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미모세 백작 부인의 살롱.
이는 현재 제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귀족 살롱이었다.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일 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모여 담화를 즐기는 곳.
그런 이곳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는 바로.
피부 미용.
살롱의 주최자인 중년의 미모세 백작 부인은 제국의 황후와 더불어 이웃 나라 왕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제국의 백작과 결혼했으나 얼마 후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소문에 의하면 그 후 미모세는 밤마다 젊고 잘생긴 청년들과 밤을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젊음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어린 남첩들을 의식한 것이리라.
아무튼 뒤로는 왕족인 처가에, 생전에 백작이 제국 내에서 쌓아 놓은 빵빵한 인맥 덕에 백작 부인은 제국 사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불리고 있었고.
때문에 수많은 자들이 미모세의 살롱에 참석해 그녀와 인맥을 쌓기 위해 애쓰곤 했다.
휘온 역시 아침부터 이 미모세 백작 부인의 살롱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그 여자는 싫지만, 제국 내에서 거기보다 더 소문이 빠르게 도는 곳은 없으니.’
갓 목욕을 마치고 나온 휘온이 토너를 흠뻑 적신 화장 솜을 자신의 얼굴에 두드리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놀란 휘온은 솜뭉치를 재빨리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 넣으며 외쳤다.
“드, 들어오도록!”
곧이어 문이 열리고, 푸른 공단의 연미복을 든 하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연미복의 우아한 빛깔은 휘온의 은빛 머리칼과 어우러져 그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이어서 하인은 그에게 갓 다림질된 새하얀 비단 장갑을 건넸다.
하지만 휘온은 잠시 망설이다 명했다.
“……이만 됐다. 나가보도록.”
하인이 방문을 닫는 것을 확인한 휘온은, 재빨리 화장대의 서랍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병 안에 담긴 새하얀 크림을 바라보는 휘온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후우…….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는 역시 시어버터 크림이지.”
얼마 전 공작저를 방문한 외국의 상단에게서 몰래 구매한 고가의 제품이었다.
휘온은 크림을 잔뜩 덜어내어 자신의 얼굴과 손등에 문질렀다.
원래도 잘 관리되어있던 휘온의 피부가 오늘따라 한층 더 수분을 가득 머금은 듯 탱글탱글해 보였다.
휘온은 마침내 그 위에 흰 장갑을 끼우며 미소 지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촉촉하게 보여야 하니까 말이야.”
***
미모세 백작 부인의 살롱에는 이미 수많은 귀족이 참석해 있었다.
수많은 가십거리가 그들 사이에서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그중에는 얼마 전 목욕탕 영업을 재개한 비덴비덴 남작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제국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졌던 산수이 남작 영애에 대한 소문이라니. 귀족 영애들에겐 이보다 더 물어뜯기 좋은 화젯거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녀들은 속내를 숨긴 채, 겉으로는 고고한 척 부채질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비덴비덴 남작가 영애 말이에요. 목욕탕을 다시 열었다면서요?”
“남작이 죽었으니 이제 엄밀히 따지면 남작 영애도 아니죠. 황제께서 그 영애한테 직접 작위를 내려주신다면 모를까…….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어머, 그럼 이젠 한낱 목욕탕 주인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천박하기 그지없어라.”
오호호호—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살롱 내를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휘온 에데카나 공작님 드십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작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살롱에 있던 모든 손님들은 깜짝 놀라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 에데카나 공작님께서?’
‘정말로 이 살롱에 오셨다고?!’
마침내 휘온이 살롱 안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모습을 본 영애들은 모두 같은 생각뿐이었다.
‘역시 오늘도 잘생기셨어!’
원래도 미남자로 이름난 휘온이었지만, 기품 있는 푸른 연미복까지 더해지니 이건 마치 걸어 다니는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지적인 포마드 헤어를 하고 나타난 휘온의 모습에 영애들의 심장은 연타로 터져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공작님께선 이마까지 잘생기셨……. 하아아아아.’
눈부시게 촉촉한 휘온의 이마를 바라보던 영애들이 황홀감에 빠져있던 찰나.
갑자기 살롱의 주최자인 미모세 백작 부인이 모두를 밀치며 휘온의 앞으로 달려 나왔다.
“휘온 공작니임!”
미모세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듯 잔뜩 상기된 얼굴로 휘온의 앞에 섰다.
휘온은 영업용 미소를 띤 채 그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미모세 백작 부인,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이제야 제 살롱에 와 주셨네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요, 휘온?”
미모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휘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휘오온? 대체 날 언제 봤다고 성을 떼고 이름으로만 부른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웃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공사다망하여 이제야 찾아온 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백작 부인.”
“어머머, 휘온도 참.”
수줍어하는 미모세 백작 부인을 향해, 휘온은 의도적으로 아주 느릿느릿하면서도 우아한 동작으로 자신의 손에서 장갑을 벗겨냈다.
스윽—
그러고는 촉촉하게 빛나는 손으로 이미 깐 앞머리를 또다시 쓸어 올렸다.
“어, 어머……!”
순간 살롱에 있던 모든 여성들의 시선이 휘온의 손등과 얼굴에 가서 꽂혔다.
그들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저게 진짜 남자 피부야?’
평소보다 더 반짝거리는 휘온의 피부가 그의 눈부신 은발과 어우러지자 장내엔 조명이 따로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커튼까지 휘날렸다. 그러자 그의 미모 전체가 햇살에 잘게 부서지듯 빛이 났다.
“하아아아아…….”
영애들은 그저 이 빛나는 남신을 황홀히 바라볼 뿐이었다.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모세 백작 부인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휘온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휘온? 어째 오늘은 평소보다 피부가 더 고우신 것 같네요?”
