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86화 (186/203)

186. informal - 비격식적인, 허물없는 (5)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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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의 수상 소식은 지구 반대편을 날아와 한국까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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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가 알린 한국 문학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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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역대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수상자는 자국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작가나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작가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의 경우 권서준 작가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었고, 국제 수상 이력도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최초 부커상 수상자를 낸 국내 문학계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전 세계 언론 역시 충격적인 수상 결과에 취재의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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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던 정 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별할 거 없는 문학계에 오랜만에 희소식이군. 이런 경사가 몇 년 만이지?”

정 회장이 묻는 건 송영도 교수의 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을 의미했다.

“오래됐죠.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래. 근데 이렇게 간만에 좋은 소식이 들려오니 내 기분이 다 좋군.”

“어디선가 천재 작가 한 명이 나타나 세계를 놀래키길 바랐었는데, 그 바람이 이뤄졌으니까요.”

“그래, 그게 우리의 바람이었었지.”

한국 문학계를 이끄는 두 거장.

그들의 바람은 하나뿐이었다.

“그나저나 지금쯤 녀석은 뭐 하고 있으려나?”

“아마 여러 축하연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사인회도 하고요.”

“하긴, 바쁘겠지. 이게 보통 상이야?”

연락 한 통 없는 권서준에게 서운할 법도 하지만 정 회장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대견하다니까. 어디서 이런 괴물이, 아니 천재가 나타났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볼수록 신기했다.

“빨리 그 대단한 작가님의 얼굴을 좀 봤으면 좋겠군.”

정 회장의 말에 송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기다려지네요. 안 그래도 부탁할 것도 하나 있어서요.”

“부탁? 자네가?”

송 교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짓는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이 얼마 전 마무리한 완고였다.

‘서준이 녀석이 한 번 봐줬으면.’

자신이 창조한 세계.

권서준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지이잉.

그때, 정 회장의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한 정 회장이 벌떡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는다.

“서준아!”

***

이른 아침.

나는 외출 준비를 마친 뒤 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정이 생각보다 타이트해서 이제야 간신히 연락드리네요.”

-아니다. 바쁜 게 당연하지. 그나저나 소감은 어떠냐?

정 회장은 마치 자신이 수상한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얼떨떨하죠. 신기하기도 하고요.”

-녀석, 거짓말은. 당연한 거 받았습니다, 이런 목소리면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당연한 거 까지는 아니지만 자신 있던 건 사실이니까.

-그래. 한국엔 언제 돌아오냐?

수상 불발이었다면 내일 당장 돌아갈 일정이었지만 수상으로 인해 며칠 더 머물러야 했다.

“늦어도 이번 주 내로 돌아갈 거 같아요.”

-그래.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오라고. 돌아오면 한잔하는 거 잊지 말고. 좋은 술이 들어왔거든.

들뜬 정 회장의 목소리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기쁨이 다른 누군가의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이 다시 내게 돌아와 내 기쁨을 더한다는 게 참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휴대폰을 들었다.

이 기쁨을 가장 오래 나누고 싶은 사람 때문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는다.

-서준아!

전화를 받자마자 내 이름을 외치는 사람.

엄마였다.

“나 봤어?”

-그럼, 봤지.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봤지.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발표하는데 심장 터져서 죽는 줄 알았어.

“아이고, 이거 엄마 건강을 위해서 시상식은 비밀로 해야겠는걸?”

-이 녀석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잘했어. 장하다, 우리 아들.

그 어느 칭찬보다 엄마의 칭찬이 가장 기분 좋게 들린다.

막 들뜨는 건 아닌데 뭐랄까, 명치부터 뜨끈해지는 느낌이랄까?

마치 국밥을 먹은 것처럼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참,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지?

언제나 아들 끼니 걱정하는 엄마.

그게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잘 먹고 있지. 오징어채 진짜 맛있더라. 벌써 다 먹었어.”

-벌써? 얼른 돌아와.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줄 테니까.

“오케이. 알겠습니다.”

나는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유난히 엄마의 김치찌개가 그리워지는 아침이었다.

***

다음 날.

부커상 후보에서 수상자로 바뀌자 나를 향한 관심이 달라졌다.

“우와, 저 기자들 좀 봐.”

행사장에 도착하자 이른 아침부터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공항에서의 인기가 연극 「거장의 숨결」 성공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나를 향한 관심사라는 게 달라진 점.

나는 숨 가쁜 행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차에서 내린다.

오후 일정은 사인회.

런던의 대형서점 포일스(Foyles) 차링 크로스 지점에서 준비된 사인회였다.

광화문 교보만큼이나 큰 규모.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인테리어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작가님.”

우리는 행사 담당자의 안내를 받으며 안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돌리자 내 책을 든 채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들이 다 너 사인 받으려고 온 사람들인 가 봐. 진짜 엄청나네.”

말을 하던 장현웅은 슬쩍 어깨에 힘을 준다.

잠시 뒤.

짧은 인터뷰 후에 진행된 사인회.

내 책을 든 사람들이 한 명씩 다가와 짧은 인사를 건넨다.

“꺄악. 작가님, 책도 너무 재미있지만 얼굴까지 잘생기시면 어떡해요?”

소녀처럼 소리를 지르는 독자도 있고,

“이런 작품 처음이었어요. 한 글자도 빠짐없이 정독했다니까요? 정말 최고였습니다. 감동 그 자체였어요.”

차분히 엄지를 세우는 한국 독자도 있었고,

“당신과 당신의 작품을 기억하겠습니다. 권서준 작가님.”

발음이 어려운 내 이름을 힘주어 불러주는 중년의 독자도 있었다.

