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transcendence - 초월 (完)
203.
***
매일 연애 편집실.
윤 기자는 한 기사를 보고 혀를 찬다.
바로 이토 히나타 작가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토 히나타, 빼앗긴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싸울 것.]
“참, 뻔뻔하고 낯짝이 두꺼운 인간이야...”
거짓된 모습이 전 세계에 까발려졌음에도 그는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의 반응이었다.
-독일의 태도를 본받자. 과거에 대한 분명한 사과 없이는 달라진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배운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권서준 작가 덕분에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반성을 촉구한다.
-이토 히나타, 가장 부끄러운 일본 작가다.
어딘가 어색한 말투.
그래, 번역기를 돌린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들이었다.
‘그래도 점점 진실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는군.’
여전히 편협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만큼 달라지는 사람들의 반응도 눈에 띄었다.
‘모두 권서준 작가님 덕분이지.’
한 사람이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지 미처 알지 못했다.
지켜보고 있지만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천재 작가의 행보.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든다.
‘에휴, 잘 지내시겠지. 내 코가 석 잔데 누구 걱정을 하냐?’
윤 기자는 한숨을 내쉬며 기사들을 훑어본다.
최근 몇 달 사이 이렇다 할 특종이 없던 터라 슬슬 편집장의 압박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기사가 윤 기자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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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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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도둑고양이 네로」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권서준 작가는 2주 뒤에 진행될 시상식을 위해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일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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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을 탔어? 하아...’
전 세계를 누비는 천재 작가의 활약.
뭐 조용하다 싶으면 수상하니 이제는 놀라는 것도 어색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명망 있는 국제상이라고...’
해당 분야의 작가들이 평생소원으로 삼는 상을 밥 먹듯 쓸어 담는 중이었다.
“어? 가만...”
그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것도 취재하면 대박 아니냐?’
안 그래도 대중이 주목하는 천재 작가의 행보와 현지 반응을 담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번 동행 취재로 인해 연일 특종 기사를 뽑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이건 신이 내려준 기회야. 아니, 권 작가님이 준 기회라고...’
무조건 따라가야 했다.
“펴, 편집장님! 편집장님!”
윤 기자가 다급히 편집실을 뛰쳐나간다.
몇 달 사이 가장 행복한 얼굴이었다.
***
늦은 오후.
나는 장현웅과 함께 황태규의 작업실을 찾았다.
“소식 들었지?”
내 말에 황태규가 미소를 짓는다.
“그럼요. 하아,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황태규는 상기된 얼굴로 책장에 꼽힌 그림 동화책을 바라본다.
몇 년 전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
이전에 장현웅이 선물한 바로 그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꿈도 못 꿨던 상을 제가 받게 된다니...”
지켜보던 장현웅이 어깨를 두드린다.
“그것 봐. 내가 넌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고마워요, 형. 진짜 두 분 덕분이에요.”
“고맙긴, 잘했다. 정말 고생했어...”
장현웅은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코끝이 찡한지 몇 번이나 코를 훌쩍인다.
“야, 야. 이러다 현웅이 울겠다. 그만하고 파티나 하자.”
“내가 뭘 운다고 그래? 근데, 무슨 파티?”
“축하 파티해야 할 거 아냐. 이런 날 그냥 넘어가게?”
“오, 그런 거라면 좋지! 오늘은 내가 쏜다!”
장현웅이 기분 좋게 외치고는 황태규와 어깨동무를 한 채 앞장선다.
행복해하는 두 사람을 보니 나 역시 행복이 전염되는 기분.
지이잉.
그때, 윤 기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탈리아 현지 일정에 대한 동행 취재를 해도 되냐는 요청.
나는 기꺼이 허락했다.
‘시상 관련 현지 반응을 발 빠르게 전달할 수 있고, 그게 내 작품에도 좋을 테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윈윈.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우리는 다 함께 이탈리아 볼로냐로 향했다.
***
볼로냐.
이탈리아 북중부에 위치한 대도시.
이곳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박람회인 볼로냐 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정오 무렵.
우리는 시상식이 있는 볼로냐 피에레 전시장으로 향했다.
“우와, 엄청 넓은데요?”
국제 도서전에 처음 와보는 황태규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가 킨텍스 전시장의 두 배 정도 되니까 넓긴 하지.”
장현웅의 말에 황태규가 고개를 끄덕인다.
찰칵, 찰칵.
그 사이, 윤 기자는 도서전과 시상식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번 동행 취재로 이미 익숙해진 풍경.
우리는 동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며 천천히 구경을 이어갔다.
“하아, 이런 대단한 작품 중에서 우리가 상을 받는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황태규의 얼굴이 상기된다.
