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23화 (23/140)

23. 사해의 시험 (1)

휘이잉.

그렇게 도착한 사해(沙海).

뜨거운 햇볕이 모두를 비춘다.

황량함 황망함. 사해는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오직 모래로 이루어진 망망대해.

시야를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저 멀리 크라우드의 영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부는 모래바람이 시야를 방해하기에, 마치 갇혀 있는 기분이다.

우리는 마차에 내려서 모래를 살포시 밟는다. 걸음마다 모래바닥이 허물어지며 발이 푹푹 들어갔다.

엡실론은 그런 태양을 등지고 앞으로 나섰다.

가문의 전권을 지니고 태평성대를 만든 가주 엡실론.

그는 사해의 시험에 참여하는 네 사람 앞에서 읊조렸다.

“이곳은 너희가 살아온 20여 년의 시간을 증명하는 자리다.”

삶의 무게가 담긴 한 마디.

휘이잉, 메마른 모래바람이 귓볼을 스친다.

모래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태양 빛 뒤에 가려진 엡실론의 그림자가 보인다.

형제자매를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권좌.

그 비정함을 깨닫는다.

“부디 후회 없는 경쟁을 하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엡실론은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자식들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현자 카나단이 앞으로 나사며 오래된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럼 사해의 시험에 대한 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들 한 글자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귀를 바짝 열고 듣는다.

“사해의 시험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이 ‘은빛 구슬’을 통해 ‘금빛 구슬’을 찾으시면 됩니다.”

현자 카나단은 앞으로 나서서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구슬을 전해주었다.

나는 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펴본다.

[이름 : 은빛 구슬. (RARE.)]

[설명 :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 특별한 공정으로 제조한 구슬. 왜인지 그리운 물의 향기가 담겨있다.]

[효과 : 마나를 소모할 때마다, 금빛 구슬에 담긴 물의 향기를 아주 극소량 맡을 수 있다.]

전투에 아무 짝에 쓸모없는 구슬.

그러나 대단히 희귀한 아이템인지 구슬 주제에 무려 ‘레어’등급이었다.

다들 잃어버릴까 소중히 품에 넣는다.

현자 카나단은 나눠준 구슬과는 다른, 금빛 구슬을 꺼낸다.

“그 은빛 구슬에 마나를 부여하면 이 금빛 구슬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사해 어딘가에 숨겨진 이 금빛 구슬을 가지고 돌아오시면 합격입니다.”

카나단은 새장에서 독수리 한 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독수리 발목에 금빛 구슬을 매달고 하늘로 날려 보낸다.

푸드덕.

사해 저 멀리 날아가는 독수리.

사람 신장만큼 넓은 날개를 펼치고 자유로이 활강한다.

그리고 독수리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거리가 되고도 한참 후, 현자 카나단은 탁 손을 튕긴다.

마법으로 구슬을 떨어뜨린 거다.

혹여 뒷말이 나오지 않게 완벽히 공정히 시험을 진행한다.

“물론 반드시 은빛 구슬을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연히 발견하든, 독수리를 추적해 발견하든, 다른 형제자매와 연합해서 수색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구해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 없다.

다른 형제와 연합했다면 금빛 구슬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단, 사용할 수 있는 건 오직 본인 능력과 배낭 안의 물건뿐입니다. 만약 부정행위가 적발될 경우, 그 즉시 실격입니다.”

카나단의 말에 네하드람이 ‘칫.’ 혀를 찬다.

황금상회의 재력으로 추가 물품과 하인을 부릴 수 없으니까.

“물론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들키지만 않으면 부정행위도 괜찮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지요.

카나단은 웃으며 말했다.

가주 엡실론과 현자 카나단 이상의 실력자가 동부에 있다면 말이다.

“여기까지가 사해의 시험 기본 룰입니다만.”

현자 카나단은 미리 준비해둔 물품을 나눠주며 말한다.

폭죽이었다.

“비상용 폭죽입니다. 시험을 포기하고 싶으시다면 터트리십시오. 즉시 구조하러 가겠습니다.”

룰 설명은 그걸로 끝이었다.

크라우드 가문 마차는 가문 사람들을 태우고 사막을 달린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형제들을 내려준다.

시작부터 다른 형제들과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내리는 순서는 공식 서열에 따라 네하린, 네하드람, 나, 데이아 순이었다.

