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눈보라의 악마 (3)
나는 아쿠아 실드를 스키처럼 발판삼아 미궁 곳곳을 미끄러진다.
쐐애애액-!!
초고속으로 나아간다.
바람의 길이 등 뒤에서 막강한 순풍을 밀어주고 있었기에, 방향 조절 또한 손쉬웠다.
[키약! 인간, 내 소중한 병사들을 망가뜨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느냐!]
그러나 섬뜩,
심장이 쪼그라든다.
눈보라의 악마 니키타.
바로 등 뒤에서 마계의 악마인 설녀가 분노해 고함지르며 내 뒤를 쫓고 있었으니.
쏴아아아아-!!
등 뒤에 거대한 눈의 파도가 일어난다. 이미 망가진 얼음 병사를 치환하여 막대한 얼음 결정을 일으킨다.
마치 입을 쩍 벌린 눈의 괴물이 되어 내 꼬리를 뒤쫓는다.
번쩍!
고오오오, 쐐애애액-!!!
심지어 설녀는 눈을 타고 하늘을 날아 허공에 수십 개의 얼음 마법진을 펼친다.
얼음 계열 1써클 초급 살상 마법 ‘아이스 미사일’과 3써클 중급 살상 마법 ‘아이스 스피어’.
닿는 순간 폭탄처럼 얼음이 터지는 미사일과 관통력 강한 얼음의 창을 한꺼번에 수십 개씩 쏟아낸다.
“큿!”
【바람의 길 lv3.】
【워터 실드 lv3.】
나는 뒤쫓아오는 설녀의 폭격을 눈치채고 빠른 속도로 회피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워터 실드를 몇 겹으로 펼쳐서 막아낸다.
[······인간 주제에, 같잖구나!]
내가 이것마저 잘 막아내자,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직감한 설녀 니키타. 분노를 내려두고 냉정을 되찾는다.
방법을 바꾼다.
내게 아니라, 나약한 레지스탕스들을 노린다.
설산에서 프로즌 크리스탈을 찾느라 뿔뿔이 흩어진 자들에게 시선을 돌린 거다.
[하지만 이것만은 못 막을 거다!]
번쩍!
고고고고!
비장의 마법을 사용하는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대형 마법진을 소환한다.
쿵, 쿵, 쿵, 쿵!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묵직한 진동. 바닥에 깔린 눈길이 펄쩍 뛰어오르는 진동이 다가온다.
-쿠고오오오!
“!”
“!!”
저 멀리서 거대 코끼리가 등장한다.
외형은 코끼리였으나, 덩치는 배는 크며, 두터운 털로 무장한 존재들.
-lv45 고대 몬스터 매머드.
-lv45 고대 몬스터 매머드.
.
.
고대 몬스터 매머드.
그 크기가 포르티스 성벽 높이보다 큰 거대 코끼리 10마리가 설산을 포위해서 일제 돌격해오는 것이다.
“모두 반격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
이에 나는 질주하면서 베아트리체와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향해 고함쳐서 명령한다.
아까 출발하기 전에, 미리 지시한 내용이다.
‘레벨 45은 거의 카넬에 비할 법한 레벨. 아무리 니키타라도 마음대로 만들 수 없는 몬스터니까······!’
즉, 지금 보이는 매머드들은 눈보라의 환영.
오히려 마나를 끌어 올려 반항하면 그만큼 마나를 흡수해서 실체화하는 마법이다.
따라서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는다.
몸을 떨면서도 굳게 가만히 있는 레지스탕스.
스르륵.
그러자 실제로 매머드의 환영이 그들을 통과한다.
만약 마나를 끌어 올린 자가 있었다면 막중한 몸무게에 짓밟혀 즉사했으리라.
[······네놈,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듯 날 쳐다보는 니키타.
하기야 이는 그녀만 가지고 있는 비장의 환영 마법이었으니,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그딴 걸 알려주고 있을 틈 따위 없다.
