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17화 (17/140)

17. 고대의 석판

푸확.

내 오른손은 마벨의 가슴을 관통한다.

등 뒤까지 태워버리며 완전히 관통하는 푸른 전격.

스파크가 아무리 전격계 기초 마법이라도,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마나를 치환하면 고압 전류를 넘어선 살상 전격이 돼버리니까.

파치지지직-!!

푸른 빛이 동굴 전체를 장악한다.

과거 니콜라스가 숲에서 썬더 스톰으로 세상을 온통 푸른 전격으로 뒤덮은 것처럼.

어둠으로 가득한 동굴 속을 새하얀 빛의 세계로 바꾼다.

번쩍.

“······!!”

푸른 전격이 눈에 보이는 것도, 타는 소리도, 고통에 찬 비명도, 뜨거운 촉감도 모조리 집어삼킨다.

마벨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지만 전격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털썩.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탄 마벨의 시체가 찬 바닥에 싸늘히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니콜라스를 가둔 암흑 구체가 사라진다.

쿵, 쿵, 쿵······.

멀리서 쿵쿵 뛰어오던 좀비들도 명령을 잃고 멈춘다. 땅의 진동이 멈춘다.

사령술의 최대 약점.

시전자가 죽으면 모든 좀비가 멈춰버리는 거다.

털썩.

목 졸리던 니콜라스가 바닥에 쓰러져 겨우 숨을 몰아쉰다.

네하린과 네하드람이 긴장이 풀렸는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다.

놀람과 두려움, 믿기지 않음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무거운 침묵이 찾아온다.

귓가에 울리는 시스템 음성만이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말해준다.

-자신보다 월등히 수준 높은 흑마법사 마벨을 죽였습니다! 2써클이 대량의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2써클 1티어에서 2단 승급해서 2써클 3티어에 도달합니다!

‘오.’

티어.

써클을 올리기 위한 중간 단계다.

총 5개의 티어가 있으며, 2써클 5티어에서 한 단계 더 승급하면 3써클에 도달하게 된다.

아마 1써클 때는 원체 써클링 크기가 작아서 스킵된 거겠지.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

이대로라면 몇 개월 안에 3써클에 도달해버릴지도 모른다.

20여 년간, 귀족 자제로서 마법을 익힌 둘째 네하드람이 2써클.

귀족 중에서도 최고 천재라고 불리던 장녀 네하린이 20여년 간 이룩한 경지가 3써클이었거늘.

나는 빙의한 지 고작 몇 개월 만에 3써클을 넘보고 있다.

-막대한 마나를 사용한 경험! 마법 스킬 ‘아쿠아 LV1’이 LV2로 진화했습니다!

더구나 아쿠아 스킬 레벨까지 올랐다.

아쿠아 마법은 모든 물 마법의 기초 베이스.

마나 효율이 한 단계 증가한 셈이다. 워터볼은 물론, 아쿠아 스톰 또한 위력이 한단계 상승하겠지.

안도감과 동시에 긴장이 풀린다.

시스템 음성이 떴다는 건 적을 확실히 처리했다는 뜻이니까.

‘윽!’

왼쪽 심장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번엔 아무리 나라도 무리했다.

물이 많지도 않은 곳에서 이 정도 아쿠아를 시전한 것부터 문제였는데, 거기에 암흑의 울타리가 마나를 계속 뜯어먹었다.

심지어 스파크까지 한도 초과로 불태웠다.

이제는 정말 쉬어야 한다.

“네, 네카르, 괘, 괜찮느냐······?”

“?”

내가 표정이 구겨지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벌벌 떨며 묻는 네하드람.

만약 내가 적대감을 보인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기야 충격적인 사건이 연달아 터졌으니까.

니콜라스를 압도하는 흑마법사 등장과 그 마벨을 일격에 죽인 내 등장에 상당히 쫄아 있었다.

“······괜찮습니다. 형님.”

안심하라는 뜻에서 대답한다.

다만 너무 지쳐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 나온다.

분위기는 계속 심각했다.

뇌격의 원로 니콜라스가 흠흠, 헛기침하며 말문을 연다.

“네카르, 너 스파크에 아쿠아를 덧붙여야 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

“그건 내가 보여준 <전격계 마법 기초>에 없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안 거지? 그건 전격계 마법에 정통한 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일일 텐데?”

니콜라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당연히 ‘물이 전기에 잘 통하는 건 상식 아닌가요?’라고 말하려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맞다. 중세인에게 전기는 곧 벼락이었지?’

이곳에서 전기는 신의 징벌이자, 살아있는 자를 태워죽이는 불 속성으로 치부됐다.

목제 건물에 벼락이 치면 불이 붙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천둥번개가 바다에 치면 사라진다는 걸 보았으니까.

당연 아르카나 인들에게 전기는 불과 유사한 속성으로, 물과 정반대 속성이라고 오해하는 게 통념이었다.

즉, 전기가 물과 시너지가 있다는 건 정통한 전격계 마법사들만 아는 사실.

