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6화 (16/203)

# 16. fair play - 정정당당한 승부 (3)

16.

***

“하아...”

이른 아침.

눈을 뜬 권지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망했어... 망했다고...”

모두 어젯밤 공개된 자신의 웹드라마 때문이었다.

자기 직전까지 확인했는데, 첫 화 조회 수가 3천을 넘지 못했다.

‘분명 대본도 잘 나왔고, 연출도 괜찮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조회 수였다. 벌써부터 동생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본 단계부터 동생의 도움을 받은 상태라 무조건 잘 돼야만 했다.

‘그런데... 완전 망해버렸어.’

권지연은 입술을 질끈 물은 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유브튜에 접속했다.

‘제발, 제발...’

실눈을 뜬 채 조심스럽게 조회 수를 살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조회 수 앞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아. 여전히 3이네.’

한숨을 푹 내쉬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제보다 숫자가 길어져 있었다.

‘어?’

기분 탓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숫자를 읽어간다.

‘일, 십, 백, 천, 만...?’

벌써 어제 조회 수의 열 배를 넘어버렸다.

그런데 아직도 숫자는 끝나지 않았다.

“삼, 삼십만?”

밤사이에 조회 수는 무려 백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눈을 비비며 몇 번을 확인해도 틀림없이 30만이 넘은 조회 수였다.

꿈인가, 생시인가.

확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 서준아, 서준아!”

다급한 권지연의 목소리가 반지하의 아침을 깨운다.

***

“서준아, 권서준!”

막 씻고 나오는데 누나가 튕겨 나오다시피 거실로 나온다.

“웬 호들갑이야?”

“이거 봐봐.”

누나는 다짜고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무려 30만이 넘는 조회 수.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나쁘지 않은걸?”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내 최고 기록이라고. 어떻게 1화 조회 수가 30만을 넘을 수 있지?”

나는 자연스럽게 댓글 반응을 확인했다.

-핵 재밌다. 오랜만에 두근거렸네.

-진짜 설렘 포인트 미쳤는데?

∟하마터면 첫사랑한테 연락할 뻔.

∟님아 그 강은 건너지 마오.

칭찬 일색인 반응.

옆에서 지켜보던 누나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나 어떡해? 행복해 미치겠어.”

누나는 방방 뛰었다.

그러다가 이내 지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후. 이제야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

누나가 느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열심히 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

그러나 나는 그 호사를 누리게 둘 생각이 없었다.

“쉰다고?”

“어. 작품도 끝났는데 한 일주일 쉬어야지.”

“무슨 소리야. 당장 차기작 준비해야지.”

“...어?”

“이제 막 감 잡았는데 흐름 끊기려고?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두드려야 할 거 아냐?”

“아니, 그건 맞는데... 그래도 사람이 조금은 쉬어 줘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나는 일부러 단호하게 말했다.

“누나 이번 작품이 잘 됐어. 그럼 회사에서 뭐라고 할까?”

“잘했다고?”

“그리고?”

“아마... 다음 작품도 하자고 하겠지?”

“그래. 그럼 그때도 이번처럼 원고 붙잡고 허송세월 보낼 거야?”

“...”

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집필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준비해 둬야 기회도 잡는 거야. 그런데 쉬겠다고?”

그제야 누나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았어. 쓰면 될 거 아냐. 쓴다고, 써.”

누나는 얼른 제 방으로 도망쳤다.

내가 이토록 누나를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 누나에게 필요한 건 경험치니까.’

이 정도의 성공에 만족해선 안 됐다.

당분간은 당근보단 채찍이 훨씬 더 필요한 시기였다.

‘그나저나 누나 작품도 끝났으니 이제 곧 시작이겠군.’

내 작품이 들어갈 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은미 피디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다음 주에 첫 촬영 들어갑니다. 기대해주세요!

문자에서부터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아주 만족스러운 자세였다.

***

한 주가 지났다.

누나의 작품은 모두 공개되었고, 에피소드 1의 조회 수만 무려 60만을 찍었다.

‘대박, 회사에서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고 연락 왔어.’

내 예상대로였다.

누나의 작품 결과를 보면 어려운 예측도 아니었다.

‘네 말대로 미리 준비해둔 시놉시스 보내줬더니 바로 계약하재! 그뿐만 아니라 계약금도 올려준대!’

누나는 신이 나서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덕분에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바로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바빠진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백일장까지는 남은 기간은 D-4.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급할 건 없었다.

애초에 시는 내게 그리 어려운 분야가 아니었다.

‘이미 수천 편이 넘는 시를 썼고, 수백 편이 넘는 소네트를 남긴 게 바로 나니까.’

소네트(sonnet).

13세기 이탈리아 민요에서 파생되어,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의해 완성된 14행의 정형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해 유럽 전역을 넘어, 바다 건너 영국까지 스며든 가장 대표적인 시의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걸 영국식으로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물론 지금은 또 지금 시대에 맞는 시풍(詩風)이 있지.’

