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32화 (132/203)

132. money's worth - 쓴 돈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 (2)

132.

***

이틀 뒤.

「가시리 가시리잇고」 1차 티켓 오픈 당일.

타다다닥 타다다닥.

김재용 대표는 마치 건반을 치듯 네 손가락으로 연거푸 테이블 두드렸다. 긴장하면 나오는 김 대표만의 버릇.

“...”

김 대표가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이제 슬슬 티켓 오픈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될성부른 공연은 매진 속도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굳은 표정의 김 대표는 이내 손가락을 멈추며 벽에 달린 시계를 확인한다.

오후 2시.

1차 티켓 오픈을 한 지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상황.

자리에서 일어난 김 대표가 사무실로 향한다. 김 대표를 본 직원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표님.”

“어떻게 됐어?”

앞뒤 없는 질문.

그러나 직원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대박입니다. 벌써 거의 매진이에요.”

“그래?”

“직접 확인해 보시죠.”

직원이 모니터를 돌리자 김 대표가 서둘러 예매 사이트 현황을 확인한다.

직원의 말대로 약 30일에 걸친 공연 일정 중 대부분의 시간대가 매진된 상태였다.

A석 티켓 값만 10만 원이 넘는 대규모 공연. 무려 3만 여석이 거의 다 차 있었다.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도 아닌데, 이렇게 속도가 빠르다고?’

해외 유명 라이선스를 가진 뮤지컬이야 오픈한지 몇 분도 되지 않아 매진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인지도가 부족한 국내 창작 뮤지컬의 경우 초반 티켓 판매가 부진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티켓이 팔리고 있었다.

조금씩 혈기가 도는 김 대표의 얼굴.

그리고 잠시 뒤,

“대, 대표님! 드디어 매진이랍니다!”

무려 3만 석이 매진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시간 20여 분이었다.

공식 기록은 1시간 23분.

최종 결과를 확인한 김 대표가 느른하게 웃는다.

“좋아, 아주 좋아.”

더없이 흡족한 결과.

자연스럽게 의자에 등을 기댄 김 대표는 시원하게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린다.

‘그쪽은 어떻게 되려나?’

이제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차례였다.

***

오후 2시 30분.

「가시리 가시리잇고」의 1차 티켓 오픈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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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가시리 가시리잇고」가 독보적 화제작 입증하며 압도적인 행보를 보여...]

오는 3월 1일 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가시리 가시리잇고」의 1차 티켓 오픈이 1시간 23분 만에 전석 매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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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 매진이라는 독보적 파워를 과시한 뮤지컬 「가시리 가시리잇고」(프로듀서 김재용, 제작 오늘 극단㈜)는 1차 티켓 오픈 1시간여 만에 약 3만여 석에 달하는 티켓을 모두 매진시키는 역대급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후 국내 4대 예매처 랭킹 1위를 휩쓸며 흥행 돌풍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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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매진 기록은 열악한 국내 공연 시스템 속에서 이뤄낸 결과로 국내 뮤지컬계에 새로운 흥행 신화를 써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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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석 매진 기록을 세운 오늘 극단의 기사는 고작 몇 분도 되지 않아 창조 극단 사무실까지 전달되었다.

“저쪽은 전석 매진이네요...”

기사를 읽던 직원의 표정이 심란해진다.

옆에 있던 서미연 대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그럴 만해. 저쪽 작품 역시 잘 나왔으니까.”

최종 리허설을 직접 보고 온 터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나요. 작품으로 승부하면 될 걸 굳이 티켓 오픈 일정을 바꾸다니... 이거 괜히 우리 작품에 안 좋은 영향이 미칠 수도 있겠는데요?”

직원의 걱정은 당연했다.

뮤지컬 관람객의 풀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같은 시기에 개막하는 두 작품이 동시에 대박 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서 대표는 담담하게 직원을 타이른다.

“뭐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감독을 넘어 어엿한 대표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현명한 대처. 위기일수록 서 대표의 안정감이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문득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근데 매진까지 얼마나 걸렸답니까?”

