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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12)화 (111/148)

“에빌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멜피네.”

샤르망이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힘들게 뛰어나가 일하던 사람까지 데려와서 이러는 걸까.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괜히 말을 했나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자기야, 앉아봐. 얼른 앉아보세요, 얼른!”

멜피네가 에빌을 거의 끌어내리듯이 의자에 앉히며 샤르망에게도 얼른 앉으라 손짓했다.

샤르망도 덩달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오면서 대강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천공의 섬 이야기를 하셨다고요.”

에빌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샤르망이 민망함에 웃었다.

“정말 별 얘기 아니었어. 괜히 둘을 번거롭게 만든 것 같네.”

“아닙니다. 샤르망 씨만 괜찮다면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멜피네의 말대로 할스레이크에 대해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에빌의 말에 샤르망이 슬며시 멜피네를 쳐다봤다.

그러자 멜피네가 괜찮다는 듯 웃으며 샤르망에게 끄덕여 보였다.

“맞아. 내가 그곳에 가고 싶다고 했어. 혹시 그곳에 대해 알고 있어?”

생각해 보니 단순히 흥미가 돋아서 에빌을 데려온 것 같지 않다.

그런 이유였다면 집에 가서 오순도순 둘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둘은 아마도 할스레이크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르망처럼 군인이었던 것도 아닌 평범한 두 사람이 그곳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예, 아마 꽤 알고 있을 겁니다.”

모호한 답변을 하며 에빌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쩐지 좀 씁쓸한 미소였다.

“여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래서 그냥 가볍게 이야기 한 거였어.”

“음, 그럼 샤르망 씨는 왜 그곳에 가고 싶으신 겁니까?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곳이 좋은 곳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얼마나 더 알고 있는 거지?

샤르망은 잠시 고민했다. 정말 이들에게 말해도 될까?

멜피네와 에빌 모두 그동안 특별히 의심할 구석은 없었다.

처음부터 샤르망이 누군지 알고 접근하고 노린 것이 아니라면.

너무 깊이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같은데……. 

단순히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말인데 멜피네가 에빌까지 데려온 이유가 뭘까.

샤르망은 묻고 싶었다.

샤르망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 기색이 에빌에게도 느껴졌는지 에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제가 그곳과 연이 있어서요. 너무 갑작스러워 놀라셨을 수도 있겠군요. 아무나 아는 곳은 아니니까요.”

그러자 멜피네가 뒤늦게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랐다.

“아, 미처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 어쩌지……. 나는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에빌 불러오는 데만 급급했거든요. 미안해요.”

샤르망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오히려 고맙지. 다만……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

확실히 에빌의 말대로 아무나 아는 곳이 아니다.

과거 이 시기에는 륀트벨에서도 할스레이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곳에 대해 찾고 연구하고 접근한 것은 다름 아닌 모두 샤르망의 노력이었으니까.

그때도 엘리움과 아힐은 륀트벨과 똑같이 마력증폭기를 원했지만, 그걸 먼저 쟁취한 게 자신이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그 정도까지만. 적당히만 말하면 될 것 같기도 했다. 간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이곳이 타국에 견제를 많이 받고 있다는 건 엘리움 국민이라면 모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만약 이들에게 마력 증폭기에 관한 일을 말하더라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의심될 만한 것들은 다 제외하고 말하기로 했다.

“그곳에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 거기에 가고 싶은 이유는 엘리움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야.”

“이곳을요?”

“응. 멜피네는 타국에 오래 있기도 했지만 둘 다 이곳에서 지낸 적이 있고 지금도 지내고 있으니 알 거야. 엘리움이 생각보다 위태로운 상태라는 걸.”

“가끔 신문들은 봐서 알지만 그래도 좋은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군요.”

멜피네가 다소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샤르망은 잠시 고민하다 마력 증폭기 이야기만 쏙 빼고 가볍게 말했다.

“그래서 그쪽에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

멜피네와 에빌이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다 샤르망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걸 왜 샤르망 씨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에빌의 말에 샤르망이 아차 했다.

작은 가게의 주인이 엘리움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아, 음. 내가 두루두루 친한 사람이 많아서 의뢰를 받았거든. 그런 부탁을 들어주는 의뢰도 받고는 해.”

“그럼 그 의뢰는 대단한 사람이 한 걸 수도 있겠네요. 작은 가게인 줄만 알았는데.”

멜피네가 가게를 둘러보며 신기한 듯 말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하긴 저희를 다시 이어준 가게니 특별한 가게라도 생각하긴 했어요! 그런데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특별한 곳 같네요!”

멜피네의 밝은 음성에 샤르망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 거군요. 한데 멜피네의 말로는 아르디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샤르망이 끄덕였다. 그러다 멈칫했다.

