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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66)화 (66/144)

66화

에른스트는 시드레가 락케 패거리를 매수하여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내려놓았던 식기를 다시 집어 들어 송어 구이를 한 입 더 집어 먹으면서 무심히 말했다.

“시드레 백작이 아체리아를 해치려고 했었어.”

클라우스의 말에 에른스트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시드레 백작이 왜?”

클라우스는 시종에게 접시를 물리라는 손짓을 한 후 입가를 닦았다.

“자네를 남편감으로 점찍었기 때문이겠지, 에른스트.”

에른스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체리아와 클라우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체리아는 왜?”

“왜냐니? 자네가 아체리아에게 잘 대해 주니까 그걸 질투했다는 것 이외 다른 이유가 또 있겠어?”

이번에는 아체리아가 끼어들었다.

“잠…… 잠깐만요, 공작님. 제가 납치되었던 게 대공 전하 탓은 아니잖아요. 대공 전하께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는…….”

클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른스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접시 위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다가 클라우스를 돌아보았다.

“왜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자네에게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시드레 백작을 고발해야지.”

“고발한들,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데 법관들이 과연 그녀를 건드리고 싶어 하겠나?”

“그래서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거야?”

“그냥 넘어갔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럼?”

클라우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뺨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아무 소득이 없었어. 그러니 이 이야기는 일단 그만두는 게 좋겠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냉랭해졌다. 아체리아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찰나, 에른스트가 냅킨을 탁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공 전하!”

아체리아가 뒤따라 일어서려 했지만 클라우스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러지 못하도록 말렸다. 에른스트는 화가 난 사람처럼 입술을 떨고 있다가 눈썹을 찡그린 채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미안하다, 아체리아. 나 때문에 네가 큰일을 겪었구나.”

“네? 아뇨, 아닙니다. 저기…….”

“클라우스, 식사 초대는 고마웠네. 오늘은 이만 가 보겠어.”

“그래. 그러도록 해.”

클라우스의 대답은 간결했다. 에른스트가 성큼성큼 식당을 벗어나자마자 아체리아는 책망하는 눈으로 클라우스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셨어요?”

“에른스트도 사실을 알아야지.”

“굳이 말씀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왜지?”

“그야…….”

아체리아는 선뜻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에른스트가 시드레 백작에게 화라도 낼까 봐, 설마 그런 게 걱정된다는 건 아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 여자를 제가 왜 걱정하겠어요?”

“근데 왜 그래?”

이번에도 아체리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클라우스가 시드레 백작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에른스트가 몹시 상처받은 얼굴을 한 것만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대공 전하가 기분 상하셨을 것 같아서요.”

클라우스가 짧게 웃는 소리를 냈다.

“별걸 다 걱정하고 있군.”

“그게 어떻게 ‘별걸 다’가 되지요?”

“넌 죽을 뻔했어. 그런 것치고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 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에른스트 님이 잘못하신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글쎄, 네가 에른스트에게 마음 써 주는 게 기분 상해서?”

클라우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아체리아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그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에른스트를 그렇게 걱정하는 이유가 뭐야?”

‘이 인간이 정말!’

아체리아의 뾰족한 시선이 클라우스를 향했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이나 그대로 있다가 말했다.

“대공 전하는 공작님의 친우이시잖아요. 공작님이야말로 대공 전하께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설마 진짜 모른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만약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공작님은 잘못하고 계신 거예요.”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친구 중한 줄을 좀 아시라고요! 심술부리는 꼬마처럼 그러시지 말고요.”

“방금 뭐랬어? 심술부리는 꼬마?”

“그래요. 대공 전하는 공작님의 친구이시기도 하지만, 제게도 친구 같은 분이세요. 요즘 공작님께서 대공 전하를 대하시는 걸 보면 제가 다 조마조마하다고요! 그러니까 심술 좀 그만 내세요, 아셨어요?”

* * *

공작저를 나온 에른스트는 그 길로 시드레 백작저로 향했다.

만찬을 들 때인지라, 백작저의 모든 곳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손님들을 초청했는지 마차 서너 대가 정원 한쪽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에른스트를 본 백작가의 하인들은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부리나케 달려 나온 집사가 응접실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에른스트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공 전하, 왜 이러십…… 대공 전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의 문이 열렸다.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고개를 돌린 순간, 에른스트와 시드레의 눈이 마주쳤다.

