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8화 (18/203)

# 18. fair play - 정정당당한 승부 (5)

18.

***

‘역시 쉽지 않은 모양이군.’

백일장 장내를 둘러보던 송영도 교수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길과 노래.

이전에 주어진 시어는 무난하고, 정서적인 부분에서 활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외계인이라는 시어는 이전 시제와 상극인 심상이었다.

주어진 시제로 미리 준비해왔다면 준비해 온대로, 그냥 왔다면 그냥 온대로 당황스러운 시제.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 얼마나 독창성을 보여주는지가 이번 백일장 시제의 목적이었다.

송 교수의 눈은 자연스럽게 송진호에게 향했다.

문창과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재.

동시에 자신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글이 급해...’

송진호는 성공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내면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쉬운 방법이지. 그러나 결국은 독이 될 뿐이야.’

대문호의 작품을 공부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행동이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건 언제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했다.

‘렌즈가 달라야 나만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송진호는 늘 아쉬웠다. 녀석의 글에서 자꾸만 누군가의 필체가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지금이야 학생으로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지만 기성 작가가 된다면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습관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십수 년 동안 거의 왕래가 없었던 아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다.

‘후.’

송 교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잠시 소강당을 벗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이미 복도 한쪽에 모여 있던 교수들이 송 교수를 보고 손을 든다.

“이봐, 송 교수!”

영미 문학 산책 강의를 맡고 있는 학과장 박성규 교수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지켜보고 있어? 이리 와서 커피나 한잔 하라고.”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다가갔다.

“이번 시제, 너무 자극적인 거 아냐? 애들 앓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데?”

“그러니까요. 외계인이라니, 이러다 애들 울겠어요.”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취향이 독특해.”

교수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서로 낄낄거렸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단순히 아이들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시제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벌써부터 이리 걸음을 옮긴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온다.

“참, 그러고 보니까 송 교수님, 영국 가실 때 이번에 1등 한 애를 데리고 가신다면서요?”

또 다른 동료 교수가 묻는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굳이 왜 그러셨어요? 그냥 적당히 마음에 드는 애 뽑아 가시면 몸도, 마음도 편할 텐데.”

주변 교수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대다수의 교수는 학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수족 같은 대학원생을 데려갈 때가 많았다.

그래야 편하고, 그래야 뭐라도 공짜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송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냥 그렇게 정했습니다. 더 능력 있는 학생이 있으면 기회를 주고 싶었으니까요.”

송 교수는 불편한 기색을 일부러 감추지 않았다.

“저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하며 멀어진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자마자 교수들의 뒷담화가 들려온다.

“대체 왜 학부생을 데려간다는 거야? 사람이 저렇게 고집불통이어서야. 쯧쯧.”

박 교수가 혀를 찬다.

“그렇게 말이에요 참 신기한 양반이에요. 왜 고생을 사서 하지?”

“설마, 아직도 우리 애들 중에 노벨상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걸까요?”

“아이고, 설마요. 우리나라는 태생적으로 노벨상 불모지에요. 특히 문학 쪽은 변방 취급받는다고요.”

“뭐 본인이 맨부커상 받고 그랬으니까 꿈이 커졌나 보죠.”

“그게 어디 자기 실력인가요? 번역가 잘 만난 덕이지. 영어권 문학이 아닌 이상 노벨상은 말도 안 되죠.”

이게 고고한 척 학생들 앞에 서는 교수들의 민낯이었다. 이러니 대한민국 문학이 발전하기 어렵지. 학생이나, 교수나, 문학을 한다는 것들이 겉껍데기만 멀쩡했다.

‘이런 꼴 보려고 온 게 아닌데...’

신물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염원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희망이 있잖아.’

쏴아아.

송영도는 화장실을 들러 손을 닦았다.

구태의연한 분위기에 젖어 들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의식이었다.

잠시 뒤, 화장실을 나온 송 교수는 교수 무리를 지나쳐 그대로 소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1시간이 지난 상황.

백일장에 도전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했다.

‘이 열정이 무의미하지 않아야 할 텐데.’

사실 시는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에게도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글의 실력을 파악하기에도 좋았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정도가 아니라, 단어를 다루는 능력, 심상의 전환, 이미지의 형상화 등, 글의 전반적인 재능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장르였다.

‘특히 주제 의식이 중요해.’

시어를 선택하고, 화자의 시선을 정함으로써 정해지는 시의 핵심. 그게 중요했다.

‘보편적이면서 특별해야 해. 그래야만 세계 속에서 먹힐 수 있지.’

인종과 문화권을 넘어서는 가치를 전해야만 했다.

말로만 해도 어려운 일.

그러나 이런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순간, 한국 문학계는 죽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썩어가고 있었으니까.’

명예와 오만으로 쌓아 올린 탑 위에 고고한 척 군림하고 있는 존재들. 그들에 의해 조성된 문단 카르텔의 폐해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계는 죽어가고 있었다.

‘문학계 전반에 냉소적인 시선이 팽배한 것도 그들 때문이고.’

아쉽게도 그 뿌리를 한 번에 도려낼 수는 없었다. 서로 굳건하게 연결된 이해관계는 이미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고, 그 어떤 성벽보다 견고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문학계 인사로써,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 명의 문인으로서 눈앞에 주어진 쇠락의 길을 그대로 걷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반드시 때가 온다.’

지금은 비록 병든 자와 다를 바 없지만, 그 언젠가 한국 문학계의 미래를 짊어질 누군가가 광명처럼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민족에겐 그만한 잠재력이 있으니까.’

