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13화 (113/203)

113. upstairs - 위층(4)

113.

***

이른 저녁.

네버이 웹툰 회의실.

팀장급 회의가 한창 중인 회의실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아니, 추 팀장님 이게 맞는 겁니까? 단 5화밖에 올라오지 않은 작품과 벌써 정식 연재 계약을 하자고요? 기성 작가 작품도 아닌데요?”

“네, 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될 만한 작품에 빨리 기회를 주는 게 제 역할이기도 하고요.”

한 작품을 놓고 1팀장과 추 팀장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립했다.

“팀장님, 이건 감으로 결정할 일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진짜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감으로 결정했다고요? 제가 이래 봬도 수목 웹툰 1위 찍어 본 사람입니다.”

그건 1팀장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 과장이 이룬 업적은 그만큼 대단한 결과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그 작품들보다 이 작품은 더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자극적인 부분이 없잖아요? 기존에 연재 중인 작품에 비해 화제성이 약한 것도 사실이고요.”

“자극적인 거요? 설마 학원폭력물 뭐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솔직히 그런 거야말로 식상하죠. 그런데 이 작품을 한 번 봐봐요. 얼마나 힐링 됩니까? 게다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적당한 긴장감과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잖아요. 마치 로드 무비를 보는 거 같지 않아요?”

그 말에 몇몇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1팀장의 매서운 눈빛이 바로 꽂힌다.

“흠, 흠.”

결국 눈치를 보며 방관하는 팀장들.

한쪽은 떠오르는 신진 세력, 한쪽은 최근 좌천된 왕년의 실세.

두 사람의 팽팽한 기 싸움에 결국 부장이 나선다.

“후우. 추 팀장, 그 정도로 확실해?”

부장의 물음에 추 과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제 모든 걸 걸고 확신합니다.”

“흠. 그럼 일단 올려 봐.”

“부장님!”

1팀장이 벌떡 일어난다.

그러나 부장은 이미 예상한 듯이 손을 젓는다.

“진정해. 나도 생각 없이 허락하는 건 아니니까.”

간신히 1팀장을 진정시킨 부장이 다시 추 팀장을 바라본다.

“일단 정식 연재해 보면 답이 나오겠지. 대신, 결과를 내지 못하면 추 팀장이 책임지는 거야. 어때?”

책임이라면 다음 진급 순서를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그 말에 1팀장의 표정도 조금 누그러진다.

“그거 좋네요. 책임자답게 결과로 책임지면 되겠네요.”

1팀장의 도발.

그러나 추 팀장의 대답엔 주저함이 없었다.

“좋습니다. 이후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밀려오는 부담.

그러나 추 팀장 입장에선 이런 흐름이 오히려 기뻤다.

반대가 심할수록 자신의 선택이 맞았을 때 돌아오는 보상도 클 테니까.

물론 이미 결과는 확신할 수 있었다.

***

며칠 뒤.

차기작 구성을 위해 산책을 마친 뒤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현웅이 뛰어나온다.

“서, 서준아! 이것 좀 봐!”

장현웅이 내민 휴대폰 화면엔 쪽지 한 통이 도착해있었다.

-네버이 웹툰 사업부 5팀 : 작품 「새벽을 건너」 정식연재 승격 관련 미팅 요청.

바로 네버이 웹툰팀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네버이 웹툰팀이라...

다른 출판사와 달리 이건 좀 의미가 있었다.

왜냐고?

그건 바로 플랫폼의 직계가 된다는 뜻이니까.

단 5화 만에 얻어낸 엄청난 기회.

“역시 연락 올 줄 알았어.”

“뭐야, 넌 설마 알고 있었던 거야?”

“당연하지. 그래서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지 말고 비축분 쌓고 있으라고 했잖아.”

“하아, 넌 진짜...”

장현웅이 혀를 내두른다.

“근데, 나 잘 할 수 있을까?”

순간 찾아온 현실감에 살짝 표정이 굳어진다.

“물론이지. 이날을 위해 준비한 거 아냐?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지.”

