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꽤 오랫동안 아힐은 마법사들에게 시달렸다.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10성급의 마력을 개방한 아힐 더프를 마법사들이 가만히 둘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야 그들의 지독한 관심에서 벗어난 아힐은 곧바로 자신을 살려준 여자를 찾았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
자신을 살려준 여자가 희대의 악마라 불리는 사람이라 다소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아힐 더프가 그녀 앞에 나타났지만 정작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자신이 구해준 아힐 더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적으로 간주할 뿐이었다.
아힐은 그 뒤로 샤르망에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언젠가 빚을 갚으리라 여기고 이따금 그녀를 찾아가 살피곤 했다.
뒤늦게야 그녀가 자신을 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이 임무를 처리하는데 걸리적거리는 존재를 치운 것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큰 충격에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륙 전쟁이 발발했다.
서쪽의 마탑이라 불리는 룬힐이 수호하는 엘리움도 대륙 전쟁의 피해를 피하지는 못했다.
아힐과 마탑이 있어 엘리움은 5년간의 전쟁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이 모두 정복된 후 이어진 엘리움만을 향한 지독한 공격에는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자 결국 아힐이 함께 전면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자신을 살려준 은인이자 희대의 악인 샤르망 노엘 켄더스와 직접 부딪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가 모든 힘을 쏟아부어 륀트벨을 대륙에서 없애버린다면 승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륀트벨의 전멸과 동시에 죄가 없는 자들까지 모두 죽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미 희생된 엘리움의 사람들도, 더 나아가 이미 전쟁에서 패배한 타국의 사람들의 희생 또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아힐은 결정을 해야 했다.
10성 급의 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
바로 전쟁이 발발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그렇다면 자신이 가까스로 얻은 10성급의 힘과 영생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다 그것 또한 문제가 있었다.
돌아간 후 전쟁을 막으려면 이 일의 원흉인 륀트벨의 황제와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없애야 하나?
결정권을 가진 그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은 바로 자신을 구했던 샤르망 노엘 켄더스 때문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낯선 사람을 살리려 자신의 마력까지 퍼부어가며 안정시키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고 존재를 지워야 하나?
정녕 샤르망 노엘 켄더스에게 갱생의 여지는 없는 걸까?
그리고 그보다 더 원초적인 감정이 그의 결정을 괴롭혔다.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뜻밖의 정보가 들어왔다.
바로 륀트벨의 승리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숙청이 된다는 것.
그것도 그녀가 아끼는 부하들의 손으로 말이다.
그녀가 엘리움을 쓰러뜨리는 데 실패해도.
엘리움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해도 죽는 건 변함이 없었다.
옳은 결정을 하기 위해 륀트벨을 탐색하던 중에 공교롭게도 그녀의 수족이라는 세 명의 대화에 의해서 알게 된 것이다.
펠릭 크라손.
엘타인 샤이어.
라디 피제르타.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주인이자 스승으로 떠받들고 있는 자들.
황제의 명을 받은 그들은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살리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녀를 죽일 륀트벨이 이미 대륙 제패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타국으로의 망명은 어불성설이다.
‘기회인가.’
결정을 내리라는 기회인가 보다.
아힐 더프는 그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대화 시도는 쉽게 성공했다.
그들 또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해 결정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아힐 더프는 신이 내려준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아힐 더프는 시간을 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끔찍한 미래가 다시 시작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는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아힐 더프는 그 사람을 샤르망 노엘 켄더스로 정했다.
그녀에게 한번 미래를 걸어보자.
도박이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자신을 살리던 그 눈에 담긴 감정만큼은 진심이었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샤르망의 기억을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그녀를 각성시킬 죽음, 배신에 대한 기억 말이다.
① 하지만 그녀의 기억까지 온전히 보전하려면 그리고 회귀 의식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려면 자신의 전부를 걸고도 더 많은 제물이 필요했다.
아힐 더프는 다시 비밀리에 세 명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 설득할 것도 없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물을 더 걸어야 한다고 말을 하자마자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세 제자는 자신들의 전부를 걸겠다고 나섰으니까.
“우리 셋의 심장으로 스승님을 구해낼 수 있는 거라면…… 값싸게 먹히는 제안이군요.”
대표로 아힐과 접촉했던 펠릭이 말했다.
“이 의식에 심장을 걸면 만에 하나 평생 시간 속에 갇힐 수도 있다. 물론 나 또한.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시간을 돌리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그럼 어떻게 됩니까?”
“의식이 발동된 그 시간, 그 시점에 그대로 갇히게 돼. 쉽게 이해시켜 주자면 돌아간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아끼는 제자를 평생 찾을 수 없게 되겠군.”
시간의 감옥이라도 되는 건가.
다소 충격을 받은 펠릭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마법사의 표정은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정말 회귀 의식의 실패를 걱정하기보단 자신들의 각오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한 펠릭이 픽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이제 와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최고의 마법사라는 당신도 모든 것을 걸겠다는데 우리라고 못 걸 게 있겠습니까?”
아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맙군. 이왕이면 성공을 빌게. 나 또한 그럴 테니.”
“부디 성공시켜주십시오.”
아힐이 끄덕였다.
모두의 각오를 받아낸 이상 성공하는 수밖에.
“내 죽음과 동시에 회귀 의식의 마법진은 완성이 될 거다. 그 뒤는 그대들의 몫. 륀트벨의 마법사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봉인진 위에 설치한 마법진이 무사히 사용되려면 전쟁을 륀트벨의 승리로 이끌어야겠지.”
펠릭이 끄덕였다.
이미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죽음이 예정되어있는 이상 그들은 이 오랜 전쟁이 승리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자신들의 손이 아닌 더 잔인한 죽음을 얻을지도 몰랐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대한 열등감이든 다른 이유든 충복에게 상이 아닌 죽음을 내리는 황제니까 말이다.
“절대 약해지지 말게.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도 안 돼.”
무사히 회귀 마법진이 발동되려면 그들이 황제에게 받은 명대로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봉인진 위에서 죽여야 한다.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이미 각오한 일. 절대 실패는 없습니다.”
“기대하지. 그럼 이야기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마법진을 발동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이것이 회귀 의식 전 마지막 그들의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