이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제가 물과 연계했습니까?”

역시 이럴 땐 모르는 척이 상책이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연기한다.

아쿠아 마법은 단순히 암흑의 울타리가 마나를 흡수하는 걸 파훼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면서.

니콜라스는 ‘호오?’ 신비롭다는 듯 더욱 내 재능에 흥미를 보였다.

장녀 네하린 또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 덕분에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구나. 네 마법성취로 이런 기적이 벌어지다니. 작년만 해도 상상도 못 했거늘.”

네하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멋대로 주억거리며 말했다.

“이 정도 성취를 이루고도 그간 무시를 묵묵히 견뎠다니. 네 인격 또한 수양된 모양이구나.”

“극찬 감사합니다.”

“내 벗 중에는 인품이 좋은 여인들이 많단다. 네가 원한다면 배필을 찾는 걸 도와주마.”

“!”

배필.

이른바 귀족 영애와 티타임을 마련해주겠다는 뜻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사래 쳤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네하린 딴에는 망나니로 소문난 날 위해 맞선을 잡아주겠다는 거지만, 나는 곧 크라우드를 떠나야 하니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연애 따위 할 생각 없다.

······아, 못하는 건가?

머리가 어지럽다.

다급히 화제를 돌린다.

“형님누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언제 또 이런 흑마법사가 나타날지 모르니 당장 탈출해야 합니다.”

“그래. 하지만 동굴 밖은 이미 틀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하린은 아까 내가 한 말을 기억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lv19 2써클 중급 흑마법사 모르그.

-lv21 2써클 중급 흑마법사 데나크.

-lv25 3써클 중급 흑마법사 모니카.

실제로 시스템 창은 여전히 동굴 밖에 흑마법사들이 포위하고 있음을 말해줬다.

자칼의 제자 마벨의 명령대로 우리가 달아나려고 하면 즉결 처형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니콜라스와 크라우드 혈통이 대단한 마법사라고 한들, 이곳은 흑마법사 지부.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목숨이 걸린 일에 굳이 피를 볼 이유 없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느냐?”

네하린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다만 묘하게 기대하는 표정.

네카르라면 다른 방안이 있을지 모르는 기대다.

“······.”

“······.”

네하드람과 니콜라스 또한 내 대답을 기다린다.

며칠 전 만해도 망나니라며 무시하고 못 믿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꽤 달라졌다.

과거 크로코 가문에서 보여준 활약, 흙의 정령 노움의 도움을 받아 기습을 눈치챈 경험, 방금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마벨을 죽인 것 등이 내 신뢰도를 크게 올려준 것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흑마법사들은 탄압을 피해 비밀 통로를 뚫어놓기 마련이죠.”

차분히 눈감고 옛날 흑마법사 지부 C를 공략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흑마법사 지부는 쓸데없이 복잡해서 짜증이 났던 기억이 있다.

다른 유저들이야 미련 없이 손절하고 떠났지만, 나는 업적 달성을 위해 개고생했으니까.

덕분에 몸이 비밀 통로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쿠구궁.

가까운 벽에 손을 대고 힘껏 밀자 동굴이 덜덜덜 떨리며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이쪽입니다.”

그 길을 따라 성큼성큼 걷는다.

다들 놀라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따라온다.

네하린이 걸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네카르?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니? 너 설마······.”

“아하하, 누님. 제가 아무리 망나니라고 한들 흑마법까지 손댔겠습니까? 흙의 정령 노움이 가르쳐줬습니다.”

“그랬구나. 의심해서 미안하단다.”

-우움?

당사자인 노움은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지만.

정령이 보이는 건 나 뿐.

세상에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그렇게 개미집처럼 생긴 비밀 통로를 꼬불꼬불 걸었다.

물론 1차 목적지는 비상 탈출로가 아니었다.

‘여기로군.’

흑마법사 지부 C 지하 창고.

그 안에는 굳이 마벨을 따라 올 수밖에 없었던 보물이 잠들어있으니까.

끼익.

“······!”

창고 문을 열자 네하드람이 신음을 흘린다.

네하린도 고개를 돌리고, 니콜라스가 인상을 찡그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흑마법사 창고 안에는 온갖 동물의 시체가 있었으니까.

두개골로 보이는 오래된 짐승 뼈는 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내장과 약재도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하고, 벌레가 꼬이는 건 물론이었다.

“굳이 여기를 지나가야 한다고?”

네하드람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한다.

이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불결함을 따지는 모양이다.

“예,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제기랄. 알았다. 가지.”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네하드람이 다가오려 할 때, 손을 번쩍 든다.

이에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들.

“무슨 일인가?”

“노움이 이곳에 사악한 결계가 펼쳐져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뭐?”

내 말에 매우 놀라는 사람들.

-우우움?!

당사자 노움조차 매우 놀란다.

고개를 홱홱 돌리며 함정이 어딨냐고 묻는다.

이곳엔 전혀 함정이 없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보상은 챙기고 가야지.’

새빨간 거짓말.