“부디 몸조심하도록.”

가주 엡실론은 마차에서 내리는 자식들에게 똑같은 한 마디씩 건넸다.

삐이이익.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사해의 시험이 시작된다.

각 형제는 금빛 구슬을 찾기 위해 떠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형제 관계가 아니라 가주와 가신의 관계로 바뀌기 위해서.

누군가는 발설하지 못할 끔찍한 음모를 품고.

누군가는 동부의 변을 막고, 진 엔딩에 도달하기 위해서.

앞으로의 제 인생을 결정지을 시험을 치렀다.

***

모든 시험자를 내려주고, 마차에 남은 크라우드 중신들.

그들은 자신들의 주군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혹여 비상용 폭죽이 터질 수도 있으니 상시 대기하는 거다.

“다들 시작부터 분주히 움직이는군요.”

이는 가주 엡실론과 현자 카나단, 뇌격의 원로 마법사 니콜라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독수리와 시야를 공유하는 마법 ‘호크 아이’를 시전해서 각 후보를 염탐했다.

한평생 함께 산 웃어른으로서 걱정되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뇌격의 원로 니콜라스는 신기하다는 듯 ‘호오.’ 감탄사를 내며 말했다.

“형제마다 찾는 방식이 다들 다르군.”

“그야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까요.”

카나단이 웃으며 대답했다.

호크아이 마법과 연결된 수정구슬은 가장 먼저 둘째 네하드람을 발견했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끙끙 발걸음을 옮기는 네하드람.

소지품은 배낭 하나로 한정된다는 룰이 있었기에, 아예 거대한 배낭에 황금상회에서 가져온 명품 마도구를 하나 가득 담아온 것이다.

뚜, 뚜, 뚜!

-저쪽이다!

손에 은빛 구슬 대신 최고급 다우징 로드(수맥 찾는 아티펙트)를 들고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는 네하드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우징 로드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곳에 도착한다.

-찾았다! 하하, 멍청한 놈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구슬이 있는 줄도 모르다니.

네하드람은 사막 속에 버려진 구슬 하나를 주워들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무언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어라? 잠깐. 이건 금빛 구슬이 아니라, 빨간색 구슬이잖아.

네하드람은 붉은색 구슬에 묻은 모래를 털며 햇빛에 비춰봤다.

노란 모래와 강렬한 햇살 때문에 잠깐 금빛 구슬로 착각했을 뿐, 실상은 가짜 구슬이었던 거다.

그 모습을 보고 현자 카나단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네하드람 도련님께선 아직 사해의 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사해의 시험은 세부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극비 시험이니.”

엡실론은 독한 포도주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사해의 시험은 그리 간단한 시험이 아니다.

훌륭한 다우징 로드 하나로 클리어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다우징 로드를 가져다주지 왜 은빛 구슬을 주겠는가?

카나단은 독수리를 움직여 또 다른 후보를 탐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네하린 아가씨께서는 정석적으로 나서시는군요.”

수정구슬 속 네하린은 얇은 천 옷과 모자로 햇빛을 가리며 은빛 구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파앗.

그러자 한 방향으로 빛나는 은빛 구슬.

주위에 있는 물 향기를 무시하고 오직 한 방향만을 가리킨다.

네하린은 무리하지 않고 방향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종종 자신이 가는 길이 맞나 재탐색도 하면서.

가져온 물과 식량을 최대한 아끼며 발걸음을 옮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에서 금빛 구슬 찾기.

이는 망망대해에 버려진 배가 나침반 하나만 가지고 항구를 찾는 일과 마찬가지니까.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오, 하기야 마법가문 가주는 마법으로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건가? 가주에게 필요한 끈기와 실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이군.”

“아니, 저건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지만, 반드시 성공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뭐?”

그러나 엡실론은 그리 평탄한 표정을 짓지 못했다.

그 또한 사해의 시험을 통과한 우승자니까.

끈기와 실력을 보고 가주를 채택할 거였다면 굳이 사해의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사해(沙海)가 왜 사해(死海)라고도 불리겠는가? 그 이유는 사해는 중재자가 없는 무법지대기 때문이다.”

“······!”

엡실론은 또 다른 독수리를 통해 저 멀리 돌아다니는 마적단(馬賊團)을 비췄다.

