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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32)화 (132/144)

132화

“무, 무슨 연습이라고요, 릴리엇?”

“이제 공작 부인이 될 테니까, 혹시라도 알아 둬야 하는 사교계 예절 등을 연습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에요, 아체리아 양.”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릴리엇의 고상한 목소리―대외용―에 아체리아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저, 릴리엇. 그 말투는 뭐예요?”

“곧 공작 부인이 되실 아가씨를 대하는 말투지요, 아체리아 양.”

“으악! 그만두세요! 제발 그냥 아체리아라고 불러 주시라고요!”

“오늘 아체리아 양이 제 수업을 잘 따라오시면 생각해 보겠어요.”

그렇게 말한 릴리엇은 ‘알겠죠, 아체리아 양?’ 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침 식사 테이블이 치워지자마자 들이닥친 릴리엇은 아체리아에게 이렇다 할 설명도 해 주지 않은 채 그녀를 끌고 올라왔다. 완력으로는 릴리엇에게 질 리가 없는 아체리아였지만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는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것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는데, 마주 앉아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릴리엇은 매우 고상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아체리아 양’ 하고 인사해 아체리아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고 나한테 말 안 해 줬구나!’

어쩐지 어제 클라우스가 릴리엇 이야기를 하며 이상하게 히죽거리고 웃더라니, 이 괴상망측한 상황을 생각만 해도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아체리아는 반드시 한 대 때려 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련이 이는 입가에 억지 미소를 띠었다.

“수…… 수업은 열심히 받을게요.”

“좋아요, 좋은 태도예요.”

그렇게 말한 릴리엇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가지고 온 꾸러미 안에서 웬 길쭉한 막대 하나를 꺼냈다.

“그건…… 뭐죠?”

“아, 이거요?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자, 그러면 자세부터 시작해 볼까요? 서 있는 자세부터 걷는 것, 그리고 누군가 불렀을 때 살짝 돌아보는 것까지!”

* * *

수업은 지옥 같았다.

“아체리아 양, 아직도 어깨가 너무 구부정해요!”

뻣뻣하게 서 있는 것에 지쳐 조금이라도 자세를 흐트러뜨릴라 치면 어김없이 릴리엇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긴 막대로 허리며 어깨를 꾹꾹, 찌르기까지.

“릴리엇, 이건 말도 안 돼요! 누가 하루 종일 이렇게 뻣뻣한 자세로 서 있는단 말이에요?”

“모두들 그렇게 하죠. 그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오래 서 있으면 몸에도 좋지 않아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자세를 배우자고요.”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 조심하지 않으면 책이 떨어져요!”

아체리아의 머리와 양 어깨 위에는 가벼운 시집들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그 상태로 고개를 든 채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저…… 릴리엇?”

“네, 아체리아 양?”

“목이 잘 안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요?”

“지금껏 그런 자세로 걸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거예요. 익숙해질 때까지 해야죠.”

솜털 보송한 노란 병아리 같던―아체리아가 생각하기에는― 릴리엇은 알고 보니 그 혹독하기가 사감 선생님 저리 가라였다.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도무지 얼렁뚱땅 넘어가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아체리아는 울며 겨자 먹기로 걷는 연습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책을 떨어트리거나 후들거리지 않고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릴리엇은 마치 제 일인 양 박수를 치면서 기뻐했다.

‘저렇게 좋아하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

“좋아요. 그럼 이제 부채를 쥐는 법을 연습해 볼까요?”

“……부채도 쥐는 법이 따로 있어요?”

“그럼요. 그리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부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요. 가령 이렇게 부채를 접어서 왼쪽 입가에 살짝 대면,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는 뜻이에요.”

“……네? 뭐라고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부채를 접은 채 왼손으로 만지면서 눈짓하는 건 누가 우릴 보고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죠.”

아체리아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하는 학생 같은 태도를 취했다.

“저, 선생님. 여쭤볼 게 있으니 질문 좀 들어 주세요.”

“좋아요, 물어보세요.”

“그걸 그냥 말로 하면 안 되는 건가요?”

릴리엇은 대꾸하지 않고 부채를 접어 오른쪽 뺨을 톡톡, 두드렸다.

“……릴리엇?”

“방금 ‘네’라고 대답한 거예요.”

“아니, 말로 하면 안 되는 거냐고요?”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밀스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부채로 입을 가리고 소곤거릴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부채를 이용해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기도 해요.”

아니, 도대체 달린 입은 뭐에 쓰려고?

멧새구이 뜯어먹을 때나 쓸 건가?

“……그…… 부채로 하는 말이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데요?”

“엄청나게 많죠. 가령, ‘너 어젯밤에 나 말고 다른 사람 만난 거 다 알고 있어. 이따 죽이러 갈 테니까 목이나 닦고 기다려’ 같은 말도 할 수 있어요.”

“…….”

“농담이에요, 아체리아 양.”