에빌이 할스레이크와 연이 있다고 해도 아르디나 할스레이크에 대해서까진 잘 알지 못할 텐데, 무척이나 친근하게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기분 탓인가? 샤르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사실 내가 이번에 그녀를 불쾌하게 만든 일이 있긴 했는데…… 그건 그녀를 돕기 위해서였어. 아마 내 방법이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어쨌든 꽤 오래전부터 큰 근심을 앓고 있는 것 같아. 그것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일을 맡기고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근심을 해결해 주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해서.”

“그렇군요. 그 근심에 대해선 아시는 게 없는 건가요?”

“응, 아쉽게도. 나는 사실 그들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어. 친분을 통해서 부탁을 한 상태였거든.”

가볍게 말해주려던 샤르망도 어느새 다시 고민하며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샤르망의 말을 다 들은 에빌이 한참 생각에 잠겼다.

멜피네는 그런 그를 보듬듯 팔을 쓰다듬었다.

“샤르망 씨.”

“응?”

에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가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도와드리고 싶었다는 말 기억하시죠?”

“응? 아, 응.”

“저희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샤르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와주겠다고?”

“대신 간단한 부탁만 들어주신다면요.”

“무슨…….”

샤르망이 무슨 의미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에빌이 덧붙였다.

“만약 제가 그곳의 문을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샤르망은 너무 놀라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문을 열어드리겠다.

문을 열 수 있다.

에빌은 거길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가 아니라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할스레이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소로 숲 엘프처럼 할스레이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이거나 아니면 할스레이크인이거나.

하지만 그 친밀한 관계인 하라만도 샤르망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은 허락을 받지 못했는데 에빌은 그게 마치 어렵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헛소리를 들은 건가?

샤르망은 제 귀를 의심하며 놀란 눈으로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자 에빌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 것 같군요.”

“아니, 어, 그러니까 나를 거기에 데려다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거 맞지?”

“예. 샤르망 씨가 원하시면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헛소리가 아니었다.

샤르망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한 의심이 헛된 의심이라 건데.

오히려 샤르망 자신이 매달려야 할 판이었다. 정말 확인이 가능하다면 모든 걸 털어놓아도 좋았다.

샤르망은 저도 모르게 기대감에 찼다.

“다만.”

“다만?”

“할스레이크인들이 저에 관해서 물어도 답변을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멜피네에 관한 물음에는 절대 답을 해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샤르망은 알겠다고, 당연히 그러겠다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어떻게 들어왔냐고 추궁을 하면 말을 하게 될 텐데 어떻게 입을 닫지?

하지만 만약 에빌의 말이 진짜라면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회니 그 뒤는 자신과 아힐이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려는데 에빌이 작게 웃었다.

“어차피 문이 열리면 누가 열었는지 확인이 가능할 테니 어떻게 들어왔냐는 책임 같은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빌은 마치 샤르망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샤르망은 얼굴이 조금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아……. 그렇게 안 해도 그건 스스로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했어. 거길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게. 둘에 관해선 입을 닫도록 할게.”

샤르망이 더 말을 하려다가 입만 달싹이며 말을 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관계기에…….

결국 샤르망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할스레이크와, 아니, 아르디나 할스레이크와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도 될까? 에빌 네가 거길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건지 말해줄 수 있다면 부탁할게.”

에빌은 잠시 침묵했다.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샤르망이 그 뜻을 알아채고 먼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야, 말하기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도움을 주겠다는 건 정말 너무 고마워.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부탁은 꼭 지키도록 할게.”

샤르망이 모든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만큼 에빌도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실이야 정말 에빌이 할스레이크의 문을 여는 걸 확인하고서 해도 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진 말하기가 힘들 것 같군요.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릴 수 있을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후 에빌과 멜피네는 조금 더 편안한 얼굴로 다과를 즐기다 돌아갔다.

원할 때 언제든 문을 열어주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하지만 샤르망은 에빌과 대화를 할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에빌이 할스레이크 인이라는 걸.

적어도 할스레이크에 관한 사실은 모두 그의 말이 맞는다는 걸.

샤르망이 알고 있는 할스레이크에 관한 정보를 에빌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미 그걸로 의심은 거둬졌지만 에빌이 진짜 속내를 이야기하기 전까진 샤르망도 마력 증폭기에 대해선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까.

선뜻 도움을 주겠다는 말에 덥석 부탁을 하긴 했는데, 뒤늦게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에빌과 멜피네가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괜찮은 건가.”

하지만 그 제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힐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까.

밤늦게까지 샤르망은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던 중 에빌이 다시 찾아와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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