투두두두.

-이랴! 저쪽에 상인 무리가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크라우드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에 쳐라!

-우와아아! 오랜만에 큰 소득이다! 약탈하라!

사막에서 말과 낙타를 타며 도적질하는 무리들.

사해는 끝없이 넓고 식량과 마실 물조차 거의 없다. 덕분에 물의 명가 크라우드라도 전역을 수색할 수는 없다.

덕분에 사해에 숨어서 도적질하는 무리가 대단히 많은 것이다.

하지만 엡실론의 말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사해의 시험은 결국 금빛 구슬을 가지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 이를 악용하면 저런 짓도 가능하지.”

독수리의 시야가 흑마법사 데이아를 발견한다.

데이아는 금빛 구슬을 찾으러 떠나지도 않았다.

아예 출발지점에 눌러앉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니콜라스는 경악했다.

“저건 설마······!”

“그래, 누군가 금빛 구슬을 찾아오면 힘으로 강탈하겠다는 생각이겠지.”

“!”

엡실론은 구슬 속 데이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룰은 금빛 구슬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으니까.

니콜라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엡실론을 쳐다본다.

“자네는······. 저런 일이 일어날 걸 예측하고도 아이들을 사해의 시험으로 밀어 넣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

어떻게 그렇게 비정할 수 있느냐는 표정.

엡실론은 입에 살짝 머금고 있던 쓰디쓴 포도주를 삼키고 입을 열었다.

“크라우드 가주는 평화로운 중앙의 귀족 가주와는 다르다. 척박한 동부 사막에서 각 가문이 벌이는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지.”

“······.”

“피도 눈물도 없는 귀족 세계에서 가주로서 가문이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판별하는 것이 사해의 시험이다. 그것이 정석적인 방법이든, 편법이든, 배신하든. 사막에서 살아가는 한 이를 피할 순 없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최선이었음을 납득하게 하는 시험.

그게 바로 사해의 시험 본질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엡실론의 표정은 그리 밝진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자네는 이기길 바라는 사람이 있나 보군.”

“······.”

엡실론은 부정하지 않고 포도주를 들이켰다.

취기 때문일까, 그들밖에 없기 때문일까.

아버지로서 솔직한 속마음이 삐져나온다.

“그래도 내 자식인데 누군가 불행해지는 걸 원치는 않는다.”

“그럼?”

“다 함께 화합해서 사해의 시험을 완벽하게 끝내길 바라지. 그러나 이는 희망 사항일 뿐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엡실론은 시선이 한 사람에게 고정됐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

여태껏 가장 엡실론의 속을 썩였던 망나니.

그러나 어느 순간 철이 든 건지 가장 기대되는 자식 중 하나.

“호오? 네카르는 제 형제들이 있는 동쪽으로 달려가는군.”

“······.”

구슬 속 네카르는 출발지점에서 마차 발자국을 따라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먼저 내린 자신의 형제자매 쪽으로.

마치 화합을 하려는 듯.

그걸 보고 현자 카나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려고 할 때,

“어라? 저놈 어딜 가는 거지?”

“?”

네카르는 가장 먼저 내린 네하린이 있는 곳을 지나쳐버렸다.

못 보고 넘긴 건 아니다.

사막엔 네하드람과 네하린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으니까.

현재 네카르는 그 둘의 발자국을 보고도 무시하고 동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도통 알 수가 없군.”

***

헉······. 허억······. 헉······.

나는 사해의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동쪽으로 달렸다.

특성 허약한 몸 때문에 얼마 못 가고 자주 주저앉아 쉬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동부 끝에는 마적단들이 모여 있으니까.

‘······내 목표는 사해의 시험 통과가 아니라 ‘고대의 석판’ 획득과 데이아 저지다. 이걸 잊지 말자.’

현재 나는 금빛 구슬을 찾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있는 금빛 구슬을 남 줘야 할 판이다.

전 대륙을 떠돌며 기연을 찾아야 하는데 크라우드 가주로 남을 순 없잖은가?

따라서 고대의 석판이 있는 사해의 극동부로 직행한다.

마적단 창고.

그 안에 그저 오래된 석판으로 방치돼 있을 마스터급 보물.

드래곤의 힘이 담긴 고대의 석판부터 찾는다.

