 지상으로 서서히 내려온다. 툭 내려온다.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쉰다.
다행히 작전대로 적들 속이고 내쫓아서 다행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정말로 죽을 뻔했다.
“······당신은?”
어지러움 속에 비틀거리고 있으니, 어느새 베아트리체가 지하에서 올라왔다.
베아트리체는 천천히 다가와서 양쪽 무릎을 꿇는다.
날 무릎 위에 놓은 후, 조심스레 내 가면을 벗긴다.
“네카르 경?”
숨을 헉 들이마신다.
어느 정도 예측은 했겠지만, 실제로 확인하는 건 다른 문제일 터이니.
나는 그런 그녀에게 속삭인다.
“베르너 공작은, 이제 죽었다······. 지금 오르비스 공작위는 빈자리다.”
“!”
베아트리체는 내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르비스 공작위.
북부의 패권을 가진 자리. 그 자리가 공석이다.
만약 지난번 베르너 공작 같은 자가 빈자리를 강탈한다면 큰일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눈치챈다.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거죠······?”
베아트리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하기야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부활과 설인왕 이미르의 존재를 모른다면 의아할 수도 있을 거다.
방금 내가 선보이는 건 중력 마법.
말 그대로 마신의 위용일 지어니.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녀가 필요 없이 힘으로 가능할 것이라 보이니까.
‘분기점이군.’
다만 나는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에서도, 공략법을 떠올린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지만,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 지부터 떠올린 거다.
방금 베아트리체가 한 대사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도 결말 부근에 나오는 중요 분기점 중 하나니까.
문제에 정답을 고한다.
“나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베아트리체가 가장 듣고 싶어 할 말을 전한다.
그녀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끝없이 버려지는 삶을 살았으니.
수많은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잊힌 설움을 달랜다.
“······.”
비록 베아트리체는 원작보다 10년이나 젊은, 10대 소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10년 후 원작 베아트리체처럼 한참 멍하니 날 바라본다.
동공이 풀린 눈. 잔잔한 호수 같던 눈동자에 오롯이 내 얼굴만이 담긴다.
무표정이 서서히 걷힌다. 인형 같은 태도가 깨지고 한 명의 사람처럼 생동감이 생겨난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데.’
물론 나는 베아트리체에게 다른 말도 하고 싶었다.
현재 상황은 내가 마신 문두스를 사칭한 상황.
원작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기에.
대륙이 어떻게 요동칠지, 악의 교단은 어떻게 나서고, 황제가 어떻게 나설지 예측이 가기에 이에 대해 대비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용의 권능을 무리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파괴 본능이 빠르게 차오릅니다. 정신 방어 기제가 발동합니다.
-영혼이 크게 지쳤습니다. 졸음이 쏟아집니다. 몸이 숙면을 요구합니다.
.
.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온다.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또한 발동한다.
정신을 붙잡으려고 애써보지만, 불가항력이다.
결국, 몸이 땅바닥으로 크게 기운다. 흙바닥에 쓰러질 듯 무겁게 쓰러진다.
와락.
베아트리체는 그런 날 붙잡아준다. 양팔로 내 몸을 바짝 안아 든다.
그 모습은 오해를 살 법한 자세라 스스로도 놀란 모양이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 괜찮겠지.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
비 내리는 셔우드 산 일대.
베아트리체는 망부석처럼 계속 무릎 꿇고 앉아있었다.
양쪽 무릎 위에 잠자는 네카르를 누인 상태로.
툭, 투두둑.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는다. 그녀는 몸이 젖는 걸 인식도 못 한 채 생각에 잠긴다.
‘이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뭘까?’
가면을 다시 씌워준다. 그는 그녀가 알던 네카르가 맞았다.
겨우 22살이라는 나이로 동부의 구원자라고 불리는 사내. 북부에선 아룡기사로 더 유명한 사내다.
정말로 그가 마신 문두스인 걸까? 하지만 마신 문두스는 수십 년 전 사람일 텐데?
하지만 네카르가 마신 문두스가 아니라면, 방금 그 힘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베르너 공작과 흑기사 1천 명을 홀로 물리친 힘. 이는 동부 최강 마법사라는 엡실론조차 불가능할 테니.
