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도대체 어딜 갔지?’
산수이는 탈의실 내의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며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곧이어 하녀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가씨, 부르셨습니까?”
“지금 빨리 내 방에 가서 이태리타월을 좀 찾아봐 줄래요? 침대 위에 올려뒀던 것 같기도 하고…….”
“예, 알겠습니다.”
“아, 혹시 거기에도 없으면 샘플로 만들어 뒀던 거라도 가져다줘요.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을 거예요. 최대한 빨리.”
하녀는 저택 안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도대체 이놈의 이태리타월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디로 사라졌담?’
산수이는 꼬마 드래곤이 자신의 이태리타월을 물고 갔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였다.
한편 휘온은 자신의 뒤에서 사악하게 웃고 있는 얀피르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너, 넌……! 산수이 영애의 호위 기사가 아니냐!”
“호위 기사라…….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휘온은 놀라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얀피르가 곧바로 그의 목덜미를 가볍게 눌러 제압했다.
“쉬-어딜 일어나. 얌전히 때 밀어야지.”
“크윽……!”
휘온은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압도되어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얀피르는 이내 그의 목을 이태리타월로 정성껏 밀어주며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목뼈가 부러질지도 모르니까.”
“너……! 이 사실을 산수이 영애도 알고 있나?”
“당연히 모르지. 주인은 지금쯤 없어진 이태리타월 찾느라 정신없을걸.”
“대체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유?”
얀피르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계속해서 휘온의 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보면 몰라? 지금 때 밀어주고 있잖아.”
“그러니까! 대체 네놈이 왜 내 때를 미냔 말이다!”
절규하는 휘온에게 얀피르가 정색하듯 말했다.
“음, 그야 주인이 나 아닌 다른 수컷 놈을 만지는 것도 싫고…….”
“뭐?”
“그리고 누가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주인이 아침부터 쉬지도 못했을뿐더러…….”
휘온은 양심에 찔려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얀피르가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일종의 연습? 주인 몸을 바로 밀어주기엔 피부가 너무 얇아 걱정돼서 말이지. 마침 시험해볼 데가 필요했어.”
“그럼 지금 나를 실험용 쥐처럼 사용하겠다는 거냐?”
“에이 쥐라니, 실험용 인간이지.”
그렇게 말하며 얀피르는 계속해서 휘온의 등을 밀었다.
전신을 타고 밀려오는 고통에 휘온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악! 좀 더 섬세히 문지를 순 없나? 공들여 가꿔온 몸이란 말이다.”
사실 그는 얀피르에게 어디 감히 제국의 공작에게 계속 반말을 하느냐고부터 따지려 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더 먼저 언급해버렸다.
온갖 스크럽 제품을 섭렵하며 힘겹게 가꿔온 소중한 피부 아니던가.
“흠. 역시 이 정도 강도는 인간에겐 너무 센가 보군. 그럼……!”
얀피르는 조소하며 아까보다 더 세게 그의 등을 문질렀다.
“으윽! 이봐 너……!”
“내가 이렇게 정. 성. 껏. 밀어줬으니까 더는 주인 귀찮게 하지 마. 알겠지?”
그렇게 말하며 얀피르는 휘온의 몸을 더욱더 거칠게 문질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휘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얀피르에게 물었다.
“이 힘은 대체……. 너, 설마 인간이 아닌 거냐?”
“어? 눈치챘어?”
아까부터 계속 네 입으로 인간이 어쩌고 하고 떠들어 댔잖아.
휘온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쩐지…… 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럼 혹시 넌 마족인가?”
그 말에 얀피르는 성난 모습으로 그르렁거렸다.
“어디 감히 더러운 마족 따위와 날 비교하지?”
“너같이 성질 더러운 놈이 천족일 린 없지 않으냐.”
“자꾸 우리 종족을 모욕했다간 네 척추를 반으로 접어버릴 거야.”
“그럼 대체 네놈은 뭐란…….”
하지만 두 남자의 설전은 산수이의 등장으로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얀피르-!”
산수이는 하얗게 질린 채 때밀이실 안으로 달려 들어와 얀피르를 무섭게 혼내기 시작했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공작님 괴롭히지 말고 방에 얌전히 있으랬지!”
“안 괴롭혔어! 열심히 때 밀어줬는데?”
“그러니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히잉…….”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휘온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두려운 살기를 내뿜던 자를 저렇게 말 한 방에 제압할 수 있다니……. 정말로 무서운 것은 산수이 영애일지도 모른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킨 채 계속해서 그들을 지켜봤다.
시무룩해진 채 산수이한테 꾸중을 듣고 있는 얀피르는 마치 한 마리 대형견 같아 보이기도 했다.
‘혹시 저자의 정체는…… 개인가? 그럼 견(犬)족? 세상에 그런 종족이 있었단 말인가?’
휘온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은 채 마사지 베드에 걸터앉아 그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낑낑대던 얀피르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방에서 쫓겨난 뒤, 산수이가 고개를 숙이며 휘온에게 사죄했다.
“공작님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다 제 불찰입니다.”
“영애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과하지 마십시오.”
“그럼, 얼른 다시 제대로 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산수이는 얼른 이태리타월을 손에 감고 휘온의 등을 문질렀다.
그런데.
그의 몸에선 더 이상 때가 나오지 않았다.
‘으응?’
몇 번을 더 문질러 봐도 결과는 같았다.
‘얀피르, 꽤 잘 밀어놓고 갔잖아?’
공작의 등짝을 죄다 할퀴어놓고 간 게 아닐까 내심 걱정했는데, 얀피르는 생각보다 일을 잘해놓고 갔다.