장현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 말대로, 앞만 보고 한 번 달려볼게.”

두터운 신뢰가 느껴지는 눈빛.

누군가는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 나에겐 그 신뢰에 보답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있었다.

“좋아. 우리의 능력을 한 번 보여주자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합작품.

이제는 터트려야 할 시점이었다.

***

늦은 밤.

장현웅의 큰 집.

현웅 부친은 모처럼 아버지 제사 때문에 큰 형네 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온 친척이 모인 자리.

절을 하고, 차린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술이 한잔, 두잔 돌고 현웅 부친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더 있다가는 또 듣기 싫은 이야기만 실컷 들을 테니까.’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큰형이 아들 현웅이 얘기를 꺼낸다.

“현웅이 그 녀석은 대체 뭐가 그렇게 바빠서 오늘 못 온 거야?”

일어날 타이밍을 놓친 현웅 부친이 마지못해 입을 연다.

“일이 있어서요.”

“일은 무슨. 그 자식 아직도 그림 그린다고 헛짓하지?”

“...”

“인마, 정신 좀 차리라고 해. 우리 아들 봐라. 일찌감치 취업해서 얼마나 안정적이야?”

대기업에 취업한 아들 자랑. 매번 가족이 모일 때마다 듣는 소리였다. 뭐 자랑만 하면 좋은데 꼭 쓸데없이 현웅이를 깎아내리니 현웅 부친의 어깨가 자연스럽게 움츠러든다.

“너 설마, 아직도 애들은 착하게 크면 된다, 뭐 그런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문득 옛 생각이 난다.

그래. 어릴 때 체질적으로 몸이 약한 아들 현웅이. 그래서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바랬다.

지금처럼 살이 찐 것도 그때 과하게 먹인 보약 때문이었고.

“너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다가 큰코다친다. 그런 애들이 나중에 부모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가난만 대물림 해주지 않았냐고 한다니까?”

듣다 보니 끝이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현웅 부친이 입을 연다.

“형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는 현웅 부친의 말에 큰형님도 놀란 듯 쳐다본다.

“자기 좋아하는 일 하는 게 뭐가 잘못됐는데요? 나는 그렇게 못 살아서, 내 아들만큼은 하고 싶은 거하고 살라고 하는 게 이렇게 한심한 취급당할 만큼 잘 못 한 거예요? 취업? 대기업? 좋죠. 그런데 그렇게 회사에 충성해서 형님이랑 저 어떻게 됐는데요? 한번 보시라고요.”

“...”

큰형님도 할 말을 잃는다.

진즉 명퇴당한 형님과 권고사직 압박을 받는 자신까지. 모두 회사에 충성한 결과였다.

침울해지는 큰형님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어려워진다.

“...그만 가볼게요.”

현웅 부친은 그대로 집을 빠져나온다.

“여, 여보!”

아내의 다급한 부름이 들리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오늘 밤.

그는 참 못난 아빠, 참 못난 동생이었다.

***

집에 돌아온 현웅 부친은 생각이 많았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직장생활만 한 인생.

자연스럽게 진급과 연봉 인상은 가장 큰 목표였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기 위해 젊음을 다 바쳤지만 번번이 미끄러질 뿐이었다.

아니, 누군가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는 것 같은 기분.

‘마치 내 인생에 떼어낼 수 없는 물귀신이 있는 것만 같았지.’

그 버거운 무게감에 삶은 언제나 지치고, 고통스러웠다.

‘형님도 마찬가지고.’

아들의 취업을 자랑했지만 그 끝이 어떨지는 부모로서는 알 수 없었다. 부디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하아...”

한숨을 푹 내쉬는데 바깥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들 현웅이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엄마, 나 작업실 생겼고 서준이가 장비도 다 세팅해줬어!”

“그게 정말이야? 잘 됐다.”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 곧 정식 연재 시작할 거 같아.”

“정식 연재? 진짜?”

“어. 오늘 그쪽에서 메일 왔어.”

“어이구, 잘됐네. 그동안 고생만 했는데 우리 아들 너무 잘 됐다. 이번엔 시작이 너무 좋은데?”

