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76화 (176/203)

176. uncomfortable - 불편한 (2)

176.

***

30분 전.

와이즈 출판사 편집실은 권서준 작가의 그림 동화 「도둑고양이 네로」에 대한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피어슨 출판사에서도 권서준 작가의 그림 동화 영문 버전 출판을 원하는 터라 편집 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피어슨 출판사와의 동시 출판 계약은 이상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보다 많은 나라에 전파되길 바라시고요.”

권지연의 말에 주상진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영문판 번역은 권 작가님이 직접 하신다고 해서 문제없고... 참, 표지는 어떻게 됐어?”

“일단 여섯 종류가 나왔어요.”

권지연은 준비된 시안 여섯 개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주인공인 네로를 작게 그린 이미지, 네로를 중심에 두고 배경을 크게 잡은 시안. 네로의 눈동자만 클로즈업한 이미지 등등 다양하게 디테일을 살린 시안들이었다.

“이건 일러스트 느낌이 강하고, 이건 몽환적인 느낌이 인상적이네. 이건 아기자기한 캐릭터 느낌의 표지라서 어린 독자들의 구매를 자극할 수 있을 거 같고...”

주 편집장이 하나하나 살피며 자기 생각을 말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배치와 컬러까지 다양하게 접목한 시안들을 놓고 날카로운 편집장의 시선이 빛나는 순간.

옆에서 듣고 있던 권지연은 하나도 빠짐없이 노트북에 메모를 남긴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주 편집장이 입을 연다.

“음. 내 생각엔 3번이 제일 잘 어울릴 거 같아. 남녀노소 호불호가 제일 없는 디자인이니까.”

흰 바탕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덩그러니.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작품의 주제와 제일 맞닿아있는 이미지였다.

세상에 혼자 남은 고양이의 막막함이 고스란히 담긴 이미지랄까? 단순하지만 자꾸만 시선을 잡아끄는 고양이의 눈빛이 원고 내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주 편집장의 의견에 권지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럼 일단 황 작가님하고, 권 작가님에게 보내서 두 분의 의견을 물어보겠습니다.”

동생이었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깍듯하게 호칭을 붙였다.

“그래. 판형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주 편집장은 자연스럽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간다.

“국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동화책, 그림 동화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사이즈는 A4(297X210), B5(257X188) 판형 사이즈였다.

그러나 소설과 그림 동화의 느낌을 적절히 담기 위해 그 중간인 국판(210X148) 판형으로 선택됐다.

“표지는 양장 제본이니까 아트지 150g으로 가고, 내지는 아르떼 130g으로 하자고.”

“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전체적인 편집 회의가 마무리되는 시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초판 인쇄 부수는 어떻게 할까요?”

“흠.”

주 편집장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

최초 인쇄 부수가 너무 적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지연 씨 생각은 어때?”

“저요?”

“그래. 이번 작품의 책임자잖아.”

“...”

권지연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감동적인 동화.

서점 유통을 목표로 하는 동화책의 경우 대부분 몇 천 권 정도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상으로 잡았을 경우 안 팔리면 큰 손해를 입기 때문이지.’

그림이 들어가고, 재질 역시 일반 소설과 다를 수밖에 없어서 초기 비용 자체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권지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숫자가 있었다.

“5만 부요.”

“5만 부?”

생각보다 엄청난 부수에 주 편집장이 놀라서 묻는다.

“작년에 인기작인 「소금빵 인형」의 판매 부수가 3만 부였어요. 이 작품은 무조건 그 이상을 찍을 거라고 확신하고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주 편집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사실 내 생각에도 그래. 이 작품이 5만 부 이상 안 팔리면 말이 안 되지.”

주 편집장의 승인에 자연스럽게 회의가 정리되는 분위기.

“자, 그럼 빨리 진행하자고. 영국 출판 일정이랑 맞추려면 시간이 없어.”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대답하는 사이.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린다.

“펴, 편집장님!”

신입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 편집장이 바라본다.

“왜 그래? 어디 불이라도 났어?”

“불이 났죠. 아니, 그보다 더 큰 일이죠.”

“대체 뭔데 그래?”

“권서준 작가님의 작품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뭐?”

주 편집장이 놀란 듯 되묻는다.

그러자 직원이 더 큰 목소리로 외친다.

“권서준 작가님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요!”

다시 들어도 믿기 힘든 소식.

주 편집장이 눈을 껌뻑이는 사이 직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주 편집장도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니...”

잠시 뒤,

주 편집장 역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

[한국인 최초 부커상 최종 후보 선정]

문학계에 한 획을 긋는 소식.

그로 인해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대박, 이게 말이 돼? 우리나라 작품이 부커상에?

˪근데 최초는 아니지 않아요? 송영도 작가 작품도 부커상 받았다고 기억하는데...

˪그건 부커 인터내셔널 상, 이건 부커상.

˪뭔 차이임?

˪부커 인터내셔널 상은 번역 작품에 주는 상이고, 부커상은 영문으로 출판된 작품에 주는 상이에요.

˪아, 감사감사.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덕에 대중들은 두 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정도였다.

물론 내 일상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네, 네. 아 감사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인터뷰 계획은 없어서요. 네,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장현웅이 전화를 끊자 곧바로 진동이 울린다.

“아, 장 기자님. 네, 네. 기쁜 소식이죠. 네, 아, 인터뷰요? 죄송한데 저희도 아직 경황이 없어서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에.”

지이잉.

또다시 울리는 휴대폰.

장현웅의 휴대폰은 쉴 줄을 몰랐다.

“으아, 정신이 없네. 역시 부커상 최종 후보가 엄청나긴 한가 보다.”