‘결국, 니키타를 소멸시키기 위해선 프로즌 크리스탈을 파괴해야 하는데······.’
나는 레지스탕스 드워프들에게 빌린 광맥 탐색기를 확인한다.
삐비빅.
그와 동시에 나타난 건 50개의 빨간 점.
그 하나하나가 모두 프로즌 크리스탈이었다.
눈보라의 악마 니키타의 목숨이 담긴 크리스탈.
이는 분명 단 1개이지만, 겉모습이 똑같은 프로즌 크리스탈이 무려 49개나 더 있는 것이다.
[킥, 쿡쿡······.]
내 등 뒤를 쫓아오는 니키타가 작전을 눈치챘는지 냉소를 머금는다.
목숨이 최대 50개나 있는데,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표정.
‘······심지어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진짜 프로즌 크리스탈은 50개 중에서 하나가 랜덤으로 결정됐지.’
가히 지랄 맞은 난이도.
히든 퀘스트 중 하나인 악마의 미궁이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말 얼어 뒈질 거라면 오지도 않았다!’
【바람의 길 lv3.】
나는 이 악물고 집단 마법으로 속도를 높인다.
방향을 바꿔 베아트리체 쪽으로 향한다.
고오오!
“프로즌 크리스탈은!”
“······거의 다 모았습니다!”
저 멀리서 베아트리체가 길이 150cm짜리 프로즌 크리스탈을 들고 오며 소리친다.
빙하기가 도래한 듯 눈덩이째 쏟아지는 눈보라를 맞아 온몸이 눈에 파묻힌 모습.
치링.
그러나 결국 그녀와 레지스탕스는 총 50개 중에서 무려 49개의 프로즌 크리스탈을 한 군데에 모았다.
내가 시간을 끄는 사이, 광물 탐색기로 어떻게든 마계화 된 설산을 뒤진 것이다.
[쿡쿡······?]
뒤따라오던 설녀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녀의 표정에 깃든 것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프로즌 크리스탈은 차디찬 마나를 머금어서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한 특급 희귀 보석.
기껏 49개의 크리스탈을 모은 건 인정할 만하지만, 그것들을 무슨 수로 파괴할 것이냐는 뜻이다.
‘원래 프로즌 크리스탈들은 얼음 던전속 고대 드워프의 초고열 용광로를 가동해서 녹여 버려야 하지.’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를 떠올린다.
지하 1층부터 5층 사이에 거대한 용광로가 랜덤하게 생성된다.
그곳까지 길이 1m 50cm짜리 크리스탈을 하나하나 옮겨서 녹여 버려야 이 얼어 뒤질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파괴할 필요는 없거든!”
쿵, 쾅, 쿵, 쾅, 쿵!
나는 드래곤 하트 속 마나를 끌어낸다.
<별들의 전쟁2> 최고 고인물인 내가 알아낸 파훼법.
이는 매우 심플하다.
비록 엔드 스펙이어야 가능한 수준이지만.
‘차디찬 마나를 머금는 프로즌 크리스탈. 한계까지 마나를 퍼부으면 자폭하니까!’
고고고고!
프로즌 크리스탈.
마나를 머금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희귀 광물.
하지만 그것에도 분명 한계는 있으니.
한 자리에 모아둔 49개의 크리스탈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마나를 부여한다.
고오오오!
그러자 형형한 푸른 빛을 뿜어내면서 내 마나를 빨아들이는 프로즌 크리스탈들.
처음엔 눈보라의 악마 또한 인간 마법사가 객기를 부리는 듯 싶어 비웃었지만.
파사삭! 쩌저적······!
[······!]
이내 금이 가는 49개의 프로즌 크리스탈.
와장창창! 콰과광!
과잉된 마나가 폭발한다.
연쇄적으로 박살 난다.
한 개가 한계 초과로 폭파하자, 그 옆에 있던 크리스탈이 더욱 부하가 치밀어 연쇄 폭파하는 것이다.
‘어지간한 미친놈조차 무려 49개의 크리스탈을 마나로 터트릴 수는 없으니까!’