하나도 농담 같지 않은 표정이었기에 아체리아는 대꾸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하루 종일 릴리엇에게 시달린 아체리아는 저녁이 될 무렵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 지경으로 하루 종일 시달렸음에도 릴리엇은 ‘이 정도면 기초는 된 것 같아요. 그럼 내일부터는 심화 수업을 하죠’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저 내일부터 아플 예정이에요.”

아체리아의 말에 막 사슴 고기를 썰려던 클라우스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 아파?”

“아뇨, 아플 예정이라고요.”

“‘아플 예정’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내일 릴리엇 양이 또 저를 찾아오면 저 아프다고 해 주세요. 침대에 누워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요.”

그제야 아체리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클라우스가 픽 웃으며 말했다.

“하루 종일 시달린 모양이지?”

“말도 마세요. 목이 안 움직일 지경이라고요. 도대체 이런 걸 왜 해야 하는 거예요? 설마 클라우스 님이 와서 좀 가르치라고 하신 건 아니죠?”

“맹세컨대 아냐. 릴리엇이 널 너무 걱정해서 자진해 나선 거지.”

솔직히 말하면 걱정을 했다기보다는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에는 너무 힘들어서 진짜 신경질이 날 뻔했던 것이다. 자수라니, 해 본 적도 없는 그런 것을 어떻게 갑자기 배운단 말인가!

“너무 힘들면 그냥 안 하겠다고 해.”

“제 말을 들어주지를 않는걸요.”

“그럼 내가 말해 줄까?”

잠시 고민하던 아체리아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클라우스의 입을 빌려서 뒤에 숨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말을 전하면, 릴리엇이 마음 상할 것도 염려가 되었다. 어쨌거나 릴리엇은 좋은 마음으로 자기를 도와주러 온 것이었으니까.

공작 부인이 되면 지금보다도 더욱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수군거릴 여지를 하나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릴리엇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그 길이 너무 길고 험난한 것뿐이지…….

아체리아는 긴 한숨을 내쉰 뒤 마음을 고쳐먹고 사슴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담백하게 구워 꿀 소스를 끼얹은 요리는 맛이 좋았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볼게요. 릴리엇도 절 생각해서 그러는 걸 테니까요.”

* * *

“자, 아체리아. 이제부터 아체리아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할 만한 걸 설명할 거예요.”

그나마 호칭이 ‘아체리아 양’에서 ‘아체리아’로 바뀐 것은 다행이다. 아체리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착실한 학생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하기 싫다고 뻗대 봐야 릴리엇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귀족가의 예법 교사 같은 직업을 가졌더라면 아마 뒤로 나자빠지는 애들이 수레 한가득은 되었으리라.

“왜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말할 거라 예상했느냐면, 아체리아가 그토록 질색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대체 뭐죠? 제가 질색했던 게 어제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사실 전부 다 질색했었다. 릴리엇은 아체리아의 말을 못 들은 척, 평소보다 훨씬 우아한 태도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바로 시녀 문제예요.”

“안 할래요.”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릴리엇은 이번에도 굴하지 않았다.

“공작 부인 정도 되는 사람이 시녀 없이 생활하는 건 어려워요. 옆에서 보조를 맞춰 주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일을 대신해 주고, 필요한 정보들을 제때제때 챙겨 줄 사람이 꼭 있어야 해요.”

“릴리엇, 전 진짜 시녀는…….”

“보편적으로는 백작 부인의 딸이나, 공작령을 맡아 관리하는 관료의 딸 등이 공작 부인의 시녀로 들어오죠. 하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비스몽트 공작령을 담당하는 관료에겐 딸이 없더군요.”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조사한 거지?’

아체리아의 생각이 표정에 다 드러났는지, 릴리엇이 조그만 콧대를 살짝 들어 올리며 생긋 웃었다.

“이런 것도 시녀가 해 주는 일이죠.”

“…….”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평소에는 그저 말벗이나 소소한 도움을 주는 정도니까. 그런 걸 집안의 평범한 고용인들에게 다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들은 그들대로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아체리아는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 댁에 공작 부인이나 공작의 딸인 아가씨가 있는데 그녀가 시녀를 들이기 싫다며 요리장인 저에게 시중을 맡겼다면?

주방에서의 일도 해야 하고, 사소한 심부름이나 머리를 빗기거나 차 끓이는 일도 도맡아야 했다면?

내 몸을 차라리 두 개로 갈라서 하나씩 쓰라며 드러누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그러면 고용인들 중에서 한 명을 시녀 삼으면 되잖아요. 다른 일은 안 하게…….”

“아체리아, 아까 내가 말하는 것 들었잖아요. 시녀는 그냥 잡일을 해 주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아체리아를 위해서 다양한 정보도 가져올 수 있어야 하죠. 그런 걸 일개 고용인이 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릴리엇…….”

“아체리아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했어요. 그래서 수도 귀족의 딸은 고르지 않았으니까 안심해요.”

“아,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아니, 잠깐만요.”

아체리아가 릴리엇의 말을 뚝 끊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도 귀족의 딸은 고르지 않았다니? 그럼 다른 딸은 골랐다는 말이야?

“들어오겠니?”

릴리엇이 말했다. 아체리아가 고개를 팩 돌린 순간, 매우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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