풀리지 않는 상황에 상념에 잠긴다.
‘아니. 그건 이미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내 냉정한 이성이 돌아오고,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는다.
상대가 마신 문두스든, 가짜 마신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찌 됐든 이 자는 위기에 빠진 레지스탕스를 구원해준 자.
수많은 동료와 피난민들의 은인이다.
심지어 방금전, 자신이 베르너 공작에게 인질이 됐을 때도 목숨을 구해준 자 아닌가?
레지스탕스에는 철칙이 있다.
가장 힘들어할 때 도와준 자를 배신하지 않기로.
그것이 고향을 잃고 쫓겨나던 이종족 피난민들을 하나로 뭉친 구호였으니.
따라서 대륙 공적이 되든, 무엇이 되든 네카르는 함께 피를 흘린 동료로서 은혜를 입었다.
더구나 레지스탕스로서도 이 정도 강자의 협력은 너무나 꿈꾸던 일이었으니. 그것도 동료를 버리지 않는 자였으니.
일이 어찌 되든 함께할 것이다.
‘······잠깐. 방금 내가 미소를 머금었다고?’
그래서 베아트리체는 그보다 다른 것에 놀랐다.
손가락을 가면 밑으로 집어넣어 제 볼을 어루만진다. 부드럽게 이완된 얼굴 근육.
끝없는 우울함과 좌절감, 그리고 베르너 공작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수년간 무표정을 지었거늘.
방금 자신은 생기 넘치게 웃었다.
마치 아무 일 없이 부모님 밑에서 어여삐 자란 10대 소녀처럼 말이다.
‘이 감정은, 뭐지······?’
베아트리체는 다시 무표정을 지었다. 제 무릎에 누워있는 젊은 사내를 살핀다.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이 넓은 어깨를 가진 사람만큼은 날 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자신이 무너지고, 레지스탕스가 망가져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하기야 그녀조차 자신들을 틀림없이 버리리라 생각했을 때도 구하러 와준 사람이니.
자신도 모르게 헤픈 미소를 짓고 마는 것이다.
“대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직 알바헤임에 묻힌 동지들이 많습니다.”
“각 영지에서 레지스탕스 탄압을 피해 잠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행동 강령을 정해주십시오.”
“······.”
그때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다가와서 물었다.
베아트리체는 다시 무표정을 짓는다. 혹여 오해를 살 수도 있었던 상황.
급박한 와중에 가면을 쓰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들은 일단 구조 작업을 시작하세요. 알바헤임은 복구할 필요 없습니다.”
“예? 그럼 앞으로의 근거지는?”
“현재 베르너 공작이 죽었습니다. 제가 차기 대영주에 오른다면 더는 지하에 숨어지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
베아트리체는 판도가 바뀜을 인지했다.
만약 자신이 오르비스 공작이 된다면 더는 핍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북부의 패자로서 집단 핍박을 멈추라고 명령하는 되는 일이니.
오르비스 대영주.
그 위치는 가히 북부 전체를 다스리는 왕과 다름없는 작위였다.
“중앙에서 마신 문두스에 대해 조사를 나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 단순한 헛소문으로 넘어가야겠지요.”
베아트리체는 담담히 말한다.
마신 문두스.
그 이름은 북부는 물론, 아르카나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에게도 악몽 같은 이름이니.
결코, 사실임을 밝혀선 안 된다.
만약 밝혀진다면 그녀는 북부의 왕으로서 전 대륙과 전쟁을 치러야 할 테니.
“그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귀한 분이니 저희가 가까운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몇몇 대원들이 양팔을 펼치고 말한다.
네카르를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말.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에 베아트리체는 즉답해버렸다. 자기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흠흠, 헛기침하며 부하들이 가져온 말 위에 앉힌다. 자신이 뒤에서 한 손으로 끌어안는다.
“이분은 제가 오르비스 성으로 직접 모시지요.”
히히힝!
그렇게 베아트리체는 네카르를 직접 안아 들고 오르비스 대영지로 말을 몰았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지하에 갇힌 피난민들을 구하느라 한 명의 손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그녀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으므로.
은인에게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명목하에, 굳이 직접 오르비스 대영지 숙소로 데려가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