녀석의 말대로였다.
한 해에 수천 권이 넘게 쏟아지는 동화책 시장에서 우리의 작품은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은 거니까.
그때,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곧이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드디어 우리 차례.
윤 기자가 카메라를 든 채 미소를 짓는다.
“자, 이제 주인공들은 올라가시죠. 제가 아주 멋있게 담아드릴 테니까.”
잠시 뒤.
나와 황태규는 천천히 시상식대에 올랐다.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출판관계자와 아이들이 지켜보는 자리.
“영애의 수상자는 「도둑고양이 네로」의 권서준, 황태규 작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진다.
찰칵찰칵.
윤 기자는 작은 표정이라도 놓칠까 싶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축하 연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귓가를 울린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를 까마귀에 비유하며 시샘하고 무시했던 로버트 그린.
‘어떤가? 자네가 보기엔 아직도 내가 까마귀인가?’
허공을 향한 소리 없는 외침.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들은 거나 진배없었다.
***
오후 무렵.
정영만 회장의 저택.
“허허.”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기사를 보던 정영만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이 녀석, 정말이지 대단하군.”
감탄하는 정 회장을 보며 송영도 교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나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이젠 영향력도 엄청나고요.”
정 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러고 보니 녀석을 만나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
정 회장의 눈은 자연스럽게 정원에 앉아 책을 읽는 손자에게로 향한다.
“저 역시 마찬가지죠.”
송 교수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지켜보던 정 회장이 슬쩍 묻는다.
“참, 아들 녀석과는 좀 가까워졌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짓던 송 교수가 마지못해 입을 연다.
“아직은 한 달에 한두 번 만나서 식사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이 친구야, 그게 어딘가. 함께 밥 먹을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야.”
아들 내외를 잃은 정 회장의 아픔.
그 상실을 알기에 송 교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어. 더 큰 후회를 하지 않게 현재를 열심히 살 뿐이지. 신이 우리에게 준 기회는 그것뿐이거든.”
정 회장의 씁쓸한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본다.
되돌릴 수 없는 후회가 밀려든다.
그러나 뜻밖에도 정 회장의 얼굴에 떠오른 건 미소였다.
‘뭐, 아직도 기회가 있으니까.’
귀중한 삶의 의미.
정 회장은 그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지금도 이 하늘 아래 어디선가 멋진 길을 개척해나가는 멋진 후배의 얼굴이었다.
***
성대하게 끝난 안데르센 시상식.
시상식도 의미 있었지만 내겐 지금부터의 여행이 더 기대됐다.
‘내가 쓴 작품의 1/3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등등.
직접 가보지 못한 채 상상 속으로만 수만 번 방문한 나라.
그 땅을 지금 내가 두 다리로 밟고 있었다.
우리는 볼로냐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이튿날 아침 볼로냐 중앙역에서 베니스행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자 파란 하늘과 그만큼 푸른 호수가 들어온다.
완만한 산들이 지나가고 넓은 포도밭이 시원하게 펼쳐지다 이내 정돈된 주택들이 줄지어 이어진다.
내 눈은 자연스럽게 담장을 채운 장미로 향한다.
붉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장미.
매혹적인 그 모습에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이곳을 상상하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낱말로 불러도 향기로운 냄새가 날 거예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유명한 대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단순히 아름다워 보이는 이 대사엔 깊은 의도가 있었다.
첫눈에 운명적 사랑을 느낀 로미오와 줄리엣.
그러나 두 가문의 이름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이름을 버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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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로미오, 오 로미오, 오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당신 아버지를 부인하고 당신 이름을 거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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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적은 당신 이름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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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다른 이름을 가져요! 이름에 뭐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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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로미오를 사랑하는 줄리엣은 로미오가 이름을 버리길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그때 하는 말이 바로 그 대사였다.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낱말로 불러도 향기로운 냄새가 날 거예요.’
그래.
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가문의 명예와 사회 질서.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한 금기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금기를 뛰어넘어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름다운 사랑.
그러나 그들의 끝은 비극적 죽음이었다.
다만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끝내 두 가문의 화해를 이뤄 내거든.’
죽음을 통해 완성된 화해.
그래서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라 정의하지 않았다.
그저 가슴 아프고 아름다운 로맨스.
인생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운명적 사랑.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이잉.
그 순간,
손에 들린 휴대폰이 진동한다.
작은 화면엔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있었다.
[축하드려요, 작가님!]
신하율이 보낸 메시지였다.
[직접 만나서 축하드리진 못하지만 이렇게나마 제 마음을 보냅니다!]
뒤이어 사진 한 장이 도착한다.
노란 장미 꽃다발이 담긴 사진이었다.