“음. 잠시만요. 아, 1시간 23분 걸렸네요. 창작 뮤지컬치고는 정말 대박이네요.”

기사를 확인한 직원이 정확한 매진 시간을 알려준다.

사실 직원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순수 국내 IP로 제작된 창작 뮤지컬이 초연 공연에서 이토록 빨리 매진되기란 쉽지 않았다.

“하아. 이제 우리 차례네요...”

어느새 주눅이 든 사무실 분위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개막하는 작품의 앞선 선전은 기세마저 자연스럽게 가져갔다.

“자, 자 다들 뭐 하는 거야? 우리 작품도 해낼 수 있다고. 솔직히 더 빠르게 매진될지 누가 알아? 아직 이틀 남았으니까 홍보 쪽에 더 신경을 써보자고.”

서 대표는 빠르게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덕분에 몇몇 직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SNS와 언론사 협조를 토대로 미진했던 홍보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얼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노력했지만 결국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재 우리 작품은 「가시리 가시리잇고」 보다 1만 석이 더 많은 규모.

당연히 오늘 극단 측보다 매진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티켓 규모를 줄이자는 말도 많았지.’

실무자들 입장에선 당연했다.

매진된 작품과 매진이 안 된 작품은 언론 홍보 측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자신 있었다.

당연히 4만 석을 유지하자고 주장한 것도 내 의견이었고.

지이잉.

그리고 그 순간, 타이밍 좋게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포스 극단의 총괄 디렉터 아서였다.

-작가님, 말씀하신 대로 기사가 올라갈 겁니다.

역시 일 처리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이라뇨. 오히려 이런 마케팅을 생각해내신 작가님께 감사드려야죠. 저희 쪽도 작가님만큼이나 이번 작품이 중요하니까요.

아서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있었다.

포스 극단 역시 「거장의 숨결」 연극 티켓 오픈을 앞둔 상황이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이제야말로 진짜 시작이군요.

아서의 말 대로였다.

포스 극단의 연극.

그리고 우리 뮤지컬이 얼마나 흥행할지 알아볼 수 있는 티켓 오픈 결과.

‘이쪽저쪽 할 거 없이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이군.’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

영국 최대 신문지엔 곧 오픈 예정인 한 연극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이틀 뒤.

창조 극단 관계자 전원이 극단 사무실로 모였다. 모두 오늘 있을 1차 티켓 오픈 결과를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가끔 들리는 농담.

나직이 넘버를 흥얼거리는 소리.

모두 긴장한 마음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계 초침은 거침없이 움직였고, 어느새 12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티켓 오픈 2분 전.

사무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긴장한 사람들.

뮤지컬 스타 조현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순간은 언제나 떨리는군...’

수십 개의 작품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도 지금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 티켓 오픈이 더 긴장되는 이유는 바로 경쟁 작품에 출연하는 주연 배우 때문이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의 주연 황준수.

차세대 뮤지컬 황태자로 불리는 배우로 뛰어난 가창력을 토대로 깊이 있는 감정 연기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이돌 출신답게 팬층도 두터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티켓 파워도 무시 못 했고.

그 때문에 벌써부터 언론들은 두 사람의 대결 구도로 작품의 흥행 여부를 따져보고 있었다.

지금 조현성이 보는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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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vs 황준수]

뮤지컬계에서 투톱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두꺼운 팬덤을 가지고 있는 두 배우의 본격적인 흥행 대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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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말로의 천재성과 함께 암울한 그의 삶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밀도 높은 연기력과 가창력을 갖춘 당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 조현성. 한국 뮤지컬 어워즈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조현성과 그에 못지않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황준수의 대결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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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같은 날 공연이라 승패가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

“후우...”

휴대폰을 내려놓은 조현성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긴장되시나요?”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권서준 작가였다.

조현성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치고 올라오는 후배가 만만찮으니까요.”

더없이 솔직한 표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권서준 작가 앞에선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다.