‘걸려들었군.’
휘온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칭찬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최근 이용하는 목욕탕을 바꿨더니 눈에 띄게 피부가 젊어졌지 뭡니까. 하하.”
“피부가…… 젊어졌다고요?”
미모세의 눈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희번덕거렸다. 그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휘온에게 다그쳐 물었다.
“대체 그곳이 어디인가요?”
“으음……. 그곳은 말이죠.”
“어서, 어서 말씀해 보세요!”
이제 백작 부인은 몸이 달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언성이 높아지자 주위에 있던 귀족들도 한둘씩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때군.’
휘온이 소리 높여 대답했다.
“바로 비덴비덴 남작가가 운영하는 비덴탕입니다.”
비덴탕이라니.
그 이름을 들은 귀족들의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비덴탕? 하지만 거긴 저주받았다고…….”
“게다가 그 남작 영애는 마차 사고로 불임이 되었다고 하던데.”
“허, 그런 뜬소문이 아직도 돌고 있단 말입니까?”
휘온이 좌중을 향해 크게 코웃음을 쳤다.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 휘온 에데카나가 비덴탕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장내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투, 투자라 하셨나. 지금?”
“에데카나 공작가가 투자를 하는 최초의 목욕탕이라니!”
휘온이 대중을 향해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말했다.
“저주는커녕 온천수가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뛰어난 수질을 자랑하더군요. 일단, 제 피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휘온은 자신의 얼굴 옆으로 양손을 올린 후 살짝 흔들어 보였다.
그 광채가 나는 피부를 본 모두는 납득이 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과연 그렇군. 공작님의 저 눈부신 피부……!”
휘온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게다가 산수이 영애는 제 사업 파트너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데다 영민하기까지 합니다만. 혹시 다들 못 받으셨습니까? 그녀가 서신을 보냈다던데.”
산수이가 보낸 편지를 무시했던 귀족들은 멋쩍은 듯 연신 헛기침을 했다.
“크흠! 이, 일이 바쁘다 보니 깜빡…….”
이제 비덴탕에 대한 귀족들의 반향은 호기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 대중의 눈빛을 읽어낸 휘온은 마지막 한마디로 쐐기를 박았다.
“비덴탕은 곧 제국 최고의 목욕탕이 될 겁니다. 제가 에데카나 가문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죠.”
***
에데카나의 이름이 불러온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이제 사교계 전반에 가장 화두로 떠오른 것은 바로 비덴비덴이라는 이름이었다.
“비덴비덴? 거기 온천수 끊겼다 그러지 않았어?”
“남작의 여식이 귀신같은 사업 수완으로 거길 살려냈다더군. 오죽하면 그 에데카나 공작이 투자하겠어.”
“그 영애가 무슨 신기한 스크럽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던데…….”
이제 귀족들은 각자 저마다의 목적으로 비덴비덴에 방문할 계획을 세우기에 바빴다.
에데카나 공작을 믿고 자신들도 투자해 보겠다든가, 안 그래도 휴식이 필요했는데 휴양지를 그쪽으로 선택해야겠다는 등.
하지만 그들의 의욕은 단 하나의 사실로 인해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다.
바로, 산수이 영애가 비덴탕에서 혼욕을 금지했다는 사실이었다.
“혼욕을 금지한다고? 그럼 하인들과 함께 씻으라는 건가?!”
“난 용납할 수 없네!”
귀족 남성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여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럼 이제 우리도 대중목욕탕을 즐길 수 있는 건가.’
게다가 일부 남성들 역시 산수이가 남탕과 여탕을 나눈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드디어 부인과 딸애들이 편안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겠군. 좋은 변화야.’
이렇게 저마다 다른 수만 가지 생각들을 안은 채.
자의로든 타의로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대부분의 귀족은 산수이의 비덴탕에 방문하게 되었다.
***
[오늘 살롱에 참석해 약속했던 대로 비덴탕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곧 바빠지실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서신을 보내주십시오.
사랑을 담아, 휘온 에데카나 공작.]
산수이는 서재에 앉아 휘온의 사용인이 들고 온 서신을 읽고 있었다.
편지를 모조리 읽은 그녀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론 맨 아랫줄에 적힌 ‘사랑을 담아’ 따위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보다 두 줄 위에 있던 ‘바빠지실 겁니다.’라는 문장이 핵심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손님맞이 준비를 하자!’
산수이가 먼저 방을 나간 후.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를 집어 읽던 얀피르의 미간이 심각하게 찌푸려졌다.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뽁.
그는 정확히 ‘사랑’이라고 적힌 부분만 손가락으로 뻥 뚫어버렸다.
그리고 흡족한 듯 편지를 내려놓고는 산수이를 따라 서재를 나섰다.
산수이는 휘온의 투자를 받아 호화롭게 정비된 목욕탕 내부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우선 때밀이실 내부에는 최고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 돌판이 놓여졌다.
그 위에선 때를 밀 수 있을 뿐 아니라, 달궈진 대리석에 수건을 깔고 누우면 마치 온돌방처럼 몸을 지질 수도 있었다.
‘터키식 하만 같기도 하네.’
게다가 손님들의 때를 좀 더 힘 있게 밀어드리기 위해, 세신사 전용의 기다란 이태리타월도 새로 제작했다.
양손에 이 때수건을 붕대처럼 칭칭 감아 온몸의 근육을 사용해 때를 밀 생각이었다.
‘드디어 이곳에서도 고객님들의 때를 밀어드릴 수 있는 건가.’
산수이는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밀려드는 고객 중 그녀에게 때를 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