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60)화 (59/148)

확실했다.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샤르망이 아는 얼굴이었다.

샤르망 페페의 몸에 들어와 맞이한 첫 번째 손님이 팔고 간 반지의 주인.

여자의 이름은 모른다.

추억 속에서는 여자만이 ‘에빌’이라고 남자의 이름을 불렀을 뿐, 에빌은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었다.

‘여길 찾아오다니.’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물건이 가진 추억 속에 있던 여자가 실제로 나오니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묘했다.

샤르망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녀를 반겼다.

“어서 와. 찾고 있는 곳 맞아.”

“아, 그렇군요. 근처에 여행을 왔다가 신비한 가게가 있다고 해서 왔어요.”

하늘하늘한 밝은 드레스에 고운 손에는 은빛 지팡이와 우산만큼 챙이 큰 하얀 모자를 들고 있었다.

목소리가 노랫말처럼 고왔다.

“천천히 보도록 해.”

샤르망은 최대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빤히 쳐다본다면 누가 봐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첫 손님은 반지를 이곳에 팔고 간 이후 잘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여자는 결혼을 했다고 했었지.’

반지를 통해 본 추억 속에서도 분명히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고.

귀족인 게 분명한데 남편은커녕 하녀조차도 데리고 오지 않은 게 의아했다.

엘리움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륀트벨에 비해서이지, 여기서도 범죄는 있고 사고는 일어난다.

그리고 이곳의 귀족들도 시녀나 하녀를 데리고 다니는 게 일반적인 경우였다.

“특별한 물건들이 많네요.”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여러 개를 살 수도 있나요? 이곳에 여행을 온 거라서 기념으로 사고 싶은데.”

샤르망은 수칙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고르는 건 어때?”

여자가 수칙을 읽기 위해 샤르망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이내 ‘아’ 하고 깨달은 소리를 냈다.

“그런 거군요. 신중히 살펴볼게요.”

여자가 다시 몸을 돌려 골동품들을 구경하는데 열중했다.

샤르망은 내심 그녀가 그 반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찾지 못할까, 둘 다 아니라면 반지를 보고도 지나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만약 반지를 알아보고 고른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여자가 한곳에 멈춰 서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게.”

목소리가 하염없이 떨렸다.

“이게, 이게 왜…….”

샤르망은 올 게 왔다 싶어 한걸음 뒤로 미리 물러나 있었다.

여자가 한참 뒤에야 머뭇거리며 반지를 잡았다.

“이거.”

여자는 반지를 손에 꼭 쥔 채 샤르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팔았나요? 혹시 알 수 있나요?”

“아, 그건…….”

수칙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는데 여자가 다시 물었다.

“남자였나요? 머리색은 어땠죠? 저와 비슷했나요? 긴 머리였을까요? 이걸 판 사람이 어디서 사는지…… 아. 미안해요. 제가 너무 질문만.”

“괜찮아. 그걸 팔고 간 사람은 남자가 맞아. 네가 말한 그 사람이 맞을 거야.”

여자의 눈에 순식간에 물이 불어났다.

여자가 반지를 쥔 채 샤르망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어디, 어디 있는진 알 수…… 없겠죠? 판매한 사람의 정보가 남아 있나요? 언제 팔았죠? 오래 됐나요?”

다시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커다란 눈에 가득 찬 눈물은 금방이라도 쏟을 것 같이 찰랑거렸다.

샤르망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나라고 다 알 수는 없어. 아는 걸 최대한 말해줄 테니까 우선 진정해.”

“……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차오른 감정을 어쩌지 못하겠는지 얼굴을 가린 채 한참을 들썩거렸다.

뭐라도 중얼거리다가도 크게 숨을 내뱉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한참 후에야 손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새하얀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정했으면 우선 앉아.”

여자가 끄덕이며 샤르망이 가리킨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손은 행여 반지를 놓칠세라 하얀 손이 더 하얘질 만큼 꽉 쥐고 있었다.

“이건…… 제 거예요. 결혼을 약속한 반지였어요.”

그녀는 샤르망이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듯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반지로 본 그 추억을 그 안에 있던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 게 신기했다.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제 아버지는 그가 가진 것이 없어서 반대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는 그저 특별한 사람이었을 뿐이에요. 우리와는 다른, 그냥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요.”

“…….”

엘프나 수인으로 보이지는 않던데.

