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55화 (55/203)

# 55. useful - 쓸모 있는 (2)

55.

***

-안녕하세요. 와이즈 출판사 조한울 마케팅팀장입니다. 이번에 작가님 작품이 출판되어 책을 보내드렸는데 잘 받으셨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택배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로부터 확인 전화가 왔다.

“네, 좀 전에 받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부터 전국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작가님의 작품이 정식 유통될 예정입니다. e-book의 경우는 지금 한창 작업 중이라 빠르면 8월 안에 판매될 거 같고요. 출판과 관련해서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좀 전의 대화를 되뇌었다. 전국 대형서점 중심으로 유통된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서점에 가면 내 책을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 소식이네.

나는 거실 책장 한 칸을 통째로 내 책들로 채웠다.

한 줄로 길게 이어진 같은 제목의 책들.

몇 달 동안 고생한 나의 열정이자 결실이었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온 엄마가 책을 보고 놀란다.

“이게, 아들이 쓴 책이야?”

엄마는 직접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니까.”

“신기하네. 이렇게 직접 보니까...”

엄마는 몇 번이나 책을 살피며 내 이름을 확인했다. 종이가 구겨질까 봐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근데 같은 책을 왜 이렇게 많이 준 거야?”

“지인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홍보도 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라는 의미로 출판사에서 챙겨주는 거야.”

“그래? 그럼 엄마가 몇 권 가져가도 될까?”

“왜? 누구 줄 사람 있어?”

“그럼, 이모들한테 자랑하고, 엄마 친구들한테도 주고, 아, 가게에도 갖다 놓아야지.”

엄마가 말하는 가게라면 지금 일하고 있는 식당을 의미했다.

“고기 집에 순문학 책을 둬서 뭐하게? 아무도 안 읽을 걸?”

“안 읽으면 어때? 오는 손님들마다 책 보면서 물어볼 거 아니야. 저거 왜 갖다 놓았냐고. 그럼 자연스럽게 우리 아들 자랑할 수 있잖아.”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엄마도 이참에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는 농담을 내뱉으려 했다.

“...”

그러나 나는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벌써부터 아들 자랑에 싱글벙글 웃는 엄마의 표정 때문이었다.

‘저렇게 좋을까?’

아들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보다 더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명치부터 따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뭔가 거창한 건 아니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만드는 기분 좋은 느낌.

그래,

그건 행복이었다.

전생에선 놓쳐버린 가족과의 행복.

이번엔 내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글쓰길 정말 잘했군.’

나는 은은한 행복을 느끼며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나 역시 찾아가야 할 사람이 한 명 떠오른 탓이었다.

***

월요일.

일주일에 딱 2번 학교 가는 요일.

나는 수업을 마친 뒤 연구동을 찾았다.

똑똑.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송영도 교수가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나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집에서 가져온 내 책을 내밀었다.

“이렇게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운데?”

책을 바라보던 송 교수는 이내 대견한 듯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 책을 자신의 손이 가장 잘 닿는 책상 바로 앞 책장에 꽂았다.

재미있게도 그 자리는 바로 셰익스피어 전집이 있는 바로 그 칸이었다.

전생과 현생의 업적이 나란히 놓인 셈.

지켜보는 내 감정도 조금은 뭉클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번 학기엔 수업이 없어서 얼굴 보기가 힘드네. 희곡은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는 거니?”

송 교수는 자연스럽게 내 근황을 물었다.

“서 감독한테 듣기로는 아직도 반응이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연속 매진 기록도 이어가고 있고요.”

“그렇군. 소설은, 생각해둔 건 있고?”

송 교수가 자연스럽게 운을 띄웠다.

“생각해둔 건 많지만 당분간은 힘들 거 같습니다.”

“그렇겠군. 이번에 쓰는 게 사극이라고 했었지?”

“네. 조만간 대본 집필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그래, 바쁘게 사는 게 보기 좋군.”