내가 흑마법사 지부 C로 굳이 따라온 이유는 다름 아닌 ‘고대의 석판’을 차지하기 위함이니까.

보상을 나 혼자 몰래 차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마벨을 죽이고 모두를 구한 건 나 아닌가?

단지 내가 흑마법사의 물품을 챙기는 데 사람들이 반발심이 들 수 있기에 선의의 거짓말을 할 뿐이다.

“나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아까 흑마법사가 붉은 문양을 발동시켰을 때도 기운 못 느꼈잖습니까?”

“······하긴, 조심하는 게 좋겠군. 돌아갈까?”

“아뇨. 동굴 전체에 깔린 암흑 에르그 때문에 다른 길을 찾기 어렵답니다. 다행히 결계를 해제할 수 있다고 하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알았다. 고생해라.”

그렇게 나는 동굴 모서리를 따라 홀로 지하 창고로 들어갔다.

‘찾았다.’

[이름 : 고대의 석판 #2. (MASTER.)]

[설명 : 고대 시대 세워진 비석 일부분이다. 모든 석판 조각을 모으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효과 : 현재 봉인된 상태입니다.]

원하는 보물을 찾았다.

고대의 석판.

무려 마스터 등급 드래곤 하트에만 반응하는 보물. 그 일부분이 창고 한 곳에 버려져 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전 석판과 이어붙인다.

그러자 마법적 힘이 발동하더니 스스로 달라붙었다.

-고대의 석판을 일부 복원하셨습니다. (2/3)

-특성 드래곤 하트를 보유했기에 용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덕분에 읽을 수 있는 문자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는다.

【나의 혈족이자, 위대한 종족이여. 들으라.】

여기까지는 첫 날 읽은 내용.

【용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했도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는 영겁의 평화를 끝내고, 세상을 아무런 목적 없는 우연과 맹목으로 지배하고자 한다.】

“미친.”

한창 즐겁게 읽다가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별들의 전쟁2>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절대악이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선과 질서의 교단 프레야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대척점.

현재 내가 있는 아르카나 대륙은 물론, 아리아 대륙, 루나틱 대륙 등 모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거대 악.

파괴의 화신. 그 자체가 언급됐으니까.

다크 로드 자칼과 그 제자들 또한 디메토르 교단 소속의 일원.

고대의 석판은 무려 이 세계의 흑막과 세계 대종말에 관한 떡밥이었던 거다.

‘쓰레기 같은 개발자 새끼들. 설마 이게 진 엔딩에 도달할 단서였냐? 이걸 어떻게 찾으라고.’

열이 머리끝까지 차오르지만 일단 차분히 읽는다.

어찌 됐든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노말 엔딩은 물론, 진 엔딩까지 클리어해야 하니까.

【나를 비롯한 선조들은 이를 막기 위해······.】

문제는 여기서 글자가 끊겨버렸다는 점이지만.

‘막기 위해 뭔가를 한 모양이군.’

악과 파괴의 교단을 막을 무언가가 있다는데 그나마 안도한다.

분명 고대의 석판 아이템 설명란에 ‘모든 석판 조각을 모으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니까.

상식적으로 막기 위해 준비한 걸 주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어쩌면 불가항력 같은 진 엔딩을 클리어할 수 있는 히든 피스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한 조각.

그 조각만 모으면 마스터 등급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피가 끓어오른다.

‘설마 마스터 등급 아이템을 무려 3조각이나 모았는데, 아무 것도 안 주진 않겠지.’

그렇게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문구가 들렸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당신의 존재를 미약하게나마 눈치챘습니다.

“!”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버린다.

드래곤.

지상 최강의 존재로서, 나 또한 익히 잘 아는 괴물들이다.

레드 드래곤 파프니르, 블루 드래곤 코나타드, 악룡 니드호그 등.

<별들의 전쟁2>에서 블루 드래곤 코나타드는 고대 문헌상으로만 존재하는 용이고, 레드 드래곤과 악룡은 이미 레이드 컨텐츠로 나온 적 있다.

하이 랭커들조차 무차별하게 죽어나간 종결 컨텐츠.

나조차 몇 번이나 죽으면서 간신히 클리어했던 업적이었다.

‘그런데 그와 동격인 존재가 또 있다고?’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하이 엔드급 유저로서 아직 클리어할 수 있는 컨텐츠가 더 남았다는데 흥분한다.

물론 화이트 드래곤이 날 도우려는 것일지, 죽이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미지의 설정은 늘 흥미로웠다.

하여튼 고대의 석판을 가방에 몰래 넣고 창고를 빤히 둘러본다.

혹여 챙길 게 더 있을까 싶어서 시체고 약초고 다 뒤진다.

“네카르, 무슨 일 있느냐? 부산스럽구나.”

“······아니요. 이제 다 끝났습니다.”

물론 더 챙길만한 건 없었다.

니콜라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비밀 통로를 통해 흑마법사 지부 C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기어나간다.

이제 지긋지긋한 흑마법사 지부를 떠나서, 크라우드 가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