물론 그사이, 데이아가 다른 형제자매를 죽일 수 있다는 걱정이 아주 조금 있긴 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데이아는 작전 실패 시 반드시 죽는다. 혹여 놓칠 수도 있는 수색을 할 리가 없어.’

하지만 흑마법사의 사고방식을 아는 만큼 그 걱정을 없앴다.

데이아 입장에서는 도착지를 지키고 있다가 구슬을 빼앗는 게 확실할 터인데 굳이 서툰 물 수색을 할 이유가 없다.

‘네하드람이야 삽질하고 있을 것 같고, 네하린이 금빛 구슬을 찾겠지. 하지만 돌아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다.’

네하드람과 달리 네하린은 영민하다.

그녀 또한 데이아가 추격해오거나, 도착지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할 거다.

따라서 일단 구슬만 찾으면, 안전하게 도착지로 돌아갈 계획을 천천히 세우겠지.

어차피 사해의 시험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시험이 아니라, 최소 일주일. 길게는 한 달도 걸리는 시험이니까.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나는 약탈이나 하고 있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틀 정도 동쪽으로만 계속 가다 보니 어느새, 사해 끝.

크레이터처럼 움푹 파인 사구(砂丘) 뒤에 지저분한 천막으로 지어진 마적단 은신처가 보인다.

도적 무리 따위라고 업신여기기엔 지나치게 많은 천 움막.

마침 그 움막으로 거대한 행렬이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온다.

히히힝!

“우아아아! 오늘 수확은 대박이다! 대형 마차를 잡았다!”

“과연 달의 계곡 최고의 전사 호루마다! 거의 상처 없이 끌고 왔다.”

위풍당당하게 귀환하는 마적단.

은신처에 머물던 수백 명의 도적은 밖으로 나와 화려한 약탈품을 구경하며 굵직한 함성을 지른다.

그에 반해 공포에 질린 늙은이와 자신들의 운명을 깨달았는지 체념하며 우는 여인들이 보인다.

‘다른 가문으로 물건 팔러 온 상인인가?’

나는 붙잡힌 상인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크라우드 가문과 붙어있는 사해.

이곳을 통해 다른 가문으로 가면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는 만큼 몇 배나 비싼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생명 수당을 포함한 돈. 사해에 마적단이 있는 걸 감수하는 길이다.

그러다가 잡히면, 물건을 빼앗기는 것만으로 끝나진 않으니까.

그러나 운이 좋게도, 오늘은 아니다.

총 21명. 마적단의 숫자.

나는 눈을 감고 주변의 수분을 감지한다.

***

‘선과 질서를 관장하는 프레야 여신이시여.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낙타 상회의 지점장 타헤리안은 마차 안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정확히는 양손이 밧줄에 묶여 있어서 모을 수밖에 없는 거지만······.

공포심에 손발이 벌벌 떨린다. 우는 소리를 억지로 참고 힐끗 창밖을 본다.

창밖엔 그녀를 묶은 마적단들이 신나게 행차하고 있다.

“우와아아! 오랜만에 대박이다! 진짜 상단 마차다!”

“말들과 귀금속, 비단, 심지어 여자까지 있어!”

“여자다! 늙은 여자가 아니라 젊고 싱싱한 여자! 오늘 밤은 축배를 들어라!”

광기 어린 도적들.

축제라는 듯 흥분해서 고함치는 자와 눈이 마주친다.

타헤리안은 히끅, 놀라서 고개를 숙인다.

당장 깨고 싶은 악몽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흑, 분명 매월 십 일조도 냈는데······. 최근 왜 견디기 힘든 불행이 계속 찾아오는 거야······.’

최근 3개월간, 타헤리안의 운세는 최악이었다.

느닷없이 옆 건물에 경쟁업체.

그들의 갑질에 그녀의 지점이 팔릴 위기에 처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본이 적은 소상공인이니까.

그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나뿐인 동생이 아팠다.

난생처음 보는 병이었다. 손발이 까맣게 변하고, 고열에 시달리며, 죽을 땀을 쏟아냈으니까.

‘강신초. 의사가 그 풀을 구해야 한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 풀이 미친 듯이 비쌌다는 점이다.

귀족들이 정력제로 사용하기도 하는 약초라고 하니까.