물론 그 방법이 좀 거칠고 투박했을 뿐.
산수이는 의외라고 생각하며, 때밀이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은 특별히 마사지를 추가로 해드리겠습니다. 혹시나 피부가 상하셨을까 염려가 되어서요.”
산수이는 장미 향이 가득한 보디 오일을 휘온의 등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아프신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코끝을 간질이는 향긋한 장미 향에 산수이의 농밀한 손길까지 더해지자, 휘온은 조금 전까지 긴장되었던 마음이 모두 풀어짐을 느꼈다.
게다가 그녀가 휘온의 목덜미와 어깨를 주무를 때마다, 뭉쳐있던 근육이 풀어지며 그의 마음도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정말 미치겠군. 산수이 영애 옆에 있으면 왜 이렇게 자꾸 가슴이 뛰지?’
그런 휘온에게 산수이가 말했다.
“아깐 많이 놀라셨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잘 타일러 두겠습니다.”
그렇다.
휘온은 잠시 잊고 있던 얀피르의 존재를 떠올렸다.
분명 그자는.
“얀피르 경, 인간이 아니죠?”
“예?! 무,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산수이는 너무 놀라 마사지하던 손을 멈추고 말았다.
아, 이래서는 들키고 말 텐데.
“놀라실 것 없습니다. 아까 그자가 본인 입으로 직접 털어놨으니까요. 다만, 자세히는 듣지 못했는데…….”
산수이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놈의 애새끼는 사고치고 다닌 것도 모자라 정체까지 들켰구나. 이를 어쩐담.
대체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그런데 갑자기 휘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종족이 있었다.
‘설마.’
휘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그들은 이미 몇백 년 전에 모두 멸종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마족도, 천족도 아니라면 그 괴력의 힘과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영애를 핥아대는 못된 버릇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그자는…… 드래곤입니까?”
아무래도 견족…… 같은 건 없을 테니.
이에 산수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휘온은 확신했다.
“놀랍군요. 드래곤족이 아직 남아있었다니.”
“아 저……. 하아, 부디 이 일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산수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투자처가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분명 정체를 숨기라고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쉽게 들켜서…….”
그런 산수이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휘온은 생각했다.
‘아마 일부러 들킨 걸 겁니다.’
휘온은 확신했다. 그놈은 일부러 자신의 정체를 흘린 거라고.
‘나를 견제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산수이 영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 영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건가.’
휘온은 코웃음을 쳤다.
이윽고 마사지를 마친 산수이는 휘온의 몸에 묻은 오일을 모두 닦아낸 후, 그의 등 위에 뜨거운 수건을 올려주었다.
“모두 끝났습니다, 공작님. 그럼, 편히 쉬십시오.”
아, 벌써 다 끝난 것인가.
휘온은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공작의 체면상 산수이를 가지 말라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산수이가 벗어놓은 이태리타월만 하염없이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사이에 저도 모르게 그 오묘한 감촉에 또 한 번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만지면 만질수록 신기한 물건이라니까.’
때밀이실을 나서려던 산수이는, 그런 휘온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신기하세요, 공작님?”
그 질문에 휘온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그렇습니다. 얼핏 보면 단순한 천 조각인데, 대체 무슨 원리로 때를 밀 수 있는 건지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그러자 산수이가 휘온을 향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응? 그럼 직접 한번 밀어보실래요?”
“예에에?! 누,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누구긴 누구예요?”
산수이가 상큼하게 웃으며 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저 말고 또 있나요?”
***
그렇게.
제 눈앞에 엎드려있는 산수이의 새하얀 등을 본 휘온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래도 되는 건가? 영애는 정말 괜찮은 건가?
게다가.
‘산수이 영애는, 내가 전혀 남자로는 보이질 않는 건가?!’
그때 산수이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공작님, 뭐 하세요?”
“아…….”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손을 세차게 떨고 있는 휘온과는 다르게, 산수이의 얼굴엔 그저 평온이 가득했다.
세신사로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다 못해, 산수이는 이제 자신의 고객들을 전혀 남자로 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궁금하시다면서요, 어서 한번 밀어보세요. 그럼 바로 원리를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눈을 질끈 감은 휘온이 산수이의 등 위에 제 떨리는 손을 올리려던 찰나였다.
쾅-!
갑자기 방의 문이 거칠게 쾅 하고 열리며, 거센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얀피르가 들어왔다.
“하아, 하아……. 왜 이렇게 늦나 했더니, 너 이 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얀피르의 등장에 휘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왠지 얀피르의 얼굴을 보자, 알 수 없는 승부욕이 들었다.
저놈에게 산수이의 앞에서 바보같이 긴장하고 있는 모습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휘온은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얀피르를 도발했다.
“보면 모르겠느냐? 영애의 등을 밀어드리고 있었다.”
얀피르가 휘온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거칠게 쥐어 잡았다.
“네가 어째서 주인의 등을 밀어주는 건데!”
“역시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걸 보니 호전적인 드래곤 종족이 맞군. 무식하고 힘만 세기 짝이 없어.”
“뭐?!”
두 남자의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그런 그들을 보며 산수이가 크게 외쳤다.
“둘 다, 그만!”
얀피르와 휘온이 동시에 산수이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갑자기 왜 싸워요!”
이에 두 사내는 앞다투어 산수이에게 자신을 어필했다.
“저를 선택하십시오, 영애. 내가 하나도 아프지 않게 섬세히 밀어드리겠소.”
“무슨 소리야. 나만큼 주인을 잘 아는 수컷이 어디 있어? 내 이름을 불러 줘, 주인.”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산수이는 그 커다란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말했다.
“어……? 그럼 둘이 같이 밀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