쉬지 않고 사인을 했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줄.

1시간쯤 지나자 팔이 뻐근해진다.

그러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이 고통을 즐기자고.’

힘든지 모르고 지나가는 시간.

그날의 사인회는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

3일 뒤.

부커상 수상 관련 행사가 모두 끝이 났다.

“후아, 드디어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장현웅도 마찬가지였다.

바쁜 일정도 그렇지만, 타지에서 웹툰 원고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이따 저녁 약속까지는 시간 좀 남았는데, 어떻게 할래? 쉴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떠나기 전.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늦은 오후.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 도착했다.

전생의 기억에도 남아있는 곳.

몇 번의 개•증축을 했다지만 특유의 고딕 양식을 보여주는 웅장한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우리는 한국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넓은 장소와 엄청나게 큰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잠시 감탄을 하던 장현웅이 나를 쳐다본다.

“서준아, 근데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야?”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이 영국 왕족의 시작이자 끝이니까.”

영국의 왕은 태어나는 순간 이곳에서 세례를 받는다. 왕위를 이어받는 대관식도 여기서 이뤄지고, 죽고 나면 장례식 또한 이곳에서 치러진다.

당연하게도 이곳엔 역대 왕들의 무덤도 묻혀있었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한 여인의 무덤이었다.

“자, 이곳이 바로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여인, 엘리자베스 1세의 무덤입니다.”

가이드가 자연스럽게 가리키는 무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 애증의 관계인 언니 메리 1세와 나란히 안장되어 있었다.

“어? 이 사람은 나도 알아. 유명하잖아. 무적함대를 박살 낸 사람.”

장현웅의 말을 들은 한국 가이드가 미소를 짓는다.

“맞습니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울 때 한 번씩은 거론되는 여왕이죠.”

가이드는 사뭇 진지해진 눈빛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엘리자베스 1세가 살던 16세기는 그야말로 모험의 시대였죠.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상. 그 속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생아 취급받으며 고난의 시기를 보냅니다. 실제로 언니 메리 여왕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나 명민했던 그녀는 군주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교육받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라틴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웨일스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했죠.”

가이드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설명했다.

“특히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아 매일 세 시간씩 역사책을 읽었다고 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불안 증세를 보일 정도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적절히 여백을 두며 마치 전래 동화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 엘리자베스 여왕은 연극을 특히 좋아했어요. 청교도 신하들이 연극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런던 내의 극장을 폐쇄하려 할 때도 연극을 재개하라고 지시한 게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었죠. 그런 그녀가 특별히 사랑한 작품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었고요.”

문득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여왕은 내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셰익스피어는「헨리 4세」에 등장하는 팔스타프를 특히 좋아한 여왕을 위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이란 작품을 쓰기도 했죠.”

2부작인 「헨리 4세」보다 먼저 써야 했던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허겁지겁 쓴 탓에 완성도는 부족했지만 여왕은 몹시 즐거워했다.

‘그만큼 여왕님은 내겐 둘도 없는 은인이었지.’

모든 것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사후에 세워진 비문을 바라본다.

[Regno consortes et urna, hic obdormimus Elizabetha et Maria sorores, in spe resurrectionis.]

[왕권과 무덤을 함께 공유한, 엘리자베스와 메리 두 자매가 여기 부활의 희망 속에 잠들었노라.]

제임스 1세가 세운 비문.

특히 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부활의 희망이라...’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닌 내가 그 기적을 체험하는 중이었다.

부활, 그리고 희망.

두 단어가 함께 이어지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엘리자베스 여왕의 설명을 이어가던 가이드가 슬슬 설명을 마무리한다.

“임종을 앞두고 여왕은 의회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황금의 연설’로 불리는 연설이었죠.”

잠시 목을 가다듬은 가이드가 천천히 입을 연다.

“나보다 더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임종을 앞둔 엘리자베스 1세가 되어본다.

임종 직전 그녀의 눈앞에 스쳐 지나간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던 감금 생활?

메리 여왕의 죽음 후에 진행된 즉위식?

아니면 이뤄질 수 없었던 연인 로버트와의 기억들?

무엇을 떠올렸는지 나로서는 상상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 연극이, 내가 창조한 세상이 홀로 왕관의 무게를 감당했던 그녀의 삶에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부디.

***

늦은 오후.

사원을 다녀온 우리는 호텔 정문에서 차를 기다렸다.

출국 전 마지막 저녁 약속을 잡은 베네딕트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잠시 뒤,

약속 시간에 맞춰 베네딕트의 차가 도착한다.

나와 장현웅은 자연스럽게 차에 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베네딕트가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덕분이죠. 공연도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요?”

“물론이죠. 부커상 수상자의 대본인데 당연하죠.”

밝은 베네딕트의 표정처럼 연극 「거장의 숨결」은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참, 기사 봤습니다. 얼마 전엔 엘리자베스 여왕께서 연극을 보고 가셨다고요?”

“아, 네... 그랬죠.”

잠시 말끝을 흐리는 베네딕트.

뭔가 말할 게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정리하고는 다시 입을 연다.

“참, 오늘은 저희를 초대한 분이 계십니다. 작가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분이 계시거든요.”

“저를요?”

“네. 일단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베네딕트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할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혹시, 어디로 가는지 장소는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베네딕트가 이내 입을 연다.

“그 정도는 가능할 거 같네요. 우리의 목적지는 노퍽주에 위치한 샌드링엄입니다.”

샌드링엄이라....

나는 목적지를 듣자마자 오늘 만날 사람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곳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사유지가 있는 곳이니까.’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유지 샌드링엄 하우스 (Sandringham House)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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