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루헤가 보낸 전갈을 받고 서둘러 달려왔는데.
하지만 세 남자가 있던 곳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당황한 두 사람은 일행들의 이름을 불렀다.
“폐하-!”
“야, 휘온!”
“루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얀피르는 서둘러 그들의 냄새를 추적해보았다.
하지만 그의 코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까부터 왜 이러지?’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제가 볼 수 있는 거리가 짧아져 있었다.
아무리 집중해봐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제기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산수이가 그를 불렀다.
“저기, 얀피르?”
“뭔가 찾았어, 주인?”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좀 이상해.”
“이상하다니, 뭐가?”
산수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 왠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뭐? 어떻게? 지금 다들 어디 있는데?”
그러자 산수이가 자신의 코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쪽에서 냄새가 나.”
***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산수이의 후각에 의존해 세 남자의 흔적을 찾아냈다.
“킁…… 여기다. 이쪽으로 간 것 같아.”
“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얀피르 너는 정말 아무런 냄새도 안 나?”
“어, 전혀.”
“이상하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에도 세 남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루헤의 검은 로브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을 뿐.
산수이와 얀피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마왕이 당한 건가.
주위를 살피던 산수이가 말했다.
“없어, 여기서 모든 흔적이 끊어졌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얀피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단 하늘로 올라가서 찾아보자.”
“좋아.”
얀피르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크르르…… 응?”
그의 몸에선 비늘도, 송곳니도 자라나지 않았다.
“끄으으으으…… 이거 왜 이래?”
몇 번을 해 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얀피르가 산수이에게 말했다.
“주인, 나 변신이 안 돼.”
“뭐?!”
“드래곤의 모습으로 바뀌지가 않아.”
설마. 설마 이거였나.
모든 감각이 둔해지고, 행동마저 느려지던 게.
얀피르는 마지막으로 제 피부를 세게 꼬집어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무엇도 뚫을 수 없는 갑옷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따뜻한 혈온이 얇은 피부를 통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의 눈이 놀라 커졌다.
“나 어째…… 인간이 된 거 같다?”
“뭐?”
그렇다는 건.
제게서 사라진 능력.
그리고 갑자기 산수이에게서 보이는 이상한 징후들.
얀피르가 산수이에게 다가갔다.
“주인. 너 혹시 코 말고, 눈도 막 잘 보이고 그래?”
“어떻게 알았어? 그거뿐 아니라 소리도 되게 잘 들…… 어라.”
산수이의 낯빛 역시 하얗게 변했다.
“설마, 설마 그럼 내가…….”
“주인, 일단 진정하고.”
“내가 드래곤이 됐단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산수이의 목에서 그르렁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려움에 가득 찬 그녀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산수이의 팔에서 새파란 비늘이 피어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얀피르는 깜짝 놀랐다.
‘안 돼!’
예전에도 혼란에 빠진 제 종족을 본 적이 있었다.
광기에 미쳐 돌아버린 드래곤은 상상을 초월하게 위험했다.
산수이가 그렇게 되어선 절대 안 됐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자, 이미 그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았다.
그녀의 주위에서 거센 바람이 일었다.
주위를 다 베어버릴 정도의 기세였다.
하지만 얀피르는 망설이지 않고 그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수희야!”
그가 산수이를 꽉 끌어안았다.
“수희야, 정신 차려!”
“크르르르……!”
그녀의 입에서 송곳니가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얀피르는 곧바로 그녀에게 입을 맞춰버렸다.
콰득.
이성을 잃은 그녀가 얀피르의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인간의 몸이 된 그의 입술에서 새빨간 피가 흘렀다.
‘크윽!’
하지만 그는 산수이를 놓지 않고, 더 깊게 입을 맞췄다.
그녀의 몸에서 천천히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있었다.
얀피르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크르르.”
“같이 방법을 찾아보면 돼.”
“…….”
그녀 몸의 변화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산수이가 정신을 잃고 얀피르의 품으로 풀썩 쓰러졌다.
“하아.”
얀피르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혼돈의 한 가운데서, 갑자기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큰일 났네.’
얀피르는 몸을 피할만한 곳이 있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마침 저 멀리에 동굴이 보였다.
‘일단 하는 수 없지.’
그는 산수이를 안아 들고 서둘러 동굴 안으로 달려갔다.
***
콰르릉-!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렸다.
산수이는 아직도 얀피르의 품 안에서 잠들어있었다.
다행히 그녀 몸에 피어올랐던 비늘은 모두 가라앉았다.
얀피르는 산수이의 팔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
피부만 만져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반려는 정말로 드래곤이 되어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행들.
인간이 된 자신과, 드래곤이 된 제 반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비가 그친 하늘에선 해가 지고 있었다.
“으음…….”
“일어났어?”
잠에서 깬 산수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보았다.
“얀피르……?”
“몸은 좀 괜찮아?”
웃통을 벗어젖힌 얀피르가 맨몸으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너 왜 불을 손으로 직접 피우고 있…… 크윽!”
산수이의 머리가 깨질 듯 아파져 왔다.
그녀가 움직이자 얀피르가 덮어놓은 셔츠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어, 더 쉬고 있어 주인.”
산수이는 얀피르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동굴 벽에 기댔다.
곧 모든 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맞아, 나 아까 드래곤으로 변신할 뻔…….’
산수이는 또다시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타악-!
얀피르가 부싯돌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산수이가 고개를 돌려 제 반려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헐벗은 그가 불을 피우는 모습은 정말, 정말!