말과 달리 눈빛에선 여전히 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결코 재촉하진 않았다.

“정 회장님은 잘 지내시죠?”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송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정정하시지. 이번 주부터 열릴 국제 출판 포럼 때문에 지금은 런던에 계셔.”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외 활동력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순문학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큼은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귀국하면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 네 책이 출판됐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신 분도 정 회장님이거든.”

나에 대한 정 회장의 관심은 여전히 대단했다. 어차피 부담스럽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알아두면 두고두고 좋을 인연.

“좋죠. 두 분과의 식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내 말에 송 교수가 피식 웃는다.

***

늦은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정은미 피디와의 미팅을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출판 소식은 즐거웠지만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을 대본 작업이니까.

물론 시놉시스는 이미 완성됐고, 대강의 트리트먼트도 충분히 잡힌 상태였다.

다만, 문제점도 함께 나타났다.

‘생각보다 자료조사가 많이 필요해.’

이옥의 삶을 토대로 조선 시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도.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옥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은 가능했지만 어디까지나 조선 시대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너무 많은 자료가 있는 시대라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잠시 뒤,

약속 시각에 맞춰 정 피디가 도착했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내 책을 선물했다.

“으아, 당선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작가님한테 직접 선물로 받다니 정말 감동이네요.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

몇 번이나 인사를 하는 정 피디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본격적인 업무 얘기로 들어갔다.

“어떠세요? 집필은 잘 되세요?”

“네, 잘 진행되고 있어요. 일단 대강의 트리트먼트는 나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정말요? 물론이죠.”

정 피디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두 손을 비볐다. 나는 미리 출력해둔 트리트먼트를 내밀었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정 피디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와... 이거 전체적인 내용을 쭉 한 번 훑으니까 캐릭터가 훨씬 더 살아있네요. 굵직굵직한 사건도 있고, 전개가 시원시원하고... 이제 대본 집필 들어가셔도 되겠는데요?”

정 피디는 트리트먼트를 보고 한층 더 들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대본 집필만 남아 있는 상황.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작업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지난번에 부탁드린 자료는 준비됐나요?”

“아, 그거요? 여기 있습니다.”

정 피디가 급히 외장하드와 자료집을 꺼낸다.

“잠시만요. 제가 좀 전에 자료를 받아서 아직 확인을 못 했는데...”

그런데 뒤늦게 자료를 확인하던 정 피디의 표정이 굳어진다.

“어라? 이건 그냥 인터넷 기사 복사한 수준 같은데...”

다른 페이지를 넘겨도 마찬가지였다.

폴더 안에 있는 대부분의 자료가 대충 인터넷에서 긁어온 수준이었다.

“하... 이거, 상태가 심각한데요? 자료의 퀄리티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네요.”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대충 한 느낌.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료 조사를 부탁한 건데 오히려 시간을 낭비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다른 보조 작가로 교체할까요?”

정 피디가 난처한 듯 묻는다.

그러나 다시 고른다고 좋은 보조 작가를 만나리라는 방법은 없었다.

마침 나한테 좋은 대안이 있었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 포석이었다.

“교체보다는 제가 사람을 직접 고르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요?”

“그야 물론이죠. 생각해둔 사람이 있으신가요?”

“네, 한 명 있긴 해요.”

물론 생각해 둔 사람이 있었다.

창작보다는 정리와 자료 조사, 취재에 특화된 사람.

다시 말해 글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기 위해 모든 준비를 해줄 수 있는 사람.

‘서브 작가로서는 최고의 재능이지.’

아직 본인은 모르는 듯했지만.

***

늦은 밤.

포털 사이트 세이버엔 줄줄이 소설「덧없는 인생이여」의 후기가 올라온다.

-권력과 욕망의 치열한 몸부림. 그 안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론적 고민...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드는 책.

-모든 걸 이룬 순간 나락에 떨어진 남자. 그의 자아성찰기...

-인생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 책, 무조건 강추입니다.

평점은 만점에 가까운 무려 4.7점.