물론 마나를 머금는 보석을 마나 과잉으로 파괴하는 것은 괴짜 플레이어라면 한 번씩 해보는 파훼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프로즌 크리스탈은 총 50개나 있으니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공략법이다.
[아, 안돼!]
번쩍, 쏴아아아-!!
총 50개의 크리스탈 중 49개가 폭파하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다급히 나서는 니키타.
삐삐삐!
그러나 나는 광물 탐색기를 통해 마지막 하나 남은 프로즌 크리스탈의 위치를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땅속이었군.]
왜 베아트리체와 레지스탕스가 바로 가져오지 못했는지 파악한다.
“지금 나서봤자 이미 늦었다.”
쿵, 고고고고!
붉은 눈의 스태프를 번뜩인다.
흙의 기초 마법 어스. 드래곤 하트의 끝없는 마나로 이 마법을 반복한다. 집단 마법을 이룬다.
쿠고고고고-!!
쿠과과광!
그러자 땅이 열린다. 마치 얼음에 균열이 가듯, 거미줄처럼 갈라진다.
어스 퀘이크.
본래 땅의 5써클 마법. 그 모습을 재현할 지어니.
땅속에 있었던 마지막 크리스탈을 발견한다.
“체크 메이트다.”
[······!]
나는 니키타의 심장이 담긴 크리스탈에 손을 뻗는다. 막대한 양의 마나를 집어넣는다.
파사삭.
마지막 크리스탈이 각설탕처럼 세밀하게 쪼개진다. 거센 눈발과 함께 흩날린다.
막대한 마나가 비쳤는지 찬연한 무지개가 그려진다.
[키야아아악-!!]
그러자 뾰족한 비명을 지르면서 형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설녀. 반짝이는 가루가 돼서 사라진다.
쿠구구궁······!
미궁 전체가 흔들린다. 마계화 된 편전 속 공간이 무너진다.
-눈보라의 악마 니키타의 생명이 담긴 프로즌 크리스탈을 파괴하셨습니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제6군단장 ‘설인왕(雪人王) 이미르’가 당신의 존재를 파악합니다. 강한 적대감을 보입니다!
.
.
그와 동시에 막대한 양의 시스템 창이 나타나고,
-당신은 드래곤 하트 속 마나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4써클 1티어에서 4써클 2티어로 승급합니다!
써클이 한 단계 더 상승했다는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무려 마계의 악마를 무찔렀음에도 고작 2티어로 승급한 수준.
‘이제부터 슬슬 더럽게 안 오르는군.’
하기야 약 1년 만에 1써클에서 4써클의 벽을 허문 것이 말도 안 되는 속도였으니.
지금도 약 한 달 만에 1티어가 승급한 것이니, 굉장히 빠른 것이었다.
애초에 동부 사막에서 5써클에 오른 자는 오직 가주 엡실론 뿐.
그것만으로 동부 최강의 마법사로 공인받았으니, 그 벽을 허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만하다.
5써클부터 정말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경지에 들어가기에 ‘대마법사’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쿠고고고!
“앗, 눈보라가!”
“일단 빠져나가죠!”
마계화 된 공간이 일그러진다. 미궁 전체가 무너진다. 이대로 남으면 생매장될 판. 서둘러 미궁 밖으로 빠져나간다.
***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간신히 미궁에서 탈출한 후, 기쁨의 탄성을 터트린다.
“우와아아! 살아남았어! 그 눈의 파도에서 살아남았다고!”
“우리가 마계의 악마를 죽였다고? 그것도 고대 드워프의 성지를?”
“심지어 아무도 죽지 않았어! 이건 기적이야! 괜히 동부의 구원자라고 불리는 자가 아니었어!”
다들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때문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으나, 그런 하찮은 것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흥분에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함께 누렸다.
아닌 게 아니라, 마계의 악마. 북부에서도 악명이 높던 스코틀린 산의 악마를 처치했으니까.