결국 모든 건 돈이 문제였다.

지부도, 동생도.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릎 쓰고 사해를 가로질러 왔는데······. 두 번째 교역만에 잡혀버리다니······.’

첫 번째 교역은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마적단을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크라우드 가문에 도착했다.

덕분에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도 초심자의 행운이었을 뿐.

두 번째 교역만에 마적단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최대한 크라우드 가문 영향권으로 다녔는데······.

“흐윽······. 흑······. 지부장님. 이제 우린 어떻게 해요······?”

“······믿고 기다리자. 누군가 구하러 올지 몰라.”

타헤리안은 막연하게 읊조렸다.

마적단에게 붙잡히기 직전, 긴급 구조 요청 신호탄을 터트렸으니까.

혹여 누군가 보았다면, 이웃에게 선을 행할 줄 아는 자라면 구하러 올지도 모른다.

그러다 부지점장은 계속 울었다.

“이 드넓은 사해에 누가 우릴 구하러 와요? 더구나 위치가 사해면 나라도 안 오겠다. 엉엉, 우린 이대로 끝장이라고요······.”

“······.”

맞는 말이다.

긴급 구조 신호탄을 봤어도, 안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아니, 애초에 도와주는 일이 기적이다.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된다고 위험천만한 도적 떼를 막으러 찾아오겠는가?

타헤리안도 그걸 알기에 마음 한구석이 멍든 듯 아팠다.

앞으로 마적단 노예로 살아야 하는 제 운명을 자각했기에.

자신이 없으면 병든 체 홀로 죽어갈 제 동생이 떠올랐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뿐.

“호우!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파티다!”

“크하핫! 바루스. 어서 술통을 꺼내라. 오늘은 특별히 성대한 축제를 열어야겠다!”

“!”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적단 마을에 도착했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도 끝내 찾지 못한 소굴.

이곳에 도착했다는 건 이미 틀렸다는 뜻이니까.

배신감이 들었다.

성실하게 매주 안식일마다 성당에 갔는데.

분명 믿으면 복이 온다 하였거늘. 십일조를 하면 언젠가 돌려받을 거라 믿었거늘.

마지막 바람마저 꺾여버렸다.

세상을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럼 무얼 하랴.

이미 그녀는 그물에 붙잡힌 고기 신세거늘.

그녀는 체념 어린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신이시여. 끝내 저흴 버리시나이까.’

멍한 눈으로 마적단을 바라본다.

자신들을 끌고 가는 사내들에게도 저항하지 않는다.

더이상 저항해도 의미가 없으니까.

그때 한 마적단원이 텅 빈 오크 술통들을 들고 오며 말했다.

“엇, 두목님. 술통들이 죄다 비어있는데요?”

“뫼야? 야, 너 이 새끼들! 나 없을 때 혼자 다 마신 거냐? 내 그토록 손대지 말라고 했거늘!”

마적단 두목 호루마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마적단원은 벌벌 떤다.

“아, 아닙니다! 두목. 저희는 그런 적이······.”

“시끄럽다! 그럼 그 많은 술이 다 어디 갔단 말이냐?”

의문은 합당했다.

상식적으로 소굴에 남은 자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 많은 술통을 비웠겠는가?

그런데 타헤리안은 무언가 이질감을 발견했다.

‘······그림자?’

그녀와 마적단 머리에 무언가 정체 모를 그림자가 둥둥 떠있다.

뾰족하면서도 기다란 송곳 같은 그림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올려다본다.

“어엇······? 저거······?”

마적단들도 위화감을 느끼고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것은 액체였다. 포도주, 맥주, 위스키, 벌꿀술, 생수 등 온갖 종류의 물.

가지각색의 액체들이 하늘에서 송곳처럼 둥둥 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모래 언덕 위에 서 있는 귀족 복장의 젊은 사내.

그가 마적단을 내려다보며 읊조린다.

“축제를 벌이기엔 날씨가 짓궂은 거 같은데. 떨거지들.”

“뭐? 넌 누구냐!”

태양을 등져서인지 황금빛처럼 빛나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오른팔.

그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비가 쏟아질 것 같거든.”

그는 팔을 힘껏 내린다.

쏴아아아!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

가지각색의 색깔을 가진 액체 송곳이 비가 되어 마적단 머리 위로 내리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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