“맞습니다. 왕좌를 지키는 게 어렵죠. 도전자는 수없이 도전하면 되지만 지키는 자는 한 번만 수성에 실패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니까요.”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히 꼬집는 권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권서준의 말은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작품에서 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담담하면서도 자신감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조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권서준을 바라본다.

“...”

그러고 보니 서 대표를 비롯해 업계 전문가인 자신도 긴장하고 있는데, 유독 태연한 한 사람이었다.

뮤지컬 쪽에선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작가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

‘대체 어떻게 저렇게 태연한 거지?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아무리 대본을 잘 쓴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일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톱스타인 자신 역시 SNS 홍보를 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대체 뭘까...’

권서준으로 인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1시가 되었다.

“시, 시작합니다.”

긴장한 직원의 목소리와 함께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한다.

조현성 역시 마른 침을 삼키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국내 4대 예매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티켓 오픈이 시작된 상황. 직원은 서둘러 가장 작은 규모의 예매처부터 들어가 예매현황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 이게 왜 이러지?”

순간 에러가 뜨면서 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

“헐. 이거, 서버 오류 났나 본데요?”

옆 컴퓨터로 같은 사이트에 접속해본 직원도 당황한 듯 외친다.

“아, 여기 서버 관리 안 할 때부터 알아봤어. 미치겠네. 빨리 팔려도 아쉬운 마당에 서버 다운이라니...”

엎친 데 덮친 격.

마음먹고 온 사람들 역시 티케팅을 미룰 수 있었다.

“하필 이럴 때 이런 일이 생기냐...”

직원은 입술을 곱씹으며 재빨리 다른 예매처에 접속한다.

그런데 에러가 뜨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엔 직원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운다.

“어? 이상하네? 인터크파는 10만 명이 동시 접속해도 문제없는 예매처 사이트인데...”

직원은 서둘러 나머지 두 곳의 예매처에 접속해본다. 국내 4대 예매처라 불리는 모든 사이트를 살폈지만 모두 서버 다운이었다.

이 정도면 서버 이상일 리가 없었다.

4대 예매처의 서버가 동시에 맛 갈 일은 로또 당첨 확률만큼이나 낮으니까.

모두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그때,

한 직원이 소리친다.

“어? 서버 복구됐습니다!”

급히 복구된 사이트.

그런데...

화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모든 좌석에 X표가 쳐져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미 좌석이 예매되었다는 소리.

1일, 2일...

화면을 넘겨보지만 27일에 걸친 공연이 모두 같은 화면이었다.

“서, 설마... 전석 매진인 거예요?”

“말도 안 돼... 정말요? 진짜요?”

믿기 힘든 사실에 직원들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여태 듬직한 모습을 보이던 서 대표도 믿기지 않는 듯 말끝을 흐린다.

그때,

직원 하나가 SNS 뜬 인기 글 하나를 보여준다.

“혹시, 이거 때문인가요?”

“뭐, 뭔데?”

서 대표를 비롯해 조현성까지 모니터로 급히 다가간다.

화면엔 영국 유명 일간지에 올라온 기사를 캡처한 SNS 인기 글이 보인다.

[돌아온 전설. 베네딕트 「거장의 숨결」로 다시 연극 무대에 서다.]

고작 연극 한 편에 대한 기사였다.

그러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유명 배우 베네딕트가 헐리웃 영화 캐스팅을 거절하고 출연한 연극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글엔 연극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특히 기사에 말미에 실린 그의 짧은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제 연기 생활을 통틀어 가장 기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특히 곧 한국에서 오픈되는 권서준 작가님의 뮤지컬 버전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네요.]

베네딕트의 인터뷰를 읽어 내려가던 조현성이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권서준을 쳐다본다.

“설마 이거...”

채 다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권서준은 모든 걸 예상한 듯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 하아...”

조현성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온다.

헐리웃 영화를 거절하고 연극을 선택한 베네딕트의 인터뷰.

그리고 런던과 한국에서 동시에 오픈되는 두 작품의 공연 관련 기사.

효과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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