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엘타인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샤르망을 쳐다봤다.
“……어이가 없군.”
“그래? 륀트벨에서는 어떤데?”
샤르망이 김이 오르는 수프를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육즙만큼 풍부한 토마토의 풍미가 달큼하게 입안에 넘쳐 들어왔다.
‘살짝 매콤한데.’
먹자마자 입에 침이 고였다.
고기 대신 들어간 소시지가 톡하고 입안에서 터졌다.
짭짜름하고 향신료 가득한 소시지를 씹으며 어제 한 그릇 받아 가라고 했을 때 받아 갈걸! 하고 후회했으나 오늘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
엘타인은 숟가락을 건들지도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에 반해 라디는 음식이 꽤 마음에 드는지 두어 번 수프를 떠먹어보더니 분주하게 숟가락을 놀렸다.
라디는 원래 입이 짧고 입맛도 셋 중 가장 까다로웠기 때문에 신기한 일이었다.
라디를 힐끗 본 샤르망이 다시 엘타인을 쳐다봤다.
“이것도 나름 괜찮지 않나? 차차 겪어 봐. 마음에 들게 될지도 모르니까.”
엘타인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펠릭과 엘타인은 수프에 손도 대지 않았고, 라디만 묵묵히 먹고 있었다.
시끄러운 가게 안에 조용한 자리는 오직 이 네 명이 앉은 자리뿐이었다.
“내일도 또 와!”
식당 주인의 황송한 배웅을 받으며 넷은 식당을 나왔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휘영청 달이 떴다.
나름 감시의 역할이니 저택까지 갈 참으로 집과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샤르망 밤에 외출했네? 조심히 들어가!”
로브를 쓰지 않아 샤르망을 알아본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혹시나 셋에 대한 반감이 커 문제가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이 도리어 우스워졌다.
‘이대로만 녹아들면…….’
샤르망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몸을 돌려 물었다.
“이곳에 정착할 생각은 없어?”
“사람만 찾으면 떠날 겁니다.”
조금은 고민해볼 법도 한데, 펠릭이 단번에 답을 했다.
“간단히 보내줄 거라고 확신하네?”
“어차피 이곳도 우리가 사라져야 편한 거 아닙니까.”
“그야 마음먹기에 달렸지.”
샤르망이 좀 더 앞서 걷다 몸을 홱 돌렸다.
세 제자가 보기엔 수련을 한 몸 같지는 않은데 움직임이 몹시도 가벼워 보였다.
“그런데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그때도 너희와 함께 한다는 보장이 있어? 너흴 따라가지 않겠다면?”
“함께 하는 게 아닌데.”
라디가 끼어들 듯 말했다.
샤르망은 약간 심기가 뒤틀릴 뻔 했다.
“함께 하는 건 또 아니라니?”
“샤르망이 가는 곳을 우리가 따라가는 거지 샤르망이 우릴 따라오는 게 아닌데. 애초에 전제가 잘못 되었어.”
샤르망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셋은 샤르망을 두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행동이었다.
샤르망은 앞서가는 셋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하여튼 별난 놈들이라니까.’
다시 그들을 따라 걸으려는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어제 한 차례 의식을 잃었었는데 이렇게 또 바로 전조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위험했다.
‘왜 점점 빨라지지?’
아힐은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이 몸은 기다리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샤르망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몸을 벽에 지탱했다.
어제처럼 준비도 없이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눈앞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
온몸으로 샤르망의 영혼을 밀어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안 돼.
샤르망이 이를 악물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여기서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왜 그러는 겁니까.”
펠릭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다가왔다.
샤르망이 뒤로 물러나며 날카롭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다, 가올 필요 없어.”
마치 잃어가는 의식을 억지로 부여잡듯 샤르망의 눈이 희번뜩 넘어가다 다시 돌아왔다.
다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문제가 있습니까?”
펠릭이 재차 물었다.
엘타인과 라디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가왔다.
“가라니까?”
샤르망이 새된 소리를 내며 그들을 밀어냈다.
“저녁은 여기까지 하지.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지? 추적이 가능하니까 수상한 짓은 할 생각하지 말고.”
샤르망이 몸을 휘청이면서도 그들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
“뭐 저런 게 다 있어. 저녁 먹자고 귀찮게 굴더니만.”
라디가 어둠 속을 보며 말했다.
그에 반해 펠릭은 찜찜함을 버릴 수 없었다.
곧 죽어도 약점을 숨기고 거리를 두는 게 누구를 떠올리게 했다.
‘무슨 미친 생각을.’
고작 이름 하나가 같다고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보다 대체 샤르망이 어디 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어떻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들을 떠날 수가 있는지.
펠릭은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사라지던 날을 떠올렸다.
샤르망이 황제의 부름을 받아 임무를 받아 나온 날.
여느 때처럼 그들은 빠르고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셋은 늘 그랬던 것처럼 음식과 술을 가지고 샤르망의 집에서 짧게 회포를 풀었다.
그 후 문제가 터졌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 명 모두 그 이후의 기억이 뚝 잘린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눈을 떴을 땐 어이없게도 감옥의 차가운 바닥이었다.
대체 왜 이곳에 들어와 있는지, 샤르망은 어디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셋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외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마법으로 봉인 당한 것도 그렇다고 저주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마법사인 엘타인마저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무척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기분만 들 뿐 혼란스럽기만 했다.
얼마 뒤 혼란 속에서 자신들이 갇힌 이유가 반역을 저질렀다는 명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기가 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군가는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사라졌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라칸이 그들에게 한 것처럼 반역죄를 씌워 샤르망을 가둬 두었다고, 곧 숙청할 거라고 하기도 했다.
반역이라니.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절대 그럴 인물이 아니었다.
제 목숨까지 언제든 내놓을 준비가 있는 사람한테 반역이라니 어불성설이다.
그날 이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정신머리가 답답했다.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샤르망을 구해내야 할 지금.
감옥에 갇힌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잉겔로가 찾아왔다.
한때 샤르망의 상관이자 지금은 라이벌 관계에 가까운 자였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살리고 싶으면 너희를 바쳐라. 혹시 아나? 주군의 화가 풀릴지도 모르지. 잘 생각해봐.’
시간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잉겔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었다.
엘리움에 제물로서 처음 도착했을 때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감히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거늘.
저 이상한 여자를 만나고부터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고 있었다.
여자의 발언이 일부러 그들의 신경을 긁으려는 의도라는 것도 모르는 바보천치는 아니었으나, 중요한 건 오로지 샤르망 노엘 켄더스였다.
그녀를 찾고 구할 수만 있다면 이따위 광대 짓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셋 모두가 그랬다.
애초 연결고리가 오로지 샤르망 노엘 켄더스 한 사람뿐인 세 사람에게 선택권이라는 건 없었다.
‘그날의 기억만 찾을 수 있다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곳을 보며 셋은 같은 생각을 했다.
여자는 꽤 멀리 사라졌는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돌아가자.”
펠릭이 몸을 돌리자 엘타인과 라디 역시 차례대로 몸을 돌려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