눈에 잘 띄는 외모이긴 했었다.

샤르망의 기억이 맞는다면 유난히 약해 보이면서도 청초한 느낌이 났었다.

“저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나온 것인데. 얼마나 오래 됐나요? 반지가 여기 있게 된게…….”

“몇 달 안 됐어. 계절도 바뀌기 전이야.”

“그렇군요……. 이곳 사람 같던가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다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아……. 특별한 옷이나 장치를 하고 있진 않던가요? 아, 아니다. 그랬다면 아예 여길 오질 않았겠죠. 돌아가선 다시 못 나왔을 테니까. 미안해요. 방금 건 못 들은 것으로 해주셔도 돼요.”

여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유추하자면 확실히 특별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거면 감옥에……있던 사람인가. 범죄자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샤르망은 속으로만 생각하며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걸 팔 수가 있어…….”

여자가 다시 울려고 했다.

샤르망은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였다.

“에빌도 네가 행복하길 바랐을 거야. 네 결혼을 막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난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

여자가 샤르망에게 호소하듯 소리쳤다.

큰 소리에 샤르망이 깜짝 놀라 주춤했다.

“……응? 안 했다고?”

“식을 올린 건 맞지만 결국은 하지 않았어요. 못 했어요.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그날 왜 그렇게 했는데……! 바보 같은!”

여자가 흥분해서 말을 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정해.”

“……미안해요. 잠시만요.”

여자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폭풍처럼 휘몰아친 기운에 정신이 쏙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에빌이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에빌은 그 결혼식 이후 7년 동안 마음 정리를 반쯤 끝낸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둘 사이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를 해소해야만 할 듯했다.

‘그걸 내가 해결해줄 수도 없고.’

당사자들이 서로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샤르망도 에빌이 어디서 사는지, 엘리움 사람이긴 한지 알지 못했다.

샤르망에게는 그저 첫 손님, 그뿐이었다.

“어쩐다…….”

여자는 한참 뒤에야 돌아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샤르망이 보았던 그 결혼식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에 가까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에빌은 그녀가 완전히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 오해가 7년이나 쌓였다.

“저기.”

“응?”

여자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얼마나 해요, 이거? 제가 살게요. 이곳에서 찾을 수 없다면 저라도 직접 찾아야죠. 값을 치를게요.”

“가격은 네가 정하는 거야. 얼마나 주고 싶은데?”

그러자 울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그렇게 되죠?”

“그게 여기 규칙이니까.”

“제가 1코퍼를 말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럼 그 반지는 1코퍼짜리가 되는 거겠지.”

“그건 안 돼요!”

샤르망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여자가 먼저 안 된다며 소리쳤다.

샤르망은 이 심각한 중에도 웃음이 터질 뻔 했다.

‘기복이 많이 심한 타입 같은데.’

약간 엉뚱한 것도 같았다.

여자는 자신이 가져온 작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안에서 주머니를 통째로 꺼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샤르망에게 내밀었다.

주머니가 툭 쓰러지며 금화 한 개가 반쯤 튀어나왔다. 보기에도 묵직한 저 안에는 금화가 상당히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얼만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많을 거예요. 제 여행 자금의 반이나 되거든요. 집도 살 수 있을 거예요.”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아녜요. 설마 에빌이 이걸 싸게 팔고 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건 아니겠죠?”

샤르망의 입이 얌전히 닫혔다.

맞아, 라고 하고 싶었지만 에빌이 그랬다고 대답했다간 후환이 자신한테까지 넘어올 것 같아 입을 다무는 걸 선택했다.

싸게 판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냥 공짜로 두고 가려고 했었다는 것까지 알면 더 큰 화를 불러 오겠지.

“죄송하지만 여기 종이가 있나요?”

“펜도 줄까?”

“고마워요.”

샤르망은 종이와 펜을 그녀 앞에 두었다.

“전 멜피네예요. 다음에 또 찾아올 테니까 혹시 그 남자가 여기 또 오게 되거든 이걸 전달해줄 수 있나요? 언제가 됐든, 몇 년이 되었든 좋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여길 찾아오겠어요.”

멜피네가 샤르망에게 건넨 건 이름과 그녀가 머무는 곳일 듯한 주소 그리고 꼭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였다.

이 또한 가게 수칙에 어긋나는 건 아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저, 그리고.”

이제 눈물이 거의 마른 멜피네가 다시 샤르망을 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