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46)화 (145/148)

샤르망은 순간 허탈감에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언젠가 마주하게 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을 줄 알았다. 그만큼 그에 대한 증오가 커서 오히려 그 분노를 감추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그 오랜 마음이 무색하게 그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뒤늦게 주변의 풍경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멍청이가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아무리 그에게 목숨 바쳐 충성했던 과거가 있다고 한들 정말 개처럼 변해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간의 시간은, 그간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이렇게도 자신이 나약했었나.

역겨움이 밀려와 샤르망은 몸을 비틀거렸다.

‘너는 내 것이다. 네가 돌아온다면 이 모든 것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마. 마지막이다.’

‘그러니 돌아와.’

‘그렇지 않으면 네 주변의 모든 것을 없애줄 테니. 네가 정녕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그리 해주겠다.’

잊지 마, 너는 내 것이라는 것을.

정말 샤르망만을 만나러 온 듯 라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귓가에 닿았던 라칸의 목소리가 연신 샤르망을 비웃었다.

“……우욱.”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났다.

샤르망은 술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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