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40)화 (139/148)

“계속 내가 관리하던 영지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샤르망이 정원 문을 넘어드는 순간 약간의 일렁임을 느꼈다.

살짝 뒤돌아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보호막의 기운이긴 한데…….

안 그래도 안전한 곳에서 이런 걸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마력이 남아도니 그냥 해두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열쇠는 있어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아힐이 샤르망에게 열쇠 꾸러미를 내밀었다.

“아…… 고마워.”

샤르망은 그걸 받아들어 직접 문을 열었다.

문의 안은 그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커다란 공터를 안으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방도 없고 복도도 나뉘어 있지 않고 한쪽에만 아주 크고 커다란 창이 있는.

천장은 거의 건물 3층 이상의 높이에 있었는데, 거기까지도 한쪽 벽면이 창으로 되어 있어 꼭 할스레이크에서 봤던 아르디엘의 방과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

“안의 구조는 네가 편한대로 바꾸어야 할 것 같아서.”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어?”

샤르망이 높디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준비하는 건 며칠 안 걸렸어. 네가 이곳에서 안 지내더라도 필요할 것 같아서. 왕이 준 건 불편해하고 있잖아.”

“그렇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는데.”

“널 데려온 건 나였으니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지.”

그러면서도 의문은 들었다.

자신이 마탑에서 지내는 게 불편한 건 아니라면서 갑자기 집을 마련한 이유가 뭘까.

그러고 보니 아힐은 시장에 돌아다니는 내내 샤르망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샤르망이 미처 몰랐던 엘리움의 정보라든가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마탑에 도움을 청하거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어쩐지 말끝마다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내가 없더라도’, ‘언젠지 모르지만 당분간 바쁘더라도’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같다.

정말 그랬던 것 같은데, 좀 더 신경 써서 들었어야 했나.

열심히 먹으며 대답을 하느라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게 신경 쓰였다.

내가 또 놓친 게 있던가?

그리고 지금은 샤르망을 위해 엘리움에 정착할 집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샤르망이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음? 무슨 일?”

샤르망이 걱정스레 물어보는데 아힐은 아주 산뜻한 얼굴로 대꾸했다.

“음, 아니야. 오늘 뭔가 준비를 되게 단단히 한 것 같이 느껴져서…….”

“아, 그간 바빴잖아. 틈이 있었어야지. 잊었던 것도 말하고 챙긴 것뿐이야. 무슨 일은.”

그렇게 말하니 샤르망도 더 의아해하며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탑이 조용하다고 해도 진짜 집만 하겠어. 어때, 마음에는 들어?”

아힐이 조금 긴장하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샤르망이 그런 그를 올려다보는데 아힐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샤르망의 시선이 다시 공터에 가까운 집을 쳐다봤다.

사실 안이 텅텅 비었을 뿐 기둥이며 창문이며 밋밋하게 쌓아올린 것이 아니었다.

물론 빠르게 올리기 위해 마법을 부렸겠지만 아무리 보는 눈이 없는 샤르망이라도 신경 쓴 티가 보일 정도였다.

창문은 그대로 크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침 햇살을 받는 게 꽤 기분 좋으니까.

방은 잠을 잘 수만 있게 작게.

그리고 거실은 크게 만들어야지. 제자들이 와서 술판을 벌여도 될 정도로.

데굴데굴 굴러다닌다고 해도 숨찰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었지만 어떻게 꾸밀지를 짧게 생각하고 나니 벌써 아늑해지는 것 같았다.

왕이 집을 하사하겠다고 할 때는 좀 불편했는데 왜 아힐에게 받는 건 아무렇지 않은가.

그런 의문도 들었다.

뭐 결론은 마음에 무척이나 든다는 뜻이다.

“응, 무척 마음에 들어. 생각해 보니까 나 그동안은 되게 떠돌이 같은 생활을 했네.”

페페의 집에서는 집처럼 있었다고 해도 애초에 페페의 몸으로 있었으니.

샤르망이 뒤늦게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왜 아힐이 아까 꼬치 주인이 꼬치를 먹으라고 덥석 쥐여 줬던 것처럼 집을 이런 식으로 덥석 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샤르망이 또 불편해할까 봐.

그래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준비하고 샤르망에게 열쇠 꾸러미를 전달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고마워. 내가 신경쓰지 못한 부분도 늘 네 덕분에 알게 되는 것 같아. 이제 어느 정도 위험에 대비도 해두었으니 조금은 여유를 즐기는 편도 괜찮겠어.”

샤르망의 시선은 어느새 다시 집에 가 있었다.

“잘 생각했어. 그럼 조만간 집들이도 하는 건 어때? 집을 새로 이사 가면 그런 걸 한다던데.”

“집들이?”

“그것도 안 해봤나?”

“어…… 음. 그렇지. 그런데 그건 너도 그렇지 않아? 마탑에서 집들이하는 건 좀…….”

그러다 둘이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멀쩡한 성인이 안 해본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그리고 원수와도 같았던 관계였는데 이렇게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간략하게 집들이를 계획하고 함께 탑으로 돌아오는 길.

샤르망은 전보다 더 아힐과 친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밤.

샤르망은 친밀해졌다는 마음을 계속 느끼며 차를 마시기 위해 아힐을 찾았다.

그러나 아힐은 자리에 없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도 며칠이나 자취를 감추어, 샤르망은 아힐을 만나지 못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