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케이든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여느 때처럼 침착하게 견뎌 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보아하니 남동생과의 사이가 제법 돈독한 것 같던데…….’
가족부터 챙기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그녀도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았다.
‘별 탈 없이 있어야 할 텐데.’
하지만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그가 병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맞닥뜨린 엘렌은 그야말로 패닉 그 자체였다.
“엘, 엘……!”
간신히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기만 한, 보통의 귀족 영애라 믿기 힘들 정도의 행색을 한 그녀는 아주 창백한 낯을 한 채 제 동생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뛰쳐 들어왔다.
위태한 걸음으로 들어오던 그녀는 중간에 힘이 빠졌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 흔들렸다.
“영애!”
케이든이 급히 달려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제 어깨를 단단히 붙잡아 오는 손에, 엘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케이든을 쳐다보았다.
“……전하?”
울 듯이 일그러진 얼굴이 케이든의 정면을 향했다.
그는 괜히 저도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참고는 말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영식에게로 갈 거지요?”
“……예.”
붙잡은 엘렌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 작은 파들거림에 케이든은 제 가슴속까지도 찌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113호라고 합니다. 어서 가 보지요.”
“예. 감사합니다. 전하.”
떨리는 손으로 제 팔을 꽉 붙잡은 엘렌은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그녀는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접한 후부터 도무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가씨. 도련님께서 중앙 병원에 입원 중이시랍니다.]
[뭐? 그 애가 무슨 일로?]
[모르겠습니다. 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다는데…… 전령이 전해 온 말은 그것뿐이었습니다.]
[사고? 사고라고?]
엘시어가, 그 애가 갑자기 왜.
만일 네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모든 것엔 아무 의미가 없어…….
“심호흡해요. 보호자가 불안해하는 티를 내면 아이는 더 떨 겁니다.”
케이든이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엘렌은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후우. 그녀가 숨을 내쉬자 케이든이 병실의 문을 잡고 말했다.
“열겠습니다. 너무 동요하지 말아요.”
엘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아, 누님.”
병실 문이 열리자, 안에는 발목에 부목을 댄 엘시어와 머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메이 소르본이 있었다.
“엘시어!”
생각보다 엘시어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자, 엘렌이 질겁해서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이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엘렌은 곧장 엘시어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다리는? 괜찮다고 하니? 다른 곳은 괜찮고?”
누가 봐도 혼비백산한 모습의 그녀가 질문을 쏟아 내자, 엘시어는 조금 곤란한 기색으로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누님이 몸조심하라고 했었는데. 그게 최우선이라고 했던 건 기억하는데…….
딱 그런 생각이 쓰인 낯으로 엘시어가 눈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자, 보다 못한 케이든이 다시 엘렌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영애. 조금만 침착히.”
따듯한 손의 온기가 그녀의 몸을 데워 오기 시작했다.
어깨에서 시작돼 가슴으로 번진 온기는, 빠르게 뛰고 있던 그녀의 심장을 천천히 감싸 안았다.
쿵. 쿵.
점차 박동이 잦아들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 그녀의 이성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영식.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몸은 좀 괜찮은지요?”
“예. 괜찮습니다.”
갑작스레 맞이한 황태자의 행차에 굳어 버린 엘시어가 어깨에 힘을 잔뜩 넣은 채로 답했다.
그러자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지, 옆 침상에서 그들을 보고 있던 메이가 입을 열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소르본가의 메이입니다.”
“아, 소르본 영애.”
케이든은 그제야 옆을 돌아보았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영식과 함께 사고를 당했다지요. 몸은 괜찮습니까?”
“예. 걱정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메이 소르본?
뒤늦게 메이의 존재를 알아챈 엘렌이 흠칫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휙 고개를 든 엘렌과 메이의 눈이 마주쳤다.
메이가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메이 소르본입니다.”
“…….”
‘메이 소르본과 함께 있다가 다친 건가?’
내가 메이 소르본을 이용해 보자고 말해서?
엘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몸조심하라고 당부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지켜 줄 생각을 해야 했는데.
그냥 조금 돌아가더라도 꽁꽁 숨겨 두었어야 했는데…….
“……크라이언트 영애? 괜찮으신가요?”
엘렌이 파리한 낯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외려 침상에 누워 있던 메이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 왔다.
그제야 정신이 든 엘렌은 애써 얼굴을 가다듬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엘시어와 제법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죠? 미안해요. 원래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내가 상황이 이래서 그러질 못했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메이가 그녀에게 사과를 건네 오자, 엘렌이 되물었다.
