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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02)화 (101/148)

“거기서 계속 스승님을 찾고 있다길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스승님이 라칸을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잖아.”

라디는 일전에 말했던 동료들과 연락이 닿았다고 털어놓았다.

그 후로 아무런 말이 없어 역시나 실패했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히 연락이 닿은 이들 모두 여전히 샤르망을 따르는 이들이라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펠릭과 엘타인이 륀트벨을 왔다 갔다 하며 그들과 접촉하고, 라디가 샤르망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막는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방금까지는.

“그래.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야. 어쨌든 날 계속 속이려고 그랬다 이거잖아.”

“확실해지면 말하려고 했어. 이렇게라도 안 하면 스승님은 우리한테 뭘 맡길 생각을 안 하잖아.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또 우리가 위험하면 혼자 냅다 움직이겠지. 아니야?”

“괜히 말 돌릴 생각하지 마. 그렇게 말해도 안 넘어가니까.”

라디가 움찔하며 ‘쳇’ 하고 혀를 찼다.

“아무것도 안 하고 모습도 드러내지 않더니 계속해서 스승님만 찾으라고 하고 있대.”

“누가?”

“누구긴 누구야. 라칸 놈이지. 안 그래도 미친X이 더 미친X이 되어버린 것 같다잖아. 그래서 우리끼리 알아볼 수밖에 없었어.”

샤르망은 심각한 얼굴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동안 라디가 계속해서 말했다.

“륀트벨이 스승님에게 접촉하는 걸 누가 막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아까 그 녀석인 것 같단 말이지.”

“누구, 아힐?”

“그래. 협조는 무슨. 실은 스승님한테 뭔 흑심이라도 품은 거 아니야?”

아힐의 말에 더더욱 오해를 산 라디였다.

샤르망이 실소를 했다.

“흑심은 무슨. 그런 사람 아니야. 나중에 제대로 다 이야기해 줄게. 지금은 말해준다고 해도 네가 이해할 수가 없을 거야.”

“나중에 언제? 아까 잠자코 듣다 보니까 우리보다 그 녀석이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모양인데. 감옥에 찾아왔을 때부터 영 마음에 안 들더니만.”

왕궁 마법사들과 함께 만났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이유 전혀 없다니까.”

“스승님은? 저 녀석한테 별 관심 없는 것 맞지?”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고. 그래서 지금 펠릭하고 엘타인은 륀트벨에 있다고?”

“어……. 아마도 지금은 수도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텐데. 샤드랑 새벽에 접촉하기로 했거든.”

라디는 이제 다 포기하고 샤르망이 묻는 족족 대답했다.

라디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실 모두 샤르망이 뒷목을 잡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샤드는 샤르망도 잘 알고 있는 자였다.

그라면 믿을 만하지만…….

“하…….”

샤르망은 두통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화 많이 났어……?”

라디가 뒤늦게 샤르망의 눈치를 살살 봤다.

“아니.”

그렇게 말하자 라디는 오히려 더 안절부절못했다.

“절대 위험한 일 안 해. 스승님이 하지 말라는 건 안…….”

“네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지?”

“……응. 그치만 새로 알아낸 것도 있다니까.”

“뭘 알아냈는데.”

그러자 라디가 기회가 싶어 입을 열었다.

다 들킨 마당에 셋이서 비밀로 하자는 약속은 내던진 지 오래였다.

“그 녀석 부하들 목이 제법 날아갔다고 들었어. 몇 달 동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사람들 불만도 슬슬 나오고 있다고 해.”

“……그 정도라고?”

“솔직히 크기만 컸지 따지고 보면 자급자족이 안 되는 나라잖아. 그래서 엘리움을 치려고 했었던 거고. 사람들도 바라고 있었잖아, 안 그래?”

라디의 말이 맞았다.

륀트벨 사람들 모두 전쟁을 원하고 있었다.

물론 륀트벨이 승리만 하는 전쟁.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닌데, 소문을 내서 살살 흔들어 보면 내란도 가능하지 않을까? 영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우선 돌아가.”

“왜, 왜?”

“어차피 아까 가겠다며.”

샤르망이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라디가 어정쩡하게 일어서서 샤르망의 눈치만 살폈다.

“다시 오지 말라는 건 아니지?”

“생각 좀 해보고.”

“아, 스승님!”

“뭘. 네가 큰소리칠 때야?”

“아니.”

라디가 입을 딱 다물었다.

샤르망은 라디를 거의 내쫓듯이 돌려보냈다.

라디는 화 풀라며 애교란 애교는 다 부려 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자 마지못해 돌아갔다.

한숨 돌리고 나서야 다 식은 차를 마시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가게 문을 열지 않는 날 일을 몰아서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오늘은 부쩍 평소보다 더 바쁘다고 느껴졌다.

“또 누구지?”

샤르망이 찻잔을 내려놓고 문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밖에서는 말이 없었다.

가게 문을 여는 날이 아니니 아는 사람이 분명한데.

위험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아 문을 여는데 밖에는 미야가 서 있었다.

“아, 미야였구나. 들어와.”

샤르망이 반갑게 웃으며 그녀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미야는 무표정으로 샤르망을 쳐다보기만 했다.

“미야? 무슨 일 있어?”

무표정이다 못해 서늘하게까지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샤르망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침묵 뒤에 미야 벨킨슨의 입이 열렸다.

“너 정체가 뭐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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