송 교수는 그때를 위해 오늘도 자신의 소임을 다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송 교수는 자신이 걸고 있는 희망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권서준이었다.

‘응?’

그런데 권서준의 기이한 행동에 송 교수의 미간이 모인다.

모든 학생이 정신없이 쓰고 있는 와중에 녀석은 한가로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지?’

두 시간 내내 시를 써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게다가 그림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낙서 수준이었다.

‘설마, 포기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는 쉬운 분야가 아니었으니까.

지켜볼수록 아쉬움이 밀려든다.

의지와 상관없이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감까지는 고작 30분.

시를 다듬는 것만으로도 촉박한 시간이었다.

‘늦었어. 이제 와서 쓰기엔...’

녀석의 작품을 보며 느꼈던 감격이 떠오른다. 그 감격이 컸던 것만큼 실망감도 크게 다가온다.

‘역시, 이 땅에선 노벨문학상이 나올 수 없는 걸까...’

쓴맛이 입안을 타고 번진다.

어떻게든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탁 풀린다.

모처럼 얻은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자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무거워진다.

끝.

그래, 끝을 본 감정이었다.

더 이상의 희망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하아.’

송 교수는 한숨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10분 뒤.

백일장 참가생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자연스럽게 장내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쏠린다.

권서준이었다.

***

“와, 이번 시제 뭐야?”

“말도 마. 난 완전 맨붕 왔다니까.”

소강당 밖은 썰물처럼 나온 얘들의 한탄으로 소란스러웠다.

“그래도 대충 쓰긴 했는데... 하아. 수상은 힘들 듯.”

“야, 남들은 다 비유하는데 나 혼자 길과 노래랑 외계인을 한데 엮었다니까?”

“뭐? 그럼 진짜 외계인을 넣었다고?”

“그렇다니까...”

울상 짓는 녀석을 위해 친구가 다독인다.

“너무 걱정하지 마. 비유도 묘사가 살아야 먹히는 건데 엄두도 안 나더라. 나름 섬세하게 했으면 외계인으로 엮은 게 나을 수도 있어.”

“섬세하지도 못했으니까 하는 말이지. 하아. 몰라, 몰라.”

아무리 후회한들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백일장 대회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들이었다.

그때, 장현웅이 나왔다.

“와, 시제 뭐냐? 너무 강렬해서 평생 못 잊을 듯.”

말과 달리 녀석의 표정은 밝았다.

“그래서, 어땠어?”

“나? 음. 최선을 다했어.”

장현웅의 얼굴엔 후련함이 느껴졌다.

결과를 떠나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때, 막 백일장을 나오는 송진호의 모습이 보였다.

“...”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곧장 다가온다. 그 맹렬한 기세에 밀려 장현웅은 자신도 모르게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너, 아까 뭐한 거야?”

녀석의 표정은 바짝 굳어있었다.

그래봤자 나에겐 위협조차 되지 않지만.

“뭘?”

“한 시간 넘게 그림만 그렸잖아. 왜 그런 거야?”

표정에선 분함이 가득했다.

“설마, 삼십 분이면 충분히 시 한 편 뚝딱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야? 그렇게 해서라도 네가 천재인 것처럼 인정받고 싶은 거야? 대체 뭔데?!”

녀석은 뭔가에 쫓기는 듯 다급해 보였다. 그 다급함은 결국 녀석의 포커페이스를 무너트리고 흥분하게 만들었다.

‘재미있네.’

초조함은 결국 쓸데없는 오해까지 만들어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잘 쓰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에 힌트만큼은 주고 싶었다.

“오해가 심하네.”

“오해?”

“그저 심상을 정리하기 위한 과정이었어. 떠오른 이미지를 선명하게 다듬기 위한 기초. 굳이 그림까지 그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하면 좀 더 선명하니까.”

순간 녀석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럼... 설마 이미 머릿속으로는 시를 완성하고 있었다는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송진호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송진호를 그대로 둔 채 몸을 돌렸다. 내가 줄 수 있는 호의는 여기까지였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나는 살짝 떨어져 있는 장현웅을 이끌었다.

“가자.”

“어? 어딜?”

“백일장도 끝났는데 시원하게 한잔해야지.”

내 말에 장현웅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죽어라 고생했는데, 한잔해야지.”

우리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물론 송진호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을 테고.

***

백일장이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한곳에 모인다. 200여 개의 작품이 적당히 배분되어 교수들 앞으로 배당된다.

5명의 심사위원들에게 각각 배정된 건 모두 50여 개가 넘는 시였다. 그러나 마치 자동화기기에 들어간 고기처럼 등급에 따라 탁탁 분류된다.

A+, A, A-, B+,B, B-.

최하 C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그리고 A+가 매겨진 글들을 모아 다시 한번 전체 회의를 걸친다.

“역시 송진호가 남다르긴 하네요.”

“고아름도 괜찮아요.”

뒤늦게 확인한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송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정확히는 좋으면서 아쉬웠다.

송진호는 실수를 반복했다.

좋은 걸 자신 안에 욱여넣다 보니 오히려 자신의 색을 잃고 말았다.

‘결국 달라지지 않았어.’

아무리 냉정하게 대해도 혈육은 혈육인가.

부디 이번 실패가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송 교수가 받은 작품에선 그리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다. 대부분이 A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한 작품을 읽던 나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저... 이것 좀 한 번 보시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 교수에게 쏠린다.

“제 생각엔 이게 제일 나은 거 같거든요.”

자연스럽게 제출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뜻밖에도 권서준의 작품이었다.

제목은 <친애하는 외계인에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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