“영애가요? 제게?”
“네.”
그녀는 자책감 때문인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제 외출에 동행했다가 괜한 사고를 당하게 만들어서…….”
그러자 맞은편에 누워 있던 엘시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이봐, 메이. 그게 왜 네 탓이야.”
하지만 그 말에 엘렌은 다른 지점을 찾아 되물었다.
“사고가…… 둘이서 아카데미에서 나오다가?”
“네? 아, 네. 상점가에 들르려고 아카데미의 마차를 예약해서 나오는 길에…….”
말하던 메이는 다시금 죄책감이 드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엘시어가 분명히 소리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제가 마부도 별소리하지 않으니 괜찮을 거라고…….”
그러자 자신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음을 확인한 엘시어가 그녀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메이. 일단 나도 정확히 문제가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는 몰랐어.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네가 괜찮다고 해서 그만둔 게 아니라 내가 원인이 어딘지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한 거야.”
“엘. 아무래도 사고 경위는 네가 더 자세히 아는 듯하구나. 조금 더 말해 보렴.”
엘렌이 엘시어를 채근하자, 그는 마차가 넘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차에 타서 가는데, 계속 끼릭끼릭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누님. 그래서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한참을 찾았는데, 도무지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었죠. 그냥 전체적으로 울리는 소리 같았어요.”
엘시어는 마차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떠올려 보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이제 이해가 됩니다. 바퀴 축 자체가 문제였다면 땅 울림과 함께 온 마차가 난리일 만도 하지요. 어째 마차 안에서는 위치를 찾기가 어렵더라니.”
“끼릭끼릭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러고는 직선로를 지나 곡선로에 들어서자마자 엎어졌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바퀴가 통째로 빠졌는지 한쪽이 비어 있더라고요.”
“그 지경이 되도록 마부는 무얼 한 거지?”
엘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자, 엘시어는 이걸 어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그냥 말을 고르지 않는 편을 택했다.
“……마부는 죽었습니다, 누님.”
* * *
엘렌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죽었다고?”
“네. 급격히 마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도 당황하는 듯싶더니, 마차가 엎어지면서 그대로 목이 꺾여 즉사했다고…….”
“……그래. 참 안된 일이구나.”
즉사.
어쩌면 엘시어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자 엘렌은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마부가 없다면 아카데미를 들쑤셔 보는 수밖에 없겠어. 경위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구나.”
그러자 엘렌의 말을 듣고 있던 케이든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돕지요. 아카데미의 일이라면 황실도 관련이 없진 않으니.”
그 말에 엘렌이 고개를 뒤로 돌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영애를 빼앗기기 싫어 열심히 구애 중인 몸 아닙니까.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요.”
평소라면 어느 정도의 틈이 보여야 만만해 보이고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그녀의 지론에 따라 거절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히 엘시어를 해하려 하다니.’
편의, 편익을 생각하며 행동하다가 동생을 잃을 뻔했다.
엘렌은 조금 돌아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우선순위를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엘렌에게 또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었던 케이든은, 그녀가 흔쾌히 도움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이게 웬일이냐 싶어 얼른 대답했다.
“아무렴 물론이지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것은 조금 더 나중에 자세한 조사와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은 영애.”
케이든은 아직도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서 있는 엘렌을 이끌어, 병상 옆에 마련된 스툴에 앉히고는 말했다.
“이제 영식의 상태에 대해서 들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 그렇지요.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 탓에 그만.”
그래. 일이나 효율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지금은 아이의 상태를 먼저 신경 쓰고, 나머지는 그다음에 하면 돼.
엘렌은 엘시어의 머리 위에 손을 톡, 올렸다.
“그래. 무사해서 천만다행이다. 엘시어.”
그리고는 옆 침상에서 혼자 남매를 바라보고 있는 메이 소르본에게도 한마디를 남겼다.
“사고는 영애의 탓이 아닙니다. 탓을 따져야 한다면 마차의 정비를 게을리한 마부라든가, 그게 아니라면 마차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누군가에게 해야겠지요.”
절대 그냥 넘기지 않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말이었다.
‘그래. 무사하니까 괜찮아. 이제부터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면 돼.’
완벽히 똑같은 과거를 보낼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기에, 당연히 앞으로 일어날 일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즉, 이번처럼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엘시어.”
그녀는 무겁게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