모자의 웃음소리가 방문 틈을 비집고 들려온다.

“참, 아버지는?”

“제사 갔다가 방에서 쉬셔.”

“피곤하신가 보네. 그럼 나 들어갈게.”

가만히 방문 밖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현웅 부친은 또다시 생각이 깊어진다.

‘정식연재? 그거면 좀 잘 풀리는 건가?’

현웅 부친은 휴대폰을 든 채 만지작거린다. 아들이 올렸다는 작품 때문이었다. 전에도 궁금했는데 작품명을 모르니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번 물어볼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는다.

행여 부담될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워진다.

그래도 자식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목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많은 작품 중에 어느 게 아들 작품인지 찾기는 요원했다.

그저 지난번에 올렸다던 챌린지리그 전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혹시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쓱쓱 넘기는데 아내가 방으로 들어온다.

보자마자 아내는 남편의 속마음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궁금하면 제목이라도 물어보지 그랬어요? 왜 혼자서 이래요?”

“그거야 애한테 부담될 수도 있잖아. 나는 뭐 생각이 없는 줄 알아?”

“그럼 잘해라, 힘내라고 격려 한 마디 해주면 되잖아요? 꼭 매번 이렇게 뒤에서 후회할 거예요?”

“...”

현웅 부친은 입을 다물었다.

아내의 말이 백번 맞기에 할 말이 없었다.

“당신이 현웅이 어렸을 때 그랬죠? 우리 아들, 다 필요 없으니까 몸 건강하게, 착하게만 크면 된다고.”

“...”

“사고 친 적도 없고, 항상 열심히 노력하고, 주변 사람들 잘 챙기고, 이보다 얼마나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하냐고요.”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못했다.

“어휴, 시끄러워. 그만 좀 해.”

결국 현웅 부친은 담배를 챙겨 집을 나왔다.

주차장에 나와서 담배를 꺼냈다가 이내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든다.

“...”

담배보다 간절한 게 아들의 작품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죄다 보는 중인데 새삼 엄청난 규모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말 경쟁이 장난 아니구나...”

아차 하면 작품이 밀려나고, 또 다른 작품이 올라온다.

무한 경쟁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마치 한 해에도 수십 명씩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상황과 꼭 같았다.

문득 아들을 향한 애틋함이 피어오른다.

‘녀석도, 고생이 많았구나...’

그냥 그림만 그리고, 시간 낭비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장이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번 도전 역시 실패로 끝날까 봐 걱정이 앞선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텐데...’

한숨을 내쉬며 스크롤을 내린다.

지이잉.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아내였다.

[「새벽을 건너」예요.]

앞뒤 잘라먹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현웅 부친은 자연스럽게 다섯 글자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잠시 뒤,

눈에 띄는 그림체를 가진 작품이 보인다.

“...어라? 이게 현웅이가 그린 거라고?”

확연하게 차이 나는 퀄리티.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향한다.

스크롤을 올리자 펼쳐지는 이야기.

처음 시선을 사로잡은 건 수려한 그림체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 보니 이야기가 또 재미있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유치하지 않은데 또 재미있네?’

두 친구의 잔잔한 우정 얘기였다.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단짝이 되어버린 대학 동갑내기 친구의 이야기.

그 어떤 자극적인 내용도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든다.

묘하게 힐링이 되는 느낌.

흐뭇한 두 사람의 우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참 따스한 이야기네...’

작품을 봤을 뿐인데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문득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몸이 약했던 아들 녀석.

그래서 건강하게, 착하게만 자라주길 바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어...’

먹먹한 감정이 밀려온다.

냉혹한 현실 앞에 바짝 굳어버린 자신과 달리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의 모습이 대견했다.

그리고 그날 밤.

현웅 부친은 처음으로 웹툰 구독이라는 걸 했다.

‘이 작품은 잘 될 거 같아.’

처음으로 희망이 움트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몇 번을 봐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이주일 뒤,

잔잔하던 금요 웹툰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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