‘절경이다……!’
그가 돌을 부딪칠 때마다 가슴 근육이 요동쳤다.
이제껏 얀피르가 저렇게 육체노동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나?
보통 드래곤이 되어 브레스를 내뿜거나, 뭐든 마법으로 처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몸을 쓰고 있는 얀피르라니!
머릿속 모든 고민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산수이는 입을 쩍 벌리고 제 반려를 바라보았다.
얀피르가 팔을 들어 올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젖은 앞머리 때문인지 그의 모습이 한층 더 요염하게 보였다.
곧이어 그의 넓은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꿀꺽.’
산수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땀방울이 되고 싶다.’
얀피르가 불 안에 장작을 던져넣을 때마다, 그의 근육이 불끈거렸다.
산수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스윽—
하지만 얀피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불꽃을 키우고 있었다.
갑자기 얀피르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응?”
그가 돌아보며 물었다.
“주인, 춥구나?”
그런데, 산수이의 눈은 맛이 가 있었다.
“수, 수희야?!”
당황한 얀피르가 풀썩 주저앉았다.
“얀피르.”
그녀가 얀피르의 위로 올라왔다.
얀피르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주인, 진정해! 여기서 변신하면 위험…….”
“하아, 얀피르. 넌 정말 왜 이렇게 잘생겼어?”
“응?!”
산수이가 제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얀피르의 가슴 위를 슥 덧그려 내렸다.
“흐윽!”
“몸도 말이야, 인간이 되었다면서 왜 이렇게 그대로야? 응? 왜 이렇게 좋냐고?”
“너 정말 갑자기 왜 이러는……!”
하지만 얀피르의 그다음 말은 곧 산수이의 입술에 먹혀버렸다.
“우읍!”
할짝.
그에게 입을 맞추던 그녀가, 어느새 얀피르의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하윽, 수, 수희야!”
그녀가 얼굴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얀피르, 우리 이제 할까?”
“뭐, 뭘!”
“다 알면서 왜 그래.”
산수이가 씩 웃었다.
그랬다.
산수이에게 얀피르의 능력이 전이되면서, 그의 본능 역시…….
어느새 산수이의 손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얀피르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주인, 주인아! 잠깐만! 너 여기서 하면 다쳐!”
“무슨 소리야, 얀피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네가 더 잘 알잖아.”
아 맞다, 지금 그녀의 피부는 저보다 훨씬 더 튼튼하지.
산수이가 그에게 물었다.
“얀피르, 싫어? 네가 싫으면 안 할게.”
아니 그거 맨날 내가 너한테 하던 소리잖아!
얀피르가 새빨개진 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시, 싫을 리가 있겠어?”
그러자 손이 자유로워진 산수이가 원래 하려던 걸 계속했다.
“하, 하윽!”
“얀피르, 너 지금 그 표정 너무 좋아.”
산수이가 씩 웃으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야해.”
***
그 밤은 너무 짧았다.
산수이에게도, 얀피르에게도 태어나서 처음 겪는 무아지경의 시간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산수이가 말했다.
“얀피르, 나 이제야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어떤 걸?”
“체력.”
“윽!”
그 말을 들은 얀피르의 얼굴이 또다시 새빨개졌다.
하지만 산수이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정말, 끓어오르는 이 힘을 주체할 수가 없을 지경이야. 넌 이런 걸 어떻게 매일 참았어?”
“그래서 매일 했잖아.”
“아니, 그걸로도 부족했겠던데?”
산수이가 또다시 그의 위로 슬그머니 올라왔다.
“이제야 알겠어, 얀피르 네가 그동안 나를 얼마나 봐주고 있었는지.”
“어, 어?”
“한 번만 더, 응? 얀피르으.”
물론 얀피르는 거부할 수 없었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누워있었다.
타닥타닥—
얀피르의 품 안에서 산수이가 고통스럽게 그르렁거렸다.
그가 산수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거봐, 주인. 내가 무리하지 말랬지?”
산수이가 불평했다.
“이상해. 드래곤이 되면 인간보다 체력이 좋아져야 정상 아니야?”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썼는데 몸이 놀라는 게 당연하잖아.”
“얀피르 넌 인간의 몸이 됐다면서, 왜 이렇게 멀쩡한 거야? 둘이 똑같이 했는데, 크르르……!”
“넌 내가 드래곤이라 센 줄 알았어?”
“그럼?”
“다 오랜 훈련의 결과지.”
“칫.”
산수이가 입을 삐쭉 내밀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얀피르가 물었다.
“아직도 많이 아파? 내가 마사지해 줄까?”
“응.”
“여기 앉아 봐.”
얀피르가 몸을 일으켜 제 다리를 탁탁 쳤다.
산수이가 제 위에 앉자, 얀피르가 그녀의 어깨와 팔을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랑 같이 운동해, 주인.”
“응.”
그렇게 얀피르는 산수이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때, 땀에 젖은 산수이의 몸 위로 얀피르의 손이 슬쩍 밀렸다.
“읏……?”
전신을 타고 찌르르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것 역시 난생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드래곤의 육체가 되어서 그런 건가?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이렇게, 자신을 마사지해주는 얀피르에게.
제 속내를 모조리 털어놓고 싶어지는 기분은 말이다……!
산수이가 천천히 얀피르를 돌아보았다.
“얀피르,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주인?”
“너 혹시 내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까 봐 불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