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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20)화 (119/148)

‘아이고, 우리 미야 화났다. 진짜로 화났네.’

아차 싶었다.

페페는 그녀의 표정을 봄과 동시에 자신의 실수를 직감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샤르망 페페!”

미야의 고함은 거의 사자후에 가까웠다.

아이고, 심장이야.

페페는 뇌가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너, 진짜. 누굴 두둔하는 거야?”

방금은 자신이 생각해도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두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모두 다 알고 있는 데다 샤르망의 진심을 계속해서 봐온 페페로서는 지금 그 애의 행동들이 밉지 않았다.

게다가 페페는 이미 사력을 다해 샤르망을 돕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 미야를 더 화나게 하면 오늘 자리를 만들기는커녕 꽃가게에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가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페페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 미안, 미안해. 우선 흥분 좀 가라앉혀봐. 나 무서워.”

미야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여전했지만 페페가 팔을 잡고 부탁하자 불길 같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아니? 샤르망 노엘 켄더스 걔가 널 삼켜버렸는지 널 가둬놓은 건지…… 온갖 상상이 들끓었단 말이야. 네가 알고 있었던 일이든 몰랐던 일이든 적어도 너라면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해.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미야가 토하듯 쏟아내자 페페가 미야의 늘씬한 허리를 껴안았다.

“미안, 정말 미안. 우리의 사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안해. 네가 화낼 만해.”

“……그런 애가 말없이 사라져?”

“변명을 하자면 나는 너희를 지키고 싶었어. 이곳을 지키고 너희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밖에 없었어. 지금도 그래. 그러니까 용서해 주라, 응?”

페페의 순둥순둥한 눈이 크게 끔벅였다.

“어휴.”

미야가 찰싹 달라붙은 페페를 떼어내지 못하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어리바리해 보여도 페페는 미야가 어릴 적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이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도 늙지 않고,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늘 해맑고 늘 게을렀으며 늘 망상에 젖어 있고 또 어딘가를, 누군가를 늘 그리워했다.

페페가 누군지도 알고 특별한 존재여서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너무나 서운했다.

가까스로 감정을 가라앉힌 미야가 페페의 팔을 떼어놓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떡할 건데. 걔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시커먼 녀석들도 다 어떡할 거냐고.”

“시커먼 녀석들?”

“걔 부하인지 뭔지들도 여기 있잖아! 편지도 모자라 부하들까지 와서 얼마나 귀찮은지 아니?”

“샤르망의 부하들이 널 찾아왔다고?”

페페가 처음 듣는 양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일 아침 도착하는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사과 편지도 모자라 그저께부터는 제자인지 부하인지들까지 미야를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부탁을 하고 난리였다.

솔직히 생각보다 신사적인 그들의 태도에 놀란 건 사실이었다.

륀트벨인은 다 무식하고 잔악하며 의리도 없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기 위해 가면을 쓴 것인지 어떤지 알게 뭐란 말인가.

미야는 그렇게 몇 번이고 화를 내며 그들을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걔 아니면 네가 그러라고 떠민 거 아니야?”

그러자 페페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마도 그 애들이 스스로 움직인 걸테지. 미야, 내 이야기를 들어봐.”

페페가 미야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알렉산드로와 아이들이 오기 전에 미야부터 설득해야겠다.’

페페는 진땀이 흐를 미래를 생각하며 미야를 의자로 이끌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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