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글자들이 다시 빠르게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새겨졌던 글귀까지 빛을 잃더니 이번에는 충만한 생명력을 머금었던 풀과 꽃들이 검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왕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는 듯 놀라며 말했다.
샤르망은 불안함을 느끼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재단 밖까지 퍼져나가던 싱그러운 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삭막한 돌바닥으로 바뀌었다.
화르륵 세게 타오르던 횃불마저 힘을 잃고 꺼졌다.
“…….”
암흑이 찾아왔다.
샤르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살리드의 신이 노했나? 영혼을 속였기 때문에? 어떡하지?’
“잠깐만 기다려 보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될 것 같네. 혹시 무슨 일인지 알겠는가?”
왕이 물어왔다.
침착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왕도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당연했다.
이번 제를 실패하면 엘리움의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10년의 지옥이 시작될 테니까.
제를 지내는 건 간단하지만 제가 가진 의미는 절대 그렇지 못했다.
샤르망이 간절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황동잔을 쥐었다.
‘……제발!’
어찌나 억세게 쥐었던지 손에 난 상처 사이로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새까만 어둠에 다시 불길이 잃었다.
횃불이 모두 타오른 것이다.
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불길이었다.
마음 졸이게 했던 죽은 풀잎도 빠른 속도로 되살아났다.
“별일이군.”
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샤르망이 이 기회를 놓칠세라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몽환적인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바깥까지 흘러나갔다.
마지막 글자를 읊었을 때 비로소 환한 빛이 엘리움 전체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