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또 왜 여기에.”
그것도 기척까지 일부러 죽이고서.
“꿍꿍이가 있을 줄 알았다니까.”
“…….”
라디는 불량스럽게 껄렁거렸다. 불만이 팍팍 느껴지는 모양새였다.
“그래. 처음부터 이상했어. 엘리움의 귀족이 머리에 칼 맞은 것도 아닌데 우리를 구해주는 게 말이 돼? 그 자리에서 죽여도 모자랄 판에.”
목소리에 날이 섰다.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라디 피제르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샤르망이라니. 내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데, 의심했던 게 진짜잖아.”
이야기가 잘 풀려 편히 가게로 돌아가려던 샤르망은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저 녀석은 진짜 안 되는데.’
라디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스승님이 맞다고?”
“저기, 라디.”
“샤르망이라고? 근데 나한테만 숨기려고 그랬다고?”
“목소리 좀 낮춰.”
샤르망이 주변을 살폈다.
“나한테 할 말이 진짜 그것밖에 없어, 스승님은?”
오히려 목소리가 더 커졌다.
아무리 한산한 거리라고 한들 이렇게 소리를 내면 누구 하나 들여다볼 게 뻔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곤란한 일만 생길 것이다.
조용히 얘기하려면 뒷덜미를 내려쳐서 기절시켜서라도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조용해진 라디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펠릭은 올 게 왔다 싶은 얼굴이었지만 도리어 당황한 건 샤르망이었다.
“라디, 너 지금.”
“진짜 나한테만 끝까지 속이려고 그랬어? 왜 그 몸으로 있는 거냐고. 왜? 마법이라도 부렸어?”
샤르망이 이마를 짚었다.
“내가 설명할게.”
“설명? 방금 숨기려고 했잖아. 나한테 말하지 말라며.”
“그건.”
“근데 왜 나한테만 숨기라고 해? 내가 스승님한테 그것밖에 안 돼? 내가 미덥지 않아서?”
“라디, 그게 아니야. 우선 진정해봐.”
샤르망은 손을 내밀어 라디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샤르망의 손이 닿기도 전에 라디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나는 스승님한테 버림받은 줄만 알았는데.”
“…….”
“근데 자꾸 이상하게 생긴 여자한테서 스승님이 느껴지니까.”
“…….”
“어떻게 해서든 스승님 흔적을 찾으려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 있는 건데, 스승님은.”
“라디.”
“아무리 내가 미덥지 않아도.”
“라디…….”
“낄 틈은 좀 주지.”
라디가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샤르망은 라디가 이렇게까지 저기압인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놀라서 라디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샤르망이 한 발 더 딛는 순간 라디가 훌쩍 뛰어 사라졌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라디로 인해 빈 자리를 샤르망이 허무하게 쳐다봤다.
“그런 뜻이 아닌데.”
샤르망이 중얼거렸다.
“저 녀석도 알 겁니다. 서운해서 저럴 거예요.”
“여긴 륀트벨도 아닌데 어딜 가는 거지. 펠릭, 돌아가서 집에 돌아간 건지 확인해 봐.”
“어차피 가도 사람 없는 곳으로 갔을 겁니다. 알아서 돌아오겠죠.”
“이런 적은 처음이잖아.”
펠릭이 픽 웃었다.
“스승님 앞에서만 처음이고, 제 앞에서는 자주 그랬습니다. 알아서 돌아올 겁니다. 이미 다 큰 녀석인데요.”
펠릭이 다독였지만 걱정이 떨쳐지지 않았다.
무슨 사고라도 일으키면 큰일이었다.
“그래도 확인해 봐.”
“예,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스승님도 우선 돌아가 계십시오.”
샤르망은 끄덕이고 펠릭이 돌아가는 모습을 빤히 보다 샤르망도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