백일장 스터디를 해야 하는 이유였다.

나는 그동안 장현웅의 시를 세 번 더 봐줬다.

“확실히 네 말대로 하니까 글이 잘 풀린다.”

다행히 장현웅은 내 말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표현도 훨씬 더 선명해지는 거 같아.”

사실 시를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감각화였다.

‘글은 단순히 추상적인 무언가를 있어 보이게 쓰는 게 아니야. 내가 느낀 것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해주기 위한 수단이지.’

만일 필력이 부족하다면 감각을 이용해서 전달하는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어때? 이젠 구체적으로 떠올라?”

장현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아직 맛과 촉감까지 연결시키는 건 어렵네.”

“억지로 짜내려 하지 말고 길과 노래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들을 따라가 봐. 그것들 중에 반드시 맛이나 냄새, 촉감과 연결 짓는 부분들이 생길 테니까. 예를 들어 이런 거야.”

나는 백지 가운데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를 그렸다. 그리고 그 건반을 길처럼 상징화시켰다. 길 주변엔 진달래와 개나리로 채우고, 상큼한 봄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어때?”

“오...”

그림을 보던 장현웅이 감탄사를 터트린다.

“인생을 길과 노래로 비유한 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차이인지 알겠어?”

“어. 그림을 보자마자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화자가 어떤 기분으로 길을 걷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데?”

장현웅은 그림을 다시 보며 심상에 젖는다.

“꽃향기와 함께 경쾌한 걸음... 살랑거리는 바람의 느낌, 흙냄새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만화애니메이션 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그림으로 전하는 설명이 효과적이었다.

“그래. 그 심상 속에 니가 있는 거야.”

“하.”

녀석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웃는다.

“너 진짜 대박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걸 알게 된 표정.

한 계단 성장했을 때 볼 수 있는 뿌듯한 감격이었다.

장현웅은 가만히 상상의 세계로 접어든다. 눈은 분명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봄의 정취를 만끽하며 걷고 있었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감각까지 함께 섬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장현웅은 천천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

2시간 뒤.

스터디는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터디룸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문창과 학생의 삶.

그것은 예술이 아닌 과제와의 싸움이었다.

소설, 시와 같은 창작 수업은 2주일마다 과제가 쏟아졌고, 그 외의 수업은 모두 한 권 이상의 텍스트를 읽고 제출해야 했다.

“서준아, 과제 다했냐?”

맞은편에서 과제를 하던 장현웅이 하품을 하며 묻는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극과 사상 과제는 이미 끝냈어. 영미 문화 산책은 지금 하고 있는데 꽤 재미있네.”

내 말에 장현웅의 눈이 커진다.

“재미있다고?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고 요약해야 하는 과제가?”

장현웅은 이해 못 하겠지만 내 입장에선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나와 밀접한 이야기니까.’

내가 죽고 난 뒤에 벌어진 영미권의 문학 얘기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재미있었다. 나의 문학이 전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도 중요 포인트였다.

‘특히 내가 창조한 수많은 단어가 아직까지 쓰인다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야.’

은근히 차오르는 고양감(高揚感)을 만끽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에게 국한된 이야기였다. 평범한 문창과 학생에겐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었다.

“이건 문창과가 아니라 과제 창작학과라고. 이렇게 과제 많은 줄 알았다면 전과도 안 했을 거야...”

장현웅은 의미 없는 후회를 내뱉으며 늘어놓은 책들을 바라본다.

“내일은 소설 마감, 모레는 시 마감, 글피는 요약 마감... 이렇게 살다가 내 인생도 마감할 거 같다고. 게다가 백일장 스터디까지 하니까 진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억울하면 열심히 해서 상금이라도 타든가.”

“상금? 에이, 그건 선 넘었지.”

녀석이 허탈하게 한 번 웃더니 말을 잇는다.

“솔직히 1, 2등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잖아. 송진호, 고아름, 둘도 아니면 너겠지. 나머지야 뭐 남은 상장 나눠 먹기고. 듣자 하니 송진호는 요즘 백일장 준비하느라 거의 잠도 안 잔대. 난 놈이 더 지독하다니까?”

장현웅이 혀를 내두른다.

물론 녀석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문창과 학생들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과연 그럴까?”

“어?”

“결과는 열어봐야 아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만 잘 따라와 봐.”

“...”

확신에 찬 내 말에 녀석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조금 전 말과 달리 사뭇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동안의 스터디로 글에 대한 자신감도 꽤 생긴 모양이었다.

‘그래.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내 머릿속엔 벌써부터 재미있는 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문창과를 뒤흔들 다소 충격적인 반전.

그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4일이었다.

“근데, 송진호는 왜 그렇게 악착같이 준비하는 걸까? 솔직히 걔 입장에선 백일장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닐 텐데.”

“반드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나 보지.”

“인정? 누구?”

“글쎄.”

짚이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

그러나 굳이 말로 내뱉지는 않았다.

‘사연을 숨기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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