더구나 아룡기사 네카르가 악마를 유인했으며, 얼음 병사들까지 미리 다 부수고 최종 전투를 시작했기에 부상자는 많아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스코틀린 지하 속 탄광도 차지할 수 있게 됐으니까.’
베아트리체는 멍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스코틀린 영지 지하의 탄광.
이곳은 고대 드워프의 왕궁이 자리 잡을 만큼 자원이 매우 풍부했으며, 눈보라의 악마가 군림했기에 보존도 잘 돼 있으니까.
어쩌면 지금가지 채광했던 모든 탄광보다도 더 많은 광물이 쌓여 있는 영지였다.
정말로, 향후 레지스탕스 조직을 활동하면서 큰 탄력을 얻을 것이다.
“베아트리체 대장! 대장은 기쁘지 않으십니까?”
“······.”
한 드워프가 신이 나게 베아트리체에게 말했다.
사실 베아트리체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임무.
마계의 악마가 거주하고 있다는 말에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네카르의 협력을 얻어낼 생각이었거늘.
기적처럼 성공해버렸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이건 기회야······. 정말로, 이번 기회에 네카르라는 그 사내를 꼭 잡아야 해.’
작은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간다. 열이 올라 부르르 떨린다.
친아버지를 죽이고 오르비스 공작위에 오른 베르너 공작.
그자를 죽이고 북부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견뎌온 나날들이 떠오른다.
정말 할 수 있을까, 두렵고, 어두워져만 갔던 기억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목전까지 성공이 다가온 듯 했다.
동부의 구원자 네카르.
수백 년 전 강림했다는 거악 데힐라칸을 홀로 물리치고, 대륙 동부를 구원했다는 그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했으니까.
만약 그가 자신을 도와준다면, 정말로 거사에 성공할지 모른다는 희망이 샘솟는다.
‘분명 그자는 베르너 공작과 대립하는 자야. 보고에 따르면 흑기사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는 듯 하니까. ······정말 어쩌면 협력할 수 있을지 몰라.’
사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베르너 공작에게 매번 거액의 상납금을 바치는 블랙 이글루.
그들을 지키는 흑기사에게서 사악한 힘이 느껴진다는 걸.
비록 그 어둠의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프레야 교단의 플레티넘 배지를 수여 받은 자라면.
그녀의 레지스탕스를 위해, 어린 엘프와 드워프들을 위해 블랙 이글루에서 수많은 돈을 물 쓰듯 쓴 자라면.
협력과 동맹을 할 수도 있다. 북부를 되찾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급해진다.
“네카르 경.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죠? 아까 함께 나온 것 아니었나요?”
오랜만에 무표정이 깨지고 조급해하는 모습.
그 모습에 드워프들은 다소 당황해하더니 이내 말한다.
“아, 네카르 경께서는 아까 탈출하실 때, 무너진 얼음 창고로 들어가셨습니다.”
“예······? 그 위험한 곳에 남으셨다고요!”
베아트리체가 당황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실책임을 깨닫고 입술을 다문다.
드워프들은 못 들은 척 흠흠, 헛기침하고 말한다.
“저희도 만류해보았지만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에겐 빠져나갈 힘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 하기야······. 그렇겠군요.”
그제야 베아트리체는 안도한다.
하기야 무려 마계의 악마와 1:1로 자웅을 겨룬 자다. 심지어 그 악마를 결정적으로 처치한 자.
그러한 자라면 분명 무너지는 미궁에서도 방법이 있으리라.
“그런데 도대체 왜 얼음 창고에 가셨나요?”
“글쎄요······. 그것까지는 밝히지 않으셨는데······. 무언가 꼭 가져오실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몰랐다.
네카르가 구하러 간 건 다음 용의 유산인 '용의 구슬'이란 걸.
그 구슬에 담긴 힘이 무려 마신 문두스의 시그니쳐 마법인 '중력' 마법.
북부인에게 최흉의 사건이라 불리는 '오르비스 대학살'을 자행한 권능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