“대공 전하.”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시드레였다. 주인으로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 표정을 사근사근하게 바꾸며 자리를 벗어나 에른스트에게로 다가왔다.

“기별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자, 부디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곧 시종들을 시켜서 식사를 준비…….”

“그럴 것 없소. 그대와 함께 앉아서 식사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니까.”

에른스트의 싸늘한 목소리에 놀란 것은 시드레만이 아니었다.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킨 초대객 모두가 처음 보는 에른스트의 모습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당황한 시드레가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이 웃음을 띠며 에른스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에른스트는 그마저도 냉랭하게 뿌리치며 시드레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누지.”

에른스트는 시드레를 잡아끌다시피 해 식당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응접실까지 올라가고 말고 할 여유조차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문이 닫힌 순간, 에른스트는 잡았던 시드레의 손을 팽개치며 화가 들끓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대가, 비스몽트 공작저의 아체리아 클링을 비열한 방법으로 해치려 했다는 것이 사실이오?”

당혹스러움으로 벌벌 떨리던 시드레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그녀는 앙심이라도 품은 것처럼 입술을 앙다물면서 에른스트를 노려보다가,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고작 그런 여자를 위해 저를 이렇게 망신 주시는 건가요?”

“대답부터 하시오.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이 아니에요!”

“클라우스의 말은 다르던데.”

시드레의 두 뺨과 뾰족한 코끝이 동시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로서는 클라우스와 에른스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까짓 여자, 고작 요리사에 지나지 않는 그런 여자가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들 감싸고돌며 날 못살게 구는 거지!

“공작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전 절대로…….”

“내가 아체리아를 아끼기 때문에 그 애를 해치려 했다는 게 사실이오?”

이번에도 시드레는 말문이 막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체리아를 해치려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클라우스였다. 처음에는 에른스트였지만, 클라우스마저 자신의 뜻대로 쥐고 흔들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만 폭발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해 버리면 자신의 잘못까지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드레는 턱에 주름이 지도록 입술을 꽉 다물고 있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발을 탕, 굴렀다.

“어째서 이렇게들 제게 애먼 누명을 씌우지 못해 안달이신 거죠? 어떻게 대공 전하마저 제게 이러실 수가 있나요!”

“시드레, 잘 들으시오.”

에른스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시드레의 말을 끊었다.

“나는 결코 그대와 결혼할 일이 없을 거요. 아체리아가 아니더라도, 내게는 그대와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소.”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대가 그간 해 온 노력은 가상하지만, 난 시드레 백작가와의 혼사를 추진할 일말의 의사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요.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하지 말기 바라오. 아체리아의 신변에 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그대가 결백하든 아니든, 나는 무조건 그대를 고발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대공 전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나는 이만 가도록 하지.”

그 순간 시드레는 추한 행동이라는 것조차 잊고 에른스트에게 매달릴 뻔했다.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이성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에른스트는 시드레를 남겨 둔 채 백작저를 나가 버리고 말았다. 정물로 변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멍청히 서 있던 시드레는 아직 식당 안에 손님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으며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당황한 하인들이 달려왔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나마 시드레를 부축해 일으키려던 하녀는 시드레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 눈가에 멍이 들고 말았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시드레의 비명이 온 백작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곳곳에 밝혀져 있던 촛불까지도 그녀의 서슬에 놀란 것처럼 파르르 몸을 떨었다.

* * *

창문 틈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침대에 누운 아체리아의 눈은 밤이 깊었음에도 영 감길 생각이 없이 또렷하기만 했다.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고 누웠던 아체리아는 답답하다는 듯이 이내 일어나 앉았다.

식사 시간에 클라우스와 에른스트 문제로 다툰 후로, 아체리아는 내내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내일 아침 식사로 쓸 재료를 다듬을 때도 한눈을 팔고 있다가 손끝을 데이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정말 못 살겠네.’

침대에 앉은 채 속으로 중얼거린 아체리아는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자신이 에른스트를 두둔하고 걱정하자 화가 난 것 같던 클라우스의 표정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클라우스가 에른스트에게 요즘 심술만 부리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클라우스가 보였던 반응이 신경 쓰이는 것인지, 아체리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침대에 쪼그려 앉아 있던 아체리아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상쾌하긴 했지만 기분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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