‘장미라...’
눈 앞에 펼쳐진 장미와 휴대폰 화면에 담긴 장미 사이에서 묘한 운명의 끈이 느껴진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
늦은 오후.
우리는 베니스에 도착했다.
간단히 짐을 푼 뒤 운하 사이를 거닐었다.
‘그래. 이곳을 상상하며 베니스의 상인을 썼었지...’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시절에 떠올린 내 상상과 실제 도시를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곳이었구나...’
40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는 나의 상상은 지칠 줄 몰랐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감동이 내 몸을 휘감는다.
“어? 저 아이 좀 봐.”
그때, 장현웅이 강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킨다.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참으로 박식하신 판사님! 판결이 내려졌다! 자, 준비해라!”
샤일록의 울분에 찬 연기를 하던 녀석.
그런데 이내 잔뜩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긴장한 듯 입을 다물고 만다.
“헐, 대사를 까먹었나 봐.”
장현웅의 말대로였다.
“어? 어...”
아이는 당황한 나머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광객들을 웃음을 터트렸고, 그런 분위기에 아이는 더욱 당황한 듯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당황한 10살 남짓한 아이.
그 아이의 눈빛이 햄닛과 닮은 탓이었다.
‘햄닛(Hamnet)...'
죽은 내 아들을 꼭 닮은 눈동자.
아마 저 나이가 됐으면 저런 눈빛이었겠지.
가슴이 시큰거린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울먹이는 아이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대사를 까먹은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아저씨랑 즉흥극 한번 해볼래?”
“즉흥극, 이요?”
“그래. 넌 앞에서 리액션만 해. 나머지는 내가 이끌 테니까.”
“네? 그게 무슨...”
“설명할 시간 없어. 아니면 이대로 손님들을 다 놓칠 거야?”
내 말에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그럼 시작하는 거다?”
“...”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곧이어 미소를 지으며 관광객 앞에 섰다.
“넌 베니스의 상인 대사도 모르는구나? 그러면서 어떻게 연기를 한다는 거지?”
“...”
주눅 든 아이는 잠시 눈치를 살핀다.
내가 윙크를 슬쩍 보내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땐다.
“그, 그러는 아저씨는 그 긴 대사를 다 외우나요?”
“그럼 물론이지.”
“피이. 거짓말.”
정말로 믿지 않는 듯 팔짱을 낀 채 몸을 돌린다.
꽤나 그럴듯한 임기응변이었다.
“진짜라니까. 내가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거든.”
“네에? 에이, 말도 안 돼. 셰익스피어는 400년 전 사람이라고요.”
애드립에, 애드립이 더해지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흐른다.
“그럼 내가 나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면 믿을래?”
“그거야 아저씨가 찾아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음. 좋아.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팔짱을 끼는 사내아이.
“좋아요. 한 번 해보세요. 들어나 볼게요.”
“흠. 그러니까 때는 말이야. 내가 스물여덟 살 때였어. 그때 당시엔 연극을 어디서 했는지 알아?”
“그거야 당연히 극장에서 했겠죠?”
“쯧쯧.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군. 당시에 극장은 런던 부근 외엔 없었어.”
“그럼 어디서 연극을 했는데요?”
“교회지.”
숨겨진 셰익스피어의 스토리였다.
그럴듯한 연기에 관광객들의 관심이 쏠린다.
어느새 거리엔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눈이 맑은 사내아이와 자신이 셰익스피어라 주장하는 한량.
그래.
즉흥극으로 펼치는 이야기는 실제 내 이야기였다.
내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을 떠난 뒤 런던 작가가 되기까지의 7년.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이 흔히 말하는 잃어버린 7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잃어버린 7년.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
‘언제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그 어느 기록도 없이 잃어버린 나의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상상 속 도서관이 문을 연다.
벌써부터 머릿속엔 영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 펼쳐진다.
그래.
내 역할은 베네딕트가 적격이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신비로운 동양 화가는 당연히 신하율이 적격이고.
그녀의 그림은 황태규의 그림체가 좋겠어.
연출은 당연히 정은미 피디고, 그때 귓가에 울렸던 행진곡은... 그래. 손주환 작곡가한테 맡기는 거지...
세상이 잃어버린 나의 시간.
그 미지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진다.
‘그래. 이거야...’
자연스럽게 떠오른 차기작.
가슴 벅찬 기쁨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문득 신하율이 보내준 노란 장미가 떠오른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그러나 또 다른 꽃말이 하나 있었다.
‘완벽한 성취...’
그 순간 2막이 내린다.
내 인생의 가장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새 내린 막이 천천히 다시 오른다.
그래.
인생 3막.
내 인생의 세 번째 파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