미치도록 바쁜 와중에도 녀석의 얼굴엔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넌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냐? 정신없이 바빠서 작업할 시간도 많이 줄었을 텐데.”

내 말에 장현웅이 고개를 젓는다.

“야, 웹툽 작업이야 잠을 좀 줄이면 되지. 근데 이건 엄청난 희소식이잖아. 우리나라에서 부커상 후보가 나왔는데. 난 지금 너무 기쁘다고.”

문창과 출신이라서일까.

장현웅은 한국 작가의 선전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영어가 제2외국어 수준인 국가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최종 후보에 오르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이 기쁨은 잠시 만끽하기로 했다.

지이잉.

그사이 또 울리는 장현웅의 휴대폰.

그만큼 부커상 최종 후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

런던에 위치한 영국 왕립예술학회.

얼마 뒤에 있을 왕립예술학회 회원 선정으로 인해 오랜만에 조찬 행사가 벌어졌다.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은 공신력 있는 단체로 전 세계 80개국에서 회원을 선출하며 선출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명예와 특권이 주어지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체에서 메달을 수상한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부커 재단의 매튜 이사장이었다.

“흠.”

조찬 행사에 참여한 매튜 이사장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바로 오늘 아침 발표된 부커상 최종 후보 명단 때문이었다.

‘권서준, 결국 이름을 올렸군.’

부커상 최종 후보 발표를 확인한 매튜 이사장의 눈빛이 가늘어진다.

부커상 후보의 경우 수십 명의 위원이 정하는 시스템.

공신력 있는 선정 과정으로 인해 국제 문학상으로써의 지위를 지닐 수 있었다.

반면에 그 때문에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이사장의 독단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다시 봐도 못마땅한 결과.

‘최종 수상까지 하면 그건 못 견딜 거 같군.’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 있던 그때, 왕립예술학회 부학회장이 다가온다.

“아이고, 이사장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15년 전, 왕립예술학회에서 예술상을 받은 마크 부학회장이었다.

“오랜만이군, 마크. 잘 지냈나?”

“저야 잘 지냈죠. 참, 오늘 아침 발표는 잘 봤습니다. 역시 권서준 작가가 이름을 올렸더군요.”

“자네도 권 작가를 아나?”

“물론이죠. 요즘 가장 주목 받는 작가잖아요. 뛰어난 작품성 때문에 안 그래도 후보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 매튜 이사장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속을 모르는 마크 부학회장은 신이 난 듯 떠들어댔다.

“이러다가 그 친구, 왕립예술회원으로 추대되는 건 아닐까요?”

“자넨 그 친구를 그 정도로 높게 보나?”

마크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죠. 작품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로한 그 메시지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니까요. 물론 유럽 출판계 반응도 엄청 호의적이고요.”

“...”

그래서 더 못마땅했지만 마크가 알 리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매튜 이사장의 머리에서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그럼, 마크. 말 나온 김에 한 번 왕립회원으로 추천해보는 건 어떨까?”

“네? 권서준 작가를요?”

매튜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만큼 문학계에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하루라도 빨리 인정을 해줘야지. 그래야 얼어붙은 출판계도 살아날 거 아닌가?”

“아...”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마크 부학회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역시 이사장님이십니다. 그럼 우리가 한 번 힘 써볼까요?”

“좋지. 나도 힘을 써보겠네.”

매튜 이사장은 속내를 숨긴 채 미소를 지었다.

사실 권서준은 소설 외에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상태였다.

오히려 추천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가 떨어트리면 그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있었다.

‘왕립예술학회 회원이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느새 기분 좋아진 매튜 이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긴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조찬 모임이었다.

***

“서준아, 서준아! 파티하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누나가 두 손에 치킨을 든 채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파티?”

설거지하던 엄마가 물기를 닦으며 나온다.

“엄마, 서준이 또 사고 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상이 있는데 거기 최종 후보 됐거든.”

“문학상? 그 부커상인가 하는 거 말이야?”

“어? 엄마도 알고 있네?”

“그럼 모를 수가 없지. 서준이 이름만 검색하면 뜨는 내용인데.”

내 열혈 팬인 엄마는 최근 기사를 모두 읽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누나가 뒷말을 잇는다.

“그래. 그만큼 엄청난 일이라서 그런 거야. 게다가 판매량도 말도 안 된다니까? 이제 좀 주춤하나 했는데 후보 선정 소식 때문에 또다시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벌써 51만 부 돌파라고!”

누나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기뻐한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치킨이 쏟아질 뻔할 정도로.

“알았으니까. 조심해. 아까운 치킨 버리겠네.”

“야, 뭐야 그 반응은? 지금 치킨이 중요하냐? 이거 네 작품이야. 네 성공이라고.”

들뜬 누나에 비해 내 반응이 담담하긴 했다.

어쩌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 같은 생각 때문일까? 아무튼.

“장하다 우리 아들.”

“엄마, 이건 장한 정도가 아니야. 이 정도면 애국이라니까?”

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만 좀 해. 아직 수상한 것도 아닌데 너무 설레발치지 말고.”

“야, 이럴 땐 좀 즐겨야지. 어떨 때 보면 노인네 같다니까?”

누나가 툴툴거리며 사 온 치킨을 내려놓는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 가족들이 좋아하자 내 기분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이잉.

그리고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장현웅이었다.

-서, 서준아.

당황한 목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넘어온다.

“왜? 무슨 일이야?”

-그게... 이메일이 한 통 왔는데, 이게 스팸 메일 같기도 하고... 난 잘 모르겠어서.

“스팸메일?”

-전달해줄 테니까 니가 한 번 봐봐.

잠시 뒤,

장현웅이 전달한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영국 왕립예술학회 신규 회원 추대 및 특별 초청 강연회 제안]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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