30대부터 50대까지 고른 구매자 분포도를 유지한 채 하루 만에 천 권이 넘게 팔렸다.

지난해 당선작이 첫날 백여 권 팔린 것에 주목할 만한 판매 추이였다.

“하하하.”

런던에서 이 내용을 보고 받은 정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역시 그 녀석이 해낼 줄 알았다니까?”

좀처럼 보기 드문 정 회장의 격한 리액션에 함께 포럼에 참석한 중년의 영국인 남성이 묻는다.

“정 회장님,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올리버.

푸른 눈을 가진 피어슨 출판사 편집장.

그가 속한 피어슨 출판사는 영국 내에서 3위 안에 드는 출판그룹으로 유수한 문학 작품을 많이 출판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네, 기쁜 소식이네요. 이번에 저희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 있는데, 국내에서 반응이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

“호오, 어느 작가의 글이죠? 혹시 송영도 교수의 작품인가요?”

정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송 교수는 아니고, 그의 제자의 작품입니다.”

“제자라고요? 그럼 나이가...”

“아마 올해 스물일곱일 겁니다.”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올리버가 눈을 크게 뜬다.

“허허, 꽤 젊은 작가군요. 정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작품성이 뛰어난 가 봅니다.”

“그야 물론이죠. 작품성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심리묘사 아주 치밀하고 깊거든요. 아마 조만간 올리버 편집장도 이름을 들어볼 수 있을 겁니다.”

듣고 있던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신진 작가의 등장이라니 그것참 좋은 소식이네요. 내친김에 이번엔 한국 문학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군요.”

그 말인즉슨 한국 문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올리버가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콘텐츠 파워가 장난이 아니잖아요? 음원 시장 쪽은 벌써부터 믿고 보는 K팝이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고, 최근엔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쪽도 유명하고, 다만 여전히 문학 쪽은 예외라는 사실이 내내 안타까웠거든요.”

동의할 수밖에 없는 현실.

올리버 편집장의 분석은 정확했다.

수많은 K-콘텐츠 중 여전히 문학은 예외였다.

그러나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늙은 몸을 이끌고 이 먼 타국까지 날아 온 것도 그 때문이니까.’

굳이 이 포럼을 온 것도 바로 올리버 편집장 때문이었다.

피어슨 출판사의 선택만 받으면 영미권에서 좋은 유통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정 회장은 넌지시 운을 띄웠다.

“맞습니다. 뮤지컬, 연극, 그리고 순문학까지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죠. 허나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법은 없죠.”

“...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말씀하신 K-pop, K-드라마 역시 변방 콘텐츠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가까운 시일 내에 문학 쪽도 K 콘텐츠의 흐름을 타지 말란 법이 있을까요?”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곧 다가올 미래를 넌지시 제시했다.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어쩌면 송 교수에 이어 또 한 명의 부커상 수상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하니까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정 회장이 굳이 송 교수의 수상에 대해 언급한 건 지난 부커상 수상 때 출판 에이전시의 제안을 거절한 게 바로 피어슨 출판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올리버 편집장이 크게 후회했었지.’

북미 출판사에 판권을 빼앗긴 피어슨은 두고두고 그때의 선택을 아쉬워했다.

결국 모든 건 철저한 계산에 근거한 대화였다.

“...”

턱을 쓸어내리던 올리버의 눈빛도 서서히 변한다.

편집장이면서, 동시에 대중 콘텐츠의 흐름에 예민한 실무진의 눈빛이었다.

‘제발, 관심을 보여야 할 텐데...’

올리버의 반응을 지켜보던 정 회장의 속내가 타들어 간다.

그리고 잠시 뒤,

올리버 편집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작품, 제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그래, 이거였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반응.

순간 정수리부터 뜨끈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물론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보실 수 있게 조치하죠.”

겉으로 보기에 정 회장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했다.

그러나 테이블 아래 놓인